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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ssue] 내 DNA에… 낯선 유전자가 들어왔다

유전자 수평 전달 미스터리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합성생물학’ 등 최신 유전공학 기술들이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자연에서는 이미 수억 년 전부터 완전체가 되기 위한 유전자 변형이 일어나고 있었다. ‘유전자 수평 전달(HGT)’이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에리카 피어슨 교수팀은 페루 리마의 한 빈민촌에서 인분과 환경시료를 채취했다. 그 지역 세균들의 염기서열을 분석해 항생제 내성을 갖게 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분석 결과가 이상했다. 대부분의 세균 유전자는 계통수에 따라 분류되지만, 항생제 내성을 갖게 한 핵심 유전자는 계통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네이처’ 5월 11일자). 내성 유전자를 부모로부터 받는 보통의 진화적 과정과 다른 방식으로 얻었다는 뜻이다. 이 세균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진화는 부모에서 자식으로, 또 그 자식으로 유전자가 전달되는 현상이다. 중간에 돌연변이가 발생하고 그 유전자가 후손을 남기는 데 도움이 되면 집단 내에 그 유전자의 수는 늘어난다. 그런데 박테리아는 또 다른 진화 방법을 지니고 있다. 주변의 다른 개체와 생식과정도 없이 유전자를 주고받는 방법이다. 심지어 종이 달라도 전달된다. 부모자식 간에 유전자가 ‘수직’으로 전달되는 것과 비교해 이 유전 방식은 ‘유전자 수평 전달(Horizontal Gene Transfer, HGT)’이라 부른다.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 편도선염이나 심장 질환 등의 원인인 화농연쇄상구균, 괴사성 대장염을 일으키는 가스괴저균 등이 유전자 수평 전달을 통해 병원성을 갖춘 대표적 박테리아다.





헐거워진 DNA 속으로 낯선 유전자가 쓱~

계통수는 생물의 진화를 순서대로 정리한 진화의 지도다. 하나의 조상에서 분리된 종은 각각 서로 다른 진화의 길을 걸어 나간다. 두 갈래의 가지로 나뉜 종은 서로 교배를 할 수 없는, 다시 말해 유전자가 뒤섞일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그런데 종종 두 가지 사이를 잇는 화해의 다리가 등장하곤 한다. 유전자 교류가 일어날 수 없는 두 종이 가지 중간의 다리를 타고 서로의 유전자를 주고받는 수평 전달이다. 김희발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교수는 “원핵생물에서는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며 “미생물 진화는 대부분 수평 전달을 통해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전자 수평 전달 방식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박테리아의 유전자 일부가 박테리오파지(오른쪽 그림 ①)나 작은 DNA인 플라스미드(②)를 통해 다른 개체 속으로 이동할 수도 있고, 죽은 미생물이 남긴 DNA조각을 다른 박테리아가 흡수(③)하면서 자신의 유전자에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윤환수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화산폭발로 강에 황이나 철 등이 많아지면 pH가 낮아진다”며 “이로 인해 미생물의 구조가 헐거워져서 주변에 있는 DNA 조각이 들어가기 쉬워진다”고 말했다.



현재의 인공적인 유전자 변형도 따지고 보면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이 방식들을 응용한 것이다. 열이나 산도에 변화를 줘 미생물의 유전체를 약하게 한 뒤에 특정 DNA조각을 인위적으로 삽입하는 식이다. 자연 상태와의 차이라면 처음부터 의도를 갖고 만들었다는 것뿐이다.
 


‘수직’보다 크고 빠른 ‘수평’ 전달

유전자 수평 전달은 흔하게 일어날 뿐만 아니라 진화의 속도도 훨씬 빠르고, 폭도 크다. 박테리아가 항생제 저항성을 갖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항생제를 사용했더니 그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소수의 박테리아만 살아남아 다시 번성했다. 우리는 이 경우 ‘진화를 통해 항생제 저항성을 갖췄다’고 한다(수직 전달).

그런데 살아남은 소수의 개체들이 그렇지 않은 개체에게 저항성을 띤 유전자를 수평 전달하면 어떻게 될까. 기존에 저항성이 없었던 박테리아도 단기간에 생존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김희발 교수는 “각각의 항생제에 저항성을 갖는 박테리아들끼리 유전자를 서로 교환하면, 여러 개의 항생제에 대한 저항성을 모두 갖는 박테리아가 탄생할 수 있다”며 “이것이 소위 슈퍼박테리아”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 1월 최상호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교수,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함께 박테리아의 유전자 수평 전달을 파악하기 위한 데이터베이스인 ‘HGTree’를 개발했다. 신·변종 식중독균과 슈퍼박테리아의 출현 원인을 분석하고 대처방법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미생물 2472종의 유전자 약 774만 개를 계통수에 따라 모두 그린 뒤 각 유전자가 얼마나 수평이동을 했는지 알아봤다(슈퍼컴퓨터로도 6개월 동안 꼬박 돌려야 하는 방대한 자료였다).

유전자 수는 많지만 연구팀이 수평적 전달을 찾은 기본 원리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만약 세 종 a, b, c의 유전자 1000개를 분석했을 때 a와 b가 800개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고 해보자. a와 b가 공통된 조상에서 진화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왼쪽 그림의 계통수 ➊). 그런데 b가 a에는 없고 c에만 있는 유전자200개를 가지고 있다면, b와 c의 뿌리를 연결한 계통수를 그릴 수 있다(계통수 ➋). 어느 쪽이 정답일까. 정답은 ➊도, ➋도 아니다. b와 c 사이의 유전자 200개는 수직적으로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주고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a와 b가 같은 조상을 가지고, b와 c가 수평적으로 유전자를 주고받
은 ➌과 같은 계통수가 정답이다.

분석 결과 데이터베이스 안의 미생물들은 유전자 수평 전달을 66만 번 겪은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같은 유전자가 여러 번 이동하지 않았다면 전체 유전자의 약 4%가 수평이동을 했다는 뜻이다(실제로는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번 이동할 수도 있으니 비율은 좀 더 낮아진다). 이를 통해 미생물은 새로운 환경에서도 영양분을 얻고 번식을 잘하도록 진화한다. 김 교수는 “미생물 입장에서 유전자 수평 전달은 자신들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진핵생물 진화의 시작 세포내공생도 수평 전달과 관련

1959년에 일본에서 처음 관찰된 유전자 수평 전달은, 처음에는 원핵생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으로 알려져 왔다. 원핵생물은 핵막이 없고, 유전체 구조가 헐거워 다른 DNA를 받아들이고 후대에 전달하기가 진핵생물에 비해 쉽다. 그런데 2000년대부터 진핵생물에서도 유전자 수평 전달이 일어난다는 증거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미생물의 유전자가 진핵생물로 유입된 대표적인 사례는 모든 진핵생물이 갖고 있는 미토콘드리아와, 모든 식물이 갖고 있는 엽록소의 세포내공생이다. 세포내공생의 가장 유력한 설은 영양분을 외부로부터 얻던 고세균이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미생물을 흡입했다는 것이다. 현재에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갯민숭달팽이는 식물의 엽록체를 자신의 세포 속으로 받아들여 수일에서 수개월 동안 광합성을 하게 한다. 하지만 결국 동화하지는 못한 채 엽록체를 분해하고 마는데, 만약 갯민숭달팽이와 같은 흡입과정이 반복되다가 우연히 동화된다면? 바로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소가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소의 기원이 된 미생물이 단순히 고세균 내에 들어와 잠자코 더부살이만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DNA 상당수를 숙주에게 전달했다. 이 역시 유전자 수평 전달의 한 종류로, 세포내공생을 통해 유전자 전달이 이뤄졌다고 해 유전자 세포내공생 전달(Endosymbiotic gene transfer, EGT)이라한다. 예를 들어 엽록소의 기원 생물이라고 알려진 시아노박테리아는 고세균에 흡입된 뒤 자신의 DNA 중 일부를 고세균의 핵에 전달했다. 시아노박테리아 유전자가 원래 3000개 정도인 데 반해 현재의 엽록소는 100~150개 정도이니, 나머지는 사라졌거나 숙주의 핵으로 이동한 것이다. 실제로 회조류, 홍조류, 녹조류 등의 DNA를 분석해 본 결과, 전체 유전자의 6~20%가 시아노박테리아로부터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간의 유전자에 바이러스 유전자 있다

유성생식을 하는 진핵생물이 다음 세대로 유전자를 전달하려면 반드시 생식세포의 유전자가 변해야한다. 때문에 유전자 수평 전달로 진핵생물을 진화에 이르게 하기는 상당히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2012년 일부 박테리아로부터 유래한 단일 유전자가 진핵생물인 진균(곰팡이)에게 무려 15번 이상 제공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유전자 수평 전달이 진핵생물에게서도 생각보다 많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진핵생물, 특히 인간의 DNA 중에 바이러스로부터 왔을 것이라고 가장 의심 받는 부분은 반복서열이다. 인간의 DNA 중 40%, 식물은 50% 정도가 똑같은 DNA 서열이 반복되는 반복서열인데, 대다수는 그 기능이 밝혀지지 않았다. 윤 교수는 “반복된 DNA 대부분이 이동이 가능한 전이인자면서 레트로바이러스와 관련돼 있어 바이러스로부터 전달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DNA 중 레트로바이러스와 관련된 부분은 전체의 8%이고, 레트로전이인자 계열의 유전정보까지 더하면 바이러스와 유사한 부분이 40%를 넘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지난해 3월, 영국 케임브리지대 알레스테어 크리스프 교수팀은 인간의 유전자 2만 개 중 145개가 외부에서 수평 전달을 통해 유입됐음을 확인해 ‘영국왕립학회보B’에 발표했다. 이 유전자들은 대부분 소화 효소와 관련된 것으로 박테리아, 균류, 조류 등에서 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크리스프 교수는 논문에서 “동물의 진화가 단지 조상으로부터 내려 받은 유전자에 의해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증거”라며 “이런 과정은 여전히 진행 중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 변형은 이미 수억 년 전부터 시작됐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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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서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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