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도 그림 같다.’ 스위스에 다녀온 분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입니다. 알프스 산맥을 끼고 있는 스위스는 자연과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죠. 연구소도 예외는 아닌가 봅니다. 가속기 연구 분야의 세계 최고 기관으로 꼽히는 스위스 폴쉐르 연구소(Paul Scherrer Institute, PSI)는 한가운데에 에메랄드 빛 큰 강이 지나고 있습니다. 길이가 300km인, 스위스에서 가장 긴 아레강인데요. 강 위에는 연구소 동편과 서편을 잇는 다리가 놓여 있고, 주위로 키가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동화 속 가속기 3형제
스위스에 있는 가속기라고 하면 제네바 인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충돌기(LHC)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동쪽의 아담한 도시, 브룩에 위치한 PSI에서도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가속기를 3대나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전자를 가속시키는 3세대 원형 가속기 ‘SLS(Swiss Light Source)’와 뮤온을 가속 시키는 ‘SμS(Swiss Muon Source)’, 양성자를 가속시키는 ‘SINQ(Swiss Spallation Neutron Source)’가 바로 그것입니다.
삼형제 중 가장 잘 알려진 시설은 SLS입니다(위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원형 시설). 규모나 원리 면에서 우리나라 포항가속기연구소에 있는 3세대 방사광가속기와 굉장히 유사한데요. 둘레가 288m인 거대한 고리 모양 구조물 안에서(포항 가속기는 둘레가 280m) 전자가 빛에 가까운 속도로 돌면서 방향을 바꿀 때 적외선부터 X선까지 다양한 빛(방사광)이 만들어집니다. 각각의 방사광들은 모두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단백질 결정구조를 분석하거나 물질 표면의 자기 특성을 분석할 때, 초전도 물질을 연구하는 데 등등 다양하게 쓰입니다.
최근 포항에 4세대 가속기가 세계 세 번째로 완공돼 시운전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들으셨죠? PSI에도 ‘SwissFEL’이라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완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올해 안에 가동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4세대 가속기는 직선 형태의 가속기라서 전자가 원운동이 아닌 직선운동을 하며 가속됩니다. 때문에 3세대 가속기보다 훨씬 높은 밀도와 에너지를 가진 전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재료에 대한 더 정밀한 분석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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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은 포기하세요”
PSI는 현재 스위스취리히연방공대 소속으로, 연구원 수만 약 2500명에 이릅니다. 이들은 아주 잘 갖춰진 복지제도를 누리고 있습니다. 매년 휴가가 25일씩 주어지고, 실업 급여도 2년 동안 연봉의 80% 가 까이 지급됩니다. 출산휴가도 4개월 동안 월급을 전액 받으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 놀라운 건 연구소가 연구원 개인에게 사고보험을 들어준다는 점입니다. 실험 중에 일어난 사고는 물론이고, 알프스산맥에서 스키를 타다가 다리가 부러져도 치료비를 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요.
그렇다고 PSI 생활이 항상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결정적인 애로사항은 바로 음식입니다. 취재를 도와준 이진희 PSI 에너지환경 연구부 박사후연구원은 아예 “맛집은 포기하라”고 단언하더군요. 스위스가 전체적으로 음식 값이 비싸고 맛이 없어서 연구원들 대다수가 직접 점심 도시락을 만들어 먹는다고 합니다. 그래도 굳이 연구소 음식을 맛보고 싶은 분들은 연구소 안에 있는 식당을 추천합니다. 다른 선택지가 없거든요. 도시로 가려면 차로 20분을 달려야 하고(심지어 버스도 30분에 한 대씩 옵니다), 주변에 편의점을 포함한 그 어떤 가게도 없습니다. 하긴, 그림 같은 연구소인데 그 정도의 불편함이야 별것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