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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 Fun] 음료만 마셔도 릴렉스~ 된다고요?

‘레드 불’, ‘핫식스’같은 에너지음료의 인기가 사그라지지 않는 가운데, 이번에는 반대로 잠들게 해준다는 음료가 출시돼 관심이 뜨겁다. 밤은 짧고, 잠을 자야만 하는 사람들을 정말 음료로 재울 수 있을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5월 초, ‘슬로우 카우(Slow Cow)’를 판다는 편의점 열 군데와 대형마트 두 곳을 가봤지만 모두 허탕이었다. ‘안 들어온 지 한참 됐다’거나, ‘그런 음료는 애초에 안 들어왔다’는 말만 듣고 나오길 수차례. 인터넷에 마셔봤다는 후기들은 계속 올라오는데 기자만 못 구하는 건지 유통사에 문의해 봤다. 한국쥬맥스 관계자는 “갑자기 판매량이 수십 배 급증해 국내 재고는 전량 판매됐고, 재입고는 7월에나 가능할 것”이라 답했다.

올해 초 SNS를 중심으로 ‘잠들게 하는 음료’라며 입소문을 타고 퍼진 슬로우 카우. 현재 정상적인 루트로는 구입할 수 없을 정도로 ‘핫’해지자, 이전 허니버터칩 사태처럼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남은 판매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몸값’을 키운 제품들이 암암리에 거래되기도 했다(한 캔 가격이 세 배로 뛰었고, 배송료까지 내야한다).

마셔본 이들은 ‘몸이 나른해지면서 잠이 잘 왔다’, ‘오랜만에 ‘꿀잠’을 잤다’며 한 목소리로 그 효능을 증언했다. 하지만 슬로우 카우의 본사는 웹사이트를 통해 ‘잠을 유도하는 음료가 아니며, 자연스럽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이완음료(relaxation drink)’라고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수면과 이완, 이 둘은 무엇이 다른 걸까.


성난 황소를 잠재울 생기 없는 암소

슬로우 카우가 출시된 것은 2008년. 에너지음료인 ‘레드 불(Red Bull)’과 정반대의 음료를 개발하고자 캐나다의 세 친구가 합심했다. 제품 이름뿐만 아니라, 디자인에서 도 레드 불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목이 꺾일 정도로 축 늘어진 소가 제품 겉면에 그려져 있다). 음료의 색은 진한 에메랄드빛이다. 청색계열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 본사의 속내다. 맛은…, 뭐라 딱 정해서 말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공통적이다. 탄산이 들어있지만 단맛이 없고, 여러 맛이 뒤죽박죽 섞여있다. 그나마 민트맛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이 때문에 맛은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슬로우 카우는 이런 맛과 색보단, 그 기능 때문에 더 주목받는다. 마시면 잠들게 한다는 마법 같은 성분은 무엇일까. 제품 겉면에 ‘노칼로리’, ‘노카페인’, ‘노슈가’ 아래로 낯선 단어 하나가 눈에 띈다. ‘테아닌
(L-theanine)’이다.

테아닌은 녹차와 몇몇 식물에만 미량 존재하는 천연 글루타민 계열의 아미노산이다. 인체에서는 스스로 만들 수 없다. 섭취했을 때 체내에 흡수도 잘 되고 뇌혈관장벽도 잘 통과하기 때문에 뇌로 전달되는 데 탁월한 물질이다. 뇌로 전달된 테아닌은 신경전달물질에 변화를 준다. 신체 이완을 촉진하고 긴장을 완화하며, 휴식상태에서의 뇌파인 알파파를 증진해 ‘업’ 돼있는 몸 상태를 ‘다운’시키는 기능을 한다. 홍정일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녹차가 갖는 진정효과가 대부분 테아닌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녹차에 커피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카페인이 함유돼 있지만 카페인 부작용이 없는 것도 이 테아닌 때문이다. 커피와 녹차에 들어 있는 카페인의 종류가 다른 것도 한 이유지만, 테아닌이 카페인의 각성효과를 억제하는 것도 한 몫 한다. 일본에서 녹차 가공업으로 유명한 이토엔 사의 타카미 카쿠다 연구원은 테아닌이 카페인에 의한 흥분작용을 억제한다는 연구결과를 2000년에 발표했다(doi: 10.1271/bbb.64.287). 이후 연구에서 테아닌 양이 카페인의 8배면 각성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고 밝혀졌다(단순 계산으론 레드 불 한 캔을 상쇄하려면 슬로우 카우 다섯 캔을 마셔야 한다).


수면제와 어떻게 다를까

온몸이 나른해지는 휴식상태는 분명 수면과 관련이 있다. 수면의 4단계 중 첫 단계가 몸이 안정상태로 접어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약품인 수면제도 신체를 진정시키는 작용을 한다.

하지만 테아닌과 수면제는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난다. 신경전달물질은 ‘흥분성’과 ‘억제성’으로 나뉜다. 휴식상태로 만들기 위해선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을 약화시키거나,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을 촉진시켜야 한다. 수면제에 많이 사용되는 벤조디아제핀은 억제성 신경물질을 촉진하는 메커니즘을 택하고 있다.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GABA(gamma-aminobutyric acid)는 신경세포 활성화를 억제하면서 신체를 안정시키기 때문에, 수면제는 이를 강화해 수면을 유도한다.

반면 테아닌은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탐산을 억제한다. 흥분 상태가 되기 위해선 글루탐산이 글루탐산 수용체에 붙어야한다. 그런데 글루탐산과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한 테아닌이 투입되면 글루탐산 대신 붙어버린다. 이로써 다음 신경세포로 전달되는 글루탐산이 줄고, 곧 흥분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난다. 정재훈 삼육대 약대 교수는 “수면을 유도하는 방법 중 GABA를 촉진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가 탁월해 수면제에서 주로 활용된다”며 “테아닌은 의약품 관점에선 효능이 뛰어나지 않아 수면제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몸을 휴식상태로 만드는 두 가지 방법》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을 줄이거나,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을 늘리면 된다. 슬로우 카우에 있는 테아닌은 전자로, 벤조디아제핀계 수면제는 후자의 방법으로 휴식상태를 유도한다.

식품이라면 효능보단 안전성

하지만 식품으로 사용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의약품은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효능이 뛰어나고, 과량 복용했을 경우 부작용의 우려도 있다. 그래서 사용량을 세밀히 조절해야만 한다. 그러나 식품은 효과는 떨어지지만 안전성이 비교적 높아 섭취량에 대한 제약이 약만큼 까다롭지 않다(무한히 섭취해도 상관없단 얘긴 아니다). 정 교수는 “식품의 관점에서 본다면 테아닌이 수면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부작용도 적다. 슬로우 카우에는 100mg의 테아닌이 함유돼 있어 녹차 한 잔에 들어있는 양(8mg)보다 12.5배가량 많지만, 현재까지 테아닌은 부작용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교수는 “미국식품의약국(FDA)에도 식품으로 쓰기에 안전한 물질로 규정돼 있고, 유럽에서도 식품으로 사용허가가 난 물질”이라고 말했다. 홍정일 교수도 “테아닌은 전통적으로 섭취해 온 식품에 든 아미노산이기 때문에 부작용의 소지가 적다”며 “뇌 건강에 긍정적이라는 연구결과가 꾸준히 나온다”고 동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더 정확히 밝혀져야 할 부분은 남아 있다. 테아닌이 흥분한 상태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반대로 가라앉은 기분을 띄운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예를 들어 분노조절장애와 우울증이라는, 서로 상반되는 정신 질환 치료에 테아닌이 모두 효과가 있었다. 홍 교수는 “테아닌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정상범위로 이끌어주는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또한 테아닌이 글루탐산만이 아니라 도파민, 세로토닌 등 여러 신경전달물질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보고되고 있지만 정확한 작용 원리에 대해서는 불명확한 부분들이 많다.

테아닌만이 아니라, 다른 성분들에도 주목해야 한다. 슬로우 카우에는 캐모마일, 길초근, 시계초 등 다섯 가지 물질이 더 첨가돼 있다. 여기에는 벤조디아제핀 계열 수면제와 같이 GABA의 기능을 강화하는 물질들이 다량 포함돼 있다. 정재훈 교수는 “모두 진정, 수면과 관련된 물질이지만 이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더 정확한 임상시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슬로우 카우는 탄산 허브티

2010년부터 시작된 에너지음료 유행은 유사제품들이 계속 출시되며 더욱더 활황을 맞고 있다. 수면 관련 시장도 규모가 더 커지고, 대중이 더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정 교수는 “최근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일반약품이나 건강기능 식품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소비자 입장에서 음료와 의약품의 정확한 차이를 꼭 인지해야한다. 아무리 뛰어난 음료라도 의약품만큼의 즉각적이고 큰 효능은 없다. 또한 불면증은 감기만큼이나 원인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의 기작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런 의미에서 슬로우 카우는 탄산 허브티로 보는 게 가장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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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서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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