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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 Fun] 당신의 여름은, 어떤 냄새인가요?



여름이다. 축 쳐지는 더운 날씨, 거리를 파랗게 물들인 나뭇잎들이 “나 여름이야!” 하고 외치는 듯 하지만, 사실 여름은 훨씬 전부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말이다. 바로 약간 비릿한 듯 하면서도 싱그러운 여름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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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서 있으면 비릿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복사 과정에서 나오는 열에 의해 발생하는 오존 냄새다. 그런데 이 냄새는 여름철 대기 중에서 나는 ‘여름 냄새’의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좋은 냄새인 줄 알았는데… 유독한 오존

여름철 뉴스에는 ‘오존주의보, 바깥 외출 삼가’라는 기사가 많이 나온다. 여름에 유독 대기 중 오존 농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먼저 대기 중 물질들의 광화학 반응을 통해 오존이 만들어질 수 있다. 자동차나 각종 공장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NOX)은 자외선을 받으면 일산화질소(NO)와 산소원자(O)로 분해되고 산소원자는 공기 중의 산소분자(O2)와 만나 오존(O3)을 형성한다. 여름에는 광화학 반응의 필수 요소인 자외선량이 많기 때문에 다른 계절에 비해 대기 중 오존량도 늘어난다.

성층권에 있던 오존이 대류권으로 내려오기도 한다. 미국 국립대기과학연구소 루이자 에몬스 박사는 북아메리카의 오존 발생 원인을 분석해 2008년 12월 ‘지구물리학연구저널’에 발표했다(doi: 10.1029/2008JD010190). 2004년 7월부터 두 달간 북아메리카 상공의 오존을 채집해 분석한 결과, 대류권의 광화학 반응에 의해 발생한 오존이 10~12%인 데 반해, 성층권에서 대류권으로 이동한 오존은 20~27%로 두 배가 넘었다. 연구팀은 여름철 폭우가 쏟아지면 높은 고도에 머무는 물질들이 대거 지상으로 내려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폭우가 쏟아지기 전 혹은 쏟아질 때에도 여름 냄새가 진하게 나는데, 이 독특한 냄새도 바로 오존에서 비롯된 것이다.

돌에서 흐르는 식물의 피, 페트리코

오존의 비릿한 향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름 냄새로 떠올리는 것이 비냄새다. 비가 죽죽 내리는 날 어김없이 나는 그 냄새를 부르는 용어까지 있다. ‘페트리코(petrichor)’다. 이 단어는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의 이자벨 조이 베어 연구원과 리차드 토마스 연구원이 1964년 ‘네이처’에 발표한 기고문에서 처음 등장했다(doi: 10.1038/201993a0).

식물은 발아 과정에서 기름을 분출하는데, 이 기름은 주변 흙이나 바위 틈 사이에 모인다. 연구팀은 비가 내리고 마르는 과정에서 기름이 공기 중으로 분출돼 나는 냄새가 페트리코라고 추정했다. 공기로 분출된 물질들은 다시 바위 표면의 다른 화학물질과 재결합해 지방산, 알코올, 탄화수소 등의 화합물을 만들어낸다. 이들의 조합이 비의 독특한 냄새를 만든다는 것이다. 페트리코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돌을 의미하는 ‘페트라(petra)’와 신화 속 신들이 흘린 피를 의미하는 ‘이코(ichor)’를 합친 것이다.

페트리코와 함께 여름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향은 흙의 냄새다. 비에 젖은 흙을 가만히 들어 코에 갖다 대면 싱그러운 냄새가 난다. 이는 흙에 사는 박테리아가 내뿜는 화학물질 냄새다. ‘지오스민(geosmin)’이라고 불리는 이 물질은 세균이 물질대사를 할 때 내놓는 화합물이다.

흙에서는 주로 방선균류가 지오스민을 방출한다. 방선균류는 토양에서 유기물을 분해하며 사는 박테리아로 토양 표면 바로 아래서 서식한다.
 



싱그러운 흙 냄새가 유독 여름에 진동하는 이유

아마 많은 이들에게는 오존 냄새나 비 냄새보다는 흙 냄새가 좀 더 강렬하게 기억될 것이다. 사람의 후각이 유독 지오스민에 예민하기 때문이다. 1L에 수 나노그램(ng, 10억 분의 1g)만 있어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다.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일부 학자들은 진화적으로 설명한다. 호주 퀸즐랜드대 인류학과 다이아나 영 교수는 기고문에서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첫 비가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다”며 “동물들에게도 물을 찾는 일은 생존과 연관된 일이기 때문에 젖은 흙에서 나는 지오스민의 냄새는 중요한 이정표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www.jstor.org/stable/25758086).

하지만 사람의 후각이 여름에 더 예민해질 리도 없고, 왜 유독 여름에만 지오스민 냄새가 강하게 나는 걸까. 이유는 비와 관련이 있다. 정영수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기계공학과 연구원은 빗방울이 지표면에 닿는 순간 에어로졸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doi: 10.1038/ncomms7083).

에어로졸은 기체 속에 고체 혹은 액체의 작은 방울이 분산돼 있는 것으로 먼지나 안개도 에어로졸의 일종이다. 연구팀은 토양의 종류(16가지), 물방울의 낙하 속도 등을 변화시키며 물방울이 토양에 닿는 순간을 고속 카메라로 촬영했다. 그 결과 빗방울과 유사한 크기의 작은 물방울이 에어로졸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135쪽 사진).

연구팀이 촬영한 영상을 보면 물방울이 토양에 닿을 때 물방울 안에 커다란 공기 방울이 만들어진다. 공기 방울이 터지면서 얇은 물 기둥이 뿜어져 나오고, 이것이 작은 방울로 흩어지면서 에어로졸이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땅 속의 일부 물질이 함께 분출된다. 즉, 에어로졸에 실려 나온 지오스민 등 화학물질이 공기 중에 퍼지며 사람이 쉽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이다.

여름 냄새를 지배하는 자, 박테리아

지금까지 여름 냄새의 원인을 보면 크게 비와 박테리아, 두 가지다. 박테리아가 내뿜는 화학물질이 냄새를 만들고, 비가 이 물질을 사람의 코까지 전달해준다. 그런데 놀랍게도 비를 내리게 하는 원인 역시 박테리아다.

덴마크 오르후스대 연구팀은 지난해 2월 구름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박테리아라고 지목한 연구 논문을 ‘대기 환경’에 발표했다(doi: 10.1016/j.atmosenv.2015.02.060). 연구팀은 지상으로부터 30m 위치에 거치대를 설치해 2009년 2월부터 10월까지 내린 9번의 강우와 5번의 폭설 샘플을 얻었다. 14개의 샘플을 분석한 결과 박테리아 67종을 찾아냈는데, 이들 중 대다수는 얼음이 어는 데 도움을 주는 단백질(INA, Ice Nucleation Active protein) 유전자를 가진 슈도모나스 속의 박테리아였다.

INA는 그람음성균, 예컨대 슈도모나스 속, 산토모나스 속의 박테리아 외막에 붙어있는 단백질로, 영하 5°C에서도 물이 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가 접하는 물은 먼지나 꽃가루 등 이물질이 포함된 물로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면 쉽게 얼지만, 이물질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순수한 물은 영하 38°C가 돼야 얼기 시작한다. 이물질이 일종의 구심점 역할을 하지 않으면 얼음이 생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마치 눈덩이를 만들 때 돌이나 숯과 같은 덩어리가 있으면 훨씬 쉽게 눈을 뭉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대표적인 슈도모나스 속 박테리아인 참다래 꽃썩음병 세균(Pseudomonas syringae)은 식물에 붙어 살며 잎이 빨리 얼게 만드는 유해균이다. 땅에서는 식물들의 ‘원수’이지만, 하늘에서는 비를 만들어주는 ‘은인’인 셈이다. 이들은 대류 현상에 의해 지면에서 하늘로 이동한다.

여름 냄새로 기억되는 것들은 여러 가지다. 기사에서는 가장 보편적인 비나 흙 냄새를 소개했지만, 누군가에게는 특정 브랜드의 자외선 차단제가, 누군가에겐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여름 냄새일 것이다. 미국 필라델피아 모넬 화학지각센터의 파멜라 달튼 박사는 2012년 발간한 ‘후각의 인지’에서 “후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경험과 기억”이라며 냄새와 함께 놓여지는 상황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문득 궁금해진다. 당신의 여름은 어떤 냄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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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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