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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파충류 뇌라고 무시하는 거야?

파충류의 속사정 14 파충류의 뇌

파충류는 물개처럼 공을 물어올 수도, 돌고래처럼 조련사의 손짓을 보고 멋지게 공중회전을 할 수도 없다. 그래서 파충류가 지능이 낮은 어리석은 동물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파충류는 돌고래처럼 숫자를 셀 줄 알고 강아지처럼 학습도 할 수 있으며, 사람처럼 꿈도 꿀 가능성이 크다!



파충류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는 바로 ‘멍청함’ 또는 ‘아둔함’이다. 실제로 동물원에 가만히 있는 도마뱀, 악어, 거북을 보면 그렇게 보인다. 먹이를 주는 시간이 아니면 거의 미동 없이 누워있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파충류를 아둔하다고 여기는 다른 이유도 있다. 그 동안 파충류의 지능과 뇌에 대해 연
구한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1950년대부터 동물이 얼마나 영리한지 검사하기 시작했는데, 검사를 받은 동물은 대부분 포유류였다. 그러니까 파충류는 아예 지능에 대한 정보 자체가 부족했다.

그나마 검사를 받은 파충류가 몇 종 있었지만 이들이 받은 검사들은 모두 포유류에게 적합한 것들이었다. 파충류는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아둔하고 게으른 동물이 됐다. 그리고 사람들은 오랫동안 파충류의 지능에 대해 관심을 껐다.

20세기 말, 변화가 일어났다. 오늘날의 젊은 과학자들이 50년 만에 파충류에게 적합한 인지검사 방법을 개발해 지능을 측정한 것이다. 결과는 놀랍다. 파충류는 결코 아둔한 동물이 아니었다!
 

누가 내 달팽이를 옮겼을까?

우선 파충류가 숫자를 셀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99년 샌디에이고동물학회의 존 필립스 박사는 미국 샌디에이고동물원에 있는 바위왕도마뱀을 연구했다. 바위왕도마뱀은 몸길이가 2m나 되는 거대한 도마뱀으로, 육식성에 성질도 사납다. 하지만 파충류연구 경험이 많은 필립스는 이 무시무시한 바위왕도마뱀이 실험에 협조하게끔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이 도마뱀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인 달팽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필립스는 여러 개의 방으로 이뤄진 사육장과 여러마리의 달팽이를 준비했다. 그는 각 방에 똑같이 네마리의 달팽이를 숨겨놓았다. 그리고는 도마뱀을 방에 풀어놓았다. 도마뱀이 방 안에 숨겨진 네 마리의 달팽이를 전부 찾아 먹으면 문이 열리고 다음 방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리고 다음 방으로 넘어간 도마뱀이 또 숨겨진 네 마리의 달팽이를 전부 찾아먹으면 또 다시 네 마리의 달팽이가 숨겨져 있는 그 다음 방으로 이동할 수 있다.

바위왕도마뱀은 필립스가 숨겨놓은 달팽이들을 전부 찾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다음 방으로 이동해 맛있는 달팽이들을 찾았다. 바위왕도마뱀이 이와 같은 환경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필립스는 도마뱀 몰래 방에서 달팽이 한 마리를 뺐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세 마리를 다 찾았는데도 바위왕도마뱀이 다음 방으로 이동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도마뱀은 나머지 네 번째 달팽이를 찾고 있었다!

이 실험을 통해 필립스는 바위왕도마뱀이 숫자 4를 셀 수 있음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바위왕도마뱀은 과연 몇까지 수를 셀 수 있을까. 궁금했던 필립스는 방에 숨겨놓은 달팽이의 수를 조금씩 늘려가며 실험을 계속했고, 6까지 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도마뱀이 6까지 셀 수 있는 이유는 야생의 생활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사는 바위왕도마뱀은 달팽이도 먹지만 새나 다른 파충류의 둥지를 털어 알을 훔쳐 먹기도 한다. 그런데 바위왕도마뱀과 같은 지역에서 사는 동물들이 낳는 알의 수가 보통 6개다. 바위왕도마뱀은 6보다 더 많은 수를 굳이 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친구 따라 학습한다

파충류는 학습도 잘한다. 2014년 헝가리 외트뵈시로란드대의 안나 키스 박사팀은 세 살짜리 턱수염도마뱀에게 재미있는 재주를 하나 가르쳤다. 바로 여닫이문을 여는 것이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두 개의 방으로 나뉜 사육장을 준비한 뒤 한 곳에는 턱수염도마뱀을 넣고, 다른 한 곳에는 먹이인 애벌레를 뒀다. 그리고 두 개의 방 사이에 철망으로 된 작은 여닫이문을 설치했다. 도마뱀은 처음에 당황했다. 철망 사이로 먹이는 보이는데 문을 열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여닫이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키스 박사팀은 이 턱수염도마뱀이 익숙해지게끔 실험을 여러 번 반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턱수염도마뱀은 여닫이문을 능숙하게 열 수 있게 됐다.

문 여는 파충류 정도로는 재미없다고? 이 다음부터가 진짜 재미있는 부분이다. 키스 박사팀은 여기서 멈춘게 아니었다. 도마뱀이 능숙하게 여닫이문을 여는 영상을 촬영한 뒤 이 영상을 네 마리의 다른 턱수염도마뱀들에게 보여줬다. 여닫이문을 여는 영상을 시청한 도마뱀들은 과연 그대로 따라 할 수 있었을까.

놀랍게도 영상을 시청한 네 마리의 도마뱀들은 모두 여닫이문을 여는 데 성공했다! 반면 대조군인 영상을 시청하지 않은 다른 네 마리의 턱수염도마뱀들은 실패했다. 이 말은, 도마뱀이 학습도 잘하지만 다른 동료를 보고 따라 하는 능력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이후 이런 ‘보고 따라하기’ 능력이 육지거북에게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둔하고 느리다구유? 키우시는 개보다 빠를걸유?

그렇다면 파충류의 뇌는 정보를 얼마나 빠르게 처리할까. 2014년 오스트리아 빈대의 동물학자 줄리아 뮐러-파울라 연구원팀은 붉은발육지거북 네 마리와 터치스크린을 이용한 실험을 했다. 터치스크린에는 붉은색 세모 모양 하나와 푸른색 원 모양 두 개가 나왔는데, 거북은 붉은색 세모 또는 왼쪽에 위치한 푸른색 원을 선택해야 달콤한 딸기를 먹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네 마리의 거북은 모두 딸기를 먹는 방법을 금세 터득했다. 그런데 뮐러-파울라 박사팀이 놀란 건 그 다음이었다. 거북이 모양을 선택하는 속도가 쥐나 개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이유는 이렇다. 거북의 뇌에는 학습과 기억, 그리고 공간탐색에 관여하는 해마가 없다. 대신 복잡한 인지행위와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중앙 피질이 발달해 있다. 그렇다 보니 거북은 쥐와 개보다 학습속도는 느리지만 의사결정은 빠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거북은 의사결정을 빠르게 하는 뇌를 가지게 됐을까? 뮐러-파울라에 따르면 거북의 의사결정 속도는 모성행위와 관련이 있다. 거북은 새끼를 돌보지 않는다. 그래서 아기 거북들은 부화하자마자 겪는 모든 상황들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맞닥뜨린 모든 문제를 그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해결해야 하기에의사결정을 빠르게 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것이 뮐러-파울라의 설명이다.


스테고사우루스는 전기 달팽이의 꿈을 꾸는가

2016년 4월 말에는 독일 막스플랑크 두뇌연구소의 마크 셰인-델슨 박사팀이 놀라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파충류들이 우리와 비슷하게 잠을 잔다는 것이다!

원래 셰인-델슨 박사팀이 궁금했던 것은 턱수염도마뱀이 먹이를 쫓을 때 시각정보를 사용하는지 여부였다. 이를 알고자 연구팀은 도마뱀의 뇌 활동을 여러 주 동안 기록했는데, 뇌 활동을 기록하던 중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잠을 잘 때 뇌가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는 상태인 렘(REM, 빠른 안구 움직임이 관찰되는 수면 패턴) 수면패턴을 도마뱀이 보인 것이다. 사람은 이런 수면패턴을 보일 때 꿈을 꾼다. 그래서 연구팀은 도마뱀 같은 파충류도 사람처럼 잠을 잘 때 꿈을 꿀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전에는 잠을 잘 때 렘 수면패턴을 보이는 것은 새와 포유류뿐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파충류인 도마뱀까지 렘 수면패턴을 보인다면, 이런 뇌 활동이 새, 포유류, 그리고 도마뱀의 공통조상 동물에서부터 이어받았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한 가지 더. 그렇다면 파충류는 어떤 꿈을 꿀까. 맛있는 먹이를 먹는 꿈? 아니면 따뜻한 햇살 아래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꿈?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파충류의 뇌가 우리의 뇌와 생각 이상으로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만약 도마뱀이 꿈을 꾼다면 오래 전에 살았던 파충류인 티라노사우루스나 스테고사우루스 같은 공룡 역시 꿈을 꿨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작은 파충류의 뇌가 이렇게 놀라움으로 가득한 판도라의 상자일 줄은 아마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2016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박진영 서대문자연사박물관 방문연구원
  • 일러스트

    정재환
  • 에디터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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