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512/S201601N043_1.jpg)
사회자 오늘도 골수를 찾은 수많은 면역 줄기세포 여러분 반갑습니다. 대학 입시 설명회다, 신년회다 하면서 인간들이 바쁠 시기인데요.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찬바람을 잔뜩 쐐 감기에 걸리기 쉽기 때문에, 장차 면역 세포를 꿈꾸는 줄기세포들에게도 가장 바쁜 시기입니다. 오늘도 입시 경향을 알려드리기 위해 ‘이뮨(immune) 스터디’ 손면역 대표님이 나와 주셨습니다. 박수로 맞아주십시오(짝짝짝~).
손 대표 전쟁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면역은 나의 유전자를 외부로부터 지키기 위한 전쟁입니다. 전쟁터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좋은 무기를 손에 들어야 합니다. 수많은 면역세포 중에서 가장 강력한 면역세포를 골라 분화(줄기세포가 특정 세포로 변하는 과정)하는 게 좋겠죠.
올해도 B 세포, T 세포 강세 여전해
사회자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 보죠.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가장 강력한’ 면역세포는 무엇입니까.
손 대표 면역 과정을 한번 살펴보시죠. 우리 몸에 병원균이 침입하면 가 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선천적인 면역 반응입니다. 백혈구의 일종인 뉴트로필(neutrophil)과 에오시노필(eosinophil), 그리고 대식세포(macrophage)가 여기에 속합니다. 선천성 면역은 외부 침입자라고 판단되면 일단 달려들고 봅니다. 병원균이 견딜 수 없는 독한 물질을 분비해 이들을 처리하거나, 병원균을 잡아먹기도 하지요.
사회자 군인에 빗대면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일단 뛰는 5분대기조인 셈이군요.
손 대표 일단 뛰기 때문에 문제가 많아요. 선천선 면역이 내뿜는 해로운 물질들은 정상세포도 손상시킵니다. 공격패턴도 단순합니다. 똑똑한 침입자들은 선천성 면역을 피할 수 있게 진화해, 선천성 면역으로는 이런 녀석들을 처리하기 곤란합니다. 그래서 제가 추천드리는 것은 후천성 면역입니다.
사회자 면역 입시의 스테디셀러죠. 공대에 전기, 화학, 기계가 있다면 면역세포에는 B 세포, T 세포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손 대표 후천성 면역은 선천성 면역과 다르게 딱 한 놈만 잡습니다. 정상세포를 공격할 위협이 무척 낮지요. 게다가 한번 침입했던 침입자의 약점을 기억해 다음에는 더 빨리 침입자를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크게 B 세포와 T 세포로 나뉘는데, B 세포는 항체를 만들고 T 세포는 B 세포를 조종합니다. B 세포와 T 세포가 침입자를 기억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우아합니다.
사회자 면역을 연구하는 인간들도 주로 후천성 기억 면역에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이변이 없다면 올해 입시도 B 세포와 T 세포 강세가 계속되겠네요.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은데, 커피나 한잔….
(이때 청중 속의 한 세포가 튀어나온다)
‘헨젤과 그레텔’ , 그리고 뉴트로필의 평행이론
뉴트로필 이의 있습니다. 항체로 멀리서 우아하게 적을 공격해도 결국 전쟁을 끝내는 것은 저희 같은 지상군입니다.
사회자 (힐끗 쏘아보며) 거참. 찬밥 신세라 서운한 건 이해하겠는데 여기 모인 줄기세포들은 다 엘리트들이에요. 힘만 쓰는 뉴트로필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뉴트로필 저희를 힘만 세다고 하셨는데,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B 세포와 T 세포는 침입자가 들어온 것을 어떻게 알아챌까요.
손 대표 어…, 그거야 바이러스나 미생물이 침투했을 때 전체 몸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오는 법입니다. 나쁜 물질을 막 뿜어내지 않겠습니까.
뉴트로필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립니다. 침입자가 들어오면 주변 세포들이 케모카인이라는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 케모카인이 후천성 면역계에 바로 전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분비되는 범위도 작고, 숫자가 적은 B 세포나 T 세포가 몸 구석구석을 감시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양도 많고 혈관을 따라 항시 체내를 순찰하는 백혈구들이 외부 침입자가 들어온 것을 먼저 알아채는 것이지요.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512/S201601N043_2.jpg)
사회자 그럼 백혈구가 다 중요한 것 아닙니까. 뉴트로필만 중요하다고 외치는 것은 세포이기주의입니다.
뉴트로필 백혈구 중에서도 저희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를 인정한 어떤 면역학자들은 저희를 두고 ‘의사결정권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먼저 저희는 다른 백혈구보다 수가 많습니다. 사람 몸을 순환하는 백혈구 중 50~75% 가량이 저희 뉴트로필입니다. 침입자 주위에서 신호를 만들어 내는 능력은 비슷하지만, 이렇게 숫자가 많다보니 저희들이 어떻게 신호를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면역의 방향이 결정되는 셈이지요.
사회자 역시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전형적인 세포이기주의입니다!
뉴트로필 저희는 T 세포가 현장에 찾아올 수 있는 길라잡이 역할도 합니다. 이름하여 ‘헨젤과 그레텔 전략’입니다. 지난해 9월 김민수 미국 로체스터대 교수팀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내용입니다. 헨젤과 그레텔이 빵가루를 흘려 지나온 길을 표시하듯, 저희도 침입자를 공격하러 출동하는 길에 ‘CXCL12’라는 화학물질로 흔적을 남깁니다. T 세포가 바로 CXCL12를 뒤따라 침입자가 있는 곳을 찾아오게 됩니다.
[➊뉴트로필 세포 외 덫(NETs, 초록색 그물모양)에 갇힌 폐렴간균(Klebsiella pneumoniae, 분홍색)의 모습. NETs는 뉴트로필에서 나온 DNA와 단백질로 구성돼 있다.
➋형광을 띄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뉴트로필이 지나간 자리에 혜성의 꼬리 같은 자국이 남았다. T 세포는 이 흔적을 따라 침입자가 있는 곳을 찾아낸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512/S201601N043_4.jpg)
세포의 안전을 위하여 내 목숨을
손 대표 (자리를 박차며 박수를 친다) 짝짝짝. 뉴트로필도 훌륭한 면역세포가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포와 조직을 지키기 위해 침입자와 싸웁니다. 뉴트로필처럼 막무가내로 주먹을 휘두르는 군인들이 늘어나면 선량한 세포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될 겁니다.
뉴트로필 (침울한 표정으로) 먼저 피해를 입으신 민간 세포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하지만 민간 세포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저희는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2004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아르투로 지클린스키 교수가 발견한 ‘뉴트로필 세포 외 덫(NETs)’이 좋은 예입니다. 여기 모인 어린 줄기세포들도 몸속에 DNA를 다 가지고 계실 겁니다. 세포 전체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지요. 저희는 이렇게 소중한 DNA를 세포 바깥으로 끄집어 내, 세포 바깥에 그물처럼 생긴 덫을 만들어 침입자를 묶습니다. 이런 상태로 거리를 좁힌 뒤에 침입자를 공격해 다른 세포의 피해를 최소화합니다. 유속이 빨라 침입자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혈관에서도 유용합니다.
손 대표 당신네들은 어떤 독한 훈련을 하기에, DNA를 밖으로 꺼내고도 멀쩡한 겁니까. 줄기세포 여러분, 뉴트로필이 이렇게 위험합니다!
뉴트로필 멀쩡할 리가 있겠습니까. NETs를 펼친 뉴트로필은 몇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숨을 거둡니다. 뿐만 아니라 민간 세포 피해를 줄이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기도 합니다. 한 번 전투태세에 돌입해 해로운 물질을 뿜어내던 뉴트로필은 다시 정상 상태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때문에 침입자를 물리치고 남아 있는 뉴트로필이 민간 세포를 공격해 피해를 입히곤 합니다. 저희는 이를 막기 위해 전투가 끝날 무렵에 칼같이, 주변 뉴트로필들에게 목숨을 끊으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신호가 내려지면 뉴트로필들은 해로운 물질을 내보내던 통로를 닫고, 자신의 몸속에 그 물질을 풀어 자살을 합니다.
(손 대표와 사회자 슬금슬금 무대 밖으로 나간다. 무대엔 뉴트로필만 서있다)
현대 면역학의 역사는 100년이 넘지만, 그 동안은 개별적인 면역 세포의 종류와 그 기능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뉴트로필은 침입자를 공격하는 단순한 세포로 취급됐습니다.
하지만 면역 세포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할수록 선천성 면역이 후천성 면역의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는
등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릅니다. 줄기세포 여러분, 올해는 뉴트로필로 분화해 보람 있는 삶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512/S201601N043_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