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양에서 많이 주목받고 있는 김치가 사찰 김치, 즉 절에서 먹는 김치입니다.”
광주 세계김치연구소에서 만난 박채린 연구개발본부장은 한창 김치 이야기를 하다 사찰 김치를 눈여겨보라고 기자에게 조언했다. 사찰 김치는 젓갈 등 동물성 재료는 물론 마늘, 파 등 자극이 강한 양념을 쓰지 않는다. 완벽한 채식 음식인데다 영양도 풍부하다. 사실 김치야말로 단순한 채소 절임에서 시작해 어느 순간 물 건너온 배추에 갖은 양념을 버무리게 됐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화룡점정인 붉은 고추를 넣는 등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음식 아닌가.
김장보너스는 왜 생겼을까
고려~조선시대 남성들이 쓴 시에는 김장에 관한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이규보(1168~1241)가 쓴 ‘가포육영(家圃六詠)’에는 김장을 묘사하며 ‘장을 곁들이면 여름철 3개월간 먹기 좋고, 소금에 절여 아홉 달 겨울을 대비한다’는 말이 있다. 직접 김장을 담그지 않았을 게 분명한 남성들이 왜 이렇게 김치에 관심이 많았을까. ‘김치는 절반 양식’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가장 중요한 반찬이었기 때문이다. 박 본부장은 “오죽했으면 20여 년 전만 해도 김장 보너스가 있었겠느냐”며 “김장을 앞두고 느꼈던 부담감, 김장을 끝낸 뒤의 안도감은 한반도 공동체에 적어도 1000년 넘게 이어진 정신문화”라고 설명했다.
다른 음식과 궁합이 잘 맞는 것도 김치의 특징이다. 삼합이라고 해서 ‘수육+홍어+김치’가 대표적인데, 잘 삭힌 홍어는 염기성이 강해 산성을 띠는 김치와 잘 맞는다. 삼겹살 등 지방이 많은 고기의 느끼한 맛도 김치가 잘 씻어준다. 고구마나 떡을 먹을 때도 김치가 좋다. 김치가 침샘을 자극해 침의 양을 늘려주기 때문에 전분이 많은 음식도 잘 넘길 수 있다. 참치라는, 우리 조상은 듣도 보도 못한 생선을 넣어 침이 꿀꺽 넘어가는 김치찌개를 만든 것도 이런 문화의 연장선에 있다(김치찌개가 처음 나온 기록은 1900년대 초반 동아일보다).
점점 싱거워지는 ‘파는 김치’
김치는 다른 발효음식 즉 치즈나 요거트, 와인과 어떻게 다른 걸까. 박 본부장은 김치 안에 들어 있는 몸에 좋은 유산균의 종류가 훨씬 많다는 점을 들었다. 요거트는 많아야 두세 종의 유산균을 발효에 이용한다. 다른 발효음식도 10여 가지 종류 이내다. 그런데 김치는 어떤 유산균이 들어있는지 모를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미생물의 종류가 많으니 그들이 내놓는 기능성 물질 역시 훨씬 다양하다. 김치의 재료 자체가 식물성으로 현대인이 선호하는 추세라는 점도 장점이다. 여기에 양념으로 몸에 좋다는 마늘, 양파, 부추, 파, 생강 등이 듬뿍 들어간다. 마늘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세계 10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했을 정도다.
그런데 파는 김치는 어떨까. 김치연구소 장지윤 연구원은 “영양학적으로 그렇게 차이는 없다”고 밝혔다. 파는 김치의 장점도 있다. 김치의 단점으로 꼽히는 염분, 즉 소금을 적게 쓰는 것이다. 박 본부장은 “남부지방에서 직접 담근 김치는 염분 농도가 3.0%를 넘는 경우가 많은데 파는 김치는 2.0~2.2% 수준”이라며 “저염 김치라고 1.8%까지 떨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치 만드는 노동력을 줄여주는 것도 파는 김치의 장점이다.
요즘 김치 연구의 핫이슈는 종균이다. 씨균이라고도 하는 종균은 원하는 맛의 김치를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넣는 유산균이다. 장 연구원은 “종균은 김치의 유통 기한을 늘이고 맛을 좋게 하는 한편 특별한 기능을 추가하기 위해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종가집’이라는 브랜드 김치는 꽤 오랫동안 맛이 일정하게 유지되는데 제조 단계에서 종균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밖에도 콜레스테롤 흡수를 줄여주는 김치, 다이어트에 좋은 김치 등을 만드는 종균도 만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