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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ssue] 스무 살 맞은 한국 토종 로봇축구대회, FIRA컵



“어, 어, 조금만 더! 우와~! 골!” 경기장 한쪽에서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어찌나 소리가 컸던지, 다른 경기를 보고 있던 관람객들이 모여들 정도였다. FIRA로보월드컵(이하 FIRA컵)의 미니 휴머노이드 축구대회인 ‘안드로솟’ 부문 경기 중에 시원한 골이 터졌다. 상명대 ‘휴머노이드로봇클럽’ 팀이 경기 시작과 동시에 대만 팀을 1:0으로 앞질렀다. 로봇공학에 관심이 많은 학부 학생들을 모아 올해 처음 대회에 참가했다는 강태구 상명대 정보통신공학과 교수는 “목표는 예선 통과였는데, 의외로 선전하고 있어서 수상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 날, 상명대에서 출전한 두 팀이 KAIST 등 로봇 축구의 전통 강호들을 제치고 안드로솟 부문 준우승과 동메달을 차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 로봇산업의 기반을 마련하다

FIRA컵은 1995년 가을, 김종환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가 처음 만들었다. 8월 7일 대회 현장에서 만난 그는 “상아탑에만 머물지 말고 대중과 만날 접점이 생겨야 한국 로봇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마침 당시에 로봇들이 협력해 한가지 임무를 공동으로 완수하는 군집로봇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대중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인 축구에 접목하기로 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첫 대회는 1996년 11월 대전 KAIST에서 10개국 23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2.5cm인 정육각형 모양의 바퀴 달린 로봇이 몸통으로 주황색 탁구공을 굴려 골대에 밀어 넣는 방식이었다. 대회 이름은 지금은 하나의 부문이 된 ‘마이크로로봇 축구대회(마이로솟)’였다. 아시아의 작은 국가가 국제 로봇축구대회를 만든다고 하니 처음에는 다들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1, 2회 대회를 거치면서 점차 국제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해 머잖아 자국에서 개최하겠다는 신청이 줄을 이었다. 1998년 제3회 대회는 드디어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됐다. 이 때 이름이 FIRA컵으로 바뀌었다. 이후 브라질, 호주, 중국, 오스트리아 등 세계 각지에서 열리며 발전을 거듭했다.

김 교수는 “글로벌 기업의 후원 제의가 들어왔는데, 그 51 기업의 하드웨어를 써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며 “한국 로봇산업의 발전을 위해 제의를 거절했다”고 말했다. 예상은 들어맞았다. 이 대회에서 실력을 갈고 닦으며 성장한 젊은 과학인들이 몇 년 지나지 않아 로봇 벤처 기업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한국 토종 로봇축구대회를 통해 한국 로봇산업의 토양이 마련된 것이다. “내로라하는 세계 로봇대회 참가팀에 부품을 공급하는 ‘로보티즈’사의 뿌리가 로봇축구입니다. 산업용 로봇만 개발하던 ‘유진로봇’사는 로봇축구대회를 통해 지능형 로봇 개발에 발을 들였죠. 그렇게 탄생한 게 청소로봇이고요.”

이런 성과를 낸 또 다른 이유는, 로봇축구라는 종목 자체가 로봇 관련 기술 전반이 필요하도록 과제가 짜인 덕이다. 로봇축구를 하려면 로봇 자체의 보행뿐만 아니라 카메라를 통한 위치 인식 기술, 컴퓨터의 로봇 제어 기술, 통신 기술 등이 필요하다. 특히 여러 대의 로봇이 협력해 하나의 임무를 완수하는 군집로봇 기술이 필수인데, 군집로봇은 미국의 과학잡지 ‘사이언스’가 2014년 10대 성과로 꼽았을 정도로 미래 사회에 중요한 기술이다.

로봇축구대회는 바로 이런 기술을 개발하고 검증하는 시험대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목포대 iSL팀을 이끄는 이기남 연구원(박사과정)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는 연구자로서 다른 나라의 연구자들과 교류하고 싶어서 대회에 참가했다”며 “특히 내가 개발한 로봇으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기술을 검증하고 개선할 수 있어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강태구 교수는 “전공 수업에서 배운 이론을 실전에 응용하면서 학생들이 재미와 의욕을 갖게 된다”며 “로봇축구대회 자체가 하나의 교육”이라고 말했다.
 

로봇 축구대회도 휴머노이드가 대세!

올해 FIRA컵에는 15개국 63팀 450명이 참가했다. 국내에서는 숭실대, 국민대, 중앙대, 상명대, 건국대, KAIST 등 6개 대학이 참가했다. 김태은 대한로봇축구협회 사무국장은 “메르스 여파로 참가하지 못한 팀이 많다”며 아쉬움을 내비쳤지만, 막상 경기장에는 수많은 참가자들과 관중들이 북적대 행사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FIRA컵은 마이로솟과 안드로솟을 비롯해 컴퓨터 없이 소프트웨어로 겨루는 ‘시뮤로솟’, 마이로솟과 비슷하지만 중앙컴퓨터 없이 자체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축구를 하는 ‘로보솟’, 그리고 인공지능을 탑재한 휴머노이드가 임무를 수행하는 ‘휴로컵’ 등 5개 부문으로 열린다.

이 중 휴로컵이 단연 인기가 많다. 최근 세계재난극복로봇대회(DRC)에서 KAIST의 ‘휴보’가 우승하면서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관심이 뜨겁게 달아오른 데다가, 공교롭게 경기 방식도 DRC와 비슷하게 농구와 달리기, 멀리뛰기, 장애물 건너기, 역도 등 일련의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주니어 부문도 신설돼 네 팀이 참가했다. 앳돼 보이는 학생들이 자신의 휴머노이드를 들고 주심의 호각 소리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경기장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초롱초롱한 눈빛이었다.

경기장에는 눈에 익은 상용 휴머노이드와 직접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독특한 휴머노이드가 섞여 있었다. 각 팀의 로봇을 자세히 뜯어보는 기자를 향해 김태은 사무국장은 “로봇 형태를 제한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처음 참가하는 팀들은 열정이 넘쳐서 직접 철판을 깎아 만든 휴머노이드를 들고 나와요. 하지만 결국 소프트웨어 싸움이거든요. 다음 해에는 상용 휴머노이드를 들고 나오는 경우가 많죠.”




축구가 아니라서 긴박감이 덜 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오산이었다. 로봇이 종종거리면서 목표점을 향해 가다가 크게 뒤뚱거리면 관람석 여기저기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스스로 장애물 등을 감지해 움직이는 휴머노이드는 첨단 기술이 집약적으로 필요한 고난이도 로봇으로, 학부생 수준에서 구현이 쉽지 않다. 반환점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가장 기본 경기인 ‘스프린트’에서조차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지는 로봇이 부지기수였다. 기자는 카메라 가죽 끈에 그려진 빨간 줄 때문에 취재하는 내내 주의를 받았다. 색깔로 목표점과 장애물을 인식하는 로봇이 카메라 줄을 인식하고 엉뚱하게 움직일 수도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일부 로봇이 성공적으로 장애물을 인식하고 엎드려 통과하자 모두가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인간과 휴머노이드가 팀 이룰 날 꿈꿔

FIRA컵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김 교수는 “시점을 언급하기는 이르지만, FIRA컵이 휴머노이드 기반의 인공지능 로봇축구대회로 가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기존 중앙제어식 로봇 축구에 대한 연구 논문은 2000년대 초쯤 정점을 찍고 점차 줄어 2010년 이후로는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기술이 성숙할 대로 성숙한 것이다. 이제는 로봇축구대회에서도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가 ‘대세’다. 김 교수는 “로봇 6대와 사람 5명이 한 팀을 이루는 경기를 구상하고 있다”며 “머지않은 미래에 가정과 사회에서 휴머노이드와 함께 협력하고 공생해야 할텐데, 로봇축구 대회가 그 시험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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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대전 = 우아영 기자
  • 사진

    대전 =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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