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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 보면 떠오르는 와인은?

어느 날 저녁 작은 바에 들렀습니다. 스피커에선 '고엽(Autumn Leaves)'이라는 샹송이 흘러나오고, 벽에는 멋진 에펠탑 사진이 걸려 있네요. 제가 좋아하는 여배우 샤를로뜨 갱스부르의 젊은 시절 사진도 있고요. 웨이터가 다가와 와인을 묻는데 나도 모르게 비싼 프랑스 와인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내 머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키스와 맛의 공통점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의 문정훈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연구를 한번 볼까요. 와인 바에서 프랑스 샹송과 한국 대중가요를 번갈아 틀어주고 어떤 와인을 주문하는지 살펴봤답니다. 그랬더니 샹송을 틀어줬을 때 고객은 맥주나 위스키보다 와인을 훨씬 더 많이 주문했어요. 또 테이블보에 에펠탑 그림을 넣었더니 비싼 프랑스 와인을 더 많이 시켰다고 합니다.
맛은 냄새(후각)뿐만 아니라 청각과 시각에 많은 영향을 받아요. 촉각도 맛에 영향을 미치지요. 문 교수는 "인간의 행동 중에 오감 모두를 활발하게 사용하는 것은 먹는 것과 키스가 거의 유일하다"고 강조합니다. 둘 다 입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입이 오감을 한꺼번에, 그것도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신체기관이기 때문이겠죠. 먼저 촉각을 살펴봅시다. 한번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냉장고 냉동칸에서 다시 얼리면 맛이 어떻게 되나요? 처음보다 맛이 없어집니다. 아이스크림의 부드러운 맛은 속에 있는 공기 덕분인데 녹았다가 다시 어는 과정에서 공기가 사라지기 때문이죠. 부드러운 느낌이 사라진 아이스크림은 더 이상 맛있지 않습니다. 혹시 집에서 사과를 믹서로 갈아서 맛본 적 있나요? 우리 중에 20%는 믹서로 간 사과쥬스가 사과로 만들 어졌다는 걸 알아채지 못한다고 해요. 그나마 사과는 80%나 맞추니 나은 편입니다. 맛 전문가인 최낙언 시 아스 이사는 "토마토는 50%, 오이나 양배추 주스는 10%도 맞추지 못한다"고 말해요.
청각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음식은 입이 아니라 귀 로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을 먹을 때 나는 소 리는 맛에 매우 중요합니다. '바삭'하는 소리가 사라 진 감자칩을 생각해 보세요. 먹고 싶으신가요? 과일도 마찬가지랍니다. 그런데 왜 바삭 하는 소리가 중요할 까요. 바로 '신선도'입니다. 신선한 과일일수록, 갓 구운 과자일수록 바삭 하는 소리가 잘 납니다. 반대로 눅눅 한 과자는 맛도 없고 바삭 거리지도 않죠. 과자가 바삭 거리는 소리는 과자 조직 안에 있는 공기방울이 100분 의 1초 안에 방출되면서 나는 소리라고 해요. 사람들 은 90~100dB(데시벨) 크기의 소리를 내는 바삭거림 을 좋아하는데 이것은 공기방울 100개 이상이 터지면 서 내는 소리라고 합니다. 과자 안에 얼마나 많은 공기 방울이 들어 있는지 짐작이 되시죠?

소금 뿌린 수박이 더 달다

시각이 맛에 주는 영향은 정말 큽니다. 에펠탑 사진만 봐도 프랑스 와인을 마시잖아요. 아레스와 델리자 라는 두 명의 과학자가 한 연구를 볼게요. 똑같은 푸딩 을 동그란 용기와 각진 용기에 따로 넣어서 먹게 했대 요. 어느 쪽이 더 맛있게 느껴질지 다들 답을 알 것 같 네요. 동그란 용기에 담긴 푸딩이 훨씬 부드럽고 달게 느껴졌다고 해요. 재밌는 것은 동그란 용기에 담긴 푸 딩이 칼로리도 더 많다고 생각했답니다. 같은 푸딩입 니다! 양도 똑같은데요!
요즘 수입 맥주의 인기가 많은데 정말 수입맥주가 국산 맥주보다 맛이 좋은 걸까요? 문정훈 교수팀이 국 산 맥주 3종과 수입 맥주 2종의 상표를 다 떼고, 블라 인드 테스트를 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상표를 모를 때는 국산 맥주가 더 맛있다고 했다가(무려 70% 이 상), 상표를 달자 수입 맥주가 맛있다고 했대요. 음, 역 시 눈에 보이는 브랜드가 맛을 좌우합니다. 제가 이 이 야기를 했더니 주위에서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문 교수는 아무리 실험을 반복해도 똑같다고 하고요. 어떤 게 진실일지 궁금하네요. 그런데 맛이 다른 맛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5가지 기본맛은 대비효과가 있습니다. 하나의 맛이 다른 맛을 더 강하 게 만드는 것인데요, 대표적으로 짠맛 이 단맛을 더 강하게 합니다.
과학동아 1월호에 송준섭 기자가 쓴 기사를 보면 바로 허니버터칩이 짠맛과 단맛의 대비 효과를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 예요. 반대로 감칠맛은 짠맛을 더 잘 느끼게 합니다. 즉 감칠맛을 이용하 면 소금의 사용을 줄일 수 있지요. 또 음식에 신맛을 더해주면 맛을 부드 럽게 할 수 있고요, 신맛이 강할 때는 소금 을 조금 치면 부드럽게 돼요.

2015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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