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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속 299,792,458m를 약속하다

History
빛의 속도를 재고 싶었던 과학자들


우리는 소리에 정해진 속도가 있다는 사실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소리가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그럼 소리는 도대체 얼마나 빠른 걸까? 간단한 방법으로 소리의 속도를 잴 수 있다.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 소리를 지르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건너편 봉우리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메아리를 들을 수 있다. 건너편 봉우리까지의 거리를 알고 메아리가 돌아오는 시간을 재면 쉽게 소리의 속도를 계산할 수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이 방법을 모방해 빛의 속도를 구하려고 했다. 갈릴레이는 멀리 떨어진 두 산 위로 등불을 든 사람을 올려 보냈다. 둘 중 한 사람이 들고 있던 등불을 잠깐 가리면서 ‘깜박’하는 신호를 만들어 낸다. 먼 산에 있는 사람은 이 깜박임을 보고 자기도 ‘깜박’하는 신호를 보낸다. 갈릴레오는 두 깜박임 사이의 시간으로 두 산 사이의 거리를 나누면 빛의 속도를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럴듯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건너편 사람이 반대편의 깜박임을 본 후, 들고 있는 등불로 깜박일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아무리 짧아도 눈 깜박하는 시간(0.1초) 정도로 길기(!) 때문이다. 반면 빛이 멀리 떨어진 두 산 사이를 건너가는 시간은 만분의 일초도 안될 만큼 짧다.

빛의 속도를 처음 그럴듯하게 잰 사람은 덴마크의 천문학자 올레 뢰머다. 뢰머는 네 개의 갈릴레오 위성 (1610년 망원경으로 목성 주의를 돌고 있는 네 개의 위성을 발견한다. 이는 지구가 모든 원운동의 중심(천동설)이라는 당시의 생각을 뒤엎고 지동설을 뒷받침하는 발견이었다. 이를 기려 지금도 갈릴레오가 발견한 목성의 위성을 ‘갈릴레오 위성’이라 부른다.) 중 목성과 가장 가까운 이오를 유심히 살폈다. 이오가 목성의 그림자 안에 숨어버리는 (식) 현상은 사건이 일어난 지 어느 정도 지나서야 지구에서 볼 수 있다. 빛이 목성에서 지구로 오는 시간 때문이다. 뢰머는 지구와 목성 사이의 거리가 달라질 때 이 시간에 차이가 있음을 이용해 빛의 속도를 쟀다. 구체적으로 지구 공전궤도 반지름과 이오의 공전 주기의 차이를 이용해 뢰머는 빛의 속도를 약 초속 20만km로 추정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값의 2/3정도로 상당히 그럴듯한 값이다. 그는 또한 빛의 속도가 무한대가 아니라는 사실도 처음 밝혀냈다.
 
Promise
빛의 속도를 약속하다


빛의 속도는 진공에서 ‘정확히’ 초속 299,792,458m다. ‘정확히’라는 표현은 빛의 속도를 적어보면 299,792,458.00000000000…, 이렇게 소수점 아래 0이 무한히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이처럼 무한대의 정확도로 측정할 수 있는 양은 어디에도 없다. 즉 빛의 속도는 측정을 통해 얻은 값이 아니라, ‘빛의 속도는 얼마로 한다’고 과학자들이 약속한 값이다. 이 약속은 1983년에 이뤄졌다. 그 전까지 빛의 속도는 빛이 진행한 거리를 시간으로 나눠 구했다. 거리 1m와 시간 1초를 먼저 정의하고 이 둘을 기준으로 빛의 속도를 측정했던 것이다. 빛의 속도를 약속으로 정한 이후 상황이 반대로 변했다. 이젠 1m가 빛이 1/299,792,458초 동안 진행한 거리로 정의된다.

과학자들이 빛의 속도를 약속으로 정한 이유는 워낙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리학에 등장하는 상수 중 빛의 속도가 들어가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만약 실험을 통해 누군가가 빛의 속도를 더 정확하게 측정하면 그때마다 많은 물리상수 값을 바꿔야 한다. 누구나 들어보았을 방정식인 E=mc2을 이용하면 핵반응에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만들어지는지 쉽게 계산할 수 있다. 만약 빛의 속도가 변하면 뜬금없이 에너지 값도 변하게 된다. 이런 불편함을 견딜 수 없어 아예 빛의 속도를 약속해버린 것이다.

Theory
상대성이론


필자가 기차를 타고 가면서 땅위에 앉아 있는 포수에게 공을 던지면 얼마든지 류현진처럼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다. 필자가 던진 공의 속도에 기차의 속도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빛이라면 어떨까.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기차를 상상해보자. 맨 앞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앞을 향해서 불빛을 쏜다면 그 불빛은 땅 위에 정지한 사람에게는 기차와 빛의 속도를 더한 만큼 보일까? 희한하게도 광속으로 달리는 기차에서 쏜 빛은 멈춰있는 상태에서 쏜 빛과 속도가 완전히 똑같다.

 
일본 기후현 히다시 가미오카 광산에 위치한 중성미자 검출 실험 연구소 ‘슈퍼 카미오칸데’의 모습. 이 연구소는 지난 1998년 사상 최초로 중성미자의 미세한 질량을 실험적으로 측정하는 성과를 올렸다.]
[일본 기후현 히다시 가미오카 광산에 위치한 중성미자 검출 실험 연구소 ‘슈퍼 카미오칸데’의 모습. 이 연구소는 지난 1998년 사상 최초로 중성미자의 미세한 질량을 실험적으로 측정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것이 바로 특수상대성이론이다. 빛의 속도는 움직이는 사람이나 정지한 사람에게나 항상 같게 보인다. 사실 기차에서 던진 것이 공인지 빛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부분의 물질은 빛보다 많이 느려서 그냥 더하나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라 더하나 값이 거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실 특수상대성이론은 아인슈타인이 어느 날 갑자기 만든 것이 아니다. 맥스웰이 완성한 전자기학이 산파 역할을 했다. 네 개의 맥스웰방정식을 조합해보면 파동방정식이 나오고, 이 파동방정식을 계산해 보면 전자기파의 속력이 빛의 속도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시에 그 속도가 정지한 관찰자가 본 속도인지 혹은 움직이는 관찰자가 본 결과인지도 구분되지 않는다. 누가 보든지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특수상대성이론의 해석이 맥스웰 방정식에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빛의 속도를 재라!



If?
빛보다 빠른 입자가 있다면?


2011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한 과학자는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를 찾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특수상대성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결과에 물리학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이후 이 연구결과가 틀렸다는 결론이 나오고 나서야 많은 물리학자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사건을 보면, 과학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엿볼 수 있다. 백 년의 역사 동안 수많은 검증을 통과해 온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라도 이를 반박하는 실험결과가 명확히 제시되면 당연히 의심을 받아야 한다. 물론 단 하나의 실험으로 백 년을 지켜온 특수상대성이론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물리학자는 없다.
 
우리가 보는 빛이 안드로메다를 떠났을 때 인류는 지구에 없었다.

하지만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는 결과가 꾸준히 나온다면 물리학자는 특수상대성이론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과학의 모든 이론은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 현재 모든 물리 이론은 ‘잠정적’인 진리의 체계다. 당장 내년에라도 뒤집힐 수 있는. 솔직히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지만.

빛은 정말 빠르다. 그런 빛도 광활한 우주를 건너가려면 긴 시간이 걸린다. 지금 보고 있는 태양은 약 8분 전의 모습이고, 지구에서 화성탐사선 큐리오시티에게 ‘잘 지내지?’라고 물어보고 답을 들으려면 30분이 걸린다. 영화 ‘콘택트’에서 베가 행성에 사는 외계인이 지구로 되돌려 보낸 텔레비전 전파는 50년 전에 나치가 보낸 히틀러의 연설 영상이었다. 베가 행성은 지구에서 25광년 떨어져 있다. 맨 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지구와 가장 가까운 안드로메다 은하도 무려 250만 광년 떨어져 있다. 우리가 보는 안드로메다의 모습은 250만 년 전의 모습이다. 우리가 보는 빛이 안드로메다를 떠났을 때 현생 인류는 지구에 없었다. 과거를 보려면 멀리 볼 일이다. 복작복작 세상사에선 과거를 봐야 멀리 볼 수 있다.
 
입자인 듯 파동아닌 파동인 듯 입자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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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이한기 기자
  •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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