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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반이 불안정하다는 주장부터 땅속 지하수를 건드렸다는 의혹까지 다양하다.
현대자동차는 10조 원 넘게 들여 차지한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에 100층이 넘는 건물을 지을 계획이다. 그런데 혹시 근본적으로, 초고층건물이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한계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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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가 초속 6m의 속도로 위로 솟구쳤다. 30초가 채 지나지 않아 도착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인 전망대가 나왔다. 궁금함을 참고 계단을 몇 층 더 오르니 허공으로 통하는 유리문이 나왔다. 244m 상공의 거센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1년 전인 작년 10월 30일, 기자는 영국 런던의 중심지 조이너 가(家)에 서 있었다.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309.6m, 95층)인 ‘더 샤드(The Shard)’의 72층 야외 전망대였다. 주변에 비슷한 높이의 건물이 없어 사방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 그렇게 높은 건물 위에 서 본 것이 처음이어서일까. 탁 트인 런던의 야경이 멋지다기 보다는 조금 두렵게 다가왔다. 극히 최근까지 그렇게 높은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인류가 느낄, 원초적인 불안감이었다.
“더 샤드는 ‘수직도시’를 표방해 지은 건축물이에요. 하지만 저는 이 방식이 우리 도시와 건축을 위한 최선의 대안일지, 의문이 들어요.”
동행한 영국의 친환경 건축기업 제드팩토리의 이인선 한국담당부서장이 말했다. 이 건축가는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건축 즉 ‘무탄소건축’의 전문가다. 에너지 효율이 높으면서 편리한 건물을 설계하고, 그 안에 사는 주민이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자문한다. 그런 건축가에게, 더 샤드라는 초고층건물은 도시와 환경 문제를 해결할 최선의 해답은 아니었다.
초고층건물, 도시 문제 해결할까
일명 ‘수직도시’는 건축가와 도시계획가에게는 오래된 화두다. 가장 큰 이유는 환경이다. 유럽에서는 산업화 이후 근대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인구가 급속히 증가했다. 늘어난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도시는 지상에서 무분별하게 커지면서 확장될 수밖에 없었고(스프롤 현상), 지상은 개발의 이름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환경은 당연히 나빠져,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곳 천지가 됐다. 야심찬 도시계획가나 행정가들은 이를 해결할 대안을 꿈꿨지만, 제대로 손을 쓸 방법이 부족해 애를 태웠다. 이 때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겸 도시계획가 르코르뷔지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현대도시’라고 이름 붙인 이 아이디어의 핵심은 초고층 건물이었다. 당시로서는 아직 보편적이지 않았던 60층짜리 십(十)자형 초고층건물을 연달아 세우고, 그 안에 거주민 대부분을 입주시키자는 것이었다. 마치 단독주택이 빽빽한 지역을 재개발해 널찍한 공터를 지닌 초고층아파트단지를 세우는 것과 비슷하다. 그는 이런 식으로 대구광역시의 인구와 맞먹는 3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도시를 건설하자는 주장을 했다.
![현재(2014년 9월 말)의 세계 초고층건물 높이를 표시해 봤다. 롯데월드타워는 이 가운데 세 번째 건물보다 높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705/S201410N029_01.jpg)
르코르뷔지에의 주장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고 급진적이어서 현실에서 실현되지는 않았다. 다만 그가 한창 초고층 계획도시를 주장하던 시기에 미국의 맨해튼이나 시카고에 초고층 건물이 막 들어서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건물들은 그의 이상과 관련이 없을까. 이런 건축물에는 르코르뷔지에의 또 다른 아이디어가 빠져 있다. 바로 녹지다. ‘현대도시’에서 제시한 스케치를 보면, 이 도시는 사실상 거의 모든 지면이 텅 빈 녹지와 도로다. 건물과 건물 사이가 크게 떨어져 있어, 요즘의 건폐율(지상 면적 중 건물의 바닥면이 차지하는 면적 비율) 개념으로 보면 겨우 수%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녹지 천국이38다. 그러니까 르코르뷔지에는 사람이 지상에 퍼져 사는 대신 위로(수직으로) 층층이 사는 게 도시 문제 해결에 유리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게 바로 도시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수직도시’라는 개념이다(물론 수직도시라는 말은 정식 용어가 아닌 비유적 표현이며, 르코르뷔지에도 그런 말을 쓰지는 않았다).
![건축가 겸 도시계획가 르코르뷔지에는 1920년대 ‘현대도시’ 계획안을 제시했다. 핵심은 좁은 길과 낮은 건물로 된 유럽의 도시에 초고층건물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단, 조건은 주변이 녹지여야 한다는 것이다. 위는 그의 중층건물 모형. 한국의 아파트단지를 닮았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9/161225886254225b1149f0b.jpg)
![고층건물이 밀집한 뉴욕 도심. 멋지고 활력이 넘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에게는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9/136520400154225b1971e32.jpg)
![서울 잠실에 새로 짓고 있는 롯데월드타워(일명 제2롯데월드).](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9/207710133854225b22c60aa.jpg)
초고층건물은 부담이다
현대 초고층건물은 르코르뷔지에의 이상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주변에 녹지는 커녕 초고층건물이 경쟁하듯 밀집해 붙어 있다. 최근에는 이 점을 의식해서인지, 초고층건물을 옹호하는 건축가들도 ‘초고층건물이 녹지나 공지(오픈스페이스)를 제공할 목적에서 지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더구나 초고층건물은 도시의 수평적 확산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두에 언급한 더 샤드의 전망대는 관광 명소가 됐다. 안에는 사무실과 호텔, 식당까지 준비돼 외부 사람들을 불러 들이고 있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초고층건물 역시 유동인구를 높여 주변 상권을 키우고 있다. 잠실에 롯데월드타워가 들어서면 역시 전망대나 식당가를 찾을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사람만 모이는 게 아니다. 유동인구가 늘어나면 당연히 자동차도 몰려 교통 부담이 는다. 제2롯데월드의 경우 초고층건물인 롯데월드타워와 저층부 상가가 모여 있는데, 서울시가 가장 대책을 고심하는 분야도 교통이다. 교통 체증과 주차난 등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차장 예약제 등 각종 아이디어를 내고 있지만 근본대책은 아니다.
에너지 면에서도 부담이 크다. 초고층건물은 안전 문제로 상층부의 창문을 개방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기를 유통시키려면 공조기를 이용해 능동적으로 공기를 교환해야 한다. 저층 건물에 비해 에너지가 많이 들 수밖에 없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56층 건물인 상업은행 본점(259m)처럼 부분(60%) 자연환기 기능을 채택한 친환경 초고층건물이 있긴 하지만, 아직 주류는 아니다. 더구나 서유럽 등 친환경 국가들이 추구하는 무탄소 건물은 아직 요원하다. 이인선 건축가는 “(무탄소건축에 대한 이해가 높은 영국의) 더 샤드조차 무탄소건물 수준에는 크게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안전도 부담이다. 2012년 서울에서 발생한 도심 건물 헬기 충돌 사고와 2010년 부산에서 발생한 오피스텔 화재 사고는 초고층 건물에서 안전이 특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특히 9·11테러를 겪고 나서는 입주자들의 탈출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당시 세계무역센터에 있던 입주자 가운데 약 2000명은 탈출을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5년 ‘사이언스’ 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초고층건물에는 초고층 입주자들이 완벽하게 지상으로 대피할 방법이 마련돼 있지 않다. 대부분 중간의 일부 층을 비워서 대피구역으로 지정한 뒤 그곳에 임시로 대피하게 하고 있는데, 세계무역센터의 사례에서 봤듯 이런 방식으로는 건물이 무너지는 극단적인 사고에 대처하기 힘들다.
실내 환경도 부담이다. 신축 건물에서 문제가 되는 일명 ‘새집증후군’은 건축재료에서 자일렌, 아세톤, 포름알데히드, 에틸벤젠 등 사람에게 유해한 화학물질이 나오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데 이 문제는 고층에서 더 피해가 크다. 2009년 국립환경과학원이 입주 전 신축 고층건물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포름알데히드, 아세트알데히드, 아세톤, 부틸알데히드의 평균농도는 건물의 고층부가 저층부보다 높았다. 특히 겨울에 차이가 컸는데, 저층에서 위로 공기가 올라오며 물질 농도도 더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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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 사고 시에서는 지옥 문이 열린다?
응급환자 발생시에는 어떨까. 한 예방의학 전문가는 전화통화에서 “고층 아파트를 대상으로 응급 환자 대상 조사를 해보면 꽤 충격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거의 구조가 힘들 것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2010년 질병관리본부가 펴낸 연구 보고서 ‘심정지 기초구급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역학지표 산출을 위한 심층분석’에 따르면, 2008~2010년 사이에 발생한 심정지(심장마비) 환자 중 생존해 퇴원한 환자의 비율은 저층보다 고층이 훨씬 낮았다. 1층이 4.7%, 지하 1층이 4.6%였는데, 높이가 올라가면서 점점 줄어서 16층 이상에서는 2.1%로 떨어졌다. 구조대가 혼잡한 시내 교통을 뚫고 건물에 일찍 도착해도, 다시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일명 ‘골든타임(이 경우 8분)’ 안에 환자 앞까지 가기가 힘들다.
해외 연구 결과도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미국의 경우, 구급대가 건물 앞에 도착한 뒤 그곳에서 고층까지 올라가는 데에만 다시 4분의 시간이 더 드는 경우가 전체의 4분의 1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07년 미국응급의학회지에 실린 뉴욕의 사례 연구 결과 역시 10층 이상의 건축물 입구에서 환자가 있는 곳까지 가는 데 추가로 걸리는 시간은 평균 3.2분으로, 3~10층 건물에서의 2.3분보다 오래 걸렸다. 놀라운 사실은 10층 이상의 고층건물의 경우 실제로 환자가 발생한 층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고층건물은 환자가 고층에 살았건 저층에 살았건 구조가 느렸다. 예를 들어 10층 이상 건물의 저층부(1~2층)에서 사고가 날 경우, 건물 입구에서 환자를 찾아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2.8분이나 됐다.
한국에도 비슷한 연구가 있다. 2010년 대한응급학회지에 실린 연구 결과를 보자. 경기 성남 분당에서 고층건물을 대상으로 수직 구조시간을 조사해 보니, 저층부 환자는 0.34분만에 구조에 성공한 반면, 고층부 환자는 평균 2분이 더 지나서야 구조가 가능했다. 2008년에도 50층 이상 초고층건물이 밀집한 부산 재송동의 응급구조 기록을 연구한 결과가 같은 학술지에 실렸는데, 역시 층수가 높아질수록 구조 시간이 늘어났다.
사실 초고층과 관련해 떠올릴 수 있는 문제는 대부분 상식적이다. 큰 건물이 들어서면 교통체증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고, 높은 곳에 살면 구급대가 도착하기 어려워진다. 건강이나 안전 문제도 어찌 보면 지엽적인 문제라, 이런 문제를 놓고 초고층건물을 짓느니 마느니 논하는 것은 조금 어색하다. 기술적, 제도적으로 개선할 여지가 있는 데다, 거주자 입장에서는 싫으면 그냥 거기 살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만약 르코르뷔지에의 시대처럼 인구가 앞으로도 한참 늘어날 예측이라도 있다면, 초고층건물은 고려해볼만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특별히 경제성이 높은 것도 아니고(건설 비용이 많이 든다. 이 때문에 초고층건물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조차 “경제성을 고려하려면 초고층건물은 건물 수명을 일반 건물의 약 2.5배로 길게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선진국의 경우 대부분 인구도 정체 또는 감소 국면이기 때문에 딱히 긴박한 필요도 없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들은 조금 다른 이유에서 초고층건물을 선택한다. 도시의 랜드마크로 만들거나 긴밀한 주거, 업무 환경을 조성해 도시 특유의 네트워크와 창발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점에도 일부 의문이 든다. 꼭 어마어마하게 높게 지어야만 랜드마크가 될까. 초고층건물에 살아야만 주민 사이의 교류가 많아지고 공동체 의식이 싹틀까. 현실은 오히려 반대가 아닐까(아파트만 해도 위아래 층과 서먹하다).
244m 상공에 위치한 더 샤드의 전망대에서 런던 시가지를 굽어보며, 바로 몇 층 아래의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을 미지의 런던인들을 생각했다. 그들과 기자 사이에, 과연 어떤 창조적인 관련성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