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 vs 2억 명. 각각 에볼라와 말라리아에 감염된 사람 수예요. 치사율이 높은 에볼라 바이러스가 일시적으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지만, 실제 대다수 개발도상국 주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건 말라리아랍니다. WHO가 밝힌 말라리아 사망자 수는 2013년 한 해 동안만 62만7000명. 대부분 아프리카에 사는 5세 미만 어린아이들이죠. 말라리아는 에볼라와 달리 예방약도 있는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고 있는 걸까요. 아프리카에서 치명적인 질병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말라리아를 두려워하지 않을까?
핀란드의 인류학자이자 유니세프 활동가인 로니알라(Annika Launiala)는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말라리아 퇴치 운동을 하다가 다음과 같은 의문에 봉착했어요. ‘말라리아의 위험에 가장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이 왜 말라리아가 위험한 질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로니알라는 말라위의 임신부들이 말라리아를 예방하려고 하기는커녕 이 병이 끔찍하다는 생각조차 안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현재 말라리아로 사망하는 사람 대부분이 아프리카의 임신한 여성이나 다섯 살 미만의 어린 아이들인데도요. 로니알라는 무슬림인 야오족(the Yao)이 살고 있는 한 마을에 머무르며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어요. 야오족은 모계사회로 대개 외삼촌이 집안의 재산과 토지를 소유하고 관리하죠. 결혼은 일부일처와 일부다처가 모두 존재하는데, 남자들 상당수는 남아프리카의 광산으로 떠나 돈을 벌곤 해요.
이곳은 말라리아가 만연하기에 좋은 환경이었어요. 마을은 개발이 전혀 되지 않고 고립돼 있었죠. 가까운 소도시로 가는 길은 모래로 덮여있어서 우기에는 감염 모기 외에는 아무도 지나다닐 수가 없어요.
2003년 도로가 깔린 후 간혹 버스가 다니긴 하지만, 타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무척 가난했거든요. 한 가족이 하루에 우리 돈 250원 정도밖에 벌지 못했어요. 몇몇 가족만이 기본 생필품을 살 수 있었고, 보통 농사를 짓거나 호수에서 낚시를 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나갔어요.
주술과 혼외관계가 유산의 원인?
로니알라는 비밀을 추적하면서 놀라운 사실과 맞닥뜨렸어요. 주민들은 분만 시 사망이나 유산의 원인이 말라리아가 아니라 주술과 남편의 혼외관계라고 믿었어요. 이곳 여성들은 임신을 하더라도 한동안 비밀로 간직하곤 했어요. 가족이나 이웃이 질투심에 주술을 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임신한 여성은 마치 달걀과 같아서 누군가 주술을 걸면 쉽게 깨져버린다고 믿죠. 특히 다른 사람의 저주는 분만시에 합병증을 일으키거나 임신부나 태아의 사망을 가져올 수 있다고 여겨져요.
또 아내가 임신했을 때 남편이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맺으면 역시 태아를 병들게 하거나 유산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죠. 이건 사실 남편이 갓 태어난 아이와 산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게 될 것을 예방하는 사회적 장치이기도 했어요. 에이즈를 비롯한 각종 성병이 만연한 지역인지라, 27살인 한 임신부는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임신했을 때 남편이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는 거예요. 남편이 혹시라도 병에 감염되면 나와 아이를 돌볼 수 없잖아요.”
말라리아를 걱정하기엔 너무 무서운 병이 많았어요. 말라리아는 그래도 약이 있지만, 에이즈는 약도 없어요. 임신부들은 말라리아에 감염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죠. “빈혈이 생기면 아이를 낳는 것 자체가 힘들어지지만, 말라리아는 탈수 증상이 있더라도 깨끗한 물을 한 모금 들이키면 어쨌든 아이는 낳을 수 있잖아요.”
▲ 임산부와 5세 미만 어린이는 말라리아에 특히 취약하다. 아프리카 콩고에 있는 한 병원에서 엄마와 아기들이 말라리아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말라리아보다 걱정할 게 너무 많아
문제의 핵심에는 극심한 빈곤과 열악한 의료보건체계가 있어요. 25개 마을 주민 3만 명을 위한 보건센터는 단 한 개. 여기서만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요. 임신한 여성들은 보통 산전 진료소를 찾는데, 고통이 심하거나 합병증이 있는 경우 마을에서 수십 km 떨어져 있는 서양식 병원으로 옮겨야 해요. 차편과 의료비용을 합치면 우리 돈 6250원에서 1만2500원. 대개 이만큼의 현금이 없으니 병원은 가기 어렵죠.
그래서 임신부들이 가장 걱정하는 문제는 말라리아가 아니에요. 10대의 한 임신부는 남자친구가 자기 엄마에게로 도망가 버려서 아이를 낳아도 비누나 음식조차 가져다줄 사람이 없는 현실을 가장 우려했어요. 다른 여성은 더 이상 걷거나 집안일을 할 수 없게 될까봐 걱정했죠. 또 다른 여성은 병원비를 걱정했어요. 남편들도 비슷해요. “아내가 언제 낳을지, 어디서 낳을지, 수술을 해야 할지 아무도 알 수 없어요. 잘못하다간 남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수도 있죠. 분만이 다가오면, 자전거로 아내를 실어 나를 수 없어요. 상상해보세요. 한밤중에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6~7km를 걸어가야 한다면 말이에요. 병원은 우리에게 너무 멀어요.”
말라위의 사례는 여전히 지구의 많은 나라에서 질병이 단순히 질병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어요. 말라위 야오족의 임신부와 남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건강한 아기와 산모를 기대하죠. 그러나 현금벌이의 기회가 거의 없고, 영양실조가 일상이며, 치료소가 먼 이들에게도 여러 가지 심각한 질병들은 임신부와 태아가 사망하지 않기 위해 고려해야하는 수많은 원인 중에 하나일 뿐이에요. 말라리아는 단지 하나의 원인일 뿐이니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