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에 풍덩 천국문이 활짝](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8/184351994453fe89b92cb17.jpg)
▲ 독도 혹돔굴에서 명정구 소장이 잠수해 사진을 찍는 모습. 명 소장이 1997년 혹돔굴에 처음 갔을 때 네 마리의 혹돔이 발견됐는데 10여년 뒤인 2008년 다시 이곳에 왔을 때 한 마리가 여전히 살고 있었다.
그대, 독도 바닷속을 본 적이 있는가. 최근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독도 바다의 수중 생태지도 5장을 처음으로 완성해 공개했다.
어젯밤 꿈에서 본 풍경마냥, 어린 시절 추억으로 떠오르는 동네처럼, 아름다운 지형 속에서 온갖 바다생물들이 헤엄치며 놀고 있다.
틈만 나면 허튼 소리를 하는, 멀리 동쪽의 철없는 이웃을 말없이 꾸짖으며….
독도에서도 동도 남쪽 끝 연안에 독립문바위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말 그대로 독립문을 닮은 바위다. 그곳에서 잠수복을 입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면 고향 친구들과 놀던 좁은 골목길이 나타난다. 깨끗한 모래로 덮인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바위로 된 작은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오르자 커다란 바위가 쓰러져 있고, 사람 하나 들어갈 만한 구멍이 뚫려 있다. ‘천국의 문’이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광복절을 맞아 8월 14일 독도 수중 생태지도를 제작해 공개했다. 독도 바다에서도 수중 경관이 뛰어나고 해양생물이 다양하게 살고 있는 5곳의 풍경을 사진보다 더 생생하게, 애니메이션보다 더 아름답게 그려냈다. 5곳의 이름은 각각 큰가제바위, 독립문바위, 해녀바위, 혹돔굴, 동도연안이다. 해양과기원 연구원들을 비롯해 한국수중과학회 전문가들이 2008년부터 6년에 걸쳐 직접 바닷속으로 들어가 해조류, 물고기, 서식지, 수중 지형 등을 확인한 모든 것을 전문 작가가 다시 일러스트로 그린 것이다. 사진보다 오히려 독도의 지형과 물고기들이 한눈에 들어와 마치 독도 수족관에 들어온 것 같다.
“독도는 한국의 갈라파고스”
생태지도 제작 책임자인 명정구 해양과기원 동해연구소장은 독도 바닷속을 “한마디로 한국의 갈라파고스”라고 말했다. 해양생물의 수는 제주도 등 남해가 더 많지만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독도는 ‘진화의 고향’ 갈라파고스처럼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갈라파고스 역시 한류와 난류가 만나 독특한 바닷속 풍광을 자랑한다.
“1997년 독도에 처음 갔어요. 물속에 들어갔는데 세상에나, 30~40m가 훤히 보이는 거예요. 무척 깨끗해서 이런 바다에 들어온 것만도 행복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죠.”
독도 바다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곳이 앞서 말한 독립문바위의 ‘천국의 문’이다. 골목길을 걷는다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잠수복을 입고 골목길 바로 위를 유영하며 남쪽으로 간다. 마침내 몸 하나 통과할 것 같은 바위구멍을 만나면 마치 마음이 깨끗한 사람만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천국의 문이라고 이름붙인 이유도 그래서다.
해양생물만큼은 큰가제바위 부근이 최고다. 물살이 세서 벵에돔, 돌돔 같은 큰 물고기가 많이 살기 때문이다. 예쁜 산호도 잔뜩 붙어 있어 수족관처럼 알록달록하다. 무리지어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스승을 따라다니는 제자의 모습처럼 보였을까. 몇 년 전 명 소장은 스승의 날에 큰가제바위로 잠수했다가 갑자기 대학원 지도교수 생각이 나 목이 메였다고 한다. 바닷속에서 즉석으로 “스승님 고맙습니다”라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명 소장은 “그 스승은 올해 돌아가셨다”며 다시 한 번 추억에 잠겼다.
연구원들에게 가장 추억어린 장소는 혹돔굴이다. 1997년 명 소장과 연구원들이 처음 독도를 갔을 때였다. 방송사 카메라맨까지 대거 함께 갔다. 하루는 독도에 혹돔이 잠자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방송을 탔다가는 몰살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명 소장과 친한 몇 명만 한밤중에 몰래 보트를 타고 지금의 혹돔굴로 갔다. ‘설마 있겠나’ 싶었는데 잠수를 해보니 정말로 굴 입구의 바위틈에서 쉬고 있는 혹돔 네 마리를 발견했다. 80cm~1m 정도 되는 큰 것들이었다. 연구원들은 2008년 다시 그곳에서 잠수를 했다. “아직도 있을까 싶었는데 딱 한 마리가 있더라고. 굴 안에서 정말 눈물나대.”
![➊ 독립문바위에는 대황이 많이 자라 바닷속에서 숲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다양한 물고기도 많이 살고 있어 마치 수족관을 연상하게 한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8/43417276053fe8a4f6fd4a.jpg)
➊ 독립문바위에는 대황이 많이 자라 바닷속에서 숲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다양한 물고기도 많이 살고 있어 마치 수족관을 연상하게 한다.
![➋ 우리나라에서는 독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미기록 신종들. 마지막 물고기는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8/40626448953fe8a7b30527.jpg)
➋ 우리나라에서는 독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미기록 신종들. 마지막 물고기는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
![➌ 바닷속을 탐사하며 사진을 찍는 연구원.](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8/163263951053fe8a8977950.jpg)
➌ 바닷속을 탐사하며 사진을 찍는 연구원.
나는 아직도 바다가 두렵다
하지만 독도 조사가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사명감이 없었다면 버텨내기 힘들었다. 1997년 명 소장과 연구원들이 처음 독도에 갔을 때였다. 연구비가 너무 적게 나왔지만 보내주기만 하면 걸어서라도 돌아오겠다는 마음으로 독도에 갔다. 제대로 된 조사선이나 다이빙 전문선도 없었다. 어선 2척에 나눠 타고 잠수에 필요한 산소탱크를 70개나 실었다. 울릉도에서 7~8시간 걸려 독도에 갔는데 파도가 심해 선착장에 배를 댈 수도, 두 배를 붙일 수도 없었다. 바다에서 하룻밤을 보내는데 마침 명 소장이 타지 않은 배에 식량을 다 실었다.
“다른 배에서 밥 먹는 걸 눈으로만 보면서 비상식량이었던 라면 몇 개로 버텼죠. 제가 원래 배멀미를 안 하는데 그날은 먹은 걸 다 게워낼 정도로 괴로웠어요. 다음날 아침 해녀바위에 있던 옛 선착장에 겨우 배를 댔죠. 무슨 물고기가 있나 싶어 바로 낚싯대를 내렸더니 손바닥만 한 쥐치가 올라왔어요. 연구할 때는 바다생물 건드리지 않는 게 제 원칙이지만 그날은 눈 딱 감고 회를 쳐서 김치에 싸 먹었어요. 맛있었죠, 하하.”
연구를 하다보면 지금도 아쉬울 때가 많다. 지금도 독도를 가려면 울릉도에서 다이빙 전문선을 빌려야 한다. 한번 독도를 다녀온 연구원들은 평소에 팔굽혀펴기나 달리기 등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한다고 한다. 바닷속에 들어갔다가 일반 배를 잡고 나오려면 두 팔에 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정도는 웃으면서 넘길 수 있다. 잠수 연구를 하면서 가장 두려운 것은 역시 사고다.
“독도는 조류가 세고 물도 깊잖아요. 조류에 휩쓸려서 멀리 떠내려간 사람을 구한 적도 가끔 있어요. 그나마 독도에서는 아직 아무도 다치지 않아 다행이에요.”
이런 고생을 하면서도 독도 생태지도를 만든 이유는 두 가지다. 명 소장은 1997년부터 10년간 독도를 연구하다가 빠진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독도가 예전에 이랬는데 지금은 이렇게 바뀌었다고 말하려면 기준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 기준을 제대로 만들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새로 온 연구자도 독도 바닷속이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한 눈에 알 수 있는 생태지도를 만든 거죠.” 생태지도 한 장에 담긴 정보를 다 보려면 영상이나 사진을 몇 십 배 봐야 한다. 또 하나 이유는 청소년과 어린이에게 독도를 알리기 위해서다. “말레이시아가 인도네시아에게서 시파단이라는 작은 섬을 지켜낸 뒤 사진과 생태지도가 담긴 멋진 책을 냈는데요, 제 꿈도 바로 그겁니다.”
![➊ 해녀바위의 실제모습. 수심 15m 바닥에는 모자반과 감태 등이 자라고 있어 ‘녹색 정원’으로 불린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8/193446506153fe8af70555d.jpg)
➊ 해녀바위의 실제모습. 수심 15m 바닥에는 모자반과 감태 등이 자라고 있어 ‘녹색 정원’으로 불린다.
![➋ 독립문바위의 실제 풍경. 사람이 한 명 통과할 것 같은 바위틈이 마치 ‘천국의 문’처럼 느껴진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8/183714153053fe8b2b5874d.jpg)
➋ 독립문바위의 실제 풍경. 사람이 한 명 통과할 것 같은 바위틈이 마치 ‘천국의 문’처럼 느껴진다.
![➌ 동도 연안의 수중 모습. 어린 돌돔, 벵에돔, 전갱이, 문어, 오징어 같은 어린 해양생물이 살기 좋은 곳이다. ➍ 큰가제바위의 수중 바닥에서 위를 보면 파란 ‘하늘창문(하늘창)’이 보인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8/105804276953fe8b3628028.jpg)
➌ 동도 연안의 수중 모습. 어린 돌돔, 벵에돔, 전갱이, 문어, 오징어 같은 어린 해양생물이 살기 좋은 곳이다.
➍ 큰가제바위의 수중 바닥에서 위를 보면 파란 ‘하늘창문(하늘창)’이 보인다.
![▲ 해양과기원에서 만든 독도 수중 생태지도.](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8/102348794353fe8b53b0960.jpg)
▲ 해양과기원에서 만든 독도 수중 생태지도.
➎는 동도연안과 수중 모습.
➏은 독립문바위,
➐은 하늘에서 본 독도 전경.
“독도·울릉도 수중 10경 세계에 알릴 것”
해양과기원은 이번에 생태지도를 발표하면서 독도에서 처음 발견된 미기록 4종을 함께 보고했다. 우리나라 다른 곳에서는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것들이다. 3종은 이미 학회에 등록했고, 1종은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다른 곳에서는 보고됐지만 독도에서는 처음 발견된 해양생물도 7종이나 됐다. 명 소장은 “독도 연안에서 발견된 해양생물은 현재까지 100여 종을 넘는다”며 “‘독도가 아열대바다가 됐다’는 말도 있지만 아직 이르고 길게 관찰해야 결론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생태지도는 이걸로 끝이 아니다. 해양과기원은 2017년까지 11곳의 생태지도를 더 완성할 계획이다. 삼형제굴, 탕건봉 연안, 똥여 등 새로 그릴 곳들도 모두 풍광과 해양생물이 빼어나거나 독특한 곳들이다. 모두 완성되면 독도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지도가 완성될 것이다. 명 소장은 “독도와 울릉도의 바닷속을 즐길 수 있는 가장 경치 좋은 곳 ‘10경’을 완성해 국내외에 알리고 싶다”며 “힘들긴 하지만 이런 의미 있는 일에 젊은 과학도가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편집자 주|이 기사는 9월호 브로마이드 ‘독도 수중 생태지도’와 함께 보시면 더 재미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