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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린이 돌아왔다

화학이 만들어낸 기적의 단맛

사카린이 돌아왔다


사카린은 훗날 미국 존스홉킨스대 총장을 역임한 화학 교수 아이라 렘센의 실험실에서 근무하던 러시아 출생의 연구원 콘스탄틴 팔버그가 1878년 처음 발견한 합성 감미료다. 산업 폐기물이지만 유용한 자원이기도 했던 콜타르를 이용해 여러 가지 화합물을 합성하던 그는 우연히 ‘오쏘-설포벤즈아마이드’라는 물질이 유난히 강한 단맛을 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렘센 교수와 함께 논문을 발표한 팔버그는 존스홉킨스대를 떠나 뉴욕에서 독립적으로 일을 하면서 1884년 독자적으로 특허를 신청했다. 설탕을 뜻하는 라틴어 ‘사카론’을 따라 ‘사카린’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2년 후에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생산 공장을 세워 부자가 됐다. 렘센 교수는 특허권을 독차지해버린 팔버그를 ‘악당’이라고 불렀다.


설탕보다 300배 달아도 살 찔 걱정 끝~!


사카린은 너무 많은 양을 섭취하면 약간 쓰거나 금속성의 뒷맛이 느껴지긴 하지만 설탕보다 300배 이상의 단맛을 내는 훌륭한 감미료다. 더구나 열량이 높은 설탕과 달리 소화기를 통해 흡수가 되지 않아 아무리 먹어도 살찔 염려가 없는 감미료다. 그래서 사카린은 설탕을 먹을 수 없는 당뇨병 환자들에게 단맛을 선사해주고, 충치가 생길 걱정을 하지 않게 해준다. 더욱이 오늘날에는 콜타르 대신 원유를 정제한 원료로 생산하기 때문에 설탕보다 50배 이상 싸게 만들 수 있다.


사카린은 일제 강점기에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됐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우리에게 음식에 넣어먹는 하얀 백설탕이나 꿀은 꿈에서나 그려보는 귀한 식품이었다. ‘당원(糖源)’, ‘뉴슈가’, ‘신화당’ 등의 다양한 상품명으로 도입된 사카린은 그런 우리에게 단맛에 대한 절박한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기적처럼 달콤한 감미료였다. 하지만 미국 농무부가 1907년부터 사카린의 유해성을 검토하기 시작하면서 거부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콜타르가 산업폐기물이라는 사실이 문제였다.


식물이나 동물로 만든 ‘자연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정서를 가진 사람들에게 화학적으로 합성한 사카린은 식품으로 인정받기 쉽지 않았다. 물론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사카린의 사용 금지를 검토하고 있던 농무부를 심하게 비난했다. 실제로 유해성을 입증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는 찾을 수 없었고, 오히려 사카린의 인기는 높아만 갔다. 지금도 사카린은 아스파탐이나 수크랄로스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합성 감미료이다. 우리도 매년 1000t 정도의 사카린을 소비하고 있다.


1970년에 사카린을 섭취한 쥐의 방광에 악성 종양이 발생한다는 연구가 발표되면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레이 등이 1970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사이클라메이트와 사카린을 10:1로 혼합한 합성 감미료를 체중 1kg당 2.6g씩 105주(2년) 동안 먹인 결과 80마리 중 8마리의 쥐에서 종양이 발생했다. 세계적으로 사카린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도 사카린을 발암성이 의심되는 ‘2B군 물질’로 분류했다. 미국을 비롯해 거의 모든 국가에서 사카린의 사용을 제한하거나 사카린 사용 여부를 표시하도록 의무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카린이 쥐와 달리 사람에게 암을 일으킨다는 과학적 근거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2000년부터 쥐 비뇨기관의 생리적 특징 때문에 암이 생긴다는 사실이 거듭 확인됐다. 즉 쥐 소변 속의 인산칼슘과 사카린이 결합해서 만들어지는 작은 결정 때문에 방광 내벽에 상처가 생기고 다시 종양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같은 쥐과에 속하는 생쥐(mice)에서는 종양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사카린이 인체에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과학적 사실이 명백해지면서 국제암연구소도 ‘인체 발암성을 의심할 수 없는 물질’을 뜻하는 ‘3군’으로 분류를 변경했다. 미국 FDA도 사카린에 대한 거의 모든 규제를 폐지했다. 한국 식약처가 이번에 사카린의 사용 범위를 크게 확대한 것도 유해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겨울철 즐겨먹는 간식인 ‘호떡’과 ‘붕어빵’에 사카린이 종종 들어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겨울철 즐겨먹는 간식인 ‘호떡’과 ‘붕어빵’에 사카린이 종종 들어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 겨울철 즐겨먹는 간식인 ‘호떡’과 ‘붕어빵’에 사카린이 종종 들어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겨울철 즐겨먹는 간식인 ‘호떡’과 ‘붕어빵’에 사카린이 종종 들어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천연식품에 대한 과도한 집착 피해야


식품은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화학적으로 합성한 식품을 반가워하지 않는 것도 식품에 대한 우리의 인식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소비하는 설탕, 커피, 초콜릿과 같은 기호식품을 공급하기 위해 열대 지역의 주민들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과 희생은 상상을 넘어선다. 사카린과 같은 합성 감미료에 대한 감정적인 거부감이 자칫 열대 지역 주민들의 고통과 희생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사카린이나 MSG(조미료)를 비롯한 식품첨가물에 대한 우리 사회의 거부감은 심각한 수준이다. 그러나 ‘식품첨가물’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안전성을 확인해 사용을 허가한 물질이다. 사카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식약처는 과학적 증거와 국민 정서를 모두 고려해서 식품첨가물의 사용을 허가한다. 확실한 근거도 없이 부당한 이익을 챙기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이나 옐로 저널리즘의 황당한 주장보다는 식약처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신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2014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이한기 기자
  • 이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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