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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이 기사는 NASA의 심우주 거주시설 연구를 기초로 한 가상 이야기다.
오늘은 지구 날짜로 2031년 8월 13일. 화성에 도착한 지 벌써 7개월 이틀이 지났다. 밤 하늘에 별처럼 보이는 작은 지구와 달의 모습이 아직도 낯설다.
우리 탐험대 12명은 지난 7개월 동안 인류 최초의 화성기지를 구축하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에게 이곳 기지는 생활의 터전이자 안식처다. 잠에서 깨어 침대 곁에 달려있던 달력에 날짜를 표시하던 나는 문득 처음 화성에 착륙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2011년 버전의 심우주 거주시설 필드 테스트 장면. 거주시설이 가운데에 있고, 양쪽에 위생모듈과 에어로크가 배치돼 있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7/68368382453d5e187cbced.jpg)
상상 이상의 맛, 화성 그린샐러드
침대를 빠져 나와 사다리를 타고 2층으로 내려오니 부지런한 운전기사인 미국인 마이클이 벌써 러닝머신을 뛰고 있었다. 화성의 중력은 지구의 3분의 1밖에 안된다. 장시간 이런 환경에서 생활하다 보면 근육과 뼈가 약해지고, 무엇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모듈 안에는 지구와 비슷한 정도의 중력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가 설치돼 있고, 이를 이용해 우리는 적절한 중력 아래에서 운동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여가 차원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임무다. 우리는 운동장비가 구비된 모듈에서 매일 교대로 운동을 한다. 나는 마이클에게 눈인사를 하고 주방으로 다가갔다. 여객기에서 음식 등을 준비하는 갤리와 비슷한 구조다. 철재 캐비닛 칸마다 내용물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나는 그 중에서 계란 반숙과 베이컨, 그리고 오렌지주스가 들어 있는 칸을 열어 진공 포장된 우주식을 꺼냈다. 비록 직접 불과 물을 사용해 요리한 따끈한 식사는 아니지만, 맛을 즐기고 포만감을 느끼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최근에는 여기에 신선한 채소가 곁들여졌다. 1층과 2층 중간에 리프트를 멈추고 식물재배 키트(kit)를 돌아보고 있는 유럽인 대원 앨런에게 아침인사를 했다. 앨런이 기지 안에서 식물 재배에 성공한 덕분에, 우주식에 질려 있던 대원들은 큰 위안을 받았다. 미국 애리조나 사막의 식물원에서 연구했던 앨런은 기지 내에서 LED 조명을 이용해 상추의 일종인 로메인과 같은 채소를 재배했다. 그는 이 채소로 우리에게 신선한 식량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화성에서 안정적으로 식물재배를 할 수 있는지도 연구하고 있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키우는 과정을 지켜보며 지구에 있는 것 같은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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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는 공모 형식의 대회를 통해 심우주 거주시설 시험작을 만든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706/S201408N053_3.jpg)
1층으로 내려가 위생시설 유닛으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위생시설 유닛은 거주시설 유닛에 연결돼 있는데, 화장실이나 샤워실에서 사용한 물을 재사용하기 위한 정수시설이 붙어 있다. 물이 귀하기에 이 시설은 매우 중요하다. 이곳에는 또 대원들이 사용한 쓰레기를 마른 것과 젖은 것으로 분리해 처리하고, 냄새를 정화하는 시설이 설치돼 있다. 우리도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는 있으니까.
기지는 탐사의 전초기지
샤워를 마치고 개운한 기분으로 주거활동모듈 1층에 돌아왔다. 최근 들어 표정이 밝아진 이탈리아 출신의 마르코니 대원이 심우주 인터넷(DSN; Deep Space Network)으로 미국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의 통신국과 통신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착륙하는 과정에서 통신 장비 일부가 망가지는 바람에 처음 몇 달 동안 지구와의 교신은 하루 2시간 정도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며칠 전 마르코니가 고장 난 통신 장비를 극적으로 수리해, 지금은 지구에 있는 가족들과 마음 놓고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 옆의 메인 컴퓨터 앞에는 언제 봐도 깔끔한 오스트리아 출신 대원 테슬라가 전력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전력을 생산하는 태양전지판과 지구에서 가져온 수소전지(사실 원자력 전지가 효율이 좋지만 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수소전지를 가져왔다)는 화성 기지를 움직이는 핵심 장비다. 테슬라는 메인 컴퓨터를 통해 매일 사용 전력과 여유 전력을 관리하고 있다. 화성에서는 먼지폭풍이 태양빛을 가리기 때문에, 이곳의 전력 상황은 늘 빠듯하다.
외부감시 카메라를 통해 바깥 풍경을 본 나는 환호했다. 제법 먼 곳까지 선명하게 잡혔다! 무려 한 달만이다. 그 동안 먼지폭풍으로 온통 붉은 먼지에 휩싸여 있었는데, 실로 오랜만에 갠 날을 맞은 것이다. 메인 컴퓨터도 이 지역의 오늘 날씨가 외부활동에 적합하다고 알려왔다. 나는 실내에서 지내야 했던 그 동안의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급히 외부 임무를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거주시설 유닛에 도킹돼 있는 운송차량의 상태를 점검하고, 샘플 수집을 할 지역의 위치를 확인했다. 화성에서 생명 흔적을 찾는 임무를 맡은 지질학자인 나는, 날씨가 허락되는 날이면 언제나 바깥으로 나가 차량으로 꽤 먼 거리까지 가서 화성의 돌멩이를 수집했다.
외부활동 복장을 갖추고 밀폐 장비(에어로크) 앞에 접혀 있던 진출입로를 펼쳤다. 그리고 걸어서 모듈 밖으로 나왔다. 마이클이 이미 차량의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차량에 탑승하자 6개의 바퀴가 한꺼번에 90° 움직였다. 곧이어 차량은 마치 게처럼 옆으로 움직여 모듈과 분리됐고, 곧 다시 바퀴를 정면으로 바꾼 뒤 전진했다. 차량 뒤로 붉은 먼지가 흩날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 황량한 지역이 수억 년 전에는 물이 풍부한 행성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렸다.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 화성에는 생명체가 존재했을까. 내가 그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까.
![화성차량과 외부 탐사를 연습하는 장면. 우주인은 장비를 이용해 우주에서 걷는 듯한 느낌을 체험한다. 왼쪽 손목의 기기로 탐사 정보도 받을 수 있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7/182777248553d5e20dc9b2c.jpg)
홈, 마이 스위트 홈(Home, My Sweet home)
지는 해를 뒤로 한 채 기지에 돌아왔다. 긴 그림자가 나보다 먼저 기지로 뛰어드는 기분이었다. 모듈에 들어가기 전, 수집한 지질샘플들을 행성과학실험 유닛의 외부에 있는 에어로크 입구에 넣었다. 먼지를 제거한 샘플들은 나중에 내 체형에 맞춘 글로브 박스(외부에서 팔만 넣어 시험할 수 있게 만든 장비)를 통해 분석할 것이다. 이 작업에는 NASA 제트추진연구소와 미국 애리조나주립대가 공동 개발한 현미경 다중스펙트럼 영상기와, 한국에서 개발한 휴대용 엑스선 형광기기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팔에 약간의 상처가 난 것을 발견했다. 대원 중 유일한 의사인 미국인 하우스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 하는 김에 주기적으로 받는 건강검진도 받았다. 하우스 박사는 외과 전문의이자 심리학 분야의 권위자였다. 사람들은 처음 화성 탐사 계획을 세울 때, 좁은 공간과 지구와 전혀 다른 외부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대원간에 다툼이 발생할까 봐 걱정했다. 하우스 박사가 대원에 포함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우리는 지금까지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내고 있다. 그것은 아마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좁은 공간에서 느끼는 안락함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하나 더 꼽자면 이 넓은 행성에 우리밖에 없다는 인식일 것이다.
밖은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화성에선 바라보는 지구는 너무 작은 별이다. 오늘따라 7500만km 떨어진 집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김어진_jinastro@kari.re.kr 이주희_jhl@kari.re.kr
김어진 박사는 태양계 내 천체를 연구하는 과학자다. 충남대에서 전리층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항공우주연구원 우주과학팀에서 달 및 행성 환경을 연구중이다.
이주희 박사는 우주실험 및 태양계 내 천체를 연구한다. 충남대에서 우주실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항우연 우주과학팀장으로 우주실험 및 과학탑재체를 연구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