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에 대한 책을 읽다 ‘직관’과 어긋나는 문장을 접했다. 이런 문장이다.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은 수학적으로 매우 간단하지만….” 뭐라고? 양자역학의 수학이 간단하다고? 이런 문장도 있다. “…양자역학의 논리 기초를 배우는 일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뭐라고? 근데 나는 왜 이해를 못하지? 논리적인 인간이 아니구나. 좌절.
양자역학에 대한 우리의 ‘직관’은 자동으로 ‘어렵다’는 말과 연결된다. 수십 년 전에 리처드 파인만도 “양자역학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으니 맞는 말인 것 같다. 과학동아에 새로 연재하는 김상욱 부산대 교수의 양자역학 연재물의 제목은 ‘양자역학 좀 아는 척’이다. 결코 알 수는 없고, 아는 척 할 수 있을 뿐이라는 듯이.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런 말에는 지극히 사적인 희망이나 염원이 담겨 있다. 이런 식이다. ‘양자역학은 어려워야 한다. 전문가도 어려워하고 심지어 연구자도 이해하지 못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내가 양자역학에 대해 전혀 몰라도 흉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머리 아픈 일이 생겼다. 양자역학을 이해시켜 주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표방한 책이 거푸 번역돼 나왔다. 그것도 아예 제목에 ‘양자(퀀텀)’라는 말을 버젓이 쓸 만큼 노골적이다. ‘퀀텀 유니버스(승산)’와 ‘퀀텀 스토리(반니)’다. 위에 언급한 ‘직관과 어긋나는’ 문장도 이 책의 본문 또는 해제에서 따온 말이다. 이들은 ‘양자역학이 나온 지도 100년이 다 돼가니 이제는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듯이 독자를 꾀고 있다.
페이지를 넘겨 보니 일단 그리 허황돼 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양자역학이 왜 어려운지’를 정확히 짚어 내고 있다. 사실 양자역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도대체 이 분야가 왜 어려운지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흔히 이상한 양자의 움직임(여기 저기에 동시에 존재한다거나, 죽었으면서 살아 있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상태를 유지한다거나)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나중 문제다. 실제로는 도대체 다루는 대상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어렵다. 대표적인 연구자도 떠오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양자역학과 함께 현대 물리학의 또다른 축으로 불리는 두 가지 상대성이론(일반, 특수)은 양자역학 못지 않게 이해하기 어렵다. 공간이 휘고 시간이 느려진다니 얼마나 어려운가. 하지만 적어도 ‘공간과 중력에 관한 이론’이라는 한마디로 정의는 할 수 있다. 이론의 창시자도 명쾌하다. 아인슈타인이라는 천재 한 명이니까.
하지만 양자역학은 다르다. 대상이 되는 ‘양자’라는 말 자체가 이미 직관을 넘어섰다. 이론을 만든 사람으로 넘어가면 팽팽 돈다. 대표적인 연구자만 해도 축구 팀을 세 개는 만들 정도로 많다. 게다가 모두 천재여서 대부분 20~30대에 노벨상 급의 업적을 하나씩 남겼는데, 이름부터 위엄이 대단하다. ‘코펜하겐 해석(보어)’, ‘불확정성의 원리(하이젠베르크)’, ‘파동방정식(슈뢰딩거)’, ‘파동역학(보른)’, ‘행렬역학(디랙)’…. 한 명의 천재도 상대(?)하기 버거운데, 이쯤 되면 포기하고 싶어진다.
지금까지 양자역학에 관심을 가졌다가 이 단계에서 주저 앉았던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두 책의 저자는 이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각기 나름의 방식을 해결책으로 고민했다. ‘퀀텀 스토리’는 각각의 천재가 이룩한 양자역학의 ‘결정적 순간들’에 집중하는 정통적인 방법을 택했다. 하나의 이론이 다른 이론에 영향을 미치고 그 이론을 발판 삼아 다음 이론이 탄생하면서, 역사상 가장 낯설고 기이하며 아름다운 물리학 이론이 완성되는 과정을 훑는다. ‘퀀텀 유니버스’는 독창적이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만날수 있는 이상한 명제를 중심으로 내용을 재구성했다.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은 결국 일어난다’, ‘두 장소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들’ 같은 소제목들이 그 명제들이다.
두 책 모두 초기 양자역학의 역사에만 머물지 않고 최근으로 시선을 넓힌 점도 주목할 만하다. ‘퀀텀 스토리’는 힉스 발견 직전까지의 입자물리학의 발전사를 성실히 꿰고 있고, ‘퀀텀 유니버스’는 양자화학이나 반도체의 원리, 별의 최후 같은 인접 분야로 눈을 돌렸다. 양자역학의 A부터 Z까지를 역사와 함께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퀀텀 스토리를, 양자역학이 무엇이고 왜 오늘날에도 중요한지를 알고 싶다면 퀀텀 유니버스를 택하면 된다. 두 책은 모두 이론물리학 박사이자 전문 번역가인 박병철 대진대 초빙교수가 번역해 글도 믿을 만하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독자들이 이 책 소개를 완성할 단계다. 다 읽고 저자의 의도대로 양자역학을 이해했는가. 기자는 답을 하기 두려워 책 일부를 일부러 읽지 않고 내버려 두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