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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은하와 은하가 맞부딪친다면…

먹고 먹히는 우주의 사육제

두 은하간의 충돌속도가 느리면 느릴수록 서로가 느끼는 충격은 커진다.

밤하늘의 찬란한 별들을 보노라면 누구나 그 영롱한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모든 밤하늘의 천체들은 얼핏 보기에는 서로 떨어져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예외없이 우리 인간사회처럼 가족을 이루고 있다. 항성의 대부분은 두 별로 이뤄져 있는 쌍성이거나 몇개의 별들로 이뤄져 있는 다중성이다. 어떤 경우에는 수백개 또는 수만개의 별들이 어우러져 성단이라는 형태로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별들의 가족을 포함해 약 1천억개의 별과 약간의 가스 먼지 따위로 이뤄진 하나의 독립된 천체가 우리은하다. 우리가 속해 있는 태양계는 우리은하의 가장자리 한곳에 있다. 현재까지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에는 우리은하와 비슷한 은하들이 2천억개 정도 있으리라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은하들도 대부분 몇개 내지 몇천개가 모여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이를 은하군 또는 은하단이라 부른다.

은하단에 속한 은하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 지름의 수십배 내지 수백배의 거리로 서로 떨어져 있는데 중력의 작용으로 서로의 위치를 유지하면서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상호 중력의 영향으로 은하들은 수억년에 걸쳐 우주공간 속에서 움직이는데, 현재까지 알려진 우주의 나이가 1백억~2백억년임을 고려한다면 그 수많은 세월 동안에 은하들이 서로 충돌할 가능성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거대한 은하들이 서로 충돌할 수 있다는 생각을 인간이 해낸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은하들의 상대위치


전파원을 은하의 충돌결과로 오인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그동안 레이더 개발연구에 동원됐던 많은 과학자들이 대학과 연구소에 돌아옴으로써 세계 각지에서 전파천문학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46년에는 영국의 헤이 파슨즈 필립 등이 처음으로 백조자리 방향으로부터 오는 전파점원(Cyg A)을 발견했고, 1948년 볼턴은 황소자리에 있는 전파원(Tau A)의 위치를 확인하고 그 위치에 게성운이 있음을 처음으로 알아냈다. 그 이후 전파원에 대한 수많은 탐색 결과, 1950년경에는 1백여개 이상의 전파원이 발견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전파원들이 모두 태양계에 가까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무렵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라일교수와 그의 동료들은 이러한 전파원들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전파원의 위치를 더욱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간섭계를 건설했다. 이것이 완성되자 1951년 스미스는 Cyg A의 위치를 이전보다 10배 더 정확하게 구할 수 있었다. 그 위치는 미국 윌슨산 천문대의 바데에게 알려져 그해 9월 광학망원경으로 관측한 결과, 전파원이 있는 위치에서 은하가 충돌한 것처럼 보이는 18등급의 천체를 발견했다.

그 당시 전파은하 Cyg A의 발견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첫째로 Cyg A는 가장 강한 전파원중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광학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인 11억광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이보다 더 약한 많은 전파원들을 관측한다면 우주의 더 먼쪽, 즉 그만큼 더 과거에 해당되는 우주를 볼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둘째로 그처럼 먼 곳에 있으면서 어떻게 망원경으로 관측이 될 정도로 강력한 전파원이 형성됐느냐 하는 점이었다. 당시의 천문학자들은 이 강력한 전파원을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인 은하들이 서로 충돌함으로써 생겨나는 현상으로 간주했다. 실제로 개중에 강한 전파원들은 그것들의 생긴 모양으로 볼 때 이중의 구조를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전파은하가 은하의 충돌현상에 의해 형성됐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 이후 10여년간 널리 인정됐으나 1960년대에 이르러 잘못된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그후로 70년대 후반까지 은하들의 상호충돌 가능성은 대다수의 천문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들어 급속도로 발전되고 있는 천문관측기술 덕택으로 우주공간에서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은하들이 더욱 많이 발견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컴퓨터 모의실험(simulation)을 통해 은하충돌현상을 잘 재현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지금은 은하의 충돌현상을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일반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여섯 은하가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컴퓨터 모의실험을 한 결과, 결국 이 여섯 은하는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밀물과 썰물의 원리로

우리는 하루에 두번씩 일어나는 밀물과 썰물현상이 달에 의한 조석력의 결과로 생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달에 가까운 쪽의 바닷물은 달의 인력에 이끌리게 되고, 그 반대 쪽의 바닷물은 인력을 상대적으로 덜 받기 때문에 지표면 위로 부풀어 오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우주공간 속의 은하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날 수 있다. 즉 가까이 있는 두 개의 은하가 조석력을 받게 되면 은하들이 서로 마주 보는 쪽과 그 반대쪽이 부풀어 오르면서 퍼지게 된다.

이러한 은하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조석력의 효과는 달과 지구의 상호 조석력에 비해 훨씬 크다. 이는 각 은하의 크기와 질량이 지구나 달에 비해 엄청나게 클 뿐만 아니라 두 은하가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가 달과 지구의 거리보다 상대적으로(양자의 크기와 비교해 볼 때)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와 달의 거리가 지금의 절반으로 줄어들게 되면 중력은 4배로 커지게 된다. 중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조석력은 지금보다 8배 커지게 되는데 이는 조석력이 거리의 세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하끼리 서로 가까워지면서 상호작용을 한다면 서로가 느끼는 조석력은 점차 엄청나게 커져서 두 은하의 모양과 특성이 완전히 바뀌게 될 것이다.

1950년대에 이미 천문학자들은 꼬리모양을 갖고 있는 은하, 근처의 다른 은하와 연결되는 듯한 다리모양을 하고 있는 은하 등 특이한 형태를 갖고 있는 은하들이 존재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천문학자들은 이 은하들을 단지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는 은하로만 여겼을 뿐이지 은하들간의 충돌 또는 상호작용에 의해 생긴 은하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1979년 호주의 AAO(Anglo Australian Observatory) 천문대의 말린이 은하의 사진을 분석하던 중 타원형으로 생긴 한 은하의 주변이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아주 어둡기는 하지만 거대한 껍질모양의 구조로 둘러싸여 있는 듯한 형태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이 발견은 많은 천문학자들에게 매우 놀라운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왜냐하면 타원형으로 생긴 은하에서 그러한 껍질구조가 처음으로 발견됐을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의 이론적 해석으로는 설명이 전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까지 학자들은 껍질구조는 하나의 은하에 또다른 하나의 은하가 융합됐을 경우에만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다.

말린의 발견 이후의 여러 관측연구를 통해 어떤 타원형의 은하에서는 은하의 중심부와 바깥부분이 서로 엇갈리는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이 은하가 하나의 구조로 이뤄져 있는 것이 아니라 두개의 서로 다른 구조가 하나의 형태로 어우러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 역시 두 은하의 충돌에 의한 상호융합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된다.
 

전파망원경으로 본 은하의 중심


블랙홀도 간접적인 증거

은하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늘어감에 따라 천문학자들은 은하의 구조와 역학적 현상들을 파악하는 작업이 무척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직접 관측할 수 있는 은하내의 물질들만 갖고서는 모든 현상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고 실제로 은하 전체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이지 않는 물질들-가스, 먼지, 아주 어두운 별, 블랙홀 등-을 반드시 감안해야 함을 알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은하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물질들은 보이는 것들에 비해 10배 이상 많고 무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상호작용을 하는 두 은하가 느끼는 중력은 훨씬 커지게 되므로 서로 충돌할 가능성은 한층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은하의 중심부에 블랙홀이 존재한다면 이 블랙홀도 은하의 충돌현상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줄 수 있다. 블랙홀이 은하의 중심부에 있을 경우 이 블랙홀은 주변의 빛을 포함한 모든 물질을 흡수해버리기 때문에 우리에게 관측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은하 주변에서 블랙홀 쪽으로 떨어지는 가스들은 볼 수 있다. 이들이 완전히 블랙홀에 흡수되기전에 매우 빠른 속도로 떨어지면서 엄청나게 뜨겁고 강한 에너지를 방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은하에서는 그 은하 자체를 구성하는 가스의 양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훨씬 많은 양의 가스의 운동에 따른 에너지가 은하의 중심부로부터 나오는 것이 관측되고 있다. 이러한 은하는 두 은하의 충돌로 인해 융합돼 더욱 많은 가스를 포함하게 된 은하로 여겨지고 있다.

은하들간의 상호작용과 충돌에 대한 많은 관측사실들이 제시되자 천문학자들은 다양한 컴퓨터 모의실험을 실시, 은하들간의 충돌과정을 재현하고 있다. 1970년대 초 미국 MIT의 알라 툼리와 뉴욕대학의 주리 툼리는 처음으로 은하의 충돌과정을 컴퓨터로 계산해냈다. 이들의 결과에 따르면 두 은하가 서로 마주 보는 쪽에서 두 은하를 잇는 듯한 다리모양의 구조가 생겨나고 그 반대쪽에는 꼬리모양의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로써 이미 관측을 통해 알아낸 사실을 이론화하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또한 1980년대 초 호주국립대학의 퀸은 컴퓨터 모의실험을 통해 하나의 은하에 융합된 다른 은하의 찌꺼기들이 거대한 껍질모양의 구조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1990년대에 들어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천문학자 바네스 헌퀴스트 시바이저 등은 그들이 만든 새로운 모델을 활용, 상호작용을 하는 두 은하들은 결국 서로 융합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울러 이들은 편평한 은하들이 상호충돌을 함으로써 타원형의 은하가 만들어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주에 그물을 치고

지금까지 은하들의 충돌현상이 우리에게 어떻게 인식돼 왔으며 이러한 현상의 원인과 결과가 어떠한가를 알아 보았다. 드넓은 우주공간 속에서 상호작용에 의해 충돌하고 융합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실로 숨막히는 은하들의 사육제 시나리오를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들을 토대로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대부분의 은하들은 크고 작은 은하단에 속해 있으며 이들중 어떤 은하는 주변의 다른 은하들과 상호작용을 하거나 직접 충돌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은하들간의 상호작용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현상과 매우 다르다. 실제로 하나의 은하안에 존재하는 개개의 별들은 크기가 은하의 크기에 비해 매우 작고 또한 서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설령 은하단 내의 두 은하가 1초당 수천㎞의 매우 빠른 속도로 상호접근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각 별들간의 직접적인 상호충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두 은하가 느끼는 충격도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 은하가 매초당 수백㎞의 느린 속도로 서로 접근하는 경우에는 별들간의 상호작용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 때문에 두 은하는 매우 급격하게 분열되며 결국에는 수억년에 걸쳐 은하들끼리 서로 잡아먹고 먹히게 되면서 서로의 모양이 변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은하들의 상호작용이 중력에 의해 지배된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두 은하간의 충돌이 느리면 느릴수록 결국 서로가 느끼는 충격이 커진다.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하나의 은하는 무겁고 살찐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고 이 은하는 또다시 거대한 '그물'을 쳐서 자신의 근처를 지나는 다른 은하들을 차례로 포획, 더욱더 거대한 은하로 변해간다. 은하단 내부에서는 무겁고 밝은 은하가 은하단의 중심근처에 모이고 가벼운 은하는 멀리까지 퍼진다. 지구에서 보면 무거운 것은 가라앉고 가벼운 것은 떠 오르는 침전현상과 비슷한 과정이 진행되는 것처럼 관측된다.

아마도 상호충돌로 인해 거대하게 변화한 은하는 은하단의 중심부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은하단의 중심부에서는 cD은하라고 불리는 보통의 은하에 비해 질량이 1백배 이상이나 되는 거대한 은하가 관측되는 경우가 많다.

우주에서는 초대형의 cD은하들 뿐만 아니라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과정을 겪고 있거나 이미 융합된 형태를 보여주는 은하들이 많이 관측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주공간속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은하들 간의 상호충돌현상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은하들 간의 충돌현상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충돌하는 은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불과 10여년 전에 시작됐다. 아무튼 충돌하는 은하들은 지금 우리 인간이 지닌 지식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너무도 많은 수수께끼들을 갖고 있다.

1992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손영종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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