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60억 원이 날아갔다! 2013년 11월 말에 온라인 암시장인 ‘양(Sheep)’이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무려 5400이나 도둑맞은 것이다. 이 비트코인은 ‘시스템 구조상 절대 안전하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수년 사이에 130만 배나 폭등했다. 비트코인은 과연 차세대 화폐가 될 진짜 금맥일까, 위험한 거품일까 아니면 그저 재미있는 디지털 장난감일까.
M 포인트, O 포인트, S 포인트…. 물건을 사거나 신용카드를 쓰고 받는 포인트는 가장 흔하게 접하는 가상 화폐다. 만약 포인트를 영원히 쓸 수 있고 현찰로도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게다가 포인트 쌓는 작업을 컴퓨터가 대신 해준다면…. 바로 이런 포인트, 비트코인이다. 페이스북 창업자 중 한 명인 윙클보스 쌍둥이 형제가 전체 비트코인의 1%를 소유했다고 주장해 유명해졌으며,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자들도 뛰어들고 있다.
비트코인은 현재 아마존이나 나이키를 비롯해서 수많은 온라인 상점에서 쓸 수 있다. 얼마 전에는 파리바게뜨 인천시청역점이 국내 최초로 비트코인 거래의 문을 열었다. 심지어 지중해 동부에 위치한 키프러스대는 등록금으로 비트코인을 받기 시작했고, 전기자동차 테슬러는 비트코인을 받고 자동차를 팔고 있다. 1 비트코인은 12월 11일 현재 약 100만 원으로, 2011년 2월 9일 기준 약 1000원에서 1000배 정도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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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의 탄생
비트코인의 시작은 2008년 10월의 마지막 날 밤이었다. 누군가가 ‘아무도 소유하지 않는 화폐’를 구상했다며 ‘암호화 기술’ 메일링 리스트인 메인에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 저자에 대한 정보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뿐이었다. 마치 비트코인 열풍을 준비라도 한 듯 bitcoin.org라는 웹사이트가 열린지 2달 반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bitcoin.org는 비트코인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웹사이트며, 역시 사토시 나카모토 등이 운영하고 있다.
50여일 뒤인 2009년 1월 3일 비트코인이 역사적인 가동을 시작했다. 초반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동안 사토시 나카모토 홀로 북 치고 장구 치는 모양이었다. 그 외로운 작업의 결과로 지금까지 발행된 전체 비트코인(약 1100만 비트코인)의 약 10%를 사토시 나카모토 혼자 차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비트코인은 자동으로 발행되고 있지만, 무한히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4년마다 시간당 발행량이 절반씩 줄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처음 나온 2009년에는 10분마다 50 비트코인씩 발행됐다. 2013년부터는 10분당 25 비트코인으로 줄었다. 2040년이면 발행을 멈추고 총 통화량은 2100만 비트코인으로 고정된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먼 훗날에 비트코인이 금처럼 희소해져 가격이 폭등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비트코인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우선, 10분마다 비트코인의 거래내역 묶음인 ‘블록’이 나온다. 이 블록은 그 전 블록이 나온 직후부터 10분 동안 일어난 모든 거래를 담고 있다. 그리고 수학적인 암호로 잠겨 있다. 이 암호를 해독한 사람에게 상금으로 일정량의 비트코인을 준다. 아무나 참여할 수 있으며, 만약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서 해독했다면 기여도에 따라 나눠 갖는다.
비트코인이 서서히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합류했다. 이들은 암호 블록을 해독하는 작업이 마치 금광에서 금을 캐는 것 같다며 ‘마이닝(채굴)’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비트코인을 받아가는 참여자를 ‘마이너(광부)’라고 했다. 이렇듯 비트코인은 불특정 다수가 함께 운영하는 체계다. 화폐를 발행하고 조절하는 중앙은행은 없다. 심지어 비트코인 창시자도 실체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슨 근거로 비트코인을 믿고 환호하는 것일까?
사토시 나카모토가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이용한 것은 수학이었다. 비트코인에는 치밀한 수학적 알고리즘이 숨어 있는데, 컴퓨터공학자들이 장기간 풀지 못했던 난제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 체계에 중요한 난제를 푼 일본 수학자 신이치 모츠즈키 교수라고 추정하고 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의 거래 장부가 오류 없이 투명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데 가장 큰 공을 들였다. 이를 위해 ‘비잔틴 제국들의 딜레마’로 유명한 컴퓨터공학 알고리듬을 이용했다(51쪽 ‘비잔틴 제국들의 딜레마’ 박스 기사 참조). 덕분에 모든 이용자가 최초의 비트코인 거래부터 최근 거래까지 적힌 장부를 가지고 있다. 언제든지 누구나 열람할 수 있으며 이용자들은 그 장부를 굳게 믿고 있다. 모두가 갖고 있는 정보이기 때문에 누구도 속일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모두가 공유하는 거래장부
암호학 전문가인 미국 존스홉킨스대 매슈 그린 교수는 다음과 같이 비트코인을 정리했다. “비트코인은 개인에게 분산된 공개 장부를 가진 거래 네트워크다. 거래라는 것은 ‘X가 3 비트코인을 Y에게 보냈음’, ‘Y가 2.5 비트코인을 Z에게 보냈음’ 등과 같은 메시지를 포함하는 파일들에 불과하다.”
이런 어설픈(?) 비트코인을 믿을 수 있는 것은 복잡한 암호 때문이 아니라 암호를 푸는 과정에 달려 있다. 비트코인은 거래내역을 투명하게 공유하기 위해 블록에 담아서 주고받는다. 블록을 풀기 전에는 거래내역이 암호로 잠겨 있으며, 혼자서 블록을 깰 수 없다(이 점이 핵심이다). 즉 모든 마이너가 힘을 모아 암호를 풀어야 거래 내역을 밝힐 수 있고 그 결과를 동시에 공유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거래내역을 믿을 수 있고 장부를 절대로 조작하거나 없앨 수 없다. 누군가의 컴퓨터 속 장부를 해킹해 공격해도 다른 컴퓨터에 원래 장부가 온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탄생한 비트코인은 참여자의 익명성까지 보장하는 덕분에 이 시대 사람들에게 더 인기를 얻었다. 또 익명이기에 안전한 측면도 있다. 벤처 캐피털인 앤드리슨호로위츠의 크리스 딕슨은 “비트코인의 흥미로운 점은 거래 당사자를 전혀 믿지 않고도 안전하게 온라인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25%를 지배하면 전체를 지배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 비트코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화폐를 통제하는 세력이 생길까봐 우려하고 있다. 미국 콘웰대 컴퓨터과학과 이대이 에얄 박사 연구팀은 비트코인 시스템의 치명적인 오류를 발견했다고 지난 11월에 발표했다. 비트코인의 마이닝 특성상 한 집단이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 전에도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마이너들의 절반 이상이 집단행동을 하면 전체 시스템이 불안정해질 것이라고 예측돼 왔다. 10분 단위로 발행되는 비트코인은 암호 해독의 기여도에 따라 나눠 갖는데, 특정 집단의 기여도가 유난히 크면 그만큼 많이 가져간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한 집단이 많이 가져간다면 통화량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서는 1/4에 불과한 집단이어도 전체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연구팀은 단일 집단이 전체의 25%를 넘지 않도록 통제해야 비트코인 시장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일례로 ‘비티씨 길드(BTC Guild)’라는 마이너 집단은 연산 능력이 압도적으로 좋아서 2013년에 단독으로 블록 6개를 연속으로 깼다. 이들은 스스로 그 위험성을 인정하고 가입자를 제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 흑심을 품은 집단이 보이지는 않아 다행이지만, 어디서 어떤 그룹이 출연할지 모른다. 두 개의 큰 집단이 협력해 시장을 주무르는 사태도 가능하다.
전자지갑 소매치기 위험
비트코인의 또 다른 맹점은 사람에게 있다. 비트코인을 담는 전자지갑을 소홀히 관리했다가는 도둑맞을 수 있다. 전자지갑은 컴퓨터나 USB 등에 저장하는데 해커가 이 전자지갑을 통째로 빼가는 것이다. 비트코인 블록을 캘 때마다 암호가 복잡해져 보안성이 높아지는 것과 달리, 막상 비트코인을 담아놓는 전자지갑은 상대적으로 보안이 강해지지 않고 있다. 때문에 전자지갑을 훔치는 해커들이 득세했고 피해 규모는 수백만 원부터 1000억 원 정도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대책은 전자지갑을 오프라인 저장 장치에 보관하자는 정도에서 그치고 있다.
비트코인을 현찰로 바꾸려다가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서던메소디스트대 테일러 무어 교수팀은 비트코인을 현찰로 바꾸려다가 실패할 확률이 45%에 달한다고 지난 4월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40개의 비트코인 환전소를 추적했는데, 총 33 종류의 외화(달러, 엔 등)로 바꿔주는 곳이다. 40개 중 9개가 해커 등에게 보안 관련 위협을 받았다. 18곳은 연구 기간 중에 공식적으로 폐업했다. 또 다른 13곳은 아무런 공지 없이 갑자기 문을 닫았다. 연구팀이 결과를 발표한 시점에 남아있는 환전소는 4곳뿐이었다. 폐업한 환전소들이 환불해 주었다는 증거는 거의 없었다. 연구팀은 “비트코인 환전 거래는 평균 381일간 유효하며 현찰을 받지 못할 확률은 45%”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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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진짜 돈 될까?
그럼에도 비트코인은 유명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악용하는 사건도 늘고 있다. 특히 익명성이 범죄의 수단이 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 암살을 모의하는 사이트에서 비트코인으로 모금해 논란이 됐다. 비트코인을 통한 모금은 송금자나 수신자 모두 익명으로 이루어져 법적인 제재가 힘들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이러한 비트코인에 대한 각국 정부의 반응은 다양하다. 2013년 8월 독일 재무부가 비트코인을 합법적인 화폐로 인정한 반면, 12월에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에서 금융기관의 비트코인 거래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발표 직후 비트코인은 3일만에 36%나 폭락했다. 미국 상원 국토안보정무위원회는 “돈세탁에 악용될 위험은 있지만 장기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야도 있다”며 “당장 비트코인을 규제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2월 5일에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4개 기관에서 비트코인의 법적 성격을 논하는 실무자회의를 열었는데, “발행 기관이 모호한 점 등으로 현행 법령상 화폐 또는 전자화폐, 금융상품으로서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