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최근 5년 동안 악성 흑색종(피부암)에 대해 분석한 결과, 국내 환자 수는 2007년 1894명에서 2011년 2576명으로 36%나 증가했다. 특히 50대 이상이 전체 환자의 77.1%를 차지했다. 과도한 자외선이 악성 흑색종의 가장 큰 원인인데 나이가 들수록 자외선 축적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국내 언론은 최근 ‘햇볕 많이 쬐면 관절염 줄어든다’며 일광욕을 해야 한다는 소식을 일제히 전했다. 엘리자베스 아케마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팀이 여성 23만여 명의 류마티즘 관절염 발병률을 조사했더니 자외선 지수가 높은 지역에 사는 여성들은 이 병에 걸릴 확률이 21% 낮았다는 것이다.
비타민D 합성하는 ‘착한’ UVB
왜 이렇게 상반된 결과가 나왔을까. 자외선이 다 같은 자외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외선은 세 가지 종류가 있다. 파장으로 구분하는데 자외선A(UVA, 320~380nm), 자외선B(UVB, 280~320nm), 자외선C(UVC, 100~280nm)다.
이 중에서 가장 해로운 건 지표면에 가장 많이 도달하는 UVA다. 물론 자외선의 에너지는 C, B, A순으로 크다. 단순하게 비교하면 UVC가 가장 해롭지만, 오존층에 100% 흡수된다. UVB는 90%가 흡수된다. UVA는 10% 가량 흡수될 뿐 90%가 지표에 도달한다. 즉 갖고 있는 에너지는 적지만 워낙 많은 양이 지표에 도달하기 때문에 UVA가 더 해로운 것이다. 게다가 UVA는 유리창은 물론, 얇은 커튼과 옷까지도 투과한다.
UVA는 한여름이 아니라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가장 강하다. 충남 태안군 안면도 기후변화감시센터에서 1cm²의 넓이에 내려쬐는 UVA의 에너지를 관측한 결과, 2012년 5월에 104.8mW(밀리와트, 1000분의 1W)로 치솟고 6월에는 116.9mW로 최댓값을 기록했다. 7월(105.7mW)과 8월(86.9mW)에는 오히려 낮아졌다.
기상청이 UVA를 측정한 것은 2008년부터다. 기상청이 발표하는 ‘자외선 지수’에는 UVB만 반영된다. UVA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위험하지만 대비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이정미 기상청 기후변화감시센터 주무관은 “현재 안면도, 고산, 포항, 강릉, 목포에서 자외선A를 측정하고 있다”며 “앞으로 UVA를 반영한 새로운 지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쯤 됐으면 에너지가 큰 UVB든 가장 위험하다고 하는 UVA든 다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그런데 아니다. UVA와 달리 UVB는 ‘적당히’ 쬐어 줘야 한다.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비타민D를 UVB가 합성하기 때문이다. 자외선 지수가 높은 곳의 관절염 발병률이 낮은 것도 UVB 때문이다. 아케마 교수는 “UVB가 합성한 비타민D가 면역세포에 영향을 줘 류마티즘 관절염을 억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물론 UVB도 너무 많이 쬐면 위험하다).
우리 피부에는 음식으로 먹은 콜레스테롤의 대사산물인 ‘7-디하이드로 콜레스테롤’이 있다. 파장 290~315nm의 자외선(UVB가 해당된다)이 콜레스트롤 분자의 스테로이드 고리를 끊어 ‘비타민D3(콜레칼시페롤)’로 합성한다. 비타민D3는 혈관을 따라 간이나 신장으로 이동한 뒤, 우리 몸에서 활동할 수 있는 ‘비타민D 활성체’가 된다.
비타민D는 신체 각 조직세포의 성장과 분화, 그리고 1000여 개의 유전자를 조절한다. 특히 면역계에 직접 영향을 준다. 비타민D가 부족하면 외부에서 들어온 병원균을 구분하는 면역세포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다. 상태가 심해지면 면역세포가 우리 몸의 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에 걸리기 쉽다. 다발성 경화증이나 류마티즘 관절염, 가수 윤종신이 앓고 있는 크론병이 이에 속한다. 그래서 평소 적절한 일광욕으로 비타민D를 보충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타민D가 부족해 자가면역질환에 걸린 환자에게 뒤늦게 비50타민D를 보충해도 병이 낫는 것은 아니다. 비타민D 결핍이 병을 유발하는 ‘방아쇠’ 역할만 할 뿐이다.
하루 15분 햇볕 쬐면 충분
그런데 비타민D를 꼭 햇볕을 통해 얻어야 할까. 음식으로 먹으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우리 몸에 필요한 비타민D를 식품으로 먹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대한골대사학회는 우리 몸의 비타민D를 충분하게 유지하기 위해 하루 가량의 비타민D 섭취를 권장한다. 그러나 비타민D가 함유된 식품이 많지 않고 일상적인 식사로는 200IU 이상을 먹기 어렵다. 결국 UVB를 쬐야 비타민D를 충분하게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비타민D 결핍이 가장 심한 국가 가운데 하나다. UVB를 쬐는 양이 매우 부족하다는 얘기다. 2010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10세 이상 국민의 혈중 비타민D 농도는 모든 연령대에서 최저 기준인 30ng/mL를 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적정 농도는 30~100ng/mL다. 세계보건기구는 20ng/mL이하를 ‘부족’, 10ng/mL 이하를 ‘결핍’으로 정의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남성은 47.3%, 여성은 64.5%가 비타민D 부족 혹은 결핍 상태였다. 특히 남녀 모두 20대에 비타민D 부족이 가장 많았다(남성 65.0%, 여성 79.9%).
비타민D 부족은 일종의 ‘선진국 병’이다. 도시화로 많은 사람들이 실내에서 주로 생활하고 공기에 오염물질이 많아지면서 우리 피부에 닿는 자외선 양이 부족해졌다. 1980년대 이후로는 햇볕이 피부암을 유발하고 노화를 촉진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특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외선 차단제 사용도 급증했다. 화장품 기업들이 자외선의 부정적인 면을 과장한 측면도 있다. 실제로 선진국일수록 햇볕을 잘 쬐지 않아 자가면역질환이 많다.
그럼 충분한 양의 비타민D를 합성하려면 햇볕을 얼마나 쬐어야 할까. 비탈리 테러쉬킨 미국 뉴욕대 랑곤 메디칼센터 교수는 지역과 인종별로 일광욕을 얼마나 해야 비타민D를 충분히 만들 수 있는지 조사했다. 2010년 6월 ‘미국피부과학회저널’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미국 마이애미에서는 오후 12시 기준 동양인의 경우 여름에는 6분, 겨울에는 15분 동안 쬐어야 한다. 피부에 멜라닌세포가 많은 흑인은 비타민D를 잘 합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각각 15분, 20분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연구가 외국에서 이뤄진 것이지만 국내에서도 여름엔 15분 내외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이승원 한양류마티스내과 원장은 “여름에는 얼굴에만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야외활동을 하는 것이 비타민D 합성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더 중요한 것은 햇볕을 쬐는 시각이다. 여름철이라도 태양 고도가 낮은 이른 오전이나 늦은 오후에는 자외선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때 일광욕을 하면 피부가 상하지 않으면서도 비타민D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자외선이 센 여름철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는 가능하면 햇볕을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성장기 어린이와 청소년은 주의해야 한다. 만약 정오에 햇볕에 노출돼 화상을 입게 되면 악성 흑색종 발병률이 성인보다 훨씬 높아진다. 자외선은 많이 분열하는 성장기 세포에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겨울철(12~2월)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충분한 양의 비타민D3를 합성하기 쉽지 않다. 월평균 자외선지수가 3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날씨가 아주 춥지 않은 날이라면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정오에 창문을 열고 짧은 옷을 입은 채 햇볕을 쬐는 것이 좋다. 겨울에는 오후 2시가 지나면 일광욕을 아무리 오래 해도 비타민D 합성량이 400IU를 넘지 못한다.
일상적 자외선은 ‘안전’
만약 도저히 햇볕을 쬘 수 없는 환경이고 심각한 비타민D 결핍증이라면 비타민D 보충제나 주사제를 고려해보자. 이승원 원장은 “비타민D 보충제를 먹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고 말했다. 3~6개월 간격으로 엉덩이 근육에 비타민D 주사제를 맞는 방법도 있다. 조은아 벧엘피부과 원장은 “계절과 몸 상태에 따라 혈중 비타민D 수치가 달라지므로 보충제나 주사제를 이용할 때 꼭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타민D를 얻는 가장 안전하고 좋은 방법은 역시 규칙적인 일광욕이다. 이런 보충제나 주사제가 장기적으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사 진단 없이 고용량의 비타민D 보충제를 오랫동안 먹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지만, 자외선을 쬐는 것으로는 비타민D가 과도하게 생성되지 않는다.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멜라닌세포가 생성되면서 UVB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햇볕을 쬐었을 때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돼 기분이 좋아지고 우울증을 예방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물론 일광욕을 오래 하면 UVA와 UVB를 함께 쬘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학계의 권장 수준에 따른다면 일상적인 자외선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빨갛게 화상을 입을 정도가 아니라면 피부도 지키고 건강도 지킬 수 있다. 자외선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