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말 타계한 닐 암스트롱. 그가 1969년 7월 20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발을 내딛는 순간을 우리는 기억한다. 밤하늘에 떠 있는 ‘왕별’쯤으로 여겼던 달의 실체가 처음으로 맨몸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과거 닐 암스트롱의 영상을 보며 먼 동네 이야기로만 알았던 일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 시작이 바로 나로호다.
GPS 위성도 쏘고 달도 탐사하고
나로호의 다음 목표는 차세대 한국형 우주발사체 , 즉 KSLV-Ⅱ다. 그런데 우주개발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1조 원이 넘는 국고를 투입해야 하는 걸까. 의문을 품는 이들이 많다(2022년까지 진행되는 한국형 발사체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은 약 1조 6000억 원이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가 운용하는 우주정거장의 부수적인 효과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주정거장에서는 중력이 지구의 약 100만 분의 1인 ‘마이크로 중력’ 상태다. 거의 무중력인 셈이다. 여기에서는 지구중력 때문에 만들 수 없었던 순도 100%의 광물 결정체를 만들 수 있다. 이는 새로운 재료나 의약품 제조에 활용된다. 진공, 방사선, 초저온 등 지구에서는 구축하기 어려운 다양한 실험 환경도 확보할 수 있다.
우주개발의 또다른 수혜가 스마트폰 등 이제 안 쓰는 곳이 없는 GPS(위치확인시스템)다. 우리나라는 미국 위성에서 보내는 GPS 신호를 무료로 받아쓴다. 만일 미국 정부가 GPS 신호를 차단한다면 어떨까. 차량, 항공기는 물론 선박 등이 마비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중국은 올해 말부터 독자적으로 글로벌 GPS 시스템을 구축해 아시아 지역에 서비스를 시작한다. 이미 13개의 GPS 위성을 발사했다.
우리나라가 독자적인 GPS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현재 불가능하다. 최소 4개 이상의 GPS 위성을 쏘아올려야 하지만 이 정도 큰 위성을 쏘아올릴 수 있는 발사체, 즉 로켓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세대 한국형 우주발사체는 1.5t급 실용위성을 쏠 수 있고, 향후 GPS 위성까지 발사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또 2021년까지 한국형 발사체가 개발되면 2023년 달 탐사 궤도선과 2025년 달 탐사 착륙선까지도 우리 힘으로 쏠 수 있다. 비록 화성 등 태양계 행성 탐사까지는 멀어 보이지만 나로호는 이런 원대한 우주계획의 밑바탕이다. 이번 발사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나로호 성공이 중요한 이유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에서 들여온 발사체, 즉 이번 나로호가 발사에 성공한다고 해서 우리 우주 로켓 기술에 어떤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을 품는다. 실제로 1, 2차 발사 실패와 한·러간 책임 공방을 두고 ‘굴욕적 협력’을 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그러나 한국형 우주발사체 개발과 평생을 함께 한 채연석 항공우주연구원 연구위원은 3차 발사와 성공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1, 2차 발사에서 성공적으로 동작한 2단 발사체는 고체 킥모터 엔진으로 순수 독자 기술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발사 성공을 위해서 지상에서 수없이 실험을 합니다. 2단 발사체가 작동하는 우주 환경과 최대한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서 실험을 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진공 상태에서 2단 발사체가 작동하기 때문에 진공 챔버를 만들어 실험합니다. 그렇다고 100% 우주 환경과 동일한 환경을 만들 수는 없죠.”
그렇기 때문에 직접 발사해서 성공하느냐는 지상에서의 실험 성공과는 격이 다르다. 실제로 2단 킥모터가 우주 환경에서 작동하면서 킥모터 점화 시점, 점화 당시의 우주 환경, 연소 시간, 실제 추진력 등 다양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채 위원은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을 때 한국형 우주발사체 발사 성공 확률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지상에서의 실험이 ‘장님이 코끼리 코 만지는 격’이라면 이번 발사 성공은 ‘눈 뜨고 코끼리 코를 만지는 것’과 같다는 의미다.
달까지 탐사선 보내려면
한국형 우주발사체는 태양동기궤도(고도 700km 전후)에 1.5t급의 실용위성을 탑재해 쏘아올려야 한다. 나로호가 고도 300km의 지구저궤도까지 올라가는 것에 비하면 훨씬 높다. 높이 쏘려면 어떤 기술을 개발해야 할까. 채연석 연구위원은 “액체 엔진의 추력을 높이거나 연소시간을 늘려야 높이 쏠 수 있다”며 “나로호의 경우 아직 독자 기술로 충분한 추력을 내는 액체 엔진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러시아와 협력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연소실이 커져야 한다. 보다 많은 연료와 산화제를 태울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연소실이 커지면 가장 큰 문제가 불완전 연소다. 연료가 불완전 연소하면 연소실이 버티지 못하고 엔진이 폭발한다.
연소실의 압력을 높이는 방법도 있다. 같은 양의 연료를 연소하더라도 연소실의 압력을 높이면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추진력이 커진다. 한꺼번에 큰 압력을 내기 위해선 연소실로 연료와 산화제를 보내는 터보펌프의 힘이 더욱 강해져야 한다.
채연석 위원은 “연소실을 크게 만드는 방법과 연소실 압력을 높이는 방법을 병행할 수 있지만 북한의 은하3호처럼 엔진 여러 개를 붙일 수도 있다”며 “은하3호는 약 30t에서 34t급의 엔진을 1단에 4개 정도 붙인 발사체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결국 더 높이 쏘는 액체엔진을 만들기 위해선 배관 및 연소실 설계, 지상 실험 등으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차세대 나로호는 총 3단으로 가장 중요한 1단 엔진은 75t급 액체엔진 4개를 결합해 사용할 예정이다. 2단은 75t급 액체엔진을, 3단은 7t급 액체엔진을 1개씩 사용한다. 75t급 액체엔진 기술을 독자 개발하기 위한 과정은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우선 KSR-Ⅲ가 현재 개발 완료한 30t급 액체 엔진의 밑바탕이 됐다. KSR-Ⅲ는 추진력이 12.5t급으로 터보펌프가 달려 있지 않다. 고압 가스탱크로 추진체 탱크에 압력을 넣는 가압식이 사용됐다. 가압식 기술은 30t급 액체엔진에 필요한 터보펌프를 개발하는 밑바탕이 된다. 이밖에 연소기, 가스발생기, 터보펌프, 추진공급계 등 모든 부품도 국산화했다.
KSR-Ⅲ는 1단 엔진만으로 고도 42km까지 올라갔다. 고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관제센터와 로켓이 정확히 교신하는지를 KSR-Ⅲ를 발사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컴퓨터를 통해 비행 궤도를 KSR-Ⅲ에 입력시켜 놓는데 이를 정확히 수행한 것이다.
이제는 경제적인 로켓엔진이 뜬다
75t급 한국형 발사체가 장엄하게 창공을 가른 후 로켓 기술의 향방은 어디로 갈까. 두 가지 화두가 중심이 될 것이다. 하나는 저렴한 로켓, 또다른 하나는 대형 엔진이다. 두가지 관점에서 채 위원은 미국의 민간 로켓 개발기업 스페이스X의 움직임을 유심히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페이스X는 지난 10월 7일 밤(한국 시각 8일 오전) 우주화물선 ‘드래건’을 로켓 ‘팰컨9’에 실어 우주로 쏘아올렸다. 무인 우주화물선을 성공적으로 발사했지만 상업위성을 정확한 궤도에 올리는 데는 실패해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팰컨9의 1단 엔진 9개 중 1개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스페이스X는 현재 대형 액체 엔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동시에 엔진을 여러 개 붙여 필요한 대형 엔진을 만드는 방식으로 우주 개발 상업화를 앞당기고 있다.
채 연구위원은 “40~50t급 액체 엔진을 9개까지 붙여서 발사하고 있다”며 “똑같은 추진력을 낸다고 봤을 때 가장 경제적으로 개발하는 방법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국형 우주발사체인 KSLV-Ⅱ가 발사에 성공하면, 이어질 달 탐사선을 위해 발사체에 75t급 액체 엔진을 여러 개 붙이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얘기다. 물론 단일 엔진으로 75t급을 능가하는 대형 엔진 개발도 병행해 이뤄질 수 있다.
특히 민간 우주 개발 시대를 열어젖힌 스페이스X가 발사체 ‘팰컨’ 계열의 연료로 케로신과 액체산소를 쓴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액체엔진의 연료로 케로신(등유) 외에 액체수소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수소 가격이 더 비싸 일반적으로 케로신 액체 엔진이 더 경제적으로 여겨진다.
채연석 연구위원은 “일본의 H-2나 유럽의 아리안5 같은 발사체는 액체수소를, 중국은 질소산화물을 연료로 사용하지만 후발 주자인 우리나라는 가격 경쟁력까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에 비교적 저렴한 등유+액체산소 방식을 채택한 것”이라며 “미국 스페이스X가 보다 저렴한 대형 엔진을 연구하며 민간 우주 개발을 이끌고 있는 것처럼 저렴한 한국형 발사체 성공은 반드시 국제적인 경쟁력을 지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지막 발사를 끝낸 나로호는 이제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달 탐사를 단기적 목표로 삼은 우리나라의 우주 개발에 한국형 우주발사체는 밑바탕이고 나로호 발사는 그 시작이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상상해 보자. 우리가 독자 기술로 만든 발사체가 달을 탐사하는 탐사선을 싣고 거대한 굉음을 내뿜으며 파란 창공 위로 올라가는 날을. 발사 성공 여부와 관계없는 나로호의 진정한 꿈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로호는 정확히 달을 겨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