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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ST 세계무대 떠오르는 강자

“가막못에서 노벨상 나옵니다”




2030년까지 세계 10위권 이공계 특성화대학으로 진입하겠다는 ‘비전 2030’을 발표하고 글로벌 연구중심대학으로 도약하고 있는 울산과학기술대(UNIST·유니스트)에 가기 위해 KTX에 올랐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어느새 기차는 울산에 도착했다. 울산은 자동차, 조선, 2차 전지 등 세계적인 산업체가 모여 있는 우리나라 ‘산업의 수도’다. 기업과 대학의 산학협력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세계적인 기업에서 일할 기회도 많은 울산은 이공계 특성화대학 입지로써 가장 잘 맞는 장소다.

우리나라는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KAIST, 포스텍, UNIST 등 5개 과학기술대학을 집중 육성·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지원에 힘입어 UNIST는 짧은 시간 안에 뛰어난 성과를 내놓고 있다. 2009년 1기 신입생을 받기 시작했지만 최근 3년간 네이처, 사이언스 등 권위 있는 과학저널에 제 1저자로 게재된 논문 수는 이미 KAIST나 포스텍을 뛰어넘었다. 2차전지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고 있고 학부생이 SCI급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제는 세계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공계 특성화대학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국내가 좁다. 우리는 세계를 본다

UNIST는 개교를 준비할 때부터 세계 수준의 대학에 눈높이를 맞추고자 고민했다. 학부교육은 올링대, 대학원 교육과 연구는 MIT, 산학협력은 조지아텍, 글로벌화는 20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아시아 최고 대학으로 성장한 홍콩과학기술대를 모델로 삼았다. UNIST는 2009년 개교 당시부터 계속 ‘100% 영어강의’를 한다. 외국에서 온 교수나 학생이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교직원들도 대부분의 공문을 영어로 작성하며 회의도 영어로 진행한다. 대학을 글로벌화 하려면 영어강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기존 대학은 이를 전면 시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처음부터 100% 영어강의를 못박은 UNIST는 자유로웠다. 조무제 총장은 이점이 바로 신설대학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처음 설립할 때부터 계획한 것과 이미 완성된 상태의 대학을 바꾸는 것은 차이가 큽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영어강의를 소화할 수 있는 교수와 학생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차질 없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공수업을 영어로 소화하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학생들은 생각보다 훨씬 잘 적응했다. 상위 2~3%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 학교답다. 12학번 전성원 군은 “이제는 생소한 한자말 때문에 오히려 번역서를 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안태경 군도 마찬가지다. 영어강의를 듣는 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첨단 IT기술이라는 보완장치가 있었다. 안 군은 학교의 IT기반 학습관리 시스템(LMS)인 블랙보드를 이용했다. “하루에 10번도 더 들어갔어요. 수업 전에 교수님의 강의내용을 미리 확인합니다. 그런 다음 수업을 들으면 영어가 더 잘 들려요.”

다국적기업의 프로젝트를 맡거나 세계의 다른 대학과 함께 연구를 하려면 의사소통은 필수다. 전공공부와 영어공부를 따로 하는 수고 대신 전공을 영어로 공부하기 때문에 UNIST 학생들은 더욱 경쟁력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다. 영어강의 덕분에 다른 언어권의 우수한 학생이나 교수들이 부담 없이 UNIST에 와서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다. 그야말로 국제 캠퍼스로 도약하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카자흐스탄, 터키, 우즈벡 등 30여 개국에서 온 상위 1%이내의 최상위 학생 80여명이 UNIST에서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해외학생 비율을 20%까지 높일 예정이다. 외국대학의 학생들이 여름에 이곳에서 수업을 듣는 썸머세션 프로그램도 있다. 작년에 미시간대에서 4명의 학생이 방문했고 워낙 반응이 좋아 올해는 8명으로 늘었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UNIST학생들도 여름을 이용해 외국대학에서 여름계절학기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조지아공대, 캘리포니아대, 버지니아공대 등과도 학술 교류를 하고 있다. 사실 외국대학과 우리나라 대학의 학사운영시기가 달라서 교류가 쉽지 않다. 조 총장은 “UNIST는 미국 등 해외대학의 학사운영 시기에 맞춰 1년 3학기제를 운영한 ”고 밝혔다. 한 학기가 짧다보니 공부해야 하는 양이 늘어나서 힘들지 않을까. 전성원 군에게 물었더니 “2학기제인 일반 학교들은 한 학기에 듣는 과목수가 많지만 3학기제는 과목수가 적어서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고 답했다. 오히려 3학기제 덕분에 여름 방학을 이용한 인턴십이나 해외 프로그램 등에 참가할 수도 있다.

한 학기나 1년 동안 협정을 맺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학점을 인정받는 교환학생프로그램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학부생의 연구참여를 독려하는 UNIST인 만큼 이와 관련된 독특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바로 ‘학부생연구프로그램’이다. 지도교수의 지도 아래 연구주제를 정하고 방학 중에 외국대학 교수의 연구실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융합의 시대, 두 개 이상 전공 의무

2009년 개교 당시 UNIST는 애플 아이폰을 모든 교수와 교직원, 학생들에게 지급한 것으로 유명했다. 조 총장은 “이것을 이용해 언제든지 강의내용을 확인하고 교수들과 소통하라는 의미의 교육용 기자재로 지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로 창의프로그램 UEE(UNIST e-Education)의 일환이었다. 블랙보드를 통해 질문을 올리면 실시간으로 답변을 받을 수 있다. 과제확인도 가능하다. 강의자료를 이용해 복습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를 이용해 학생이 주도한 토론활동을 유도하는 등 교육적 성과를 거뒀다. 앞으로 수업동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하는 MIT처럼 교수들의 강의를 공개할 계획도 갖고 있다.

UNIST에서는 누구나 2개 이상 전공을 이수해야 한다. 무전공으로 입학해 1학년 때는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사회 등 기초교양과목을 이수하고 2학년에 올라가면서 전공학부를 자유롭게 택한다. 이때 2개 이상 전공을 이수해야 한다. 교수도 마찬가지다. 모든 교수들은 2개 이상의 학부에 소속된다. 어떤 분야의 공학 연구를 하더라도 한 분야의 전공지식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없다. 때문에 융합연구가 중요하다. 학부 때부터 이런 시각과 능력을 길러야 대학원에서도 융합연구가 가능하다. 교수, 대학원생, 학부생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연구시설인 ‘연구지원본부’도 고가의 첨단 장비를 모두 공유해 서로간의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하고 있다. 첨단 장비가 없는 국내 타 대학이나 기업체 연구소에도 개방, 문턱을 없앴다.

UNIST는 인문소양교육을 매우 중시한다. 엔지니어 리더가 되려면 예술, 문학, 사회, 문화 등의 소양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문화공연과 리더십 강좌도 열고 있다. 올해 7월에는 ‘UNIST 인문학 페스티벌’도 개최했다. 전국 4개의 이공계 특성화대학과 과학고, 영재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음악, 미술, 역사, 영화, 디자인, 연극 등 테마별 인문학 강좌를 열었다.



 




한국 첫 노벨 과학상은 UNIST에서

UNIST 교정에는 ‘가막못’이 있다. 여기서 나온 실개천이 흘러가는 길에는 9개의 다리가 있다. 그런데 다리 이름이 없다. UNIST 출신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수상자의 이름을 따서 다리 이름을 붙이겠다는 의도다. 첨단융합학문분야의 글로벌 리더를 배출하겠다는 UNIST의 비전을 가시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를 위해 조 총장은 선택과 집중을 강조했다. 그는 “하버드대나 MIT도 모든 분야에서 최고는 아니다”라면서 “선택과 집중으로 특성화를 해 2~3개 분야를 세계 최고로 만들면 비전을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집중육성분야는 첨단신소재, 차세대에너지, 바이오 분야, 이렇게 3개 분야다.

차세대에너지인 ‘리튬 2차전지’분야에서는 이미 국내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지난 8월 13일, ‘전기자동차 1분이면 충전완료’라는 기사가 세상을 강타했다. 친환경에너지공학부 조재필 교수 연구팀이 탄소로 코팅된 단결정 나노입자 클러스터를 전극으로 이용해 출력은 높고 충전시간은 짧은 리튬 2차전지를 개발한 것이다. 사실 2차전지 음극소재는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해 왔다. UNIST 교수진이 이것을 개발함으로써 연간 1000억 원의 수입대체효과를 창출했다. 게다가 기업으로 2차전지 기술을 이전하면서 대학기술이전료로는 최고인 54억 원을 받았다. 조 교수는 “리튬 2차전지 시장 규모가 올해 200억 달러에서 2018년도 750억 달러로 급성장이 예상돼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와 더불어 큰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UNIST에서는 노벨상을 받은 해외 유명석학도 만날 수 있다. 특강을 하기도 하고 아예 이곳에서 함께 연구를 진행하기도 한다. 꿈의 신소재 그래핀을 세계 최초로 발견해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교수는 현재 UNIST의 석좌교수로서 저차원 탄소혁신 소재 연구센터에서 그래핀의 고속도 대량 생산기술과 저탄소 소재를 연구한다. 작년에는 이종훈 교수팀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보유한 ‘원자 분해능 수차보정 투과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그래핀의 물성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이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영입한 뛰어난 젊은 교수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안태경 군도 학교의 장점으로 우수한 교수진을 꼽았다. 훌륭한 교수님을 멘토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지원도 상당하다. 100억 원이 지원되는 교육과학기술부 지정 선도연구센터와 50억 원이 지원되는 지식경제부 지정 대학 IT연구센터, 지식경제부에서 16억원을 지원받는 친환경 전기자동차 차량부폰 개발 및 연구기반 구출 사업 등 각종 지원이 연구를 뒷받침했다. 이밖에도 정부와 지자체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줄기세포 연구센터 신축 등 첨단 교육 및 연구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단 3년 만에 국내를 넘어 세계를 보고 있는 UNIST. “짧은 역사지만 학교를 우리가 만들어간다. 우리가 역사를 쓰고 있다는 생각으로 공부하고 있다”는 1학년 전성원 학생의 말을 들으니 UNIST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2012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울산=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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