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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럼 붉고 탐스러운 장미꽃 속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식물의 중매쟁이인 벌은 꽃의 색깔이 붉을수록 잘 보지 못한다. 벌의 눈이 파장이 짧은 가시광선(파랑이나 보라색 빛)과 자외선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또 꽃잎을 많이 만들려면 그만큼 다른 것을 포기해야한다. 다른 부분의 생육이 부실해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꽃가루를 만드는 수술이 없어지기도 한다. 속씨식물의 생식기관인 꽃이 더 화사한 꽃을 피우기 위해 생식능력을 포기하는 이런 이율배반이 또 어디 있을까.

오늘날 꽃가게에서 보는 장미의 모습은 사실 사람들이 오래 ‘성형수술’을 한 결과다. 꽃의 성형수술은 18세기 영국 왕실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람들은 정원을 예쁜 꽃으로 채울 요량으로 ‘교배육종’ 방식을 통해 꽃의 모습을 입맛대로 개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새빨갛고 커다란 꽃잎이 100여장에 이르는 오늘날의 장미가 탄생했다.

그렇다면 장미의 ‘성형 전’ 모습은 어떠했을까. 친숙한 찔레꽃과 해당화 속에 답이 있다. 꽃잎은 5장에 불과하고, 꽃잎 빛깔도 검붉은 색과는 거리가 먼 두 꽃이 바로 ‘성형 수술 비포어(before)’에 해당하는 야생장미다. 오늘날까지 개발된 장미의 품종은 약 2만 5000여종. 유전자 분석 결과, 개량장미를 만드는데 사용한 야생장미는 전 세계에 분포한 150여종 중 20여종에 불과했다.

꽃다발에 주로 쓰는 절화용 장미 품종(꽃을 잘라서 쓰는 품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꽃잎 색깔이지만 육종을 통해 조절할 수 있는 형질은 훨씬 많다. 꽃의 모양, 가시의 많고 적음, 개화 시기는 물론 병충해에 대한 저항성 등 다양한 부분을 조절할 수 있다. 매력적인 눈매, 오똑한 콧날, 갸름한 턱을 가진 성형미인처럼 사람들이 원하는 형질만 가진 맞춤 꽃을 만드는 ‘꽃성형외과’에 가 보자!




[야생장미인 찔레(왼쪽)와 해당화.]





꽃의 쌍꺼풀수술, 교배육종

교배육종은 육종기술 중 가장 역사가 깊고 널리 쓰이는 안정적인 기술이다. 최신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한다 해도 교배육종 단계를 거쳐야만 비로소 안정된 꽃이 된다.

오늘날 2만 5000여종에 이르는 개량장미 대부분은 교배육종 방식을 통해 탄생했다. 피처럼 검붉은 색의 장미는 붉은 장미끼리 교배해 얻었다. 꽃잎 수가 100장이 넘는 탐스런 장미는 꽃잎이 많은 품종의 장미끼리 교배해 만들었다. 교배육종의 첫 번째 쓰임새는 이처럼 특정 형질을 강화하는 것이다.

형질이 다른 두 품종을 교배시켜 양쪽의 형질을 함께 갖는 신품종을 만드는 방법도 교배육종에서 자주 쓰는 기술이다. 오늘날 절화용 장미는 사계절 내내 꽃이 핀다. 시장에 내놓기 위해 꽃을 자르면 계절과 상관없이 60일 후 새로운 꽃이 올라온다. 그런데 장미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다른 장미를 사계절 꽃이 피는 중국의 야생장미 종(Rosa Chinensis)과 교배해 계절과 상관없이 꽃을 피우는 장미를 만든 것이다.

꽃의 성형수술은 단순히 꽃의 겉모습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육종을 하려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잘린 뒤에도 쉽게 시들지 않는 절화용 장미, 꽃은 볼품없지만 향기가 진한 향료용 장미 등 다양한 장미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품종이 전혀 다른 장미들을 교배하는 과정에서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다. 다른 종과의 교배를 막는 ‘접합 전 장벽’이다. 육종가들은 이 접합 전 장벽을 넘기 위해 몇 가지 편법을 사용한다(153쪽 박스기사 참고).

단 20여 종의 야생장미에서 출발해 2만 5000여 품종을 만들 만큼 교배육종의 힘은 요술봉처럼 강력하지만 여러 한계점이 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의 김원희 농업연구관은 “향기가 없는 장미가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꽃이 예쁜 품종끼리만 교배를 하다 보니 그만 향기가 사라진 것이다. 김 연구관은 “원하고자 하는 형질을 획득하려다 뜻밖에 다른 형질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교배육종이라는 방법 자체가 유전자를 뒤섞는 과정을 자연에 완전히 맡기는 것인 만큼 불확실성이 크다.

교배육종의 또 다른 단점은 식물의 유전자에 애초부터 없는 형질은 아무리 교배를 해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좋은 예가 바로 푸른색 장미다. 장미에는 푸른색 색소를 만들어내는 유전자가 아예 없다. 이 때문에 교배육종으로는 절대로 푸른색 장미를 만들 수가 없다. 식물체가 갖고 있지 않은 유전자를 넣어주려면 유전공학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보형물 대신 유전자를 집어넣는 유전자 조작기술

불가능. 바로 파란 장미의 꽃말이다. 꽃말만큼이나 푸른 장미를 교배육종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서 말했듯 장미에 애당초 푸른색 색소를 만들어내는 유전자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4년 일본 산토리사가 마침내 푸른 장미를 개발했다. 교배육종이 아닌 유전자조작 기술을 통해서다.

푸른 장미의 푸른색 색소를 만드는 유전자는 팬지꽃에서 유래했다. 그렇다면 팬지꽃의 유전자를 어떻게 장미의 유전자 틈에 집어넣었을까.


유전자조작을 하는데 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식물 뿌리에 종양을 만드는 세균인 아그로박테리움(Agrobacterium Tumefaciens)을 이용하는 것이고, 다른 방법은 ‘유전자 총(gene gun)’을 쓰는 방법이다.

아그로박테리움이 식물에 종양을 일으키는 까닭은 세균이 자신의 유전자를 식물의 유전자 틈에 끼워 넣기 때문이다. 유전공학자들이 바로 이런 성질을 이용했다. 이 세균은 원하는 식물에 유전공학자들이 넣고자 하는 유전자를 전달하는 ‘운반꾼’ 역할을 한다.

유전자 총은 고압가스를 이용해 직접 유전자를 식물세포의 핵 안으로 쏘아 넣는 장비다. DNA를 지름 0.6μm(마이크로미터, 100만 분의 1m)의 작은 금속 탄환에 붙여 고압으로 ‘캘러스’에 발사한다. 캘러스는 식물 세포를 배양한 것으로, 씨앗처럼 완전한 식물체로 성장할 수 있다. 금속 탄환이 식물세포에 박힐 때 유전자도 함께 전달된다.




유전자조작기술을 이용하면 파란 장미 외에도 그동안 불가능했던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 꽃잎처럼 잎과 줄기에도 화사한 색깔이 있는 식물체가 그 예다. 이를 위해선 유전자 앞에 있는 ‘프로모터’를 바꿔치기해야 한다.

프로모터란 유전자가 언제 어디에서 발현해야 하는지 적혀있는 ‘작동설명서’라 할 수 있다. 꽃잎 색 유전자에는 꽃잎에서만 색소를 만들도록 하는 프로모터가 달려 있다. 식물체 전체에 필요한 물질을 만드는 유전자에는 식물체 전신에서 작동하도록 하는 프로모터가 달려 있다. 꽃잎 색 유전자 앞에 식물 전체에서 작동하는 프로모터만 붙이면 줄기나 잎도 꽃잎처럼 화사한 색을 가진 식물체를 만들 수 있다.

유전자조작 기술을 이용한 성형수술의 용도는 미용만이 아니다. 실내공기를 정화하고 토양 속 중금속을 정화하는 기능성 식물을 만드는데도 이용되고 있다. 2011년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의 이수영 농업연구사는 산화방지효소를 만드는 유전자를 넣어 아황산가스에 강한 페튜니아를 만들었다. 특정 화학물질을 잘 흡수하려면 우선 그 화학물질에 내성이 있어야 한다. 이 연구사는 특허를 낸 새 페튜니아가 “기능성 식물체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설명했다.
 






완벽한 식물을 만들기 위한 도전

향기가 진한 서양 난을 만들 순 없을까. 동양 난은 향기가 좋지만 꽃이 작고, 서양 난은 꽃이 예쁘지만 향기가 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두 난의 장점을 합치기 위한 시도가 한창이다. 하지만 꽃이 향기를 만드는 과정에는 한두 개의 유전자가 아니라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복잡한 관계가 얽혀있어 쉽지 않다.

더 아름다운 꽃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꽃의 성형수술은 외형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향기, 병충해 저항성을 넘어 실내공기 정화와 같은 기능성 작물까지 확대되고 있다. 연인에게 건네는 장미꽃 다발이 기쁨을 전할 뿐만 아니라, 향긋한 향기와 함께 벌레를 쫓아주고 방 안 공기를 정화해주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2012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우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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