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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싱가포르로 휴가를 갔던 기자는 초록색 ‘도깨비공’이 가득 쌓인 과일시장에서 발을 뗄 수 없었다.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과일은 두리안(Durio zibethinus Murr.)이었다. 어린이가 겨우 안아들 정도로 크고 무거운 이것은 배를 가르니 생선이 썩는 듯한 악취가 났다. 그 안에는 끈적끈적하고 물컹물컹한 누런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맛있으니 한번 먹어보고 판단하라”는 상인의 말에 코를 막고 맛보기로 했다. 그것도 한 순간, 악취가 향긋하게 느껴질 만큼 달콤한 맛에 두 덩어리나 먹어버렸다!

옆에는 더 재밌게 생긴 과일이 있었다. 작은 럭비공처럼 생긴 노란 과일이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색종이를 접어 만든 모빌처럼 굴곡이 있었다. 희한한 생김새에 눈을 빼앗긴 동안, 상인이 웃음을 지으며 과일을 썰기 시작한다. 같은 크기의 세모가 다섯 방향으로 돋아나 있는 모양이 영락없는 별이다. 그래서 이름이 별과일(스타프루트, Averrhoa carambola)이다(167쪽 사진).

특이하게 예쁘고 향긋하게 맛있는 작품

열대와 아열대에서 자라는 식물 중에는 특이한 예술품을 만드는 것들이 많다. 기다란 벌집처럼 생긴 몬스테라(Monstera deliciosa Liebm)는 생김새도 희한하지만 바나나와 파인애플을 섞은 듯이 달콤새콤하다. 브라질포도(Myrciaria spp.)는 이름을 들으면 풍성한 포도송이가 덩굴에 주렁주렁 달려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까만 구슬처럼 반짝거리는 열매가 나무줄기의 거친 껍질에 알알이 따닥따닥 붙어 있다.

하지만 낯익은 열대과일이라고 다 아는 체를 하지 마라.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파인애플이 나무에서 어떻게 열리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는가. 길쭉한 잎들이 소철처럼 펼쳐져 있는 한 가운데에 열매를 살짝 얹어놓은 것처럼 달린다. 줄기 하나에 열매가 하나 열리는 셈이지만, 사실 파인애플 표면에서 솔방울처럼 껍질을 이루는 하나하나가 모두 꽃이다.

그렇다면 바나나는 어떻게 자랄까. 꽃이 피지 않은 채로 열매를 맺는다는 이름의 무화과는 정말 꽃을 피우지 않는 걸까. 애벌레처럼 구부러진 모양의 고소한 캐슈넛도 땅콩처럼 땅속에서 자랄까. 빵나무의 열매에서는 정말 고소한 빵맛이 날까. 한국에서 먹기 힘든, 또는 열매는 흔할지라도 나무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어려운 (아)열대과일들의 비밀이 ‘열대의 과일 자원’ 한 권에 모두 들어 있다. 화려한 색감과 자세한 일러스트, 그리고 이해하기 쉬운 친절한 설명을 읽다보면 눈으로 과일을 맛보는 듯한 행복한 기분이 든다.



금귤과 라임, 레몬, 귤, 오렌지, 한라봉, 자몽은 모두 귤류(Citrus sp.)지만 동일한 과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생김새와 크기,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라봉과 청견은 어떻게 다를까. 한라봉(C. reticulata)은 1972년 일본에서 두 가지의 귤류(C. reticulata ponkan과 C. kiyomi)를 섞은 품종이고, 청견(C. reticulata kiyomi)은 오렌지와 온주밀감 사이의 잡종이다. 유자와 레몬, 라임도 마찬가지로 어떤 종들을 섞었느냐에 따라 다르다. 귤류는 자연적으로 또는 인공적으로 합성이 잘 되기 때문에 종이 무수히 많다. 그래서 학자마다 귤류로 인정하는 종의 범위가 크게 다르다.

다른 열대과일 도감과 달리 이 책은 저자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라봉과 청견처럼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고, 어떻게 다른지 궁금한 과일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 놓았다.



최고의 건축가가 최고의 카사노바

식물이 더 멀리까지 씨앗을 퍼뜨리기 위해 생김새가 특이하고 맛과 향기가 특별한 과일을 만든다면, 동물은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마찬가지로 씨앗을 퍼뜨리려는 목적이다) 특이한 집을 짓는다. 동물들이 얼마나 위대한 건축가인지는 ‘동물의 건축술’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은 2009년 KBS에서 방영된 특집다큐 프로그램 ‘동물의 건축술’을 만든 제작자가 집필했다. 눈여겨봤던 시청자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신기하고 놀라웠던 장면을 떠올리거나, 당시에 놓쳤던 미묘한 장면을 감상할 수 있다.

제작팀은 5m가 넘는 흙호텔 건축가(흰개미), 대칭과 파란색을 좋아하는 인테리어디자이너(바우어새), 수 대의 가족이 모여 사는 주택단지를 짜는 베 전문가(집단베짜기새), 나무를 1t이나 베어 강 한쪽을 막아 댐을 만드는 건축가(비버), 달걀보다 작은 집을 만드는 예술가(벌새)를 만나기 위해 호주와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 코스타리카 등 여러 나라를 탐험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뜨거운 햇볕에 카메라 부품이 녹기도 하고, 칼새가 빛을 싫어해 동굴 속에 살고 있어 어둠속에서 조명도 켜지 못한 채 컴컴한 그림을 찍어야 했고, 비버가 너무 영리한 탓에 미끼인 사과만 여러 개 뺏기고 촬영에는 실패했던 웃지 못할 경험도 모두 담았다. TV에서 동물의 집에 대한 이야기만 볼 수 있었다면 이 책은 마치 제작팀과 함께 탐험을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뜨린다.

가장 눈길을 끄는 예술품은 고가의 요리 재료가 된다는 칼새의 둥지와 꽃과 풀부터 인간이 만든 플라스틱 재료까지 ‘예뻐 보이는 것이라면’ 뭐든지 집 앞에 깔아놓는 바우어새의 집이다.

칼새는 동남아의 동굴이나 사원(칼새 덕분에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에서 사는데, 수십 미터 높이의 벽에 살 곳을 정한다. 다른 새들이 흙과 지푸라기 등을 섞어 집을 짓는 것과 달리 오직 침을 뭉쳐 둥지를 짓는다. 사람들은 이것을 납작한 칼로 긁어내고 깨끗이 씻어 말린 다음 물에 불려 수프로 만든다. 비싼 요리 재료를 2번씩 얻기 위해 칼새가 알을 낳기 직전에 일부러 둥지를 뜯어낸다는 얘기가 왠지 슬프게 들린다.
조류계의 카사노바 바우어새(수컷)는 나뭇가지 등을 꽂아 담을 세우는 방식으로 집을 짓는다. 양쪽 담이 정확히 대칭을 이룰 때까지 나뭇가지를 뽑고 꽂는 일을 반복한다. 집이 완성되면 근처를 날아다니며 암컷이 현혹될 만한 장식품을 찾아온다. 꽃잎이나 열매도 있지만, 사람이 사용하다 버린 라이터나 칫솔처럼 생각지도 못한 것들도 물어온다. 장식품을 집앞에 늘어놓으면 완성, 집 옆에 숨어 암컷이 오길 기다린다. 암컷은 집이 대칭인 정도와 장식품을 보고 수컷을 택한다. 그러면 아늑한 집에서 사랑을 나눈다. 끝나기가 무섭게 수컷 바우어새는 다른 곳으로 날아가 새 집을 짓고 새로운 장식품을 구하러 다닌다.

이와 비슷하게 풀로 베를 짜는 방식으로 집을 짓는 베짜기새도 암컷과 사랑이 끝나면 다른 나무로 옮겨가 집을 짓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집을 지어 암컷을 부르는 낭만적인 수컷들이 알고 보면 ‘나쁜 남자’였던 것이다.

동물이 사람 못지않은 훌륭한 건축가라는 점과 함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공의 예술품에 지쳐 있는 이들에게 이 두 권의 책은 동식물이 만든 맛있고 감동적인 예술품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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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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