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해서 지구라는 행성에 이처럼 풍부한 생명체가, 그리고 고도의 문명이 존재하게 된 걸까. 인류의 문명은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까.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이상묵 서울대 교수가 첫 생명체의 탄생부터 인류 문명의 미래까지 지구와 생명의 공진화를 통해 살펴본다.

한 기자가 영국의 스티븐 호킹 박사에게 “과연 우주 다른 곳에도 생명체가 존재하는가”라고 물었다. 호킹 박사는 이렇게 답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과학적인 사실에 따르면 원시생명(primitive life)이 우주에 존재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와 같이 고등 문명을 이룬 생명체가 존재할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인류는 약 250여 년 전 산업혁명으로 비약적인 성장과 번영을 이룩했다. 역사경제학자들은 산업혁명 이전 2000년 동안 인류가 이룩한 경제 성장이 1.5배 정도라면 산업혁명 이후엔 40배가 넘는다고 말한다. 약 8만 년 전에 아프리카 대륙에서 걸어 나와 지구에 퍼지기 시작한 현생인류는 오랜 기간 지지부진하게 발전하다가 가장 최근에서야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과연 이러한 문명이 지속될까. 끝이 있다면 얼마나 남았을까. 만약 호킹 박사 말대로 생명의 씨가 우주 여기저기 이미 뿌려져 있다면 과연 고등문명을 이룰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이를 알기 위해선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 과거는 미래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뜨거운 것이 좋아
철(鐵)이 없는, 철이란 재료를 모르는 고도문명은 상상하기 어렵다. 학자들은 어떤 우주 문명이라도 한때는 철이라는 금속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철 대부분이 지구의 특정 지역에서 오는데 이곳의 철광산들이 약 22억 년 전에 한꺼번에 만들어졌단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규모 철광산이 만들어진 때는 지구에 광합성을 하는 남조류란 식물이 처음 생겨나 대기 중에 산소가 가득차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철광산은 한마디로 식물이 출현해 대기와 바다가 산화되면서(산소로 가득차면서) 행성 지구에서 생겨난 진화적인 부산물이다. 이처럼 과거를 보면 현재가 보이고 거꾸로 현재를 보면 과거를 알 수 있다.
생명의 진화와 지구의 변화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가령 초기 지구는 소행성과 운석의 충돌이 잦았고 그로 인해 급격한 환경 변화가 빈번했다. 이런 변화는 틀림없이 초기 생명체의 진화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첫 생명체의 탄생일 것이다. 지난 20~30년간 생명공학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생명체들의 유전자 정보를 얻었다. 진화가 덜 된 원시 생명체일수록 뜨거운 환경에서 살고 번식하는 내열(耐熱) 기능이 있다. 쉽게 말해 보통 세포는 40℃ 이상에서는 파괴되거나 활동을 중지한다. 그러나 60℃ 심지어 90℃에서 활발히 번식하는 미생물이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 같은 땅위의 화산지대와 해저 중앙해령과 같은 바다속 화산 내부에서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사실로부터 지금보다 뜨거웠던 초기 지구의 표면에서 뜨거운 곳을 좋아하는 첫 미생물이 태어나 널리 퍼져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지구가 점차 식으면서 지하 내부나 해저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 해저 중앙해령에서 발견되는 미생물이 오늘날 지구에 사는 생명체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독특한 초기 지구환경이 생명체의 탄생과 진화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과거 지구환경 변화가 생명체의 번창과 갑작스런 멸종의 주된 요인이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인간의 활동 즉 온실가스의 증가가 지구 환경을 변화시키고 있다.

지구에 광물이 4500개나 있는 이유
지구와 생명의 공진화를 연구하기 위해 10월 31일부터 3일간 경주에서 ‘끊임없이 변모하는 지구와 벼랑 끝에 선 생명’이란 주제로 다산 국제컨퍼런스가 열렸다.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관하고 극지연구소가 후원한 행사였다. 미국, 프랑스, 일본과 국내 전문가들이 참가해 생명의 기원, 해저 중앙해령과 해저화산에 대한 최신 연구, 차가운 극지방에 사는 미생물과 뜨거운 해저 열수 분출구 주변의 생태계 등을 활발하게 토의했다.
참석자 중 미국 카네기연구소의 로버트 헤이즌 박사는 광물과 생명의 진화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 생생하게 설명했다. 헤이즌 박사는 “오늘날 지구표면에 약 4500여 종의 광물이 발견되는데 이것은 생명체의 탄생과 진화가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도대체 생명체가 어떻게 광물을 만들었다는 걸까.
빅뱅 이후 처음 만들어진 광물은 고작 15개 정도였다. 실제로 달에는 약 50여 종의 광물만이 존재한다. 반면 지구는 지질학적으로 진화하면서 그 숫자가 서서히 늘어났다. 특히 생명체가 출현하면서 지표면의 화학조건이 달라지고 대기 중에 산소가 생기면서 22억 년 전 1500개 정도였던 광물이 오늘날 4500개로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우리가 고도의 문명을 이룰 수 있었던 데는 지구 표면에 다양한 광물들이 존재하는 것도 한 원인이다. 다양한 광물이 지표면 근처에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가공하고 제련해 오늘날의 고등문명을 만들 수 있었으리라. 그렇다면 생명의 진화가 광물의 진화를 낳았고, 광물의 진화는 다시 인간에게 고등문명을 안겨 주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프랑스 파리지구물리학연구소(IPGP)의 빈센 꾸띠요 박사는 생물 대멸종의 원인을 새롭게 해석해 주목을 받았다. 우리는 6500만 년 전 백악기말 공룡의 멸종이 커다란 혜성의 충돌 때문이라는 학설에 영향을 받아 흔히 소행성이나 혜성의 충돌로 생물 대멸종이 일어났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꾸띠요 박사는 “생물 대멸종은 주로 지구 내부의 거대한 화산작용과 마그마 분출때문이며 운석 충돌은 극히 예외적인 사례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공룡 멸종조차 같은 시기에 있었던 인도 데칸고원의 엄청난 마그마 분출과 이때 생긴 기후변화가 혜성 충돌보다 더 큰 원인일지 모른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발표 뒤 많은 국내 과학자들은 만약 백두산이 분출할 경우 지구환경 변화가 어느 규모로 일어날지 흥미로운 토론을 벌였다.

우주에 지구 문명을 전파하려면
미국 하버드대 찰스 랭뮤어 교수의 발표는 우리 모두에게 인류가 지속적으로 번영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거대한 암석 덩어리로 출발한 지구가 45억 년의 진화를 통해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만들어 내고 스스로 복제하는 생명체를 탄생시킨 뒤 대기에 산소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 마치 배터리나 연료전지를 충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산업혁명 이후 우리가 화석연료를 쓰는 것은 지구와 생명의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충전한 연료전지를 단시일 내에 방전하는 것과 같다. 즉 석유는 45억 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인데 이걸 짧은 시간에 다 써버리고 나면 겨우 이룩한 고등문명을 지속시키기 힘들 거란 말이다. 보통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대략 100W 전구를 켜는 데 드는 에너지와 비슷하다. 그러나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는 50배, 100배 이상이다. 현재 아무도 석유 자원이 얼마 남았는지 모른다. 중국이나 인도 같은 나라가 잘 살기 시작하면 에너지의 고갈이 더욱 빨리 앞당겨질 것이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우리가 고도의 문명을 이룩한 것은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정말 낮은 확률의 일이다. 어쩌면 우주의 다른 곳에서도 생명체들이 고등 문명을 이뤘지만 그 이후 핵전쟁, 끊임없는 분쟁, 질병, 환경 파괴, 자원고갈 등의 내부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한 게 아닐까란 생각도 개인적으로 해본다. 만약 그런 문제를 해결했다면 더욱 고도의 문명을 이룬 다음 영화 ET처럼 우주선을 타고 와 우리 앞에 나타났을 터인데 말이다.
우리는 행성 지구의 시민으로써 지구를 잘 보전하고 모든 지구인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법을 터득해 앞으로 닥쳐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말 광활한 우주에 고등 문명을 이룬 생명체가 현재 우리밖에 없다면 어떻게든 살아남고 번영해서 인간의 가치와 문명을 전 우주에 확산시키는 것이 우리의 우주적 사명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빙하 아래 호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발견했지요.” 1970년 남극의 빙하 아래서 거대한 호수가 발견됐다.
수천m 두께의 얼음과 대륙 사이에 액체 상태의 물을 발견한 것이다. ‘보스톡’이라 이름 붙은 이 호수는 면적 1만 4000㎢에, 깊이 1200m로 경기도와 맞먹을 정도의 크기다. 1996년 프리스쿠 미국 몬태나주립대 교수는 남극의 빙하 3750m 아래에 있는 이 호수에서 처음으로 생명체를 발견했다.
지구 생명체 기원의 실마리
프리스쿠 교수는 “보스톡 호수가 발견됐을 때 사람들은 이곳에 과연 생명체가 있을까를 가장 궁금해 했다”고 말했다. “이 곳에 생명체가 있다는 이야기는 지구 최초의 생명체가 차가운 빙하에서 탄생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요. 지구에서 생명체가 탄생했을 때도 빛 에너지가 없었어요. 극한 환경이었고요.”
보스톡 호수는 빛 한 점 들지 않는다. 호숫물의 온도만도 영하 3℃에 이른다.
1500년 동안 철저하게 고립된 환경이라는 점도 주목받는 이유였다. 그는 “호수에 사는 생물들을 통해 과거 생물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발견으로 우주생명체 탐사에 새로운 방향도 제시했다.
“우주에는 표면이 빙하로 덮여 있는 행성이 많아요. 이 행성들에도 생명체가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죠”
그 중 유로파는 프리스쿠 교수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위성이다. 그는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는 보스톡 호수와 구조가 같다”며 “암석 위에 바다가 있고 그 위에 빙하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발견으로 미국 항공우주국은 유로파 탐사를 미션 우선순위 2위로 올렸다. 그는 “화성탐사가 끝나는 대로 바로 유로파 탐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와 남극 사이 대양에서 해저 지형 탐사를 벌이고 있었는데 혼탁한 색을 여러 차례 확인했어요. 열수분출구를 찾아낸 거죠.” 마치 모험담을 이야기하듯 랭뮤어 하버드대 교수의 목소리가 들떠있었다. 그는 중앙해령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지구 과학자다.
지구 움직임의 비밀을 밝히다, 남극 중앙해령
열수분출구는 뜨거운 맨틀층의 마그마가 솟아나오는 곳이다. 열수에는 철과 황이 많이 포함돼 있어 해수와 만나면 탁한 색을 띤다. 열수분출구는 해양의 수온과 화학조성을 조절하고 있어 해양 시스템 연구에 중요하다. 또 주변 온도가 400℃나 돼 극한 환경에 사는 생물을 연구하는 자료로도 활용된다. 하지만 그 수가 적어 찾기가 힘들다.지난 3월, 랭무어 교수는 우리나라 극지연구소 연구팀과 함께 남극 중앙해령에서 최초로 열수분출구를 발견했다.
이번 발견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열수분출구의 위치 때문이다. 열수분출구 주변의 생물은 대양마다 다르다. 이 생물들은 가까운 열수분출구를 통해 이동한다. 따라서 지역마다 열수분출구 주변 생물의 종류나 특성을 파악하면 생물들이 어떤 경로로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 랭뮤어 교수는 “그동안 인도양과 태평양 사이에 생물이 어떻게 이동했는지에 대한 자료만 없었다”며 “이번 발견으로 열수분출구를 통해 생물이 어떻게 이동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열수분출구가 발견된 남극 중앙해령 역시 다른 해령에 비해 수심이 얕고 지형이 독특해 그 동안 학계의 관심을 모아왔다. 다른 중앙해령들은 평평한 능선이 이어지다가 큰 산맥이 솟아나는 형태인데, 남극 중앙해령은 큰 산맥이 나오기 전 작은 산맥들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랭뮤어 교수는 “다른 해령과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어 지구의 움직임에 대해 새로운 사실도 밝혀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저 화산활동에 대해서도 연구해 볼 생각입니다. 어떻게 폭발하는지, 폭발할 때 해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해령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