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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알고 있다 오르가슴의 비밀을

과학이 밝힌 성감대 뇌지도



“오르가슴을 느낄 때 대뇌가 활성화되는 모습을 연구하기 위해서라면 성행위 도중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이나 양전자방출 단층촬영(PET) 같은 장비를 사용해 뇌의 변화를 조사해야 하지만 이처럼 용감한 학자는 아직 없었다. 하지만 성적 쾌락이 주로 대뇌 안쪽 부분인 변연계(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대뇌 반구 안쪽 영역)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신경세포의 전기적 활성화임은 분명하다.”

‘과학동아’ 2004년 6월 특집기사 ‘사랑은 뇌가 한다-내 사랑은 로맨스일까 에로스일까’의 일부다. 성적인 흥분은 성기의 말초신경에 가해진 말 그대로 ‘말초적인’ 자극이 신경회로를 거치며 증폭돼 뇌의 변연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현상이라는 설명을 담고 있다(변연계가 활성화되는 신경회로는 한 가지 경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성적 흥분 또는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이 기사에서 근거는 1966년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의 결과다. 원숭이의 중격핵, 시상, 외측 시상하부, 대상속 등 변연계를 자극했더니 원숭이가 성적인 흥분을 느꼈고, 따라서 사람도 비슷할 것이라는 추론이다. 기사에 나온 것처럼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추론은 말 그대로 가설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불과 7년 만에 사정이 바뀌었다. 성행위까지는 아니지만 실제로 여성의 주요 부위를 자극하고 이에 따라 활성화되는 뇌 영역을 fMRI로 확인한 연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성감대를 포함한 여성 뇌감각지도(일명 ‘감각 호문쿨루스’)가 처음 탄생했다. 이 분야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한 뇌과학자의 집념의 결과이기도 하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첫 ‘뇌감각지도’

‘점잖은’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배리 코미사룩 미국 럿거스대 심리학과 교수는 성과 관련한 인체 연구의 대가다. 수십 년째 성생활과 오르가슴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통증과 신경 외상에 따른 감각계 이상과 그 치료에 대한 연구를 주로 했다. 대상도 ‘남들이 하듯’ 동물이었다. 1972년 ‘사이언스’에 ‘에스트로겐 처방에 따른 암컷 쥐의 성기 신경회로 확장’이라는 논문을 낸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곧 대상을 사람으로 넓혔다. 1985년 ‘여성 질 자극에 따른 고통 역치의 증가’라는 논문을 의학 저널인 ‘통증’지에 발표했다. 1993년에는 ‘척수 손상 여성의 오르가슴과 관련한 생리학적 연구’를 ‘의학과 재활’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위 과학동아 기사가 나오던 순간에는 척수를 다쳐 감각이 없는 여성도 우회 신경로를 통해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fMRI로 증명하는 논문을 쓰고 있었다. 논문은 그 해 9월에야 ‘브레인리서치’지에 발표됐기 때문에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사에 나온 ‘이처럼 용감한 과학자’가 실제로 있었던 셈이다.
코미사룩 교수는 질환이나 치료와 관련되지 않은, 순전히 오르가슴과 성적 감각 자체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계속했다. 이를 모아 2006년에는 300쪽이 넘는 두툼한 ‘오르가슴의 과학’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오로지 성감대 별로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는지 확인하기 위한 fMRI 연구 결과를 ‘성의학저널’에 발표했다. 작년 1월 스위스 취리히대학병원 기능성신경외과 라르스 미첼 교수팀이 음핵의 신경을 전기자극한 뒤 fMRI로 관찰한 간접적인 연구를 한 적은 있었지만, 실험 참여자가 해당 부위를 손으로 스스로 자극한 ‘직접적인’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 내용은 단순하다. 23세부터 56세까지 건강한 오른손잡이 여성 11명(뇌 연구기 때문에 오른손잡이라는 조건 통제가 필요했다)을 선정해 실험 부위를 자신의 손으로 자극하게 한 뒤 뇌의 감각령 중 어느 영역이 활성화되는지를 fMRI로 촬영했다. 이 때 각각의 실험 부위에 대해 30초씩 자극하고 30초를 쉬는 방식을 각각 5번씩 되풀이했다. 실험부위는 성적 자극을 유발한다고 알려진 음핵과 질, 자궁경부였고 비교를 위해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도 추가했다.

실험 결과 세 경우 모두 뇌의 내측중심옆소엽 부분이 활성화됐지만, 구체적인 부위는 조금씩 달랐다. 음핵의 경우 복외측시상이 강하게 활성화했고 자궁외부는 그 조금 아래, 질은 그보다 약간 더 아래 지역이었다. 코미사룩 교수는 “기본적으로 같은 부위가 활성화됐고, 미세한 차이는 신경 전달 경로가 다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세 기관은 뇌에 전달하는 신경회로가 모두 다르다.

일부 여성(3명)은 비교를 위해 실험한 유두 역시 성기와거의 비슷한 영역이 활성화됐다. 이는 꼭 성기를 거치지 않더라도 오르가슴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많은 여성들이 실제로 경험했다고 보고한 내용과 일치하는 결과”라며 “원인으로는 옥시토신 등 호르몬에 의한 간접 활성화 가능성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히고 있다. 코미사룩 교수는 “신경 손상으로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여성에게 새로운 해결책을 제공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성 의학 연구자 배리 코미사룩 미국 럿거스대 심리학과 교수. 성과 신경 손상, 통증과 치료에 대한 연구를 한 지 40년이 됐다. 현재 럿거스대 대학원 원장을 맡고 있다.]

킨제이 보고서 틀렸나

코미사룩 교수는 여러모로 20세기에 활동한 미국의 성의학자 알프레드 킨제이 박사와 비교된다. 킨제이 박사는 수천 명의 미국인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가장 내밀하다고 생각해 왔던 성생활의 구체적인 사례를 인터뷰와 ‘직접관찰’ 방법으로 약 1만 7000여 건 수집하고 연구해 보고서로 발표했다(일명 ‘킨제이 보고서’). 대담한 연구 방법과 규모, 의외로 충격적인 연구 결과 때문에 이 보고서는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 큰 파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구체적인 연구 내용에서는 이번 연구와 다른 부분도 있다.

당시 의학계에서는 여성이 질과 음핵 중 어느 부위에서 오르가슴을 느끼는지가 오랜 논쟁 대상이었다. 이 역시 워낙 내밀한 문제이기 때문에 의사들이 보고한 개별적인 사례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방대한 규모의 사례연구 방식을 신뢰하던 킨제이는 이 논쟁마저 자신의 과감하고 ‘통 큰’ 데이터로 끝장을 내버렸다.

킨제이는 다섯 명의 산부인과 의사들을 통해 약 900명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직접 질과 자궁경부를 자극하는 실험을 하게 하고 그 결과를 수집했다. 그 결과 86%의 여성은 질, 95%의 여성은 자궁경부를 통해서 아무런 자극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질이나 자궁을 통해 감각을 느끼는 일부 경우도 음핵이 간접적으로 자극을 받아서라는 해석이 대세였다. 이는 질과 자궁, 음핵이 뇌의 거의 비슷한 영역을 활성화한다는 코미사룩 교수의 이번 연구와 상반된다. 적어도 뇌과학적으로는 킨제이 박사가 틀릴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꼭 성기를 자극하지 않아도 여성이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는 부분도 킨제이 보고서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약간 다르다. 킨제이는 ‘상상만으로도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특이한 경우’도 소수(2%) 관찰된다고 보고했다. 코미사룩 교수는 ‘영국심리학회지’ 2008년 2월호에 발표한 리뷰논문에서 “꿈을 동반한 수면 상태에서 입술이나 손, 무릎 등을 자극하면 오르가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심지어 환영사지증후군(신체 부위가 절단된 환자가 절단돼 없는 부위에서 느끼는 감각이나 통증)을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새롭게 유두를 통해서도 성기와 동일한 뇌 부위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결과를 냈다.
 

신경손상 환자 치료 기대

어떻게 보면 ‘괴짜’일 수밖에 없는 코미사룩 교수지만 그는 엽기 과학자가 아니다. 정작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가 의학 치료에 활용되길 바라고 있다. 특히 그의 관심사인 신경 손상 환자의 치료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70년대에 처음 연구를 시작한 것도 고통과 재활에 대한 연구였다.

코미사룩 교수팀은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1951년 윌더 펜필드 캐나다 맥길대 신경외과 교수가 완성한 ‘감각 호문쿨루스’의 여성판을 만들었다. 사실상 첫 여성 ‘뇌감각지도’가 완성된 셈이다. 이 지도에 따르면, 적어도 대뇌 피질의 감각 영역을 기준으로 여성 신체의 감각 분포는 남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찌 보면 평범하고 예상 가능한 사실이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의미가 크다. 과거 킨제이의 연구가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증명하지 않았던’ 사실을 밖으로 끄집어 내 성문화를 사회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과 비슷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려면 아직 더 많은 후속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 연구가 ‘사랑’ 등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가 아니라 1차 감각을 담당하는 영역에 대한 연구라는 사실도 지나친 ‘확대해석’을 경계하게 한다.

논문은 “앞으로 자극이 ‘에로틱한 것’일 때와 단순한 것일 때 뇌의 감각령이 각각 어떻게 다르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할 계획”이라는 말로 끝나고 있다. 비아그라가 많은 부부를 행복하게 한 것처럼 그의 연구도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한때 심리학이 가장 관심 없어 하는 주제가 사랑과 행복이었던 것처럼, 과학은 인류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에 너무 무관심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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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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