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IST가 세계 최고 수준의 광융합기술을 보유하기까지는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 그 중 노영철 미세광학 연구실장의 역할이 컸다. 고등광기술연구소가 자리 잡는 데 필요한 연구실 설치, 연구동 건설, 연구개발 과제 기획 등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 했다. 연구소 곳곳에 노 실장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앞서 말한 펨토초레이저 가공시스템 구축에도 참여해 큰 역할을 했다. 2007년 공로를 인정받아 당시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➊ 직접 원하는 미세가공을 하기 위해 레이저를 설계해 만들기도 한다.
➋ 연구원이 가공한 물질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화약도 가공하는 펨토초레이저
노 실장이 이끄는 미세광학 연구실에서는 펨토초레이저를 이용해 다양한 초미세 레이저 가공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펨토초레이저는 수백 nm(나노미터, 1nm = 10-9m) 크기에서 수 μm(마이크로미터, 1μm = 10-6m) 크기의 매우 정밀한 가공이 가능해 기존의 가공 기술로는 다루기 힘든 유리, 세라믹, 폴리머 같은 물질을 가공한다. 노 실장은 펨토초레이저의 장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레이저의 펄스폭이 길어지면 열에 의해 가공물의 주변부가 변합니다. 하지만 펄스폭이 아주 짧은 펨토초레이저로 가공하면 열에 의해 재질과 구조가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있어 정밀하고 미세한 가공이 가능합니다. 폭발하기 쉬운 화약을 가공할 수 있을 정도로 열적 손상이 없습니다.”
연구실에서는 산업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레이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광통신에 사용하는 광섬유를 미세 가공한 소자, LCD, 휘는 디스플레이 패널, 특수 포장 필름 등 다양한 제품을 가공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기업체의 의뢰를 받아 제품을 상용화하는 일을 돕기도 한다.
노 실장이 소개한 상용화된 기술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비닐 가공이었다. 한 중견 포장 업체와 함께 농산물 포장용 비닐을 개발했다. 이 비닐로 농산물을 포장하면 유통기한이 늘어난다. 농산물은 일반 공산품과 달리 수확 뒤에도 호흡을 계속한다. 호흡을 하면 바로 시드는 것을 방지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상품성이 떨어져 유통기한이 줄어든다. 농산물을 오래 저장하기 위해선 농산물의 호흡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업체는 미세광학연구실에 산소 투과율을 조절할 수 있는 비닐을 만들 수 있는지 의뢰했다.
“펨토초레이저로 아주 얇은 비닐도 가공할 수 있습니다. 비닐은 열을 받으면 우그러지기 때문에 가공하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펨토초레이저로 가공해 손상 없이 새로운 비닐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실은 레이저의 이런 특성을 이용해 비닐에 손상을 주지 않으며 산소 투과율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비닐에 구멍을 뚫는 대신 보이지 않는 작은 홈을 여럿 낸 것. 구멍은 없지만 홈이 난 부분은 비닐이 얇아져 적당하게 공기가 통과한다. 홈의 두께와 개수에 따라 공기투과율을 조절할 수 있어 농산물을 신선하게 오래 저장할 수 있다.

[➊ 연구실에서 사용하는 펨토초레이저. 수백 nm에서 수 μm 크기의 매우 정밀한 가공을 할 수 있다.
➋ 노영철 연구실장(왼쪽)과 연구원이 레이저 가공 과정을 살피고 있다.]
제품 개발에서 인력 양성까지
연구실은 펨토초레이저로 LCD와 PDP 같은 디스플레이의 투명전극을 빠르고 대량으로 가공하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디스플레이 소자에는 전류를 빛으로 바꾸는 전극이 있어야 한다. 금속으로 된 전극을 사용하면 빛의 투과율이 떨어져 효율이 떨어진다. 그래서 빛을 통과시키는 투명한 전극이 필요하다. 현재 널리 사용하는 투명전극은 산화인듐주석(ITO)인데, 지금까지 개발된 재료 중에서 가장 투명하며 전기가 잘 통한다. ITO를 가공할 때 펨토초레이저를 사용하면 유리에 손상을 주지 않고 매우 정밀하게 가공할 수 있다.
“과거에도 펨토초레이저를 사용한 ITO 가공이 있었지만, 가공 속도가 느렸습니다. 우리는 고출력, 고반복률을 가진 스캐너 가공 시스템을 개발해 고속으로 투명전극을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연구실에서는 하지정맥류를 치료하는 의료용 광섬유를 개선하는 가공기술도 개발했다. 레이저를 이용한 하지정맥류 치료는 현재도 널리 시술하고 있다. 광섬유를 단 주사바늘을 혈관에 넣어 하지정맥류가 발생한 부위를 수축시킨다. 이전에는 레이저가 한 방향으로만 나오게끔 광섬유가 가공돼 있어 원하는 부위를 마음껏 치료하기가 힘들었다. 연구실은 모든 방향으로 레이저가 나가게끔 광섬유의 끝단을 미세 가공했다.
“레이저를 전달하는 광섬유의 코어가 6μm에 불과해 아주 미세한 가공이 필요합니다. 임상에 준하는 실험에 성공해 논문을 학회에서 발표했습니다. 의료기기 업체와 기술이전 계약도 마쳤습니다.”
미세광학 연구실은 레이저 가공 기술을 실제 제품으로 연결하는 최전선에 있는 만큼 다양한 레이저 가공 기술을 배울 수 있다. GIST의 학생뿐만 아니라 인근의 관련 학과 학생들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접하기 힘든 고가의 장비를 경험하고, 이를 이용해 새로운 산업을 창출해 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이 레이저 가공 기술을 배워 취업에 성공했을 때 많은 보람을 느낍니다. 좋은 인력을 배출해 광응용산업의 발전을 돕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