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바다가 더워지고 있다. 특히 제주도를 중심으로 수온이 급격히 오르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에서는 1968년부터 2009년까지 한반도 주변해역의 연평균 수온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우리 바다는 40년 동안 여름에 0.9℃, 겨울에 1.35℃나 더워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매년 0.0259℃ 씩 증가한 것이다. 장대수 국립수산과학원 아열대수산연구센터 소장은 “특히 해수면으로부터 50m 깊이인 바닷물 온도가 많이 상승했으며,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는 연평균 수온이 1.14℃나 올랐다”며 “2050년쯤에는 제주도 주변이 완벽한 아열대해역이 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제주 바다로 피서 온 열대어
대표적인 아열대 바다는 유럽 지중해와 호주 퀸즐랜드 케언스의 바다를 꼽을 수 있다. 바닷물은 옥빛을 띠며 형형색색 화려한 비늘 옷을 입은 물고기들이 다니고, 바닷속에는 보석을 깎아 놓은 듯 멋들어진 산호와 너울너울 춤을 추는 말미잘이 무리를 이룬다. 정말 40년 뒤에 우리나라 남해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
지난해 6월 제주시 한경면에서는 노랗고 뚱뚱한 몸에 커다란 검은 반점들이 박혀 있는 물고기가 정치망에 잡혔다. 인도양과 태평양 열대지역, 아프리카에 사는 꺼끌복이었다. 그 다음달 서귀포시 안덕면에서는 타이완과 필리핀에 사는 샛노랗고 납작한 꼬리줄나비고기가 자망어선에 걸렸다. 전에는 우리나라 바다에 나타나지 않았던 종들이다.
장대수 소장은 “2~3년 전부터 제주도에 나타나는 아열대성 어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며 그 이유로 “남쪽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대마 난류의 영향”을 꼽았다. 우리나라 연안을 포함한 북서태평양 어장은 전 세계 어획량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한 어장이다. 그중에서도 제주도와 동중국해 부근은 대마 난류가 흘러 수산자원이 풍부하다. 물고기들이 겨울을 나거나 알을 낳기 위해 찾아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남쪽에서 올라오는 쿠로시오 해류와 거기서 갈라진 대마 난류는 각각 동해와 서해로 흘러 들어간다. 이곳에서 살고 있는 표층어류(해수면 근처에서 사는 어류)는 기후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들은 해류를 따라 먼 거리를 이동하는데, 고향이 점점 더워지면서 대마 난류를 타고 ‘이제는 살 만해진’ 제주 바다로 흘러 들어오기도 한다.
한류성 어류는 이사 가고 해초는 살 곳 빼앗겨
아열대수산연구센터 연구원들은 제주에 있는 바다어장 100여 개 중 20여 개를 골랐다. 이곳에서 아열대화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생태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관찰했다. 그들은 다이빙복을 입고 바다에 직접 뛰어들기도 했다. 그 결과 미역과 우뭇가사리, 감태 등 해초가 풍부했던 바다 밑이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산호더미로 덮이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미 우리 바다는 1990년대 초부터 해조류가 사라지는 현상(갯녹음)에 몸살을 앓아왔다. 갯녹음이 일어나는 원인은 학자마다 분분한데, 대개 수온 상승과 인위적인 바다 개발, 성게 같은 초식동물의 증가를 들고 있다. 갯녹음은 제주에서 처음 발생해 1996년 이후에는 동해안까지 퍼졌다. 아직 갯녹음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열대화가 진행돼 바다는 점점 사막처럼 변하고 있다. 바닷속을 삭막하게 만드는 장본인은 돌산호(거품돌산호, 그물코돌산호)다. 구준호 박사는 “제주 바다의 60%를 돌산호가 차지하고 있다”며 “바다 바닥에 들러붙어 빠르게 번식해 해조류가 살 공간을 빼앗아버렸다”고 말했다. 제주에서만 살던 해조류인 감태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기존에 살고 있던 동물들이 살 곳과 먹을거리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또 돌산호는 전복이나 소라, 굴처럼 바위에 붙어서 사는 동물들에게도 발 디딜 틈을 주지 않는다. 장대수 소장은 “이곳 특산물인 오분자기가 점점 사라지는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몇 년 전부터 제주 바다에 나타난 분홍멍게와 석회조류, 호리병말미잘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식품으로도, 관광자원으로도 그다지 쓸모가 없다.
하지만 장 소장은 “이들을 해로운 생물만으로는 볼 수는 없다”며 “아열대성 기후인 나라에서는 오히려 돌산호를 보호종으로 지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조류가 적고 산호가 빽빽하게 숲을 이루는 아열대, 열대 바다에서는 익숙한 생물이지만 우리 바다에서는 생소한 것뿐이다. 제법 귀엽게 생긴 호리병말미잘은 흰동가리돔이나 청소새우에게 살 곳이 되기도 한다. 또 물속을 떠다니는 물고기 시체를 먹어치우는 청소부다. 그는 “이런 생물들이 제주 바다 전체에 퍼지는 현상을 생태계 교란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환경이 변하는 것으로 덤덤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등어 2~3배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아열대화가 진행되면 대구, 명태 같은 한류성 어류의 서식지가 점점 북쪽으로 올라가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양이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도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절망만 할 필요는 없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기쁜(?) 소식이 있기 때문이다. 고등어처럼 따뜻한 물에 사는 난류성 어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고등어는 해수면 근처에 살아(부어류) 기후변화에 아주 민감하다.
고등어와 전갱이, 멸치, 살오징어 같은 난류성 어류는 동중국해에서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봄이 되면 대마 난류와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각각 황해와 동해, 일본 동쪽 태평양으로 올라간다. 가을이 되어 다시 추워지면 겨울을 나는 동중국해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동중국해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바닷물이 따뜻해 한반도 주변에 머물기 때문이다. 고등어는 과거에는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더 많이 잡혔지만 현재는 일본보다 동중국해와 황해, 동해에서 더 많이 잡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2060년쯤에는 고등어 어장이 동해 쪽으로 이동하며 현재보다 2~3배나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2100년에는 강원도와 울릉도의 중간 수역을 중심으로 동해 전역에 거대한 고등어 어장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징어는 제주와 일본 오키나와 사이에 있는 해역에서 태어나 동해에서 자란 뒤 알을 낳기 위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아열대화가 진행되어도 오징어의 수는 많이 줄지 않을 전망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오징어가 점점 맛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울릉도 오징어가 맛있었던 이유는 산란기 직전에 잡혀 쫄깃쫄깃하기 때문이다. 장대수 소장은 “20~30년 뒤에는 오징어로 유명한 지역이 울릉도가 아닌 원산쯤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제주 터줏대감들이 육지 쪽으로 이사 오는 것도 아열대화가 진행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전복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크기가 작고 호흡공이 2~3개 더 많은(전복은 4개) 오분자기는 원래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산물이었다. 하지만 현재 주산지는 거문도다. 황당하게도 많은 제주도 여행객들이 오분자기를 원하는 바람에, 거문도에서 제주도로 배송해야 하는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나고 있다. 또 다른 제주 터줏대감인 자리돔은 현재 남해 연안과 동해안 연안, 독도와 울릉도까지 진출했다. 전문가들은 자리돔이 생활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조성돼 미래에는 우리나라 전 바다에 분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제주에 살던 소라도 경북 일원과 독도, 울릉도까지 북상했다.
그렇다면 유명한 제주 특산물인 옥돔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옥돔은 고등어, 자리돔과 달리 깊은 바다에서 살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대한 반응이 느린 편이다. 그래서 아열대가 되더라도 제주 바다를 지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자원 풍부해지는 ‘아열대 바다’ 활용해야
전문가들은 아열대 바다를 최대한 활용하려면 우리 바다에 어떤 수산자원이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대수 소장은 “새로 나타난 어류 가운데 특히 오키나와 바다에서 제주로 이사 온 금강바리, 구갈돔, 쥐돔 등에 주목하고 있다”며 “새로 나타나거나 갑자기 증가하고 있는 수산자원을 관광자원이나 식용자원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드러운 산호들은 거품돌산호, 그물코돌산호 같은 딱딱한 산호와 달리 해조류와 공존할 수 있으며 생김새가 아름다워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 오키나와 바다에 살던 아열대어들이 대량으로 한국 바다로 이사오고 있다. 이들은 눈을 현혹할 만큼 화려하고 독특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전망이다. 장 소장은 “현재 파랑돔과 노랑가시돔, 꼬리줄나비고기, 세동가리돔처럼 관상용으로 훌륭한 어류가 100종 이상 제주 바다와 남해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미래 식탁을 장식할 특별 해산물 요리감도 있다. 중국에만 살던 중국굴은 2~3년 전부터 제주 바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에서는 각종 요리에 이 굴을 넣어 맛과 향을 더하고 있다. 이외에도 아열대 수산자원은 의약품과 공업용 소재에 이르기까지 활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해외에서는 이미 변화하는 바다에 적응하기 위한 연구를 오래 전에 시작했다. 가까운 오키나와가 좋은 예다. 원래 아열대였던 오키나와 바다는 점점 열대로 변하고 있다. 일본 과학자들은 1~2년 전부터 오키나와대와 류쿠대의 아열대연구소들의 명칭을 ‘열대연구소’로 바꾸고 일찌감치 열대 바다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아열대수산연구센터 장대수 소장은 “기후변화를 극적인 위기로 겁낼 것이 아니라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특히 제주도는 아열대화의 최전선에 있기 때문에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