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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 전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 씨가 경남 칠곡군 왜관읍 캐럴 기지에 고엽제를 묻었다고 증언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고엽제에는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물론 자녀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무서운 독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 1파트에서는 고엽제의 역사와 화학적 특징,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소개한다. 2파트에서는 캐럴 기지의 고엽제 매몰 사건과 이후 영향을 정리했다.

1 고엽제, 끝나지 않는 전쟁의 아픔

Q1 고엽제로 어떤 피해가 있었나?
고엽제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사용한 화학물질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베트남의 중서부 지역은 빼곡한 밀림지대다. 북베트남군은 밀림에 숨어 공격을 피하고 물자를 수송했으며, 후방으로 몰래 침투해 미군과 남베트남군을 공격했다. 미군은 밀림을 파괴하기 위해 1962년부터 작전명 ‘랜치 핸드’라는 이름으로 제초제를 살포했다.

미군은 10여 종의 제초제를 살포했다. 군인들은 제초제 용기의 띠 색깔에 따라 ‘에이전트 오렌지’, ‘에이전트 블루’, ‘에이전트 화이트’ 등으로 불렀다. 이 중 우리가 고엽제라고 부르는 에이전트 오렌지가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밀림을 파괴했다. 고엽제가 살포된 지 2~3일이 지나면 숲 전체가 붉게 물들고, 나뭇잎은 모두 떨어졌다. 3~4주가 지나면 거의 모든 나무가 죽었다. 석 달이 지나도 고엽제가 뿌린 지역에서는 나무가 자라지 않았다.


[1969년 7월 미군 UH-1D 이로쿼이 헬리콥터가 베트남 메콩강의 삼각주에 고엽제를 뿌리고 있다.]



밀림이 사라지자 미군의 사상자 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효과를 톡톡히 본 미국은 고엽제를 비롯한 제초제를 베트남 전역에 모두 4300만L나 살포했다.

그러던 미군은 1970년 고엽제의 사용을 중단했고, 1971년에는 모든 제초제 사용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고엽제가 나무만 고사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도 위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민간인과 고엽제를 운반하고 살포한 미군까지 고엽제로 인해 고통 받았다. 물론 참전한 한국군도 예외가 아니었다.

1971년 제초제의 살포가 금지된 이유는 고엽제에 노출된 베트남 여성과 동물이 유산하거나 사산했기 때문이었다.

고엽제의 한 성분인 2,4,5-T가 태아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동물 실험도 이를 뒷받침했다. 또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돌아간 미군을 비롯한 여러 참전국 병사들이 암, 신경증, 소화 장애, 피부병, 호흡기 장애에 걸려 고통 받았다.

베트남 외무부는 2008년까지 480만 명의 베트남인이 제초제에 노출돼 40만 명의 사망자와 장애인이 나왔고, 50만명의 아이들이 기형으로 태어났다고 밝혔다. 한국에는 베트남전 참전자와 국내 피해자를 합해 공식적으로 12만 여 명이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고, 76명의 2세 피해자가 있다.

Q2 고엽제의 독성은 얼마나 되나?

고엽제의 독성은 다이옥신 때문에 발생한다. 고엽제는 제초제 2,4,5-T와 2,4-D를 반씩 섞어 제조한다. 두 화합물도 발암 물질이지만 2,4,5-T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인 다이옥신(2,3,7,8-TCDD)은 독성이 훨씬 크다. 2,4,5-T 10만 개를 만드는 동안 다이옥신은 6개 생길 뿐이지만 독성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다이옥신 1g이면 몸무게 50kg인 사람 2만 명을 죽일 수 있다. 가장 강한 독성을 지녔다고 알려진 청산가리보다 무려 1000배나 강하다. 다이옥신은 고리가 세 개인 방향족 물질에 여러 개의 염소가 붙어 있는 화합물이다. 다이옥신은 모두 210여 개의 이성질체가 있는데, 결합한 염소의 수와 위치에 따라 독성이 결정된다. 2,3,7,8 위치에 염소가 많이 붙어 있을수록 독한데, 고엽제에 있는 2,3,7,8-TCDD는 다이옥신 중에서 가장 독하다.

다이옥신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화학적인 합성이나 쓰레기 소각, 펄프 제조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긴다. 다이옥신은 물에 거의 녹지 않고 열화학적으로 안정해 자연계에 나오면 잘 분해되지 않는다. 인체에도 오랫동안 머문다. 다이옥신은 지방에 잘 녹기 때문에 생물의 지방 조직에 축적되면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흡수된 다이옥신이 인체에서 반으로 줄어들려면 5~10년이 걸린다.
 

Q3 고엽제는 인체에 어떻게 작용하나

다이옥신은 대표적 환경호르몬(내분비계 교란물질)이다. 환경호르몬은 인간이 만든 화학물질이 생물에 흡수돼 마치 호르몬처럼 작용한다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호르몬은 생체의 특정 세포에서 만들어져 분비된다. 호르몬은 멀리 떨어진 표적 세포까지 혈액을 타고 가 생화학적 효과를 낸다. 어떤 호르몬은 하나의 표적 장기에만 작용하고, 또 다른 호르몬은 여러 세포에 작용한다. 장기마다 호르몬과 결합하는 특정한 호르몬 수용체가 있어 호르몬-수용체라는 복합체를 만들어 작용한다.



다이옥신도 호르몬처럼 작용하지만, 실제로는 인체의 신호를 교란시켜 병들게 한다. 동물 실험을 통해 다이옥신은 동물 몸 안에 있는 Ah수용체와 결합해 TCDD-Ah수용체 복합체가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복합체는 DNA와 결합해 유전자 발현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세포의 기능까지 바꾼다. 이 밖에도 TCDD-Ah수용체 복합체는 임의대로 성장을 조절하거나, 인체의 내분비계와 세포의 활동에 영향을 주어 다양한 질병을 일으킨다.

임종한 인하대 산업의학과 교수는 “인체에서 다이옥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강한 독이 우려돼 인체 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이옥신으로 암살될 뻔한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의 전 대통령처럼 다이옥신에만 노출된 특이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 여러 위험 요소와 함께 노출돼 다이옥신만이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이옥신이 일으키는 병 과학자들은 동물 실험과 다이옥신 피해자 사례를 통해 다이옥신이 일으키는 병을 알아냈다. 다이옥신은 거의 모든 장기에 영향을 미쳐 많은 병을 일으킨다. 대부분의 병이 천천히 발병해 죽을 때까지 고통받는다]


[유셴코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의 다이옥신 중독 전과 후의 모습. 염소성 여드름으로 인해 얼굴이 완전히 달라졌다.]

고엽제는 당사자뿐 아니라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 의료구호활동을 하는 의료봉사단체 ‘메디피스’의 전인표 전문위원은 “아직 고엽제가 2세의 몸에 어떤 경로로 피해를 주는지 알려져 있지 않아 미국과 한국에서는 피해가 제한적으로 인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베트남에 참전한 여군의 자녀에게 척추이분증만이 나타날 경우만 인정하고 있다. 한국은 아버지가 고엽제후유증 환자이고, 자녀도 척추이분증, 말초신경질환을 겪는 극히 제한적 경우에만 2세 피해를 인정하고 있다.

임종한 교수는 “베트남에서 발견된 많은 사례를 연구한 결과 고엽제가 2세들에게 다양한 피해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인제대 연구팀이 고엽제가 2세 피해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연구팀이 2000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고엽제 노출 수준이 높을수록 사산 경험이 높았다. 조사대상자의 8.2%가 자녀에게서 선천성 기형이 나타났으며, 49.5%가 자녀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2 칠곡, 고엽제에서 안전한가?

Q1  정말 캐럴 기지에 고엽제가 매립됐을까?

지난 5월 13일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 씨는 자신이 경남 칠곡군 캐럴 기지에서 근무하던 당시 55갤론(208L)짜리 드럼통 250개를 묻었다고 미국 지역 방송에서 증언했다. 이어 1978년에 화학물질이 든 드럼통을 매몰했다는 미 육군 공병단의 연구보고서가 발견됐다. 이 보고서에는 파묻힌 드럼통과 그 주변 40~60t가량의 흙을 1979~1980년 이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 처리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여기에 2004년 삼성물산이 주한미군의 의뢰를 받아 캐럴 기지 내 고엽제 매립 의혹 지역에 대해 시추공 13개와 지하투과 레이더로 조사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고엽제 오염 의혹이 급속히 커졌다.

같은 달 26일 경기 부천시 머서 기지에서 근무한 래리 앤더슨 씨도 하우스 씨와 비슷한 증언을 했다. 1968년 직접 고엽제를 기지 막사에
서 뿌렸으며, 1977년 여름 미 육군 2사단 사령부로부터 고엽제를 묻을 것을 명령받았다는 것이다. 이어 인천 부평의 마켓 기지, 강원 춘천의 페이지 기지에도 고엽제가 매몰됐다는 제보가 이어졌다.

미군은 5월 23일 첫 현장 조사에서 고엽제 매몰사실을 부인했다. 앞서 말한 공병대 보고서에서 살충제와 제초제, 솔벤트 등 오염 물질을 매몰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고엽제는 없었다고 말한 것이다.



미국의 고엽제 전문가 앨빈 영도 미군의 의견을 뒷받침했다. 미국의 고엽제 전문가인 앨빈 영 박 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68년
비무장지대(DMZ)에 에이전트 오렌지를 비롯한 제초제가 보급됐으나 물량이 부족했다”며 “기록에 따르면 DMZ에 보급된 제초제 물량이 모두 사용됐고, 더 필요했지만 추가로 보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제초제가 부족한 마당에 캐럴 기지로 돌아올 고엽제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주한미군고엽제국민대책회의’는 2004년 삼성물산의 기지 내 조사에서 13곳 중 1곳에서 검출된 다이옥신 농도가 1700pg-TEQ/g로 일본 기준치보다 1.7배 높아 이미 다이옥신이 매몰된 것이 증명됐다고 주장했다. 양쪽의 주장이 충돌하고 있는 가운데, 매몰된 고엽제의 흔적을 찾는 것이 관건이 됐다.




[각국의 다이옥신 환경기준 일본의 다이옥신의 대기·수질·토양의 환경기준은 각각 0.6pg-TEQ/㎥, 1pg-TEQ/L, 1000pg-TEQ/g이하다. pg은 1조분의 1g이다. TEQ는 독성등가치를 말한다. 여러가지 다이옥신 중 독성이 가장 강한 2,3,7,8-TCDD를 1로 놓고 나머지를 환산해 독성을 계산한다. 수질오염의 경우 물 1L에 2,3,7,8-TCDD 1pg만 있어도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미국은 음용수의 다이옥신 환경기준을 30pg/L이하로 정했다. 한국은 대기 중 다이옥신 환경기준이 0.6pg-TEQ/㎥이다. 하지만 아직 토양과 수질 환경 기준을 규정하지 않아 이번 사건에선 미국과 일본의 기준치를 이용했다.]

Q2 매몰한 고엽제 흔적 찾을 수 있을까

미국과 한국 정부도 6월 초, 한·미 공동조사단을 꾸려 매몰된 고엽제의 흔적을 찾기 위해 기지 안팎의 수질과 토양을 조사하고 있다. 증언에 따른 고엽제 매몰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기지 내부에 묻혔다는 드럼통을 자력탐지레이더로 찾고 있다.

고엽제에 있는 다이옥신은 안정한 물질이어서 아주 천천히 분해된다. 여러 환경 중 지표면에서 가장 빨리 분해되는데, 다이옥신이 1년 정도 햇빛을 받으면 거의 분해된다. 하지만 땅속에 있다면 문제가 다르다. 다이옥신의 반감기는 땅속에서 수십 년이기 때문이다. 땅속에 묻힌 다이옥신은 앞에 말했듯이 물에 녹지 않아 지하수로 흘러 들어가지도 않는다.

장윤석 포스텍 환경공학부 교수는 “드럼통이 깨지면서 다이옥신이 흘러나와 물에 녹았다 치더라도 주변 토양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높을 뿐, 먼 지역의 지하수가 오염되는 일은 없다”며 “다이옥신이 주변 토양만 오염시키고 멀리 퍼지지 않아 미군이 땅에 묻어 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고엽제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오염원의 위치와 지하수의 흐름을 파악하지 않은 채 토양 검사와 수질 검사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주영수 한림대 의대 교수도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주 교수는 베트남에서 미군이 고엽제를 저장하고 배합했던 다낭 공군기지 주변의 다이옥신 오염 사례를 분석했다. 그는 “임의로 조사할 것이 아니라 지하수의 경로와 과거 저장소에 연결된 하수관로, 하수관로를 따라 이동할 수 있는 주변 지역을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주민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음용수를 먼저 조사해 주민들을 안심시킨 뒤 고엽제를 중장기적으로 찾아야 하는데, 앞뒤가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6월 2일 한미공동조사단이 지표투과레이더로 캐럴 기지 땅속을 조사하고 있다. 10m 정도 깊이에 있는 묻혀 있는 물질이나 굴착의 흔적을 탐지할 수 있다.]


[5월 31일 한미공동조사단이 캐럴 기지 인근 낙동강에서 물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Q3 캐럴 기지 주변은 다이옥신에서 안전할까?

국립환경과학원은 칠곡군 주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5월 25일 기지 주변 토양의 다이옥신을 측정했다. 그리고 그간 측정했던 지하수 수질 검사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기지 주변 칠곡군 왜관읍 토양에서 다이옥신은 0.0325~0.0927ppb가 검출됐다. 또, 2008년과 2009년에 조사한 지하수에서는 한 지점에서만 기준치 이내로 검출됐다. 이 자료를 토대로 국립환경과학원은 캐럴기지 주변 지역의 다이옥신 오염이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발표했다.

한미공동조사단도 6월 16일 캐럴 기지 주변 지하수에서 고엽제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지하수와 함께 수질검사한 하천수 6곳 중 동정천 하류 등 3곳에서 극미량(0.001~0.010pg-TEQ/L)의 다이옥신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공동조사단은 “미국에서 먹는 물 기준으로 3000분의1∼3만분의 1 수준이며, 왜관 지역 기존 조사치 평균의 7분의 1~70분의 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 발표에 대해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은 “이 조사 발표는 물에 녹지 않아 멀리 퍼지지 않는 다이옥신의 성질을 생각하지 않은 조사”라고 말하며 “극미량이라도 발견됐다는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이옥신이 어떤 경로로 농축됐는지를 적극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도청으로부터 의뢰받아 캐럴 기지 인근 지하수를 검사한 장 교수는 “음용수 기준으로 검출 장비의 감도를 최대한 높여 분석했을 때 극미량의 다이옥신 흔적이 보였다”며 “이 정도의 양이 인체에 해롭진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엽제가 매립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캐럴 기지 땅속에서 고엽제가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그리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엽제는 물에 잘 안 녹고 토양에 흡착되기 때문에 고엽제에 오염된 토양을 잘 걷어내 처리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주민들의 불안감을 줄일 수 있도록 정부와 과학자가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종한 인하대 의대 교수는 드럼통이 발견되지 않더라도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혹시라도 다이옥신이 스며들었을지 모를 지하수와 하천의 흐름을 파악해 사람들과 얼마나 접촉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주민들의 혈중 다이옥신 농도를 파악해 주민 피해를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여 있을 주변 피해를 찾고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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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김종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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