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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쥐의 일주리듬에 미치는 빛의 영향 확인



이 연재의 소재를 찾다보면 어떤 논문을 ‘오리지널 논문’으로 해야 할지 망설여지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발견에 담긴 심오한 의미를 모른 채 현상만을 보고한 논문으로 해야 할까, 실험 결과는 부족하지만 이를 토대로 훗날 사실로 밝혀진 심오한 예측을 한 논문으로 해야 할까, 아니면 오리지널 아이디어를 내지는 않았지만 결정적인 사실을 처음 실험으로 증명한 논문으로 해야 할까.

이번에 다루는 제3의 광수용세포 발견도 이런 경우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광수용세포가 2종류라고 배웠다. 빛의 세기를 감지하는 막대세포와 빛의 색깔을 감지하는 원뿔세포가 그것이다. 이들 세포가 보내는 빛의 정보를 뇌가 해석해 우리는 외부 세계를 ‘본다’.

그러나 우리 눈에는 제3의 광수용세포가 있다. 우리가 일주리듬, 즉 태양이 뜨고 짐에 따라 하루 24시간 주기로 리듬을 갖고 있는 것도 이 세포 때문이다. 또 빛의 세기에 따라 홍채의 수축이 조절되는 것도 이 세포가 관여한다.

영국 옥스퍼드대 신경과학자 러셀 포스터 교수는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근무하던 1991년 막대세포와 원뿔세포가 거의 없어 눈먼 생쥐가 여전히 빛의 신호에 따라 일주리듬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토대로 포스터 교수는 포유류의 눈에는 제3의 광수용세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가정했다.

당시 주류학계는 포유류에서 제3의 광수용세포가 존재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무시했지만 포스터 교수는 연구를 계속해 야심찬 과학자들이 광수용세포 사냥에 뛰어들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결정적인 발견의 영광은 다른 과학자에게 돌아갔지만.

주류 학계 반발 산 이단 학설
1980년 영국 브리스톨대 브리언 폴렛 교수의 실험실에서 대학원생활을 한 포스터 교수는 동물에서 빛을 감지하는 세포를 주제로 다양한 연구를 했다. 어류의 피부에서 빛을 감지하는 색소세포를 찾아내 발표하기도 했고 새의 뇌에서 빛을 감지해 일주리듬을 조절하는 광수용세포를 찾아내기도 했다.

어류와 조류에서 막대세포와 원뿔세포가 아닌 제3의 광수용세포가 존재한다면 포유동물에서도 그런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을까. 1988년 미국 버지니아대에 자리를 잡은 포스터 교수는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rd라는 돌연변이 쥐를 갖고 실험을 했다. rd쥐는 광수용세포에서 발현되는 한 효소에 문제가 생겨 광수용세포가 퇴화하는 돌연변이체다. 따라서 안구는 제대로 형성되지만 뒤쪽 망막에 막대세포나 원
뿔세포가 거의 없어 앞을 보지 못한다.

포스터 교수는 rd쥐를 대상으로 하루에 일정 시간 빛을 쪼여주고 일정 시간은 어둡게 한 조건을 만들어줬다. 쥐는 야행성이므로 밝은 때는 얌전히 있고 깜깜하면 활발히 움직인다. 실험결과 비교를 위해 같은 조건에 둔 정상 쥐와 눈먼 쥐 모두 이런 일주리듬을 보였다.

포스터 교수는 6일째 날부터 불을 끈 뒤 깜깜한 상태에 뒀다. 빛이 없을 때 생쥐의 일주리듬은 24시간보다 약간 짧기 때문에 활동을 개시하는 시간이 조금씩 빨라진다. 그런데 16일째 되는 날 잠깐(15분) 빛을 쪼여줬다. 그 결과 정상쥐와 rd쥐 모두 다음날 활동을 개시하는 시간이 90분가량 늦춰졌다. rd쥐가 빛을 감지한다는 강력한 증거다.

이런 결과를 토대로 포스터 교수는 생쥐의 눈에는 막대세포와 원뿔세포가 아닌 제3의 광수용세포가 존재해 빛을 감지해 일주리듬을 매개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런 세포는 아마도 어류의 몸에 존재하는 광수용세포가 오랜 진화를 거쳐 포유류에서는 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런 놀라운 발견에도 불구하고 포스터 교수의 논문은 ‘비교생리학저널A’라는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는 저널에 실렸다. 그는 1980년대 연구 결과들을 ‘네이처’ 같은 일급저널에 실은 인정받는 과학자였지만 이 논문이 주장하는 ‘이단적인 가설’은 주류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rd쥐에서 원뿔세포가 100% 파괴된 건 아니었기 때문에 남아 있는 소수의 원뿔세포가 빛의 신호를 전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1995년 영국(런던대)으로 돌아온 포스터 교수는 막대세포와 원뿔세포가 완전히 파괴된 돌연변이를 만들어 1991년 실험과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 이 논문은 1999년 주류저널 ‘사이언스’에 실렸다. 이제 관심은 제3의 광수용세포가 존재하느냐 여부에서 누가 먼저 찾느냐로 넘어갔다.





2002년 제3의 광수용세포 발견
한편 포스터 교수 실험실의 대학원생으로 1991년 논문의 공동저자인 이기 프로벤치오 박사는 학위를 마치고 미국 군의관양성의대 마크 롤랙 교수 실험실에 합류했다. 롤랙 교수는 양서류의 위장을 연구하고 있었다. 즉 올챙이의 꼬리에 있는 색소세포는 빛을 받으면 어두워지는데 이는 몸을 숨기는 전략이다.

프로벤치오 박사는 색소세포에서 빛을 감지하는 분자를 추적했고 1998년 마침내 막대세포나 원뿔세포에서 빛을 감지하는 단백질인 옵신과 구조가 비슷한 단백질을 찾아 ‘멜라놉신(melanopsin)’이라고 명명했다. 연구자들은 멜라놉신이 개구리의 다른 조직에도 존재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뇌의 일부와 눈의 홍체, 망막에도 분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막대세포나 원뿔세포에서는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망막의 다른 세포에 존재한다고 추측했다. 즉 포스터 교수의 제3의 광수용세포 가설을 뒷받침하는 결과다.

2000년 프로벤치오 박사는 포유류(생쥐와 사람)의 망막에서도 멜라놉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망막은 3개의 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수정체를 통과한 빛이 처음 지나가는 가장 안쪽에 신경절세포층이 분포하고 그 다음에 내핵층이, 그리고 맨 바깥인 외핵층에 막대세포와 원뿔세포가 분포한다.

빛을 감지한 막대세포와 원뿔세포가 내보낸 신호는 거꾸로 내핵층의 세포를 거쳐 신경절세포로 전달된 뒤 뇌로 이어진다. 그런데 생쥐의 신경절세포 가운데 약 2%에서 멜라놉신이 발견된 것. 이는 이 신경절세포가 제3의 광수용세포임을 시사하는 결과였다.

브라운대 신경과학과 데이비드 베르슨 교수는 망막 신경절세포에 대해 평소 관심이 많았다. 그는 ‘역행운송(retrograde transport)’이라는 신경절을 연구하는 최신 방법을 습득하고 있었다. 역행운송이란 뇌세포의 특정 영역에 형광염료를 넣을 경우 이와 연결된 신경절로 염료가 이동해(빛 신호는 신경절에서 뇌세포로 전달되므로 역행이란 말을 쓴다) 염색한다.

마침 뇌에서 일주리듬을 주관하는 영역인 시각교차상핵(SCN)을 연구하고 있던 베르슨 교수는 포스터 교수와 프로벤치오 박사의 연구 결과를 듣고 자신이 이들의 가설을 입증할 ‘무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시각교차상핵이 있는 시상하부에 형광염료를 넣고 망막을 조사했다. 그 결과 정말 망막 신경절세포 가운데 일부가 형광을 띤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제 남은 건 이들이 빛을 받을 때 내는 신호를 검출하는것. 떨리는 심정으로 빛을 쪼여줬으나 세포는 반응이 없었다. 기대가 낭패감으로 바뀌는 순간 천천히 계기판의 전압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곧 밝혀졌지만 빛을 감지하는 신경절세포는 즉각 반응하는 막대세포나 원뿔세포와는 달리 수초 뒤에 서서히 반응한다. 베르슨 교수는 이 때의 감동을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모든 과학자들이 꿈꿔온 어떤 것으로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고 쓰고 있다.

감광신경절세포(ipRGC)라고 명명된 제3의 광수용세포의 존재가 확인됨에 따라 기존 광수용세포가 고장나 시각을 상실한 사람도 일주리듬을 유지하는 현상이 명쾌히 설명됐다. 추가 연구 결과 ipRGC는 일주리듬뿐 아니라 빛의 양에 따라 홍채의 수축과 이완을 조절하는 데도 관여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또 멜라놉신이 파장이 짧은 파란빛에 반응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480nm(나노미터, 1nm는 10억분의 1m)에서 가장 민감).

ipRGC, 이미지 형성에도 관여하는 듯
포스터 교수는 이들과 공동연구를 하면서 제3의 광수용세포 연구를 계속했다. 그는 2007년 막대세포와 원추세포가 파괴돼 실명이 된 사람을 대상으로 파란빛을 쪼여주는 실험을 하다가 놀라운 발견을 했다. 이들이 “뭔가 번쩍 하는 걸 봤다”고 대답했기 때문. 이는 ipRGC가 감지한 빛정보가 일주리듬에 관여하는 뇌영역뿐 아니라 이미지형성에 관여하는 영역으로도 전달됨을 시사한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새머 해터 교수팀은 지난해 학술지 ‘뉴런’에 발표한 논문에서 포스터 교수팀의 발견을 동물실험으로 입증한 결과를 실었다. 이들은 쥐의 ipRGC에 형광물질을 넣은 뒤 그 경로를 추적했는데 놀랍게도 뇌의 시각처리 영역인 배외측슬상핵과 상구까지 도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쥐는 사람에 비해 신경절세포에서 ipRGC의 비율이 높은데 막대세포와 원뿔세포가 작동하지 않는 쥐를 대상으로 정교한 시각테스트를 한 결과 이 녀석들이 기본적인 시각패턴을 구분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영국 맨체스터대 로버트 루카스 교수팀 역시 포스터 교수의 발견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를 지난해 학술지 ‘플로스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멜라놉신을 만들지 못하는 쥐(따라서 ipRGC가 제기능을 못한다)에서 배외측슬상핵에 있는 뉴런의 절반 정도가 빛자극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ipRGC가 밝기에 관한 정보를 준다고 추측했다.

20년 전 처음 존재의 가능성이 제안됐을 때 ‘헛소리’라는 반응을 들었던 제3의 광수용세포는 9년 전 그 존재가 확인된 뒤에도 여전히 새로운 사실을 드러내며 놀라움을 주고 있다. 아마도 10여 년 뒤 교과서에서는 ipRGC가 막대세포, 원뿔 세포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을까.

2011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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