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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과 슬픔이 공존하는 봄

양창순의 심리학 테라피

환자 중에 봄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봄이 되면 늘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어느 해인가 그녀는 봄에 남자친구와 헤어졌는데, 동시에 부모님이 별거에 들어갔고 할머니마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그때부터였다. 그녀는 봄만 되면 올해는 또 무슨 일이 생길까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정말 봄마다 나쁜 일이 생겼을까. 그녀에게 물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녀가 “그렇지는 않다”고 말했다. 안 좋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는데, 우연히 그 시기가 봄이었을 뿐이었다. 그녀도 그런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봄이 싫다고 말했다. 한 번의 나쁜 기억이 그녀의 삶 전체를 힘들게 만든 것이다.



봄만 되면 이유 없이 아픈 이유



상담 결과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환절기병을 심하게 앓았다. 특히 봄과 가을, 두 차례 환절기 때마다 어김없이 몸살이 나 앓아눕곤 했다.



환절기 병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봄을 타는 증상’보다 더 심한 경우다. 입맛이 없어지거나 주변 정리가 잘 안 되고 마음이 혼란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또 한자리에 가만히 있기 어렵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왠지 모르게 슬프고 우울한 상태가 되고 이유 없이 몸이 아프기도 한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나온다.



봄이 되면 환절기병을 앓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필자의 환자처럼 심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환절기에 감기를 앓고 가벼운 우울증을 경험한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계절은 바뀌는데 우리의 신체는 그만큼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겨울은 사계절 중에 에너지의 파동이 가장 잠잠한 시기다. 예를 들어 나무는 모든 잎과 열매를 떨어뜨리고 조용히 겨울을 견딘다. 곰 같은 짐승은 아예 겨울잠을 잔다. 인간 역시 겨울이면 추위를 막기 위해 움직임을 최소로 줄인다. 에너지의 파동은 그만큼 줄어들고 자연도 웬만해선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일종의 휴지기인 셈이다.


 
 


하지만 봄이 되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삼라만상이 변화를 위해 깨어난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바람도 한결 부드러워진다. 어린 시절에 가장 먼저 ‘아, 봄이 오네’하고 느끼게 해준 것도 언 땅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온 천지에 아지랑이가 피어나면 어린 마음에도 문득 형체를 알 수 없는 아득한 그리움 같은 것이 사무치곤 한다. 나중에야 그런 감정에 ‘시원(始原)을 향한 노스탤지어’란 이름이 붙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맛있게 먹고 재밌게 노는 생활의 지혜



말 그대로 봄은 새로운 시작의 계절이다. 자연의 모든 것이 새 생명을 준비하느라 힘차게 용트림한다. 사방에서는 꽃망울이 터져 나오고 새순도 돋아난다. 만일 우리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꽤나 시끄럽고 어수선할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일종의 산고를 겪는 셈인데 어찌 조용할 수 있을까.



물론 우리는 그 소리를 직접 듣지는 못한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게 분명하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몸 어딘가가 근질거리며 생동하는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유명한 시인 T.S.엘리어트는 봄을 시 ‘황무지’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봄이 되면 왠지 모르게 슬프고 무기력해지는 사람이 많다. 이럴 땐 계절의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의 말처럼 봄은 죽은 것만 같은 땅에서 기어코 꽃이 피어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계절이다. 그래서일까. 봄이면 함께 하기 어려운 두 감정이 공존하곤 한다. 설렘과 애달픔이 기묘하게 뒤섞인 느낌이랄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그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런 상태를 좀 더 민감하게 느끼는 경우, 앞서 말한 것처럼 환절기병을 앓게 된다. 이 세상 대부분의 문제는 내가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서 일어난다. 환절기병도 예외가 아니다. 일단은 환절기의 변화를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계절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변화는 환절기병의 원인이다. 좋든 싫든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인 것이다. 봄이 잔인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 변화로 인해 우리 삶은 좀 더 풍요로워진다.



가능한 한, 좋은 제철 음식을 먹고 잘 자고 잘 쉬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한 마디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다. 평소 하고 싶었지만 망설이고 있던 취미생활이 있다면 시작해보자. 등산이나 자전거타기처럼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한다면 생활은 놀라울 정도로 달라질 것이다.



반대로 조용히 앉아 독서를 하는 것도 좋다. 친구 중 한 명은 봄을 맞아 동네 도서관을 정기적으로 찾기 시작했는데, 책장마다 가득 꽂혀 있는 책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봄은 오히려 고마운 계절인 셈이다.



필자도 요즘 강아지와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봄기운 가득한 공원을 도는 기분이 썩 괜찮다. 능동적으로 변화를 즐기는 것이 환절기병을 예방하는 좋은 방법임을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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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양창순 원장|에디터 김윤미│이미지 출처│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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