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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공부는 그만.과학의 이야기를 즐겨라”

인터뷰 '융합형 과학 교과서' 개발단장 이덕환 서강대 교수

전국 고등학교에 별종 과학 교과서가 떴다. 1학년들이 3월부터 배우기 시작한 융합형 과학이다. [힘과 운동] [원자와 분자] 등 익숙한 개념은 온데간데 없고 빅뱅과 생명의 진화, 현대문명을 중심으로 파격적인 구성이 펼쳐진다. 지금까지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중심으로 과학을 배웠던 사람들은 낯설음을 넘어 당혹스러워할 정도다. 기자 역시 융합형 과학 교과서를 처음 보았을 때 ‘과학 교과서 맞나, 이래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융합형과학모델교과서개발사업단장인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를 만나 새 과학 교과서에 대한 궁금즘을 들어봤다(융합형 과학의 자세한 구성은 79쪽에 있다. 융합형 과학은 선택 과목이어서 학교에 따라 배우지 않을 수도 있다).







왜 융합형 과학 교과서를 만들었나.

“요즘 고등학교에서는 과학 그 자체가 아니라 과학의 세부 개념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다. 숲은 못보고 나무만 배우는 셈이다.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게 만들고 싶었다. 우리가 왜 과학을 배워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말하고 싶었다. 물화생지를 넘나들며 과학의 이야기를 즐기게 하고 싶었다. 그것이 진짜 융합 아닌가.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현대과학을 너무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세상을 보는 시각이 엄청나게 달라졌다. 우주의 시작을 말하는 빅뱅이론이 나온 건 1940, 50년대지만 과학계를 휩쓴 건 1990년대 들어서다. 유전자와 DNA는 어떤가. 지구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것도 1960년대 이후부터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주, 자연, 인간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나 우리 과학 교과서에는 그런 내용이 거의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 현대 과학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기존 교과서에 현대 과학이 그렇게 부족한가.

“물리는 19세기에 멈춰 있다. 계단을 밟아 올라가다보니 높이 가지 못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워낙 유명하니까 몇 마디 하지만 현대 물리의 기본인 양자역학은 제대로 안한다. 반도체도 나오지 않는다. 한마디로 진짜 과학과 교과서 과학이 따로 있는 거다.



오답 논란을 일으킨 2008학년도 수능 물리 시험도 그래서 문제가 됐다. 고등학교에서 열역학을 가르치면서 단원자 분자만 다룬다고 하고선 뚜껑을 덮었다. 세상에 단원자분자가 몇 개나 있나. 그렇다면 산소 분자, 이산화탄소 분자는 교과서에 없는 거다. 더 심화된 내용 즉 다원자 분자를 공부한 친구들이 그걸 바탕으로 수능 문제를 풀었는데 틀렸다고 해서 중복 답안 논란이 일었고 결국 평가원장이 옷을 벗지 않았나.”



새 교과서가 나올 때마다 현대과학을 잘 가르치겠다고 했다.

“물론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은 늘 그렇게 말해왔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교육 목표와 교육 내용이 따로 논 거다. 교육 목표는 보고서를 위해 만들고 임용고사를 대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학교 현장과는 아무 상관없이 만들었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평가의 문제다. 우리는 너무 객관적인 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 학년을, 심지어 전국의 모든 학생을 한가지 잣대로 평가하려 한다. 결국 단답형, 객관식으로 가게 돼 있다. 그러니 가르치는 것도 단답형 객관식이다.”



기존 교과서와 비교해 정말 파격적이다.

무엇이 가장 다른가.


“개념 위주의 교육에서 과감하게 벗어났다. 과거 과학 교과서는 개념을 모르면 새로 배우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를 위계식 또는 계단식 교육이라고 한다. 그러나 융합형 과학은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과학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숲을 즐기고 그 다음에 원하는 사람은 나무에 대한 지식을 배우자는 거다.



사실 과학동아가 이런 모델이다. 과학동아는 잡지다 보니 뉴스중심으로 가고 융합형 과학 교과서는 더 체계 있게 정리한것이다. 과학동아란 제호 앞에 ‘융합형’이란 말을 넣었으면 참 좋겠다.”



계단식 교육도 필요하지 않나.

“당연히 필요하다. 잘 따라오는 학생들도 있다. 골프선수 박세리처럼 공동묘지에서 억지로 연습했어도 어째든 골프를 잘 하게 됐고 나중에는 즐길 수도 있을 게다. 그러나 잘 따라오지 못하는 70%는 더 이상 과학을 하지 말라고 해야 하는가.



종교 단체에서 성직자와 신도를 교육하는 방식은 다르다. 우리는 모든 아이들에게 성직자가 되는 교육을 시킨 셈이다. 과학자가 되는 교육 말이다. 그러나 과학자가 아니어도 과학을 즐길 수 있고 과학이 필요할 때도 많다. 이들은 빅뱅을 물리학적으로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도 된다. 빅뱅으로 우주가 시작됐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만 알면된다. 문과생도 과학을 알면 우주와 자연과 생명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그것이 바로 세계관이다. 융합형 과학은 1년 정도 개념 공부에서 벗어나 세계관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서 융합형 과학을 인문학적 과학이라고 한다.”





[올 3월부터 전국 고등학교에서 융합형 과학을 선택해 배울 수 있다. 개념보다는 이야기 중심의 융합형 과학은 현대과학에 대한 이해와 세계관을 넓혀준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답답할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 과학자를 보라. 사회 문제를 잘 모른다. 과학을 하면서 왜 이걸 하는지 모른다. 우주론 하는 사람들이 과거 천문학을 모르고 우리 문명과 어떤 관계인지 모른다. 오로지 자기 연구만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과학자라면 내가 밝혀낸 사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1년 정도 이런 경험을 하고 가는 게 나쁘지 않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는 다시 개념 중심의 과학을 배운다. 예전보다 더 깊게 배울 수 있다.”





교과서를 만드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렇다. 과학자, 과학교육자, 교사들이 모였는데 모두 자기 과목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예전에 있었던 어이없는 이야기가 있다. 물리학계에서는 케플러를 물리학자라고 하고, 지구과학계에서는 지구과학자라고 주장한다. 미안한 말이지만 교육학계에서 이런 현상이 심했다. 결국 케플러의 법칙이 물리2와 지구과학2에 함께 들어갔는데 물리학에서는 케플러의 법칙이란 이름을 못쓰고 다른 이름으로 나갔다. 융합형 과학 교과서를 만들 때도 자기 과목 지키기가 대단했다. ”



어떻게 해결했나.

“화학과 물리학이 양보했다. 그래서 융합형 과학 교과서를 보면 생물이나 지구과학 교과서 같다는 말이 나온다. 아무려면 어떤가. 물리 화학은 지구과학과 생물, 현대문명의 뼈대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운다. 천체의 운동을 보며 힘과 운동을 배우고, 반도체에서 전기를 배우는 식이다. 달리 보면 이것이 융합이다.”



교사들이 무척 혼란을 느끼고 있다.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교사들에게는 미안한 면이 있다. 융합형 과학을 만들겠다는 고시가 2009년 12월에 나왔는데 1년 2개월만에 교과서도 만들고 교사들 재교육도 해야 했다. 시간이 너무 빡빡했는데도 밀어붙여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교육의 중심은 학생이 아닌가. 교사들이 힘들어도 학생을 위해 희생하고 더 노력해보자. ”



자신이 고교 교사라면 어떻게 가르치겠나.

“개념이 아니라 의미와 세계관을 강조할 것이다. 음양오행설을 예로 들어보자. 왜 옛 사람들이 음양과 오행을 따졌을까. 당시 하늘에서 특이하게 보이는 천체가 해, 달, 수성, 금성, 토성, 목성, 화성이었고 그게 음양과 오행이었다. 그걸 보고 세계관을 만들었다. 현대 천체물리학 지식으로는 하늘에 7개 천체만 중요한 게 아니다. 조상들의 슬기는 배워야 하겠지만 지식과 세계관이 바뀐 마당에 우리가 음양오행에 글자 그대로 얽매여서야 되겠나. ”



현재 고등학교 과학 교육의 문제가 뭔가.

“초중고 모두 학생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너무 교사 중심이다. 교육과정에 교사양성기관의 이해가 너무 반영돼 있다. 이번에 교과서를 만들면서 느낀 것인데 우리나라가 많이 개방됐다. 의료계 법조계 모두 개방됐다. 그런데 교사 양성은 아직 닫힌 구조다. 교직의 개방이 중요하다. 사범대학을 없애라는 말이 아니다. 그건 당연히 운영하면서 문을 열고 경쟁을 시켜야 한다. 경쟁이 없으면 무너지게 마련이다.”





과학동아 별책부록 1% 클래스



‘융합형 과학 구술 가이드’ 연재




과학동아는 융합형 과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별책부록 1% 클래스에 6개월간 융합형 과학을 중심으로 ‘교과서 구술 가이드’를 연재합니다. 청소년 독자 여러분이 과학을 즐기고 폭넓은 융합 지식을 쌓는데 도움이 되기 바랍니다. 융합형 과학 교과서의 구성과 공부법을 소개합니다.



달라진 교과서를 보면 내용과 구성이 크게 바뀌었다. 마치 과학잡지처럼 이야기 중심의 글과 함께 화려한 그래픽과 화보로 시각적인 전달력을 높였다. 목차는 크게 ‘우주와 생명’과 ‘과학과 문명’의 두 파트로 나뉜다.



우주의 기원과 진화

우주가 빅뱅으로부터 형성돼 현재의 우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의 구성, 은하의 구조뿐 아니라 빛의 스펙트럼 같은 물리 개념과 공유결합과 반응 속도 같은 화학 개념도 배운다.





태양계와 지구

우리가 속한 태양계와 지구를 중점적으로 공부한다. 태양계 형성 과정과 태양계 행성의 성질을 이해하고, 케플러 법칙과 뉴턴의 운동법칙을 통해 행성의 운동을 배운다. 또 대기의 구조도 배운다.



생명의 진화

원시 지구에서 원시 생명체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과 생명 진화의 역사를 다룬다. 화학적 진화의 개념을 이해하고 광합성 박테리아 출현이 지구와 생명의 역사에 어떤 변혁을 가져왔는지 알아본다. 염색체, 유전자, DNA의 개념을 통해 생명의 연속성을 이해한다.





정보통신과 신소재

자연에서 발생하는 정보를 다양한 형태로 인식하는 방법과 정보 처리 과정을 배운다. 정보를 저장하는 장치의 기본 구조와 반도체 원리, 신소재를 살펴본다.



인류의 건강과 과학기술

과학 연구가 인류의 생활과 건강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배운다. 농업 생산성 향상과 첨단 과학을 응용한 건강 관리 등을 다룬다.





에너지와 환경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근원을 알고, 열역학의 기본 법칙을 이해한다. 화석 연료, 태양 에너지, 온실효과 등의 주제를 살펴본다.



새로운 학습법 필요해

달라진 교과서는 모든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과학 교양을 높이기 위한 취지로 개편됐다. 따라서 수많은 개념들을 분리해 심화학습을 하기보다는, 부담없이 읽으며 과학에 대한 지평을 넓히는 공부법이 필요하다. 각 단원별 마무리에서 소개하는 생각하기, 토의하기, 글쓰기 등의 주제를 고민하고 직접 글로 적으면서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나가면 도움이 될 것이다. 과학을 전공하고 싶은 학생이라면 융합형 과학 교과서를 통해 물화생지 지식을 융합시키고, 과학I, II를 통해 더 세부적인 지식을 넓힌다. 서울 명덕고 이세연 과학 교사는 “기존의 과학 교과서가 ‘원리가 무엇인가’를 물었다면, 융합형 과학 교과서는 ‘우리 생활과 어떻게 관련돼 있는가’를 묻는다”며, “궁금한 것을 자유롭게 묻고 토의하는 방식으로 학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9개정 과학교육과정개발사업단

(융합형 과학 기획 및 개발)

책임자
김희준 서울대 화학과 교수

물리 오원근 충북대 물리교육학과 부교수(위원장) 김성원 이화여대 과학교육학과 교수, 김재우 서울 서운중 교사, 박병윤 충남대 물리학과 교수, 박종원 전남대 물리교육학 교수, 정병훈 청주교대 과학교육학과 교수, 정진수 충북대 물리학과 교수, 홍석륜 세종대 물리학과 부교수, 이영미 인천 숭덕여고 교사



화학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 교수(위원장) 노석구 경인교대 과학교육학과 교수, 박현주 조선대 화학교육학과 부교수, 백성혜 한국교원대 화학교육학과 교수, 서인호 서울 압구정고 교사, 이보경 연세대 조교수, 이진승 서울고 교사, 채희권 서울대 화학교육학과 교수, 이영미 인천 숭덕여고 교사



생명과학 김희백 서울대 생물교육학과 교수(위원장) 김남일 춘천교대 과학교육학과 교수, 김영신 경북대 생물교육학과 조교수, 김재근 서울대 생물교육학과 부교수, 민재식 울산 삼일여고 교사, 이선경 청주교대 과학교육학과 부교수, 임혁 서울 원묵고 교사, 조은희 조선대 생물교육학과 교수



지구과학 김찬종 서울대 지구과학교육학과 교수(위원장) 김종희 전남대 지구과학교육학과 교수, 박영신 조선대 지구과학교육학과 교수, 신동희 이화여대 지구과학교육학과 교수, 신인현 조선대 지구과학교육학과 교수, 오필석 경인교대 과학교육학과 교수, 이기영 강원대 지구과학교육학과 교수, 장철교 강원 상지여고 교사(총 36명)







 

2011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상연 이종림 기자 | 사진 김인규│금성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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