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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교세포 100년 만에 입을 열다

아인슈타인 천재로 만든 뇌의 시녀

두 주먹을 합친 크기의 뇌 안에는 약 1000억 개의 뉴런(신경세포)이 있다. 엄청난 숫자 같지만 사실 뇌 안에는 약 1조 개의 세포가 있다. 뉴런은 뇌세포의 10%에 불과한 셈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90%는 어떤 세포일까. 바로 신경교세포다. 그런데 뉴런에 가려 별 볼 일 없는 존재였던 신경교세포가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천재의 비밀, 돌기교세포

신경교세포의 영어 이름인 글리아(glia)는 ‘뭔가’를 붙인다는 뜻이다. ‘교’도 ‘붙인다’는 뜻을 갖고 있다. 여기서 ‘뭔가’가 바로 뉴런이다. 즉 신경교세포는 뇌 속에서 뉴런이 제자리를 잡게 하고 뉴런에 영양을 공급하는 세포다. 뉴런이 ‘공주’라면 신경교세포는 ‘시녀’인 셈이다.



공주가 없으면 시녀는 존재 이유가 없지만 시녀가 없어도 공주는 살 수 있다. 다만 좀 힘들 뿐이다. 그렇게 생각한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신경교세포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뉴런의 미스터리를 풀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뇌에서 뉴런만으로는 해석이 ‘2%’ 부족한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과학자들은 신경교세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신경교세포는 3가지 종류가 있다. 돌기교세포(올리고덴드로사이트), 별교세포(아스트로사이트), 미세교세포(마이크로글리아)가 그들이다. 돌기교세포는 뇌 속 뉴런에서 뻗어 나온 긴 줄기인 축색돌기를 꽉 잡고 있다.

 

축색돌기가 망가질까봐 다시 150겹으로 꽉꽉 싸맸다. 이 부분을 ‘미엘린(myeline)’이라고 한다.



미엘린은 절연체 기능을 한다. 축색돌기는 미엘린으로 둘러싸여 있어 뉴런이 보내는 전기신호가 새어 나가지 않는다. 따라서 50배나 빨리 신호를 전달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알던 것은 이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돌기교세포가 ‘학습’과 ‘인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이디 요한센버그 교수는 영국 옥스퍼드대 임상신경학과 “사람이 기술을 배울 때 돌기교세포는 미엘린을 만든다”며 “미엘린이 많이 생기면 그만큼 뉴런의 신호전달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에 더욱 그 일을 능숙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뉴런은 크게 신경세포체(➊)와 거기서 뻗은 수상돌기(➋), 그리고 긴 축색돌기(➌)로 이뤄져 있다. 뉴런은 수상돌기를 이용해 신호를 받고, 축색돌기를 이용해 그 신호를 다음 뉴런에 전할 수 있다.]



연구팀은 저글링을 할 줄 모르는 48명을 모았다. 이들을 24명씩 2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만 저글링을 가르쳤다. 이들은 매일 30분씩 저글링 연습을 했고 1주에 1번씩 개인교습을 받았다. 6주가 지난 후 실험참가자들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관찰했더니 저글링을 연습한 사람들은 모두 뇌구조가 변해 있었다. 미엘린이 생성돼 뇌의 백질 이 5%씩 증가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 결과를 2009년 10월 11일 과학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골프를 배우거나 독서를 한 후에도 저글링을 연습했을 때처럼 돌기교세포가 미엘린을 많이 생산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게다가 뇌 속 돌기교세포는 아이부터 성인 때까지 미엘린을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다. 계속 공부하고 연습하면 뇌속 돌기교세포가 미엘린을 많이 만들어 나이가 들어도 머리가 좋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동안 사람들은 학습, 인지 능력이 뉴런과 관련이 깊다고만 생각했다. 1955년 아인슈타인이 사망했을 때, 신경과학자들은 ‘천재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아인슈타인의 뇌를 해부했다. 그들은 아인슈타인의 뇌를 붙잡고 40년 동안 연구했지만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의 뉴런 개수는 일반인과 차이가 없었고, 뉴런의 크기도 같았다.



그러나 1995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마리안 다이아몬드 교수는 아인슈타인의 뇌에 신경교세포가 일반인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아인슈타인의 비밀’은 혹시 신경교세포였을까.



신경교세포도 명령할 수 있다

별 모양의 신경교세포인 별교세포는 대표적인 뉴런의 ‘시녀’로 알려졌다. 별교세포는 뇌혈관 위에 서서 덩굴손으로 뉴런을 떠받들고 있다. 뇌혈관 속의 양분을 자신의 몸을 통해 고이 가져와 뉴런에게 제공한다. 또 뉴런끼리 얘기를 잘 나눌 수 있도록 주위 환경을 조성한다.





[뇌 속 뉴런과 신경교세포의 모습 뉴런(➊)이 긴 축색돌기로 전기신호를 보낸다. 돌기교세포(➋)는 뉴런의 축색돌기를 감싸 미엘린(➌)을 만들어 전기신호를 빨리 전달하게 한다. 별교세포(➍)는 뇌혈관(➎)에서 양분을 끌어와 뉴런에 제공한다. 미세교세포(➏)는 뇌 속에 침입한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없앤다.]



별교세포에는 수용체 단백질이 많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이 단백질이 뉴런의 명령을 잘 알아듣고 뉴런을 보필할수 있게 하는 ‘귀’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이 ‘귀’가 아닌 ‘입’도 된다는 사실을 국내 과학자가 밝혔다. 즉 별교세포가 이 입을 통해 뉴런에게 ‘명령’을 내린다는 말이다. 시녀가 공주에게 명령하는 셈이다.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에서 황궁의 시녀가 김태희에게 명령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이창준 교수팀은 단백질 ‘베스트로핀1’을 다른 세포에 발현시켰다. 여기서 신경전달물질인 ‘지속성 가바’가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쥐의 뇌 속 별교세포에서 이 단백질의 기능을 망가뜨렸더니 ‘지속성 가바’가 나오지 않았다.]


 


 
 
이창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경과학센터의 책임연구원은 별교세포에서 단백질 ‘베스트로핀1’을 발견했다. 별교세포는 이 단백질을 통해 뉴런처럼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했다.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지속성 가바(GABA)’였다. 이는 ‘뉴런만 신경전달물질을 합성하고 분비한다’는 기존 학설을 뒤집는 발견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신경교세포도 신경전달물질의 합성과 분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앞으로 신경과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 결과는 작년 11월 24일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뉴런은 신경전달물질을 세포 안의 ‘소포’라는 주머니에 담은 뒤 시냅스라는 연결 부위를 통해 전달한다. 예전에 신경과학자들은 전자현미경까지 동원해 신경교세포에서 소포를 찾아봤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없었기 때문에 “역시 신경교세포는 신경전달물질과는 관계가 없다”라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과학자들이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 신경교세포가 뉴런과 다른 기작으로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할 수 있다는 것을 놓쳤다”고 말했다. 뉴런은 서로 돌기를 맞잡아야, 즉 시냅스를 통해야 서로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지만 별교세포는 멀리 떨어진 별교세포와도 신호를 전달받을 수 있었다. 뉴런이 ‘유선전화’를 이용해 대화한다면 별교세포는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셈이다.







신경전달물질의 양이 적은 것도 그동안 별교세포가 말을 못한다고 오해받았던 원인이다. 뉴런은 가바를 밀리몰(mM, 1000분의 1M) 단위로 분비하는 데 비해 별교세포는 μM(마이크로몰, 100만분의 1M) 단위로 방출한다. 이 책임연구원은 “별교세포는 뉴런보다 수가 훨씬 많기 때문에 이들이 내는 전체 신경전달물질의 양은 적지 않다”며 “한 사람의 목소리는 작지만 운동장에 가득 모인 사람의 응원 함성이 얼마나 큰지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별교세포에서 억제성 신경전달물질 외에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도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리 몸의 중추신경계는 흥분성 신경전달물질과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이 나와 서로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인체가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신경계 질환 치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각종 신경계 질환은 기본적으로 몸 안에서 흥분과 억제 신호의 균형이 깨지면 발생한다. 우울증, 불면증, 학습 및 기억 장애, 발작 등이 그 예다. 현재 개발된 모든 정신질환 치료제는 이런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량을 조절하는 게 원리다.



그동안 신경과학자들은 뉴런에만 초점을 맞춰 신경계 질환을 치료하려고 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신경교세포도 신경전달물질을 낸다는 것이 밝혀졌으니 앞으로 신경계 질환치료제의 새로운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멈출 줄 모르는 미세교세포의 수다

별교세포가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과학자들은 미세교세포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보았다. 예상대로 미세교세포도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미세교세포는 주로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뇌 속에 침투했을 때처럼 위급한 상황에서만 입을 열었다.



이렇게 입조심을 하는 이유는 미세교세포의 말이 통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면역세포의 말이 통증을 일으킨다. 통증은 일종의 경고 장치로, 외부의 유해한 요인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증상이다. 뇌는 다른 신체부분과 격리돼 있기 때문에 몸에 있는 일반적인 면역세포가 뇌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따라서 뇌에 필요한 면역세포를 특별히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미세교세포다. 몸속 면역세포가 일반 군사라면 미세교세포는 뉴런 공주를 모시는 근위대인 셈이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미세교세포가 통증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통증 역시 뉴런의 명령 때문이라고 성급하게 결론지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통증을 막기 위해 뉴런의 입을 막는 수많은 ‘진통제’를 개발했다.



그러나 진통제로도 진정되지 않는 통증이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통증을 그동안 ‘만성 통증’, 또는 ‘신경성 통증’이라고 불렀다. 최근 연구 결과, 신경성 통증은 미세교세포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뉴런이 다른 뉴런으로 신경전달물질을 보낼 때 시냅스(➊)라는 연결 부위를 이용한다. 별교세포(➋)는 이 시냅스를 만들고 더 단단하게 붙인다. 또 뉴런의 신호를 강화한다.]

 
 
 
[뇌는 뇌혈관장벽으로 둘러쌓여 있어 다른 물질이 뇌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면역세포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뇌에서 활동하도록 분화한 면역세포가 바로 미세교세포(갈색)다.]

 
 
 
 
 
이성중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팀은 미세교세포가 뉴런을 부추기기 때문에 계속해서 통증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과학원회보(PNAS)’ 작년 8월 17일자에 발표했다. 이 교수팀이 뉴런은 놔두고 미세교세포의 입만 막았더니 신경병성 통증이 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통증의 범인은 미세교세포인데 그동안 괜히 뉴런만 못살게 굴었던 것이다.



게다가 미세교세포는 한번 입을 열면 말을 그칠 줄 모르는 수다쟁이다. 상처가 나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뉴런에게 위험한 상황이라고 알린다. 뉴런은 미세교세포의 거짓말을 철썩 같이 믿고 계속 통증을 내라고 명령한다.



이 교수는 “미세교세포의 흥분을 가라앉히면 간단히 신경성 통증을 치료할 수 있다”며 연구의 의의를 밝혔다.



이미 우리가 쓰고 있는 약 중에서도 미세교세포의 수다를 멈추게 하는 것들이 있어 생각보다 ‘신경성 통증’을 빨리 고칠 수 있는 날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 교수는 쥐에게 항산화물질인 ‘설포라판’을 먹였더니 미세교세포의 말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미국 다트머스대 의대 조이스 드레오 교수팀도 쥐에게 항생제 ‘마이노사이클린’을 먹였더니 신경성 통증이 멈췄다고 발표했다. 마이노사이클린은 미세교세포가 애초에 입을 열지 못하게 막는 원리로 작용한다. ‘프로펜토필린’이라는 화학물질도 미세교세포의 활성을 억제해 만성통증을 없앤다. 국내에도 신경성 통증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정확한 발병기전을 몰랐기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통증을 감소시키기 위해 부작용을 무릅쓰며 민간요법을 쓰기도 한다. 이 교수는 “신경성 통증 분야는 아직 개척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훌륭한 연구자들이 많이 진출해 신경성 통증의 발병기전을 더 자세히 밝혀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우울증, 자폐증을 비롯해 알츠하이머, 파킨슨병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뇌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뚜렷이 없다. 혹시 그동안 뉴런에만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했기 때문이 아닐까.



오랜 침묵을 깨고 이제 막 신경교세포 연구가 시작됐다. 신경교세포는 그저 뉴런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쓰레기를 치워주는 일을 한다고 천대받은 세월이 100년이다. 이제 신경교세포가 뇌질환 치료의 새 장을 열고 있다. 앞으로 신경교세포가 보여줄 신세계를 마음껏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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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신선미 기자│이미지 출처│위키미디어, istock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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