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빠르게, 더 높게, 더 멀리! 오늘날 스포츠 선수들은 첨단과학으로 만든 유니폼을 입고 자기 능력 이상의 기록에 도전한다. 상어를 닮아 물속에서 유연하고 빠르게 나아가는 패스트스킨II, 달리는 동안 굴뚝처럼 뜨거운 열은 날려버리고 찬바람을 들여마시는 클라이마쿨 플로우맵핑…. ‘옷이 날개’라는 말이 실감나는 첨단 스포츠 의류는 스포츠 정신에 적합하냐는 논란도 함께 일으키고 있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을 표현한 그림에서는 선수들이 하나같이 맨몸이거나 최소한의 옷을 입고 있다. 지금은 어떨까. 오늘날의 선수들은 더 빠르고 더 높고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 과학의 힘을 빌린다. 첨단과학으로 만든 경기 유니폼을 입고 자기 능력 이상으로 기록에 도전한다.
2008년 첨단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참가하는 것이 스포츠 정신에 맞는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스피도 사가 개발한 수영복인 레이저 레이서는 ‘꿈의 수영복’ 또는 ‘신기록 수영복’으로 불릴 만큼 뛰어났다. 이 수영복은 가슴에 있는 압박패널이 몸을 유선형으로 만들어 수영을 할 때 몸이 흔들리는 현상을 막고 물의 저항을 줄인다. 몸 가운데에 달린 안정판은 복부를 지지해 물속에서 항상 좋은 자세를 유지시킨다.
레이저 레이서를 입은 선수들은 5개월 동안 세계신기록을 38개나 갈아치웠다. 우리나라 박태환 선수도 레이저 레이서의 반신 수영복을 입고 베이징 올림픽에서 좋은 기록을 내며 금메달을 땄다. 이런 이유로 이탈리아 수영 대표팀의 알베르토 카스타녜티 코치는 레이저 레이서를 ‘테크놀로지 도핑’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논란이 일어날 만큼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과학적인 스포츠 웨어, 그 능력은 어디에서 어떻게 나오는 걸까.
수영대회 못 나가는 ‘인어드레스’
수영 선수가 더 빨리 나아가려면 물의 저항을 줄이거나 부력을 증가시켜야 한다. 특히 물의 저항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에 따라 선수의 기록이 좌우된다. 1970년대 조오련 선수는 일반 수영복과 비슷하지만 더 가벼운 삼각 수영복을 입었다. 그 뒤 수영복은 디자인이 조금씩 변할 뿐 기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1998년 아디다스에서 머리에서 발목까지 감싸는 전신 수영복을 최초로 개발한 뒤부터 수영복의 진화가 빨라졌다. 이 전신 수영복은 나일론(72%)과 신축성 소재인 라이크라(28%)를 혼합한 소재로 만들고 테플론으로 코팅했다. 맨몸으로 수영할 때 피부 표면의 질감과 털 때문에 일어나는 저항을 줄일 수 있었다. 또 수영복으로 온몸을 조이면 근육의 피로도 줄일 수 있다. 호주의 이언 소프 선수는 이 수영복을 입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와 은메달 2개를 획득했다. 뛰어난 기능과 함께 물고기 같은 생김새로 주목받기도 했다.
2004년 스피도와 미즈노는 ‘패스트스킨II’를 개발해 미국 마이클 펠프스 선수를 ‘인간 상어’로 만들었다. 이 수영복은 상어 피부 표면에서 영감을 얻었다. 수영복의 표면에 미세한 돌기가 오돌토돌하게 붙어 있어서 물 소용돌이가 돌기 윗부분에만 작용해 표면 저항을 줄인다. 섬유 표면도 상어 비늘 모양을 본떴다. 타이어 표면에 V자 모양으로 홈이 파인 것도 같은 원리에서다. 또 물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부분은 상어의 코 앞쪽처럼 거친 돌기로, 물이 몸을 따라 흘러내리는 부위는 부드러운 돌기로 구성돼 있다. 팔과 어깨, 다리처럼 물과 직접 부딪히는 부위는 거친 옷감을 사용해 물에 대한 저항을 줄이고 가슴과 배처럼 물이 흘러 지나가는 부분은 부드러운 소재를 적용해 유연성을 높였다. 그 후 스피도는 테크놀로지 도핑 논란을 불러일으킨 레이저 레이서를 개발했다.
아레나는 테플론으로 코팅하는 대신 폴리우레탄과 네오프렌을 사용해 수영복이 몸에 최대한 붙도록 만들었다(X-글라이드). X-글라이드는 선수의 몸을 물고기 같은 유선형으로 만들 뿐 아니라 부력을 극대화시킨다. 독일의 파울 비더만 선수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자유형 400m 예선에서 18위에 그친 무명의 선수였다. 그러나 이 수영복을 입고 출전한 2009년 7월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남자 자유형 200m와 400m 결승에서 당시 최강자였던 마이클 펠프스 선수를 제치고 세계신기록을 달성했다. 같은 대회 남자 자유형 100m에서는 브라질의 세자르 필류 선수가 X-글라이드를 입고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X-글라이드의 위력이 검증된 셈이다.
하지만 수많은 논란 끝에 지난 1월, 이 수영복은 세계수영연맹(FINA)의 공인심사에서 탈락됐다. FINA는 첨단 수영복을 제재하기로 하고 수영복 재질은 물이 통과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결국 물이 통하지 않는 X-글라이드는 화려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경기용 수영복으로 금지됐다.
쇼트트랙 선수 방탄복 입는다
전문가들은 운동선수의 열 생리학적 반응과 근육의 움직임, 사용하는 기구와의 연계성, 주변 환경 등을 정밀하게 분석해 첨단 스포츠 웨어를 개발한다. 열 생리학적 반응이란 경기 동안 선수들이 흘리는 땀과 소비하는 에너지 등을 말한다. 주로 육상이나 마라톤, 축구 같이 달리는 종목을 위한 옷을 개발할 때 중점을 둔다. 신체 부위별로 땀이 나는 양과 패턴을 체크하고, 달릴 때 인체가 받는 공기의 저항과 흐름을 고려해 부위마다 다른 소재를 사용한다. 아디다스는 클라이마쿨 원단에 플로우맵핑 기술을 적용한 소재를 개발했다. 클라이마쿨과 플로우맵핑을 결합한 유니폼은 마치 굴뚝 안에서 공기가 위로 이동해 날아가는 것처럼 더운 열과 땀은 밖으로 날려 보내고 시원한 바람은 흘러오게 한다. 이 옷을 입은 선수는 오랜 시간 동안 달릴 때 일반 경기 유니폼을 입은 선수보다 열을 쉽게 날려버릴 수 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도 첨단 경기유니폼이 등장했다. 스피드 스케이팅은 등수를 중요시하는 쇼트트랙과 빠른 기록이 중요한 롱트랙으로 나뉘는데,경기에 따라 유니폼도 다르다. 짧은 거리를 누가 빨리 도하느냐에 승부가 걸린 쇼트트랙은 경기 중에 다른 선수와 부딪치거나 넘어질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쇼트트랙 유니폼은 핏줄과 근육이 많은 부위의 부상을 막기 위해 방탄소재를 사용하고, 손을 짚어 곡선 트랙을 도는 동작을 위해 개구리 발 같은 장갑을 착용한다.
반면 긴 거리를 달리는 롱트랙은 공기 저항을 줄이는 일이 중요하다. 공기 저항을 줄이는 원리는 골프공을 연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팔과 다리 부분에 클라이마쿨을 적용했다. 공기가 원활하게 흐를 수 있도록 그물처럼 생긴 오픈 메쉬와 기능성 직물을 결합시켰다. 또 항력을 줄이는 미세돌기를 부착해 표면을 오돌토돌하게 만들었다.
근육 보호엔 ‘도르래’ 조이기
‘도르래’가 들어 있는 경기 유니폼이 있다. 이 옷에 들어 있는 도르래 시스템은 운동을 할 때 근육이 수축하고 이완하는 현상을 돕는다. 전문가들은 운동선수가 부상당하지 않게 보호하거나 부상당한 근육을 지지할 때 사용하는 테이핑 요법에서 이 시스템을 착안했다. 이 옷은 경기를 하는 동안 어깨와 허리, 허벅지, 무릎 등에 붙어 있는 근육이 움직이는 패턴을 분석해 떨림을 최소로 줄인다. 근육을 단단히 조여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고 운동 효율을 극대화시킨다. 도르래 시스템이 적용된 의상에서는 근육을 따라 X자 모양의 밴드가 여러 개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전문 스포츠웨어는 앞으로도 소재 과학과 인체 생리, 스포츠 역학의 연구와 함께 첨단과학의 힘을 빌려 다양한 기능과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스포츠정신에 비출 때 어느 수준까지 발전을 허용해야 할지는 여전히 즐거운 숙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