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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담그면 행복한 겁니다

전통 채소와 미생물이 만드는 생태계

'배추 값이 금(金) 값'이라며 호들갑을 피우던 게 불과 10월 초순이다. 여름철 이상기후로 채소 값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시장이나 할인마트에선 “올 겨울엔 김장도 못 담그게 생겼다”며 혀를 끌끌 차는 주부들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우리 김치재료 시장이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다. 지금은 오히려 ‘배추 값이 더 떨어지면 농민들은 어쩌나’라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가격이 안정화 됐다. 따뜻해서 걱정이던 날씨도 11월 중순이면 쌀쌀함을 더해 예년 기온을 되찾는다고 한다. 이제는 큰 대야 가득 배추를 쌓아두고 가족끼리 오손도손 둘러앉을 일이 남았다.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그기 위해서다.




김치만큼 한국인 식생활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는 음식도 없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00년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김치를 매 끼니마다 챙겨 먹는 가정은 76.7%였으며 ‘웬만하면 먹는다’고 답한 것은 19.4%였다. 전체의 96.1%가 ‘김치를 즐겨먹는다’고 답한 셈이다. ‘가끔만 먹는다는 사람이 3.8%였고 ‘전혀 먹지 않는다’는 응답은 0.1%도 안됐다. 설문에 응한 682가구 중 한 집뿐이었다.

두산 백과사전에는 김치를 ‘무, 배추 및 오이 등의 채소를 소금에 절여 고추, 마늘, 파 생강, 젓갈 등의 양념을 넣고 버무린 것으로 젖산에 의해 숙성돼 저온에서 발효된 식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렇게 적고 보니 간단해 보이지만 김치 담그기는 결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1997년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에 게재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김치는 모두 335종류다. 이 중에 ‘김치’라는 이름이 붙은 것들만 173종이다. 깍두기가 20종류, 동치미가 7종류, 겉절이는 19종류가 존재한다. 이 밖에 26종의 생채류와 75종의 장아찌, 13종의 짠지류와 2종류의 절임이 있다.

이런 구분은 요리책이나 잡지 등에 등장하는 김치의 종류를 근거로 조사한 것이어서 실제 김치와는 차이가 있다. 재료나 만드는 방식이 집안이나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김치의 종류는 무한하다고 봐야 한다. 지역마다, 집집마다 만드는 법이 다르고, 양념이나 발효의 정도도 모두 다르다. 김치 만들기가 결코 쉽지 않은 이유다.

가족과 함께 애써 담그는 김치, 그저 ‘운 좋게 잘 익었으면’하고 빌고만 있지 말고 조금만 과학공부를 해 보자. 몇 가지만 꼼꼼하게 챙기면 적어도 김치가 ‘미쳐버리는(발효에 실패해 갑자기 시어버리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과제1.  날짜부터 정하자

최근에는 김치냉장고가 등장해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전통방식으로 김장을 하려면 먼저 날짜부터 받아야 했다. 김장은 그 해 기후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시기를 놓치면 갑자기 서리가 오거나 추워지므로 채소가 얼기 전 따뜻한 날에 미리 김장을 담궈 둬야 한다. 김장을 한 후 3~4주 후에 기온이 크게 떨어져 추워지는 시기가 가장 좋다. 3~4주 동안 적당히 익힌 후 더 낮은 온도에서 보관하기 위해서다.

이런 점을 고려해 조선시대 농민들의 할 일을 읊은 ‘농가월령가’에서는 겨울이 시작되는 음력 10월 무렵에 김장을 담글 것을 추천하고 있다. 김연옥 전 이화여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한국의 기후’를 통해 지역별로 김장하기 좋은 날을 추천하고 있다. 서울 인천 대구는 11월 26~28일 사이, 강릉 포항 울산 광주 등은 12월 2~5일, 울릉도 목포 부산 등은 12월 14~24일 사이다. 최근엔 지구온난화 등으로 평균 온도가 조금씩 변하고 있으므로 이 날짜를 참고로 평균기온이 4~5℃ 정도인 기간을 고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과제2.  재료 잘 고르면 절반은 성공

날을 정했으면 장을 보러 나서자. 가급적이면 규모가 큰 시장이 좋다. 다양한 식재료를 살펴보고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쓸만한’ 재료를 한두 종류씩 갖춰두는 할인매장이나 백화점 식품코너도 좋지만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으로 재래시장을 찾아 나서는 것도 추천한다. 재래시장은 같은 재료라도 파는 상인이 여럿 모여 있고, 저마다 품질도 제각각이다. 그만큼 생각했던 재료를 찾을 확률도 높다.

식감이 중요한 ‘배추’

김장을 담글 때 가장 중요한 채소는 단연 배추다. 국내에서 흔히 김장용으로 쓰는 가을배추는 20종이 넘는다.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는 김치제조용 채소류의 품질개선 및 안전저장에 대한 연구결과를 1998년 발표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크기와 품종의 배추를 실험한 결과 신맛, 냄새, 조직감, 종합적인 기호도 등을 볼 때‘삼진’이나 ‘오광’ 품종의 배추가 맛과 품질에서 조금 더 유리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대동소이한 배추 품종차이보다는 싱싱하고 맛있게 자란 것을 골라내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최홍부산대 김치연구소 및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저서인 ‘김치의 담금과 가공저장’을 통해 “배추 품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조직감과 색깔, 당 함량”이라며 “품종보다는 형태와 색깔 등을 중요시해 고를 것”을 추천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배추는 중간 정도 크기(2~3kg)로 잎이 얇고, 잎 수가 많으며 큰 바깥 잎이 배추 속을 완전히 감싸고 있는 ‘결구형’ 배추가 좋다. 적당히 단단하고(0.55kg/㎠), 싱싱한 푸른 잎이 붙어 있지만 속은 노란색 배추를 고른다. 씹어보면 고소한 맛이 나지만 약간 단맛이 느껴지는 품종이 좋다.



 


당질 함량이 중요한 ‘무’

무도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재료다. 깍두기 등 무가 주 재료가 되는 김치도 있지만 배추김치를 담글 때도 양념과 함께 버무리는 ‘양념소’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쓰인다. 계절에 따라 여러 가지 무가 있지만 겨울 김장에는 흔히 가을철 무가 쓰인다. 재래종인 조선무를 개량한 것으로 8~9월에 파종해 11월경 수확한다. 김장김치에 쓰기에 제격이다. 보통 단단하고 저장성이 좋은 ‘서울무’가 김장김치에 많이 쓰이며 ‘궁중무’는 무말랭이용으로, ‘연마무’는 단무지용으로 쓴다.

김장용 무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당 함량이다. 유산균이 발효를 통해 신맛을 만들 때는 ‘당’을 먹이로 삼는다. 당 함량이 너무 높으면 맛이 적당히 새콤해진 다음에도 계속 발효가 진행돼 김치가 산패되기 쉽다.다만 봄, 여름에 서너 포기만 김치를 담가 먹는 경우는 당 함량이 높은 무가 유리할 수도 있다. 봄 무는 평균 당도가 3.24 브릭스(Brix, 100g당 당이 1g), 가을 무는 4.71 브릭스다. 장을 볼 때 당도를 잴 순 없겠지만 평균을 넘어선 당도는 피해야 하므로 먹어보아 ‘달다’고 느낄 정도면 고르지 않는 게 좋다.

깍두기용 무는 단단하면서 파란색이 적은 것을 고르면 좋다. 배추김치의 양념소로 쓸 무는 수분이 많고 머리부분이 푸르고 잎이 벌어진 것을 고른다. 이 밖에 동치미용은 푸른색이 적은 흰 무가 좋다.


김치 맛의 화룡점정 ‘젓갈’

채소만으로 김치를 담그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동물성 식품이 들어간다. 지역에 따라서는 생선이나 굴 등 어패류, 새우 등의 갑각류를 쓴다.

젓갈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젓갈은 모든 종류의 어패류 또는 부산물로 만들 수 있다. 국내에서 이용되는 원료로는 어류 29종, 갑각류 19종, 연체류 14종, 어패류나 내장과 아가미 12종, 어패류의 생식소 11종 등 모두 85종에 달한다. 김치에 젓갈을 넣는 이유는 젓갈이 가지고 있는 유익한 세균 때문이다. 젓갈은 이미 10~20%의 소금에 절여 발효시켜 둔 것으로 부패균과 싸워서 이긴 여러 가지 유익한 미생물이 들어 있어 김치의 발효를 돕는다.

특히 젓갈은 어패류의 근육 등에 들어 있는 물질들이 모여 감칠맛(deliciousness)을 한 층 높여 준다. 아미노산의 하나인 글루타민산의 염 형태인 글루탐산모노나트륨(MSG, MonoSodium Glutamate)을 혀로 느끼는 맛이다. 감칠맛이란 미원 등 인공조미료를 넣으면 쉽게 느끼는 맛이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맛은 과거 네 가지였다가 최근에는 다섯 가지로 꼽는데 짠맛, 신맛, 쓴맛, 단맛에 이어 감칠맛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인공MSG가 사람의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발효를 돕고, 깔끔한 감칠맛까지 한층 더하고 싶다면 젓갈을 적절히 쓰는 것이 영양에서도 더 유리하다.

김치에는 새우젓(37.3%), 멸치젓(28.3%), 멸치액젓(25.9%) 등이 주로 쓰이는데, 조개젓, 황석어젓, 까나리젓 등도 많이 쓴다. 여러 가지 젓갈을 섞어 넣어 더 깊은 감칠맛을 내는 것도 좋다. 젓갈 사용량은 전체의 1~3% 정도다.

멸치젓은 봄철에 담근 ‘춘젓’을 많이 선택하며 살이 많이 오른 중간크기로 만든 것을 고른다. 새우젓은 살이 통통하고 형태가 분명하면서 붉고 노란색으로 삭은 것이 좋다. 음력 6월에 살이 오른 새우로 담근 육젓이 시기적으로 잘 숙성, 발효되므로 인기가 있다.




없으면 큰일! 각종 향신료

김치에 들어가는 각종 채소와 향신료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고추, 마늘, 파, 생강 등은 김치 특유의 알싸한 향기와 맛을 더해주는 존재다. 부재료 사용빈도를 보면 마늘(100%)을 항상 쓰며 고춧가루가 94.7%, 생강이 93.3%로 거의 필수다. 파는 73.3%이며 젓갈류는 26~36% 정도다.

한국 재래종 마늘은 육쪽마늘과 여러쪽마늘로 나뉜다. 김치에는 매운맛이 강한 여러쪽마늘이 많이 쓰인다. 보통 가을에 심어 이듬해 5~6월에 수확하기 때문에 김장 때 쓰려면 3~4개월 이상의 저장기간을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김장용 마늘을 구입할 때는 ‘저온보관’ 했던 것인지 확인하고 사는 것이 좋다. 마늘은 김치의 독특한 향기를 결정한다. 알리신(allicin)이라는 물질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비타민B1과 합쳐져 소화흡수를 돕는다. 알리신은 0~2℃ 정도에 6개월 동안 저장해 놓아도 함량이 거의 줄어들지 않지만 24℃ 이상에서 보관하면 30% 이상 줄어든다.

배추김치의 붉은색을 결정하는 고추가 언제부터 김치에 쓰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1614년에 발간된 ‘지봉유설’에 처음 기록이 나온다. 적어도 국내엔 조선 중기 이전, 임진왜란보다는 앞서 도입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고추의 품종 역시 세계적으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김치를 담글 때는 ‘신미종’이라는 한국산 재래종이 주로 쓰인다. 햇볕에 말린 ‘태양초’를 선호하지만 인공건조방식으로 만든 ‘화건초’도 많이 쓰인다. 화건초의 평가가 나쁜 이유는 80℃ 이상으로 급속하게 말리다가 천연색소인 카르티노이드(carotenoids)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적절한 온도조절을 통해 만든 화건초는 품질 좋은 것이 많다.

파나 생강도 빼 놓을 수 없다. 파는 마늘과 같은 알리신 성분이 중요하므로 싱싱하고 잎이 푸른 엽초를 이용하는 편이 유리하다. 생강은 진저론(gingerone)이라는 성분이 독특한 매운맛을 내는데, 김장재료로는 ‘봉상생강’ 등 중간크기 이상의 큰 품종을 쓴다. 섬유질이 연한 것을 고른다. 


 과제3. 실전 김치 담그기 “소금이 중요해”

재료 준비가 끝났다면 본격적으로 김치를 담가 보자. 김치 담그는 방법은 재료나 지역, 개인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김장때 만드는 일반김치(국물이 적은 버무림 김치)의 제조방법에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주재료(배추)를 소금에 절여 둔다. 부재료(무)는 채를 썰고, 파, 생강, 마늘, 고춧가루, 젓갈 등과 함께 고루 비벼 낸다. 가정에 따라 생선이나 굴, 조갯살 등 동물성 재료를 함께 넣어도 좋다. 이렇게 만든 양념소를 소금에 절여 두었던 배추에 다시 비벼 땅속에 묻어둔 김칫독이나 김치냉장고에 넣으면 된다.

김치란 넓은 의미에서 ‘채소 소금 절임’이다. 채소를 소금에 절이는 ‘절임’부터 김장이 시작한다는 점은 어느 지방, 어떤 김치나 마찬가지다.

채소를 미리 소금에 절이면 무엇이 좋을까. ‘짜다’는 기본적인 맛을 제공하고, 쉽게 상하지 않게 만든다. 특히 유해 세균의 활동을 억제해 적절한 발효 환경을 만든다.

보통 일반 세균은 소금농도가 10% 이상이면 성장을 멈춘다. 여러 가지 병원균이나 부패균은 2% 농도만 넘어도 성장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6~12% 정도면 대부분의 생육이 억제된다. 김미리 충남대 교수가 한국식품영양식량학회지에 1983년 소개한 논문에 따르면 세균 이외에 효모는 15% 이상에서 활동이 억제된다. 따라서 2~15% 정도의 소금농도에선 효모 등 유익한 발효 세균은 살아 있고, 유해 세균의 활동은 최대한 멈추는 셈이다.

채소를 소금에 절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미리 만들어 둔 소금물에 담그는 ‘염수법’과 마른 소금을 그대로 뿌리는 ‘건염법’으로 나뉜다. 염수법은 소금물이 고루 배이고, 농도조절도 쉬워 김치공장 등에서 많이 활용된다. 건염법은 작업하기가 편리해 가정에서 주로 쓰인다. 소금의 종류도 중요한데 가급적 수입산 소금은 피하는 것이 좋다. 염화마그네슘(MgCl₂)의 함량이 높아 쓴맛이 날 때가 많다.



 



과제4. 온도를 알면 보관법 보인다

겨울김장은 채소가 자라지 않는 긴 겨울을 대비하는 수단이다. 한국은 대륙성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을 받아 길고 추운데, 1월이 되면 한반도 전역이 영하권으로 떨어진다. 김치는 소금이 포함돼 있어 보통 영하 5℃ 이하로 내려가야 얼기 시작한다. 하지만 더 추운 날씨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하므로 우리 조상들은 김칫독을 땅에 묻었다.

김칫독을 땅에 묻는 전통방식은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 11월 말이나 12월 초, 초겨울 정도에 담근 김치는 15~18℃ 온도에서 발효가 시작된다. 기온이 차츰 낮아지다가 2~3주 후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김칫독 속의 온도도 서서히 내려가서 1~4℃까지 내려간다. 한국인 과학자 최선규, 정대성 씨는 이런 자연적인 김치발효과정을 만들어 실험을 마치고 그 결과를 일본 식품과학학회지 ‘음식의 과학’ 1994년 4월호에 게재한 바 있다.

김치냉장고가 보편화돼 있는 현대에도 이런 실험 자료는 큰 의미가 있다. 가장 맛있는 김치의 발효 상태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치는 발효되다가 어느 순간 ‘부패’가 시작되는데, 그 직전까지는 김치의 맛이 더 좋아지기 때문이다.

실험은 땅 속에 80L 크기의 김칫독을 묻어 두고, 48일 동안 온도가 18℃에서 4℃까지 점점 떨어지는 상황을 만들어 진행됐다. 날짜가 지날수록 김치의 산도가 증가했으며 김치 속 세균의 숫자도 점점 늘어났다.

김치가 상할 염려가 있는 부패세균의 숫자는 25일까지는 줄어들다가 48일이 지나자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25일 이전까지는 순수하게 발효가 진행되다가 그 이후에는 발효와 부패가 동시에 진행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이때까지 온도를 천천히 내리면서 김치를 익히다가 숙성이 어느 정도 진행된 15~20일 경에는 영하 1℃ 부근, 즉 세균이 발효나 부패를 진행하기 어렵지만 채소의 조직까지는 망가지지 않는 온도에서 김치를 보관하면 겨우내 계속해서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다. 김치냉장고의 ‘숙성’이나 ‘맛 지킴’ 기능 역시 이런 원리로 만들어진 것이다.

만약 김치냉장고가 없다면 어떻게 할까. 김치를 담근 후 뚜껑을 잘 덮은 다음 실내(20~44℃)에서 하루 정도 발효 숙성 시킨다. 틈틈이 맛을 보아 너무 신맛이 조금씩 느껴지는 상태에서 냉장고에 옮겨 넣는다. 냉장고마다 다르지만 보통 영상 5℃ 정도를 유지하면서 조금씩 발효가 진행되므로 2~3개월 정도까지는 어느 정도 김치 맛을 유지할 수 있다. 꼭 생각해야 할 것은 온도에 따라 김치를 숙성시키는 여러 가지 젖산균의 활동 범위도 각각 다 다르다는 점이다. 일정한 온도에 계속 놓아두면 김치 특유의 깊은 맛이 덜 할 수도 있다.




김치가 자연스럽게 맛있게 익으려면 재료와 온도, 시간 등을 조절해 적당한 신맛을 내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 부재료의 함량을 조절해 발효 정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 큰 차이는 없지만 마늘이나 고춧가루가 김치의 발효를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단시간에 김치를 빨리 익히고 싶은 경우라면 마늘과 고춧가루 함량을 평소보다 늘리자. 반대로 소금함량은 높을수록 발효가 잘 안된다.

이 밖에 김치 담글 때 여러 가지 식물을 첨가하면 발효가 억제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초추출물, 청대, 황금이 효과가 있고 생강이나 감잎, 도토리잎 등도 마찬가지다. 오미자, 단삼, 감초, 자초, 고삼 등도 효과가 좋고 솔잎, 백작약, 오갈피 등도 약간이나마 김치 젖산균이 자라는 것을 방지하는 것으로 연구돼 있다.

지난 3월 문을 연 한국식품연구원 부설 세계김치연구소 박완수 소장은 취임 당시 “어떤 유산균이 활동하느냐에 따라 김치의 맛과 풍미가 달라진다”며 “이런 김치맛을 조절하려면 유산균의 생태계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치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백여 종 유산균의 상관관계를 밝혀 김치맛의 비밀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김치를 담글 때 이런 복잡한 학문의 영역까지 알 필요는 없다. 하지만 수많은 식품영양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를 알고 있다면 우리들 식탁이 좀더 풍성해질 것이다. 적어도 겨우내 맛없는 김치를 놓고 아쉬워 할 일은 줄어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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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전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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