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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무쌍 수조 진짜 남극바다에 도전하다

남극 얼음을 수조 속에  빙해수조



쿵 하는 소리가 나면서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갑자기 멈춰 섰다. 얼음판을 가르던 중 물속에 깊이 잠겨 있는 얼음 섬에 부딪힌 탓이다. 배 주위에는 크고 작은 얼음 조각들이 둘러싸고 있다. 자칫 얼음 사이에 갇혀버릴 수도 있는 긴급한 상황. 하지만 아라온호는 좌우로 선체를 움직여 배에 붙은 얼음을 털어내더니 여유롭게 U턴으로 배를 돌려 빠져나왔다.  



실제 극지 탐사를 방불케 하는 이곳은 대전 유성구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시스템안전연구소 빙해수조다. 10월 초 2번째 남극 항해를 떠난 아라온호는 바로 이곳에서 매년 정밀한 쇄빙성능 평가를 받는다. 이를 위해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운송연구부 이춘주 책임연구원은 대형 수조에 물을 얼려 얼음판과 얼음 조각이 떠 있는 가상의 극지 환경을 재현했다. 길이와 폭이 각각 42m와 32m, 깊이가 2.5m인 빙해수조는 규모가 정식 대회용 실내수영장에 버금간다.



아라온호는 강도가 630kPa(킬로파스칼, 1kPa=103Pa)이고 두께가 1m인 평평한 얼음판을 3노트(초속 1.5m)의 속도로 깰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실제 극지방에서는 두께가 제각각인 얼음판이나 표류하는 얼음 조각 사이를 헤치고 지나가기도 하고, 물속에 깊이 잠겨 있는 얼음이 있으면 피해서 돌아 나올 수도 있어야 한다.



이 책임연구원은 실험을 위해 영하 20℃에서 14시간 동안 물을 얼려 두께가 4cm인 얼음판을 만들었다. 실제 극지 환경의 20분의 1 규모다. 정확한 실험을 위해 얼음판의 일부는 전기톱으로 잘라 다양한 얼음 조각을 연출했다.



연구팀은 여기에 아라온호 모형을 출항시키고 직진, U턴, 후진 시 얼음이 깨지는 모양을 관찰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배가 지나간 자리만 소나무 모양처럼 깨져야 쇄빙이 제대로 이뤄진 것”이라며 “처음 설계했을 때는 얼음이 깨지지 않거나 얼음에 금만 가는 등 쇄빙 능력이 부족해 뱃머리 부분 디자인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빙해수조에서 쇄빙 성능을 평가한 결과는 배를 설계하거나 배의 항로를 선정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며 “2011년에 우리나라가 남극 대륙에 제2기지를 건설하는데 이 때도 빙해수조 실험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짜 바다보다 더 진짜 같은   해양공학수조



“0.4m 파도 주세요!”

‘끼이익’ 하는 소리가 나면서 잔잔했던 수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파도는 점점 커지며 바다 한 가운데 멈춰있는 석유시추선의 갑판을 강하게 내리쳤다. 초속 10m나 되는 강풍에 배는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이 기우뚱거렸다. 물밑에서는 초속 0.5m의 조류가 석유시추선을 조금씩 먼 바다로 밀어내고 있었다. 비까지 내렸더라면 이곳이 대전 한국해양연구원 해양공학수조라는 사실을 잊을 뻔했다.



올여름 찾아갔던 해양공학수조에서는 석유시추선의 자동위치유지장치 성능을 확인하는 실험이 한창이었다. 빙해수조가 극지 환경을 재현해 쇄빙선의 성능을 시험한다면 해양공학수조는 태풍 상황과 비슷한 극한 환경에서의 선박의 운동과 조종성능을 중점적으로 검사한다.



수조는 길이와 폭이 각각 56m, 30m이고 깊이가 4.5m로 정식 실내 수영장보다 더 컸다. 수조 벽에는 알파벳 ‘L’ 모양으로 파도생성장치(조파장치)가 132개나 설치돼있다. 이것들이 피스톤처럼 움직여 물을 밀면서 파도를 만들고 있었다.



해양구조물 플랜트연구부 김진하 책임연구원은 “파도 높이를 80cm까지 높게 만들 수 있다”며 “실험은 실제 바다를 60분의 1에서 100분의 1 규모로 축소해 하기 때문에 실제 상황이라면 어마어마한 파도”라고 설명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조파장치를 다양한 패턴으로 움직이면서 파도의 주기와 방향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바람은 수조에 설치된 거대한 팬(fan)에서 만든다. 팬은 모두 8개인데 이것을 모두 가동하면 초속 20m의 바람을 불어 낼 수 있었다. 또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수조에는 초속 0.5m의 조류가 흐른다. 



 장거리 선박을 위한  선형시험수조



해양공학수조 바로 옆 건물에는 선형시험수조가 있다. 해양공학수조가 피겨스케이팅이라면 선형시험수조는 스피드스케이팅이다. 선형시험수조는 선박이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조종성능보다는 배가 얼마나 속력을 낼 수 있는지, 이때 배가 받는 저항이 얼마인지 추진성능을 실험한다.



선형시험수조의 길이는 200m나 된다. 수조 속에 플랑크톤 같은 생명체가 번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 햇볕을 차단하기 때문에 캄캄한 동굴처럼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수조에는 2만 3000t의 물이 들어가는데 물을 채우는 데만 한 달이 걸린다. 이 정도 규모의 수조는 세계적으로도 20여 개에 불과하다.



일반 컨테이너 선박은 평균 시속 45km로 운항한다. 선형시험수조에서는 이를 30분의 1 규모로 낮춰 초속 2.5m로 운항 실험을 진행한다. 30분의 1 크기로 축소된 모형선에 페인트를 바르고 출발시키면 달리는 동안 배 표면에는 주위의 물 흐름과 유사한 줄무늬(유선)가 나타난다.



선형시험수조는 다른 수조에 비해 모형선을 장시간 운항시킬 수 있다. 해양운송연구부 안해성 선임연구원은 “배가 달리는 시간을 길게 할수록 실제 상황과 유사한 실험값을 얻을 수 있다”며 “다양한 모형 선박을 시험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수조의 양쪽 벽면에 설치된 터빈(날개차)을 돌리면 원하는 방향으로 물의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날 실험에서 석유시추선 모형은 파도가 넘쳐 갑판에 물이 찼는데도 끝까지 처음 위치를 유지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설계상에 문제가 없어 보여도 해양공학수조에서 실제 태풍 상황을 실험해 보면 개선할 부분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같은 배라도 기상 상황이나 속도에 따라 움직임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요즘 건조하는 선박은 대부분 이런 해양공학수조 실험을 거쳐 탄생한다”고 덧붙였다.







배들의 러닝머신  캐비테이션 터널 수조




“수조가 건물 7층 높이라고요?” 대전 한국해양연구원에 있는 캐비테이션 터널 수조는 수조라기보다는 거대한 ‘ㅁ’자 도넛을 세로로 세워놓은 모습에 가까웠다. 중간에 뚝 끊어서 단면만 본다고 해도 폭이 2.8m이고 높이가 1.8m로 중형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는 면적이다. 과연 미국해군연구소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수조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캐비테이션 터널 수조는 총 207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2009년 말 완공했다.



캐비테이션 터널 수조의 별명은 ‘선박용 러닝머신’이다. 터널 중간에 모형선을 고정시키고 터널 내부에 물을 순환시키기 때문이다. 캐비테이션 터널 수조는 프로펠러의 캐비테이션 정도를 측정한다. 캐비테이션은 프로펠러 날개 표면에 공기방울이 생기는 현상인데, 심하면 프로펠러가 닳아 없어지거나 배에 진동과 소음이 커진다. 캐비테이션 정도에 따라 프로펠러의 추진효율도 달라지기 때문에 프로펠러 날개의 개수, 모양, 크기를 설계할 때는 반드시 캐비테이션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캐비테이션 특성을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해서는 배가 움직이는 것보다 배를 가만히 두고 물을 흘려보내는 것이 유리하다. 수조 실험은 일반적으로 실제 상황을 수십 배 축소해 진행하는데 이때 선박이 받는 대기 압력도 같은 비율로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운송연구부 김기섭 책임연구원은 “캐비테이션 발생 정도는 선박의 속도나 물의 저항력과 달리 외부압력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며 “실험을 할 때 압력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특수 터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건물 7층 높이의 거대한 터널에 물을 회전시키려면 시간 당 3690kW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거대한 모터가 필요하다. 이는 10가구가 한 달 동안 사용하는 전기량보다도 더 많다. 실제로 보면 모터 하나가 웬만한 거실 크기다.



김 책임연구원은 “최근 15만t급 대형 LNG 가스운반선과 컨테이너 6500개를 실을 수 있는 대형 컨테이너 선박에 대해 캐비테이션 터널 수조 실험을 했다”며 “실험 결과와 실제 선박 운항 시 계측한 결과가 매우 유사하게 나왔다”고 말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앞으로도 대형 선박의 프로펠러 성능을 향상시키는 데 캐비테이션 터널 수조를 다양하게 활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쓰나미 재현하는 2차원  단면수조



2008년 5월 4일 충남 보령시 죽도에서는 높이가 3m에 이르는 해일이 발생해 관광객과 낚시꾼 21명이 숨지고 14명이 다쳤다. 기상청은 “충남 보령의 해일주의보 기준은 해면이 844cm일 때인데, 사고 당시 해면은575cm로 사전에 예보할 수준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해일을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일이 발생했을 때 해안에 미치는 피해를 미리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건이었다.



경기 안산 한국해양연구원에는 지진해일(쓰나미)과 같은 해양현상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2차원 단면수조가 있다. 길이가 24.2m, 폭이 0.6m인 2차원 단면수조는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수조에 비해 평범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닥에 얇은 철판이 설치돼 있다. 이 철판을 한쪽 방향으로 잡아끌면 지각 변동, 즉 지진을 재현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지진해일은 파도라기보다는 거대한 물 벽에 가깝다. 일반 파도는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해안에 밀려오는 반면, 지진해일은 물 벽을 높게 유지하면서 다가와 해안이나 방파제를 한 순간에 덮친다. 2차원 단면수조는 이런 물 벽을 3cm까지 만들 수 있는데, 이는 실제 바다에서는 5~10m 높이에 해당한다.



연구팀은 지진해일이 해안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최근에는 새롭게 개발된  소파블록 (테트라포드) 의 안정성을 평가하는 실험을 했다. 연구를 이끈 오상호 선임연구원은 “새롭게 개발한 소파블록을 현장에 설치할 때 수조 실험 결과가 기초적인 설계 자료로 활용된다”며 “방파제를 비롯해 조력발전용 수문 같은 각종 해안구조물을 설계할 때도 수조 실험을 항상 먼저 한다”고 말했다. 1

2010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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