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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식물공장 가동 시작

“내일 처음으로 시장에 나갑니다. 수확량이 많지 않아 먼저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판매를 시작하지요.”

지난 3월 11일 경기도 용인시의 한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식물공장’을 찾았다. 작은 사무실 넓이(약 150m2)의 식물공장에는 여러 단의 선반이 놓여 있고 그 위에 연두색에서 짙은 녹색에 이르는 채소가 빽빽이 자라고 있다. 국내 최초로 상업생산을 시작하는 식물공장 ‘시티팜(citifarm)’의 ‘공장장’ 변승섭 실장은 반도체회사의 방진복 차림으로 채소를 수확하고 있다.

“이곳에는 채소를 괴롭히는 진딧물 같은 해충이 없습니다. 엄격한 출입통제 시스템 덕분이죠.”


LED조명으로 7단 재배 가능

원래 식물공장은 1960년대 유럽에서 등장했다. 일조량이 부족한 북유럽에서 인공조명이 설치된 온실에서 채소를 컨베이어 방식으로 생산하며 그런 이름을 붙였다. 그 뒤 일본에 소개되면서 지금처럼 건물 안에서 순전한 인공조명으로 다단 재배하는 방식이 등장했다. 식물을 키우는 데 바깥 날씨 변화가 전혀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농장’이 아니라 말 그대로 ‘공장’이다.

흙 대신 하얀 스펀지 조각에 몸을 고정한 채 자라고 있는 채소들은 정말 벌레 먹은 흔적 하나 없이 매끈하다. 채소 바로 위에는 형광등 형태의 조명이 설치돼 있는데, 모두 LED라고 한다.

“현재 일본에서는 약 50곳의 식물공장에서 상업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00% LED조명을 쓰는 식물공장은 저희가 세계 최초일 겁니다.”

식물공장 시티팜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회사인 (주)인성테크 안형주 이사의 설명이다. 조명을 자세히 보면 백색광 LED뿐 아니라 빨간빛과 파란빛을 내는 LED도 섞여 있다. 지난 4년 동안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식물이 자라는 최적의 빛 조합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안 이사는 “LED는 파장대가 좁기 때문에 식물의 생육에 적합한 조건을 찾기가 어려웠다”며 “일본의 경우 아직 LED를 형광등의 보조광원으로 쓰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LED는 열이 별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식물 바로 위에 조명이 설치돼도 별 문제가 없다. 보통 건물 한 층 높이에서 7단으로 식물을 키울 수 있는 이유다. 이곳에서는 한꺼번에 최대 1만 5000 개체의 채소를 키울 수 있는데 연중무휴로 작동된다. 이 정도 양을 일반 온실에서 재배하려면 10배 정도 넓은 면적이 필요하다.

씻지 않고 바로 먹어도 되는 채소

“여기에서는 롤로, 멀티그린, 로메인처럼 서구에서 샐러드용으로 널리 쓰이는 채소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상추처럼 생긴 식물을 보고 “상추가 참 먹음직스럽다”고 말하자 안 이사가 정정해준다. 상추와 비슷하게 생긴 롤로를 먹어보니 조직이 부드럽고 씹을 때 아삭아삭한 느낌이다. 쑥갓을 닮은 멀티그린이란 채소는 맛도 다소 쌉쌀한 게 입맛을 돋운다.품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씨앗을 발아시켜 수확할 때까지 채소를 재배하는 데 보통 45일 정도 걸린다. 선반을 자세히 보니 손톱만 한 것부터 거의 배추 크기로 자란 개체까지 다양하게 분포해 있다.

“먼저 발아기에서 하루 이틀 둬 싹을 틔웁니다. 빛이 있면 발아가 안 되기 때문에 발아기를 따로 쓰지요.”

발아기 문을 열어 선반을 꺼내니 큼직한 깍두기만 하게 자른 스펀지 가운데 씨앗이 하나씩 들어 있다. 발아한 개체는 공장 한쪽에 있는 육묘 선반으로 옮겨 약 3주간 키운 뒤 재배 선반으로 옮겨 역시 3주 정도 키운 뒤 수확한다. 육묘 선반은 백색광 LED가 촘촘히 놓여 있어 재배 선반보다 빛이 더 강하다. 어린 식물은 좀 더 강한 빛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화학플랜트의 축소판처럼 선반에는 얇은 관이 여럿 연결돼 있다.


“이곳으로 배양액이 흘러들어 갑니다. 배양액은 양액A, 양액B, pH조절액 3가지인데, 양액A와 양액B는 식물생장에 필요한 미네랄 같은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안 이사는 ‘재배 노하우’라 구체적인 조성을 알려줄 수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 pH조절액은 말 그대로 배양액의 산성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스펀지가 끼여 있는 흰 선반을 들어 올리니 아래에서 배양액과 잠겨 있던 뿌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 수치가 배양액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 자료들은 시간대별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지요. 수확한 뒤 제품이 어떤 조건에서 자랐는지 추적할 수 있으므로 머지않아 특정 채소를 재배할 때 최적인 조건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식물공장을 시험가동했을 때에는 발아율도 낮고 성장속도도 들쑥날쑥했는데, 이제는 많이 개선됐다고. 배양액뿐 아니라 식물생장에 필요한 다른 조건도 정밀하게 통제되고 있다. 먼저 조명은 낮 16시간, 밤 8시간으로 맞춰져 있다. 광합성을 많이 시켜 더 빨리 키우겠다고 24시간 내내 불을 켜주면 식물이 피로를 느끼기 때문이다. 온도는 20℃(낮)와 17℃(밤), 습도는 70%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식물공장 옆에는 에코카페가 있는데, 식물공장에서 나온 산소를 카페로 보내주고 카페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를 공장으로 보내주는 공기순환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안 이사는 “법률 때문에 포장지에 표시할 수는 없지만 여기서 재배된 채소는 씻지 않고 바로 먹어도 된다”며 “앞으로 도심 곳곳에서 식물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소비되는 장소와 가까운 곳에서 채소를 재배해 공급하는 친환경적인 지역 음식(local food)의 대표주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 회사는 올해 안에 10여 곳에 식물공장을 추가로 지을 계획이다.

장기간 육지를 떠나 생활하는 유조선이나 화물선 선원들을 위한 소형 식물공장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보통 2달 정도 바다에 있기 때문에 선원들은 한동안 신선한 채소를 먹지 못한다. 그런데 식물공장이 있다면 항해 내내 신선한 채소를 공급받을 수 있다. 안 이사는 “현재 무인자동화로 채소를 재배하고 자판기처럼 외부에서 사람이 버튼을 눌러 채소를 수확하는 소형 식물공장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SF의 한 장면이 현실이 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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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용인= 강석기 l 사진 고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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