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는 동아시아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지만, 사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많다. 첨성대가 왜 그런 모양으로 만들어졌는지, 정말로 첨성대 꼭대기에 올라가 관측을 한 것인지, 첨성대의 기단부와 창문은 왜 정남을 향하지 않고 약간 동쪽을 향하고 있는지 등이 아직도 설명되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22일, 경주 첨성대 앞마당에서는 동아사이언스와 한국천문연구원의 공동 주최로 신라의 밤하늘을 관측하고 재현하는 행사가 펼쳐졌다. 한국천문연구원의 고천문연구그룹 소속의 연구원들, 충북대 이용삼 교수와 김상혁 박사, 아마추어 천문가 김지현 씨와 김동훈 씨, 경주시 관계자가 함께 참여했다.
관측팀이 주요 과제로 삼은 관측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해가 질 때 태양의 방위각(정북에서 동쪽으로 잰 각)을 측정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첨성대의 기능과 방향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꼭 측정해야 하는 값이다.
첨성대 방향, 해가 질 때 방위각과 관련 있나
이번 관측에서는 춘분날 즈음에 해가 지는 각도를 측정해 혹시 첨성대가 향하는 방향이 해가 뜨고 지는 각도와 관련이 있는지 검토해보려고 했다. 당일에는 날씨가 좋지 않아 해가 지는 각도를 측정하지 못하고, 컴퓨터로 계산해 2010년 3월 22일 경주의 일몰 방위각 271.41°를 얻었다. 이를 통해 춘분날 태양은 첨성대에서 볼 때, 정남에서 서쪽으로 약 91.41° 치우친 곳으로 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첨성대에서 볼 때 태양은 서쪽의
선도산으로 지게 되는데, 선도산이 평지보다 올라와 있기 때문에 실제로 측정했을 때는 계산보다 서쪽으로 덜 치우칠 것으로 예상됐다.
계산에 따르면, 경주에서의 일출 방위각은 하지 때의 59.9°부터 동지 때의 118.7°까지 변하고, 일몰 방위각은 하지 때의 300.08°부터 동지 때의 241.29°까지 변한다. 하지만 첨성대의 기단부(약 19° 편동)와 창문의 방향(약 16° 편동)이 정남에서 약간 치우쳐 있는 것과 계산으로 얻은, 첨성대에서 볼 때의 태양의 출몰 방위각을 연관시킬 수 있는 원리가 아직 발견되지 않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류(柳)자리가 머리꼭대기에 보이면 ‘춘분’
두 번째로 시도한 관측은 해가 지고 난 직후(혼시각)에 자오선(정북에서 머리 위를 거쳐서 정남으로 그은 큰 원) 상에서 빛나는 별, 즉 혼중성을 찾고 이것이 자오선에서 벗어난 각도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이번 관측에서 기준으로 삼은 혼시각은 오후 8시 2분이었고, 목표 천체는 쌍둥이자리 카스토르(전통 별자리에서는 북하 2번별)였다. 아쉽게도 구름이 걷히지 않아 이 별을 관측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컴퓨터상에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위치를 확인했다. 이를 통해 2010년 3월 22일 오후 8시 2분 현재 쌍둥이자리 카스토르는 자오선에서 5° 53′만큼 서쪽으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첨성대가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선덕여왕이 즉위한 633년의 춘분날 해가 지고 난 직후(혼시각)에도 쌍둥이자리 카스토르는 현재와 같은 자리에 있었을까.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팽이가 돌면서 축이 아이스크림콘 모양으로 회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구는 하루 한 바퀴씩 자전을 하면서 자전축이 다시 콘 모양을 그리면서 약 2만 6000년마다한 바퀴를 돈다. 이것을 세차운동이라고 부른다. 즉 자전축의 느린 회전 때문에, 지구에서 관측할 때 하늘의 별들은 1년에 50″(1″는 3600분의 1°) 정도씩 황도(천구 상에서 태양이 움직이는 길)를 따라 동쪽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이 세차운동 때문에 오늘날 춘분 저녁에 보는 밤하늘과 약 1400년 전의 신라시대 사람들이 춘분 저녁에 봤을 밤하늘은 차이가 있다.
계산을 통해 신라시대부터 오늘날까지의 세차운동의 총 각도는 약 19.1°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별들은 신라시대부터 동쪽으로 자꾸만 이동해 오늘날의 위치에 이르렀으므로, 지금의 밤하늘을 서쪽으로 19.1°를 돌려주면 신라시대의 밤하늘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해 신라시대 633년의 춘분날(양력 3월 21일 근처) 밤 8시 2분에 해가 진 직후 자오선 상에 빛나는 별(혼중성)은 ‘바다뱀자리 θ(전통 별자리에서는 류(柳)자리 8번별)’였다는 것을 확인했다. 신라시대 사람들은 해가 진 후 류자리가 자오선 상에 보이면 ‘춘분이 됐구나’하고 절기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군사 분야에서 매우 안 좋은 일이 벌어질 징조”
세 번째 관측은 행성이 어느 별자리에 위치하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신라시대의 천문관들은 행성의 위치나 유성, 혜성이 출현하는 것을 주의 깊게 관측했다. 이런 관측 기록은 삼국사기에 상당수 남아 있는데, 바로 이번 관측에서도 신라시대의 천문관원들이 중요시했던 천문현상을 그대로 관측하고 당시 사람들이 적용한 점성술로 천문현상을 해석해보고자 했다.
날씨가 나빠 직접 관측하지는 못했지만,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발행하는 역서에 따라 날짜별로 행성의 위치를 확인해 2010년 3월 22일 밤, 화성은 게자리에, 토성은 처녀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게자리는 전통별자리로 귀(鬼)자리이고, 처녀자리는 좌집법(左執法)자리이다. 조선 세종 때에 별자리의 의미와 천체들의 점성술적 의미를 적어놓은 ‘천문류초’라는 책에서 이런 천체현상이 어떻게 해석됐는지 찾아봤다. 귀자리는 죽음과 질병을 관장하고 특히 화성은 그 붉은빛 때문에 피와 죽음의 징조로 해석돼 왔다. 이제 화성이 귀자리에 가까이 갔으니 신라시대의 천문관원들이라면 이것을 보고 “군사적인 일에서 매우 안 좋은 일이 벌어질 징조”라고 해석했을 것이다.
또한 토성이 좌집법자리에 가까이 있는 것을 신라 사람들이 봤더라면 “왕과 신하들이 예(禮)를 잃고 왕의 참모들이 쫓겨나는 일이 벌어진다”고 해석했을 것이다. 날씨 때문에 직접 관측은 못하고 현대적인 계산을 통해 천문현상을 예측해봤을 뿐이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신라시대의 사람들이 천문현상을 해석하는 원리를 이해하게 된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된다.
전통 관측기기와 현대 망원경 만나
이번 관측에서는 전통별자리를 구면에 그려 넣은 혼상이라는 천문기구를 사용해 신라시대의 별자리 구성과 세차운동으로 인한 천구의 이동을 확인했다. 특히 이 혼상은 충북대 이용삼 교수가 조선 초기에 평면에 그려진 성도를 기초로 전통별자리를 구면상에 복원한 것인데, 전통시대의 별자리 체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또한 한국천문연구원에 소장된 조선시대 우암 송시열이 사용한 혼천의의 복원품을 이용해, 전통시대에 가장 대표적인 천문관측기구인 혼천의의 작동법과 위치측정법을 이해한 것도 큰 성과였다.
게다가 아마추어 천문가인 김지현 씨와 김동훈 씨는 최근에 입수한 구경 18인치 돕슨식 망원경을 이용해 달과 행성, 그리고 성단의 모습을 관측팀에게 선사하고자 했으나, 날씨가 흐려서 아쉬웠다. 그 대신 추적장치와 부수장치들을 전부 빼고 육안관측에만 적합하도록 특수하게 개발한 돕슨식 망원경의 특이하면서도 멋진 모습과 구조적 특징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