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속을 보여주는 X선 사진기, 방 안을 환하게 밝혀주는 형광등, 마이크로파의 진동으로 음식을 익히는 전자레인지, 친구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휴대전화. 모두 빛이라는 전자기파를 이용해 만든 생활의 이기(利器)들이다.
“우리 생활에 빛을 이용한 제품들이 참 많죠. 빛을 이용하지 않으면 단 하루라도 제대로 살 수 없을 정도니까요. 마찬가지로 우리 연구단에서도 어떻게 하면 이 빛을 유용하게 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 광자의 다발(빛) 중에서 우리가 원하는 광자만 선택적으로 뽑아내 이동시키거나 가두는 과정을 연구하고 있어요.”
빛을 담는 특별한 그릇 광결정
광자유체집적소자 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KAIST 생명화학공학과 양승만 교수는 빛을 마음대로 요리하고 담아둘 수 있는 ‘특별한 그릇’을 만들고 있다. 이 그릇의 이름은 광결정(photonic crystal).
양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광결정은 특정 파장의 빛을 100% 반사할 수 있다. 반대로 내부에 공간을 만들면 빛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가둘 수도 있다. 또 길을 만들면 빛이 그 통로를 따라 이동해 일종의 광 집적회로로 사용할 수 있다. 실리콘 반도체가 전류를 흘렸다 차단했다 하는 것과 비슷하게 빛의 흐름을 제어하는 셈이다. 양 교수는 “이런 성질 때문에 광결정은 ‘빛의 반도체’라고 불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광결정은 전자 대신 광자로 정보를 처리하는 광자컴퓨터의 핵심 부품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광자컴퓨터는 현재의 컴퓨터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여 초고속 정보처리능력을 갖춘 미래형 컴퓨터이다. 연구단은 또 광결정으로 전자종이같은 차세대 디스플레이 소자나 인조 잠자리 눈 같은 초고감도 센서를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빛의 파장 크기 수준으로 주기적인 굴절률 변화를 갖는 물질, 즉 광결정은 특정 파장의 빛을 완전히 배제하거나 반사시킨다. 가시광선 영역에서 작용하는 결정구조의 크기는 머리카락 굵기에 비교하자면 수백 분의 1 수준. 광결정에서 빛이 통과하지 못하고 완전히 반사되는 영역은 ‘광 밴드갭’이라고 부른다.
반도체에서 전자가 뛰어넘을 수 없는 장애물, 즉 밴드갭과 유사한 개념이다. 밴드갭으로 전기의 흐름을 조절하듯 광결정에서는 광자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전반사하게 하는 특별
한 밴드갭을 만들어준다.
양 교수는 “광결정이라는 단어 자체는 낯설지 모르지만 자연에서는 이미 익숙한 구조”라며 짙푸른 색이 빛나는 나비 표본 하나를 기자에게 건넸다. 몰포(Morpho)라는 이름을 가진 이 나비의 날개에선 기름방울 표면 같은 무지갯빛 광택이 났다.
양 교수는 “날개표면을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해보면 얇은 큐티클 층이 기왓장처럼 쌓여 있다”며 “각 층에서 빛이 반사될 때 파란빛은 보강 간섭을 일으켜 우리 눈에 보이고, 나머지는 상쇄간섭을 일으켜 소멸된다”고 말했다. 결국 몰포나비의 날개는 화학 색소의 도움 없이도 광결정 구조 덕분에 독특한 파란색을 띤다는 뜻이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Contents/200912/tbqFHcmpIv2fNVXJAxOz46_48020091229.JPG)
“보는 방향에 따라 광택이 달라지니까 어디에사용될 수 있겠어요? 매니큐어, 립스틱, 코팅 같이 미적 아름다움을 요하는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용될 수 있겠죠. 또 광결정 구조로 만든 선크림은 자외선만 선택적으로 반사시킬 테니까 피부암 예방에도 좋을 거에요. 정말 활용도가 무궁무진하죠?”
자기조립하거나 레이저 빔 쏘거나
그렇다면 광결정 구조는 어떻게 만들까. 연구단은 전 공간에서 빛을 완전히 반사하는 3차원 광결정 구조를 만들고 있다. 3차원 광결정을 제조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콜로이드 상태의 작은 알갱이들을 3차원 공간에 쌓고 이를 결정화하는 ‘자기조립법’이다. 콜로이드는 지름이 1~1000nm(나노미터, 1nm=10-9m) 정도의 미립자가 기체 또는 액체 중에 분산돼 있는 상태이다.
이 작은 입자들은 불규칙하게 움직이다가 액체가 증발해 입자의 농도가 높아지면 점차 움직임이 줄고 스스로 조립된다. 입자들이 면심입방구조로 쌓이면 보석의 한 종류인 오팔이 된다. 오팔 또한 광결정이기 때문에 특정 파장의 빛을 100%에 가깝게 반사한다. 오팔구조에서 공기가 있던 공간을 실리콘 같은 고굴절률 물질로 채우고 콜로이드 입자들을 제거해 공간을 만들면 훨씬 더 분명한 색상이 나타난다. 이를 ‘역전된 오팔구조’라 한다.
3차원 광결정을 만드는 또 다른 방법은 레이저 빔을 이용하는 홀로그래피 공정이다. 이 공정은 패턴을 형성하기 위해 레이저 빔의 간섭무늬를 이용한다. 감광성 고분자는 빛이나 방사선을 쬐어줬을 때 광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면서 그 부분만 특정 용매에 녹지 않거나, 반대로 쉽게 녹는 형태로 변하는 물질이다.
두 레이저 빔이 만나 보강간섭을 일으키면 1차원의 간섭무늬가 만들어진다. 또 레이저 빔의 수를 늘리면 2차원, 3차원의 간섭무늬를 형성할 수 있다. 연구단에서는 이 간섭무늬를 감광성 고분자에 쬐어준 뒤 특정 용매로 현상해 주기적인 패턴을 만들었다. 이 주기
적인 패턴은 굴절률의 변화를 가져와 광결정으로 이용될 수 있다.
단 광결정은 한번 만들면 바꿀 수 없다. 여기서 연구단만의 기지를 발휘했다. 연구단은 광결정 속으로 액체를 흘려서 굴절률을 바꾸는 방법으로 광 밴드갭을 조절했다. 결정 사이에 있는 공기는 굴절률이 1이지만 굴절률이 1.33인 물을 한 방울 넣어주면 다른 색의 빛을 반사하는 식이다. 이런 성질을 이용하면 광결정을 미지의 시료의 정체를 밝히는 센서로 활용할 수 있다. 광결정의 색깔 변화를 관찰하면 거꾸로 시료의 굴절률을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단은 이처럼 유체로 광결정의 밴드갭을 조절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2008년 학술지 ‘랩온어칩’에 발표했다. 회전하며 색 바뀌는 ‘야누스 구슬’연구단은 미세한 양의 유체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기술을 개발해 대량의 광결정을 순식간에 만드는 획기적인 방법도 개발했다. 연구단은 머리카락 굵기보다 얇은 관으로 수십~수백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 크기의 물방울을 빠르게 만들어내는 장비를 개발했다.
그리고 물방울을 만드는 동시에 그 안에 수십~수백nm 크기의 콜로이드 입자들을 채워 넣었다. 물방울이 나노입자들을 감싸고 있는 형태가 된 셈. 물방울은 기름이 뿌려진 판 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달라붙지 않고 형태를 유지했다. 물방울이 증발하면 작은 나노입자들이 모인 큰 구형 입자가 만들어졌다. 이 구형 입자는 나노입자들이 규칙적인 크기와 배열로 모여 있기 때문에 광결정으로 이용할 수 있다.
물 대신 빛을 쬐면 딱딱해지는 감광성 액체를 사용하면서 구형 광결정을 빠르게 생산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물방울은 증발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연속 생산에 문제가 있다. 연구단은 감광성 액체를 사용해 방울을 만들었고 동시에 자외선을 쬐어 즉시 고체결정을 얻었다.
변형된 형태의 구형 광결정도 만들었다. 연구단은 구형 광결정 안에 반은 검은색, 반은 붉은색이나 녹색처럼 다른 색을 띠는 나노입자들을 채워 ‘야누스 구형 광결정’을 만들었다. 야누스는 두 개의 얼굴을 가졌다는 로마신화의 신의 이름이다. 야누스 구형 광결정은 전기를 걸어주면 방향을 바꾸는 특성이 있어 회전하면서 색깔이 바뀐다.
연구단의 김신현 박사는 “야누스 입자를 비롯해 동그란 광결정은 전자종이 같이 접거나 말 수 있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소자로 이용될 수 있다”며 그 가치를 설명했다. 주요 연구결과는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술지인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즈’에 4개월 동안 연속 게재돼 그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이 논문들은 편집인과 심사위원들이 뽑은‘주목해야 할 논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머리카락 굵기보다 작은 인조 잠자리 눈을 개발하기도 했다. 지름이 1μm인 유리구슬을 물속에 분산시킨 뒤 크기가 40μm 정도인 기름방울을 넣자 물과 기름이 밀어내는 힘에 의해 유리구슬이 기름방울의 표면으로 이동했다.
또 유리구슬이 빼곡하게 달라붙은 기름방울에 자외선을 쪼여 단단하게 만들자 수천 개의 유리구슬이 달린 구조(겹눈)가 완성됐다. 덕분에 하나의 렌즈일 때보다 빛을 모으는 시야각이 넓으면서도 모은 빛을 한 점으로 집중시킬 수 있는 인조 잠자리 눈이 탄생한 것. 인조 잠자리 눈은 극미량의 물질을 바로 인식하기 때문에 초고감도 센서로 활용할 수 있다.
이 연구 결과는 2009년‘어드밴스트 머티리얼즈’ 10월호 표지 논문으로 게재됐고, ‘네이처 포토닉스’에 주목할 만한 연구로 소개됐다. 연구단은 앞으로도 광결정에 유체 특유의 유연한 특성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광자유체집적소자를 만드는 연구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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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영재들과 함께하는 게 가장 큰 기쁨”
지난 2년 동안 양승만 교수는 유난히 상복이 많았다. 2008년에는 KAIST가 선정하는 ‘올해의 KAIST인 상’ 수상자로 선정됐고, 지난 11월에는 경암교육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제5회 경암학술상 공학부문 수상자로 뽑히는 영예를 안았다. 이는 지난 2년 동안 ‘앙게반테 케미’와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즈’ 같은 국제 유명 학술지에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세계 유수의 대학에 있는 교수들과 비교해도 월등히 우위에 있음을 증명한 결과다.
이들 논문 30여 편 중 다수가 표지논문이나 주목해야 할 논문으로 선정됐으며, ‘네이처’, ‘네이처 포토닉스’와 같은 학술지의 하이라이트로 소개됐다.
하지만 양 교수는 한사코 수상의 영광을 함께 일한 연구원들에게 돌렸다. “내가 복이 많은 거죠. 천하의 영재들을 가르칠 수 있는 이곳 KAIST에서 연구하는 기회를 얻었으니까요.”
그는 1978년부터 KAIST와 인연을 맺었고, 1985년부터 KAIST 교수로 일했다. 그가 말하는 ‘발전하는 학생’에 대한 얘기는 새겨들을 만하다.“큰 아이디어는 교수가 제시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발전시키는 건 학생들이죠. 여러 시도를 충분히 해보는 가운데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니까요.
시도는 하지 않은 채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학생은 안되는 이유만 생각하기 때문에 발전할 수 없어요.”
양 교수는 아직도 일이 재밌고 연구가 신난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좋은 결과들이 나오니까 당연한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항상 젊은 학생들을 만나다 보니 나이 드는 줄도 모르겠단다. 끈끈한 동료애가 가득한 광자유체집적소자 연구단의 연구실은 추운 겨울에도 따뜻했다.
“우리 생활에 빛을 이용한 제품들이 참 많죠. 빛을 이용하지 않으면 단 하루라도 제대로 살 수 없을 정도니까요. 마찬가지로 우리 연구단에서도 어떻게 하면 이 빛을 유용하게 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 광자의 다발(빛) 중에서 우리가 원하는 광자만 선택적으로 뽑아내 이동시키거나 가두는 과정을 연구하고 있어요.”
광자유체집적소자 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KAIST 생명화학공학과 양승만 교수는 빛을 마음대로 요리하고 담아둘 수 있는 ‘특별한 그릇’을 만들고 있다. 이 그릇의 이름은 광결정(photonic crystal).
양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광결정은 특정 파장의 빛을 100% 반사할 수 있다. 반대로 내부에 공간을 만들면 빛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가둘 수도 있다. 또 길을 만들면 빛이 그 통로를 따라 이동해 일종의 광 집적회로로 사용할 수 있다. 실리콘 반도체가 전류를 흘렸다 차단했다 하는 것과 비슷하게 빛의 흐름을 제어하는 셈이다. 양 교수는 “이런 성질 때문에 광결정은 ‘빛의 반도체’라고 불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광결정은 전자 대신 광자로 정보를 처리하는 광자컴퓨터의 핵심 부품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광자컴퓨터는 현재의 컴퓨터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여 초고속 정보처리능력을 갖춘 미래형 컴퓨터이다. 연구단은 또 광결정으로 전자종이같은 차세대 디스플레이 소자나 인조 잠자리 눈 같은 초고감도 센서를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반도체에서 전자가 뛰어넘을 수 없는 장애물, 즉 밴드갭과 유사한 개념이다. 밴드갭으로 전기의 흐름을 조절하듯 광결정에서는 광자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전반사하게 하는 특별
한 밴드갭을 만들어준다.
양 교수는 “광결정이라는 단어 자체는 낯설지 모르지만 자연에서는 이미 익숙한 구조”라며 짙푸른 색이 빛나는 나비 표본 하나를 기자에게 건넸다. 몰포(Morpho)라는 이름을 가진 이 나비의 날개에선 기름방울 표면 같은 무지갯빛 광택이 났다.
양 교수는 “날개표면을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해보면 얇은 큐티클 층이 기왓장처럼 쌓여 있다”며 “각 층에서 빛이 반사될 때 파란빛은 보강 간섭을 일으켜 우리 눈에 보이고, 나머지는 상쇄간섭을 일으켜 소멸된다”고 말했다. 결국 몰포나비의 날개는 화학 색소의 도움 없이도 광결정 구조 덕분에 독특한 파란색을 띤다는 뜻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 광택이 달라지니까 어디에사용될 수 있겠어요? 매니큐어, 립스틱, 코팅 같이 미적 아름다움을 요하는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용될 수 있겠죠. 또 광결정 구조로 만든 선크림은 자외선만 선택적으로 반사시킬 테니까 피부암 예방에도 좋을 거에요. 정말 활용도가 무궁무진하죠?”
자기조립하거나 레이저 빔 쏘거나
그렇다면 광결정 구조는 어떻게 만들까. 연구단은 전 공간에서 빛을 완전히 반사하는 3차원 광결정 구조를 만들고 있다. 3차원 광결정을 제조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콜로이드 상태의 작은 알갱이들을 3차원 공간에 쌓고 이를 결정화하는 ‘자기조립법’이다. 콜로이드는 지름이 1~1000nm(나노미터, 1nm=10-9m) 정도의 미립자가 기체 또는 액체 중에 분산돼 있는 상태이다.
이 작은 입자들은 불규칙하게 움직이다가 액체가 증발해 입자의 농도가 높아지면 점차 움직임이 줄고 스스로 조립된다. 입자들이 면심입방구조로 쌓이면 보석의 한 종류인 오팔이 된다. 오팔 또한 광결정이기 때문에 특정 파장의 빛을 100%에 가깝게 반사한다. 오팔구조에서 공기가 있던 공간을 실리콘 같은 고굴절률 물질로 채우고 콜로이드 입자들을 제거해 공간을 만들면 훨씬 더 분명한 색상이 나타난다. 이를 ‘역전된 오팔구조’라 한다.
3차원 광결정을 만드는 또 다른 방법은 레이저 빔을 이용하는 홀로그래피 공정이다. 이 공정은 패턴을 형성하기 위해 레이저 빔의 간섭무늬를 이용한다. 감광성 고분자는 빛이나 방사선을 쬐어줬을 때 광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면서 그 부분만 특정 용매에 녹지 않거나, 반대로 쉽게 녹는 형태로 변하는 물질이다.
두 레이저 빔이 만나 보강간섭을 일으키면 1차원의 간섭무늬가 만들어진다. 또 레이저 빔의 수를 늘리면 2차원, 3차원의 간섭무늬를 형성할 수 있다. 연구단에서는 이 간섭무늬를 감광성 고분자에 쬐어준 뒤 특정 용매로 현상해 주기적인 패턴을 만들었다. 이 주기
적인 패턴은 굴절률의 변화를 가져와 광결정으로 이용될 수 있다.
단 광결정은 한번 만들면 바꿀 수 없다. 여기서 연구단만의 기지를 발휘했다. 연구단은 광결정 속으로 액체를 흘려서 굴절률을 바꾸는 방법으로 광 밴드갭을 조절했다. 결정 사이에 있는 공기는 굴절률이 1이지만 굴절률이 1.33인 물을 한 방울 넣어주면 다른 색의 빛을 반사하는 식이다. 이런 성질을 이용하면 광결정을 미지의 시료의 정체를 밝히는 센서로 활용할 수 있다. 광결정의 색깔 변화를 관찰하면 거꾸로 시료의 굴절률을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단은 이처럼 유체로 광결정의 밴드갭을 조절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2008년 학술지 ‘랩온어칩’에 발표했다. 회전하며 색 바뀌는 ‘야누스 구슬’연구단은 미세한 양의 유체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기술을 개발해 대량의 광결정을 순식간에 만드는 획기적인 방법도 개발했다. 연구단은 머리카락 굵기보다 얇은 관으로 수십~수백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 크기의 물방울을 빠르게 만들어내는 장비를 개발했다.
그리고 물방울을 만드는 동시에 그 안에 수십~수백nm 크기의 콜로이드 입자들을 채워 넣었다. 물방울이 나노입자들을 감싸고 있는 형태가 된 셈. 물방울은 기름이 뿌려진 판 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달라붙지 않고 형태를 유지했다. 물방울이 증발하면 작은 나노입자들이 모인 큰 구형 입자가 만들어졌다. 이 구형 입자는 나노입자들이 규칙적인 크기와 배열로 모여 있기 때문에 광결정으로 이용할 수 있다.
물 대신 빛을 쬐면 딱딱해지는 감광성 액체를 사용하면서 구형 광결정을 빠르게 생산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물방울은 증발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연속 생산에 문제가 있다. 연구단은 감광성 액체를 사용해 방울을 만들었고 동시에 자외선을 쬐어 즉시 고체결정을 얻었다.
변형된 형태의 구형 광결정도 만들었다. 연구단은 구형 광결정 안에 반은 검은색, 반은 붉은색이나 녹색처럼 다른 색을 띠는 나노입자들을 채워 ‘야누스 구형 광결정’을 만들었다. 야누스는 두 개의 얼굴을 가졌다는 로마신화의 신의 이름이다. 야누스 구형 광결정은 전기를 걸어주면 방향을 바꾸는 특성이 있어 회전하면서 색깔이 바뀐다.
연구단의 김신현 박사는 “야누스 입자를 비롯해 동그란 광결정은 전자종이 같이 접거나 말 수 있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소자로 이용될 수 있다”며 그 가치를 설명했다. 주요 연구결과는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술지인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즈’에 4개월 동안 연속 게재돼 그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이 논문들은 편집인과 심사위원들이 뽑은‘주목해야 할 논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머리카락 굵기보다 작은 인조 잠자리 눈을 개발하기도 했다. 지름이 1μm인 유리구슬을 물속에 분산시킨 뒤 크기가 40μm 정도인 기름방울을 넣자 물과 기름이 밀어내는 힘에 의해 유리구슬이 기름방울의 표면으로 이동했다.
또 유리구슬이 빼곡하게 달라붙은 기름방울에 자외선을 쪼여 단단하게 만들자 수천 개의 유리구슬이 달린 구조(겹눈)가 완성됐다. 덕분에 하나의 렌즈일 때보다 빛을 모으는 시야각이 넓으면서도 모은 빛을 한 점으로 집중시킬 수 있는 인조 잠자리 눈이 탄생한 것. 인조 잠자리 눈은 극미량의 물질을 바로 인식하기 때문에 초고감도 센서로 활용할 수 있다.
이 연구 결과는 2009년‘어드밴스트 머티리얼즈’ 10월호 표지 논문으로 게재됐고, ‘네이처 포토닉스’에 주목할 만한 연구로 소개됐다. 연구단은 앞으로도 광결정에 유체 특유의 유연한 특성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광자유체집적소자를 만드는 연구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천하의 영재들과 함께하는 게 가장 큰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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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논문 30여 편 중 다수가 표지논문이나 주목해야 할 논문으로 선정됐으며, ‘네이처’, ‘네이처 포토닉스’와 같은 학술지의 하이라이트로 소개됐다.
하지만 양 교수는 한사코 수상의 영광을 함께 일한 연구원들에게 돌렸다. “내가 복이 많은 거죠. 천하의 영재들을 가르칠 수 있는 이곳 KAIST에서 연구하는 기회를 얻었으니까요.”
그는 1978년부터 KAIST와 인연을 맺었고, 1985년부터 KAIST 교수로 일했다. 그가 말하는 ‘발전하는 학생’에 대한 얘기는 새겨들을 만하다.“큰 아이디어는 교수가 제시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발전시키는 건 학생들이죠. 여러 시도를 충분히 해보는 가운데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니까요.
시도는 하지 않은 채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학생은 안되는 이유만 생각하기 때문에 발전할 수 없어요.”
양 교수는 아직도 일이 재밌고 연구가 신난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좋은 결과들이 나오니까 당연한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항상 젊은 학생들을 만나다 보니 나이 드는 줄도 모르겠단다. 끈끈한 동료애가 가득한 광자유체집적소자 연구단의 연구실은 추운 겨울에도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