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다른 생물들과 구분하는 중요한 특성은 의식과 정신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를 바 없다는 다윈의 과격한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인간의 지적 활동은 다른 생물들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인간은 삶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 애쓰고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면 삶을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오늘날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인간의 정신을 뇌의 신경망 속에서 찾고 있다. 감정과 인격, 창의적 사고와 철학적 사유를 가능케 하는 정신능력의 비밀을 뇌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번 호에서는 뇌 과학의 발전과 성과의 의미를 살펴보자.
[제시문]
많은 학자들이 뇌의 신비를 밝히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뇌는 좀처럼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외부에서 받아들인 정보를 뇌가 어디에 어떻게 저장하는지 알아낸다면 뇌의 비밀에 좀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기억 정보가 뇌에 저장되는 방식을 설명한 많은 학설 중에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주장은 ㉠뉴런(신경세포) 간 연결 구조인 시냅스의 물리·화학적 변화에 의해 이뤄진다는 학설이다. 인간의 뇌에는 1개당 수천 개의 시냅스를 형성하는 뉴런이 약 1천억 개 존재하는데 이는 신호를 보내는 ‘시냅스 전(前) 뉴런’과 신호를 받아들이는 ‘시냅스 후(後) 뉴런’, 그리고 두 뉴런 사이에 20~50nm 정도 크기로 벌어진 ‘시냅스 틈’으로 이뤄져있다. 시냅스 전 뉴런에서 전기가 발생하면 그 말단에서 시냅스 틈으로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고, 이 물질은 시냅스 후 뉴런의 수용체(신호를 받아들이는 분자)를 자극해 전기를 발생시킨다. 뇌가 작동하는 것은 시냅스로 이뤄진 신경망으로 신호가 전달돼 정보 처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뇌가 받아들인 기억 정보는 그 유형에 따라 각각 다른 장소에 저장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은 크게 서술 정보와 비서술 정보로 나뉜다. 서술 정보란 학교 공부, 영화 줄거리, 장소나 위치, 사람 얼굴처럼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정보이고, 비서술 정보는 몸으로 습득하는 운동 기술, 습관, 버릇, 반사적 행동 등과 같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보다. 이 중에서 서술 정보의 처리는 뇌의 내측두엽에 있는 해마가 담당한다. 교통사고를 당해 해마 부위가 손상된 사람은 서술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이 감소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는 교통사고 이전의 오래된 기억을 모두 회상해냈다. 해마가 장기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서술 정보가 오랫동안 저장되는 곳이 대뇌피질일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내측두엽으로 들어온 서술 정보는 해마와 그 주변 조직들에서 일시적으로 머무는 동안 신경정보신호로 바뀌고 이는 대뇌피질의 광범위한 영역과 연결된 신경망을 통해 대뇌피질의 여러 부위로 전달된다. 그러면 기억과 관련된 유전자가 발현되면서 단백질이 만들어져 기억 내용이 공고해진다.
그러면 비서술 정보는 어디에 저장될까? 운동 기술은 대뇌의 선조체나 소뇌에 저장된다. 계속적인 자극에 둔감해지는 습관화와 비슷한 자극에 계속해서 반응하는 민감화에 대한 기억은 감각이나 운동 체계를 관장하는 신경망에, 감정이나 공포와 관련된 기억은 편도체에 저장된다.
[문제]
다음은 ㉠을 그린 것이다. 위 글과 그림을 바탕으로 제기한 의문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외부의 기억 정보는 어떻게 ⓐ까지 전달될까?
② ⓐ에서 만들어지는 신경전달물질의 양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③ ⓑ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은 어떤 성질을 지녔기에 ⓒ를 자극하는 것일까?
④ ⓒ를 자극해 발생시키는 전기는 어느 정도 되어야 신호가 전달될까?
⑤ ⓓ가 신경전달물질에 전기신호를 일으키는 원리는 무엇일까?
-2006년 10월 학력평가
1889년 5월, 한 젊은 남자가 프랑스의 시골 마을 생레미에 있는 정신요양원에 입원했다. 그는 간질과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그는 때때로 거품을 물고 쓰러졌는데 세상이 너무 밝고 환해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고 말했다. 사물들이 꿈틀거리고 살아있는 듯 생생하게 보이고 천사가 보인다고도 했다. 한 가지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거나 종교적인 강박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는 12개월 간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퇴원 후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결국 자살했다.
그 남자의 이름은 빈센트 반 고흐. 밝고 화사한 색채와 거침없는 선으로 살아 움직이듯 꿈틀거리는 그림을 그린 천재화가였다. 고흐는 오늘날의 의학용어로 말하자면 측두엽 간질 장애를 앓고 있었다.
측두엽 간질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시각과 청각이 극도로 예민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진동과 움직임에 민감해지고 환영이나 환청을 경험하하며, 일부 환자들은 신체이탈을 체험하기도 한다. 대뇌의 한 부분인 측두엽이 시각·청각·체성감각(혀·입)과 같은 신경계통을 관할하기 때문에 나타난 증상이다.
그렇다면 고흐 그림에서 나타난 강렬한 색채의 마법은 모두 간질의 영향이었을까? 인간의 가장 고유한 영역이라 일컬어지는 영적 체험과 예술적인 창의력이 단지 뇌의 활동에 불과하다면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 이외에 무슨 의미를 갖는가?
뇌는 신경세포들의 집합체
세포는 생물체의 몸을 이루는 기본단위다. 인간의 몸은 100조 개가 넘는 세포로 이뤄져 있는데 세포의 형태와 기능이 매우 다양하다. 작은 원반 모양의 적혈구 세포, 빛에 대해 반응하는 막대 모양의 망막세포, 귀와 관절에서 발견되는 연골세포, 단단한 뼈 속의 경골세포, 그리고 가는 실처럼 생겨서 길이가 1미터에 달하는 신경세포 등 약 220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해부학자들은 뇌가 신경세포로 밀집돼 있다고 말한다. 1906년에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스페인의 해부학자 라몬 이 카할은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들에 ‘뉴런’(neur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카할은 뉴런들이 독립적으로 활동하지 않고 마치 전기회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회로를 가리켜 ‘시냅스’(synapse)라고 불렀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약 1,000억 개의 뉴런으로 구성돼 있고, 이 뉴런은 다시 1,000조 개에 달하는 시냅스로 돼있다고 한다. 이는 아마존 열대우림에 있는 나뭇잎들을 합한 숫자들보다 두 배나 많은 수다.
시냅스는 하나의 뉴런에서 뻗어 나온 가지가 다른 뉴런의 가지와 만나는 곳을 말한다. 뉴런의 머리 부분은 수상돌기라고 하는데 이 수상돌기는 다른 뉴런으로부터 신호를 전달 받는 안테나 역할을 담당한다. 뉴런의 꼬리부분은 축색돌기라고 하며 뉴런에서 만들어진 정보를 밖으로 내보낸다. 축색돌기와 수상돌기는 붙어 있지 않고 떨어져 있어 미세한 틈 사이로 여러 가지 화학물질이 전달된다. 과학자들은 이 화학물질이 인간의 감정과 의식을 형성하는 열쇠라고 말한다.
감정과 기억의 비밀
지금은 중학교 교과서에도 소개될 만큼 익숙해졌지만 100여 년 전만 해도 뉴런의 구조는 미지의 세계였다. 1921년 독일의 생리학자 오토 뢰비가 신경신호 전달이 화학매체의 도움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입증한 후 과학자들은 신경전달물질이 마음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라고 생각했다. 특히 몇몇 정신질환자들에게서 신경전달물질의 양이 비정상적으로 분비되는 현상이 관찰됨에 따라 과학자들은 신경전달물질의 양이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 감정 상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밝혀냈다.
미국지리학회에서 펴내는 월간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는 신경전달물질을 ‘사랑의 묘약’이라고 소개했다. 사랑에 빠진 남녀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이들의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이 물질은 보상과 욕구를 관장하는 뇌의 영역을 활성화시킨다. 도파민의 분비는 체내에 흥분상태를 지속시키며 격렬한 에너지의 방출이나 과격한 신체활동을 가능케 한다. 쉽게 말해 사랑에 빠진 상태는 생리학적으로 코카인을 복용한 상태와 같아졌다.
지금까지 발견된 신경전달물질의 종류는 40여개에 이르지만 과학자들은 100여 개의 신경전달물질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학자들은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추상적 사고나 논리적 추론, 복잡한 감정과 같은 인간의 내면세계를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그 중에서 2000년에 노벨 의학상을 수상한 에릭 리처드 캔들은 기억의 비밀을 풀어 낸 과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일명 바다토끼로 불리는 바다달팽이의 신경을 연구하면서 학습과 기억의 비밀을 풀어낼 수 있는 단서를 발견했다. 그는 바다달팽이의 꼬리 끝에 약한 전기 자극을 반복했을 때 얼마 후 시냅스의 길이가 늘어난 것을 확인했다. 캔들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학습과 기억은 뉴런들의 일정한 연결방식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러한 캔들의 연구 덕분에 뇌와 기억의 원리에 대한 연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과학자들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저장된 기억이 다시 언어로 재구성되는 과정이나 복잡한 문법과 수사법을 활용해 감동적인 문학을 만들어내는 창작의 원리, 혹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연산의 과정은, 여전히 신비 속에 머물고 있다.
뇌는 곧 마음인가?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그 남자네 집’에서 주인공 여자는 우연히 뇌 속에 들어간 벌레로 인해 의식을 잃은 연인 앞에서 사랑의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자문한다. “그것이 다 벌레의 짓이었을까. 내 젊음을 황홀하게 빛낸 그 기쁨의 시간이 다 벌레의 선물이었을까.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우리들의 시간이고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벌레들의 시간이었을까….”
박완서의 소설이 던지고 있는 질문들은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질문과 같다. 인간의 마음은 뇌 속에 들어있는 걸까? 기쁨, 행복, 슬픔, 몰입… 이 모든 감정이 모두 다 뇌가 수행하는 연산에 불과하단 말인가? 뇌를 알게 되면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수천 년 혹은 수만 년 동안 인류가 끊임없이 던져왔던 질문이 뇌의 연구를 통해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도대체 우리는 누구란 말인가?
척추 꼭대기에 달랑 얹혀 있는 약 1.3kg의 주름투성이를 고결한 인간의 혼을 담는 그릇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해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19세기 말 철학자 니체는 ‘몸을 경멸하는 자들에게’라는 글에서 인간에 대한 연구를 인간 내부에서 찾는 현대과학을 예언한 바 있다.
“혼은 몸을 일컫는 또 다른 낱말일 뿐이다.
네 사고와 감정의 배후에는, 아는가,
자아라는 이름을 가진 힘찬 지배자가,
현자가 버티고 있다는 것을. 그는 네 몸 안에
머문다. 그는 바로 네 몸이다. 네 으뜸가는
지혜보다 더 뛰어난 이성이 몸 안에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초라함과 민망함은, 우리의 무지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뇌는 우리 자신의 뇌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경이로운 존재다.
뇌의 기억 용량: 요즘 출시되는 개인용 컴퓨터는 보통 5000억 바이트(500GB)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으로 알려진 미국 의회 도서관의 장서를 컴퓨터 데이터로 환산하면 약 32조 바이트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면 인간의 뇌의 기억 용량은 얼마나 될까? 인간의 뇌는 하나의 시냅스를 1 바이트로 가정하면 최대 1000조 바이트의 용량을 갖는다.
[제시문]
많은 학자들이 뇌의 신비를 밝히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뇌는 좀처럼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외부에서 받아들인 정보를 뇌가 어디에 어떻게 저장하는지 알아낸다면 뇌의 비밀에 좀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기억 정보가 뇌에 저장되는 방식을 설명한 많은 학설 중에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주장은 ㉠뉴런(신경세포) 간 연결 구조인 시냅스의 물리·화학적 변화에 의해 이뤄진다는 학설이다. 인간의 뇌에는 1개당 수천 개의 시냅스를 형성하는 뉴런이 약 1천억 개 존재하는데 이는 신호를 보내는 ‘시냅스 전(前) 뉴런’과 신호를 받아들이는 ‘시냅스 후(後) 뉴런’, 그리고 두 뉴런 사이에 20~50nm 정도 크기로 벌어진 ‘시냅스 틈’으로 이뤄져있다. 시냅스 전 뉴런에서 전기가 발생하면 그 말단에서 시냅스 틈으로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고, 이 물질은 시냅스 후 뉴런의 수용체(신호를 받아들이는 분자)를 자극해 전기를 발생시킨다. 뇌가 작동하는 것은 시냅스로 이뤄진 신경망으로 신호가 전달돼 정보 처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뇌가 받아들인 기억 정보는 그 유형에 따라 각각 다른 장소에 저장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은 크게 서술 정보와 비서술 정보로 나뉜다. 서술 정보란 학교 공부, 영화 줄거리, 장소나 위치, 사람 얼굴처럼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정보이고, 비서술 정보는 몸으로 습득하는 운동 기술, 습관, 버릇, 반사적 행동 등과 같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보다. 이 중에서 서술 정보의 처리는 뇌의 내측두엽에 있는 해마가 담당한다. 교통사고를 당해 해마 부위가 손상된 사람은 서술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이 감소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는 교통사고 이전의 오래된 기억을 모두 회상해냈다. 해마가 장기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서술 정보가 오랫동안 저장되는 곳이 대뇌피질일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내측두엽으로 들어온 서술 정보는 해마와 그 주변 조직들에서 일시적으로 머무는 동안 신경정보신호로 바뀌고 이는 대뇌피질의 광범위한 영역과 연결된 신경망을 통해 대뇌피질의 여러 부위로 전달된다. 그러면 기억과 관련된 유전자가 발현되면서 단백질이 만들어져 기억 내용이 공고해진다.
그러면 비서술 정보는 어디에 저장될까? 운동 기술은 대뇌의 선조체나 소뇌에 저장된다. 계속적인 자극에 둔감해지는 습관화와 비슷한 자극에 계속해서 반응하는 민감화에 대한 기억은 감각이나 운동 체계를 관장하는 신경망에, 감정이나 공포와 관련된 기억은 편도체에 저장된다.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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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을 그린 것이다. 위 글과 그림을 바탕으로 제기한 의문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외부의 기억 정보는 어떻게 ⓐ까지 전달될까?
② ⓐ에서 만들어지는 신경전달물질의 양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③ ⓑ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은 어떤 성질을 지녔기에 ⓒ를 자극하는 것일까?
④ ⓒ를 자극해 발생시키는 전기는 어느 정도 되어야 신호가 전달될까?
⑤ ⓓ가 신경전달물질에 전기신호를 일으키는 원리는 무엇일까?
-2006년 10월 학력평가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Contents/200903/oyWEmnpVL2DD8SY0Olhe_11520090331.jpg)
그 남자의 이름은 빈센트 반 고흐. 밝고 화사한 색채와 거침없는 선으로 살아 움직이듯 꿈틀거리는 그림을 그린 천재화가였다. 고흐는 오늘날의 의학용어로 말하자면 측두엽 간질 장애를 앓고 있었다.
측두엽 간질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시각과 청각이 극도로 예민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진동과 움직임에 민감해지고 환영이나 환청을 경험하하며, 일부 환자들은 신체이탈을 체험하기도 한다. 대뇌의 한 부분인 측두엽이 시각·청각·체성감각(혀·입)과 같은 신경계통을 관할하기 때문에 나타난 증상이다.
그렇다면 고흐 그림에서 나타난 강렬한 색채의 마법은 모두 간질의 영향이었을까? 인간의 가장 고유한 영역이라 일컬어지는 영적 체험과 예술적인 창의력이 단지 뇌의 활동에 불과하다면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 이외에 무슨 의미를 갖는가?
뇌는 신경세포들의 집합체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Contents/200903/D2UqxClhH5jzI8BWKTYJ_73920090331.jpg)
해부학자들은 뇌가 신경세포로 밀집돼 있다고 말한다. 1906년에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스페인의 해부학자 라몬 이 카할은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들에 ‘뉴런’(neur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카할은 뉴런들이 독립적으로 활동하지 않고 마치 전기회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회로를 가리켜 ‘시냅스’(synapse)라고 불렀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약 1,000억 개의 뉴런으로 구성돼 있고, 이 뉴런은 다시 1,000조 개에 달하는 시냅스로 돼있다고 한다. 이는 아마존 열대우림에 있는 나뭇잎들을 합한 숫자들보다 두 배나 많은 수다.
시냅스는 하나의 뉴런에서 뻗어 나온 가지가 다른 뉴런의 가지와 만나는 곳을 말한다. 뉴런의 머리 부분은 수상돌기라고 하는데 이 수상돌기는 다른 뉴런으로부터 신호를 전달 받는 안테나 역할을 담당한다. 뉴런의 꼬리부분은 축색돌기라고 하며 뉴런에서 만들어진 정보를 밖으로 내보낸다. 축색돌기와 수상돌기는 붙어 있지 않고 떨어져 있어 미세한 틈 사이로 여러 가지 화학물질이 전달된다. 과학자들은 이 화학물질이 인간의 감정과 의식을 형성하는 열쇠라고 말한다.
감정과 기억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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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지리학회에서 펴내는 월간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는 신경전달물질을 ‘사랑의 묘약’이라고 소개했다. 사랑에 빠진 남녀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이들의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이 물질은 보상과 욕구를 관장하는 뇌의 영역을 활성화시킨다. 도파민의 분비는 체내에 흥분상태를 지속시키며 격렬한 에너지의 방출이나 과격한 신체활동을 가능케 한다. 쉽게 말해 사랑에 빠진 상태는 생리학적으로 코카인을 복용한 상태와 같아졌다.
지금까지 발견된 신경전달물질의 종류는 40여개에 이르지만 과학자들은 100여 개의 신경전달물질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학자들은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추상적 사고나 논리적 추론, 복잡한 감정과 같은 인간의 내면세계를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그 중에서 2000년에 노벨 의학상을 수상한 에릭 리처드 캔들은 기억의 비밀을 풀어 낸 과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일명 바다토끼로 불리는 바다달팽이의 신경을 연구하면서 학습과 기억의 비밀을 풀어낼 수 있는 단서를 발견했다. 그는 바다달팽이의 꼬리 끝에 약한 전기 자극을 반복했을 때 얼마 후 시냅스의 길이가 늘어난 것을 확인했다. 캔들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학습과 기억은 뉴런들의 일정한 연결방식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러한 캔들의 연구 덕분에 뇌와 기억의 원리에 대한 연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과학자들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저장된 기억이 다시 언어로 재구성되는 과정이나 복잡한 문법과 수사법을 활용해 감동적인 문학을 만들어내는 창작의 원리, 혹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연산의 과정은, 여전히 신비 속에 머물고 있다.
뇌는 곧 마음인가?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그 남자네 집’에서 주인공 여자는 우연히 뇌 속에 들어간 벌레로 인해 의식을 잃은 연인 앞에서 사랑의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자문한다. “그것이 다 벌레의 짓이었을까. 내 젊음을 황홀하게 빛낸 그 기쁨의 시간이 다 벌레의 선물이었을까.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우리들의 시간이고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벌레들의 시간이었을까….”
박완서의 소설이 던지고 있는 질문들은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질문과 같다. 인간의 마음은 뇌 속에 들어있는 걸까? 기쁨, 행복, 슬픔, 몰입… 이 모든 감정이 모두 다 뇌가 수행하는 연산에 불과하단 말인가? 뇌를 알게 되면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수천 년 혹은 수만 년 동안 인류가 끊임없이 던져왔던 질문이 뇌의 연구를 통해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도대체 우리는 누구란 말인가?
척추 꼭대기에 달랑 얹혀 있는 약 1.3kg의 주름투성이를 고결한 인간의 혼을 담는 그릇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해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19세기 말 철학자 니체는 ‘몸을 경멸하는 자들에게’라는 글에서 인간에 대한 연구를 인간 내부에서 찾는 현대과학을 예언한 바 있다.
“혼은 몸을 일컫는 또 다른 낱말일 뿐이다.
네 사고와 감정의 배후에는, 아는가,
자아라는 이름을 가진 힘찬 지배자가,
현자가 버티고 있다는 것을. 그는 네 몸 안에
머문다. 그는 바로 네 몸이다. 네 으뜸가는
지혜보다 더 뛰어난 이성이 몸 안에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초라함과 민망함은, 우리의 무지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뇌는 우리 자신의 뇌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경이로운 존재다.
뇌의 기억 용량: 요즘 출시되는 개인용 컴퓨터는 보통 5000억 바이트(500GB)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으로 알려진 미국 의회 도서관의 장서를 컴퓨터 데이터로 환산하면 약 32조 바이트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면 인간의 뇌의 기억 용량은 얼마나 될까? 인간의 뇌는 하나의 시냅스를 1 바이트로 가정하면 최대 1000조 바이트의 용량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