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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는 비린내가 나지 않고 맛이 담백해 어떤 요리에도 잘 어울리고, 한군데도 버릴 곳이 없는 생선이다. 고깃살로는 국, 탕, 찌개, 찜, 구이, 조림, 무침 등을 만들고, 말린 것을 그대로 술안주로 쓰거나 살을 갈아 어묵으로 만들기도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맛살도 명태살에 게맛을 내는 향을 첨가한 것이다. 암컷 뱃속에 들어 있는 알로는 명란젓을 만들고, 수컷의 정액 덩어리인 이리로는 국을 끓인다. 내장으로는 창란젓, 아가미로는 귀세미젓을 담근다. 간으로는 국을 끓이거나 기름을 뽑는다. 심지어 눈알까지도 구워서 술안주로 쓴다.
“함경도 명천(明川) 지방에 태(太)라는 성을 지닌 어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 어부가 어떤 물고기를 낚아 관찰사에게 바쳤다. 관찰사가 이를 맛있게 먹고 그 이름을 물었는데,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그러자 관찰사는 명천의 태가(哥)가 잡았으니 ‘명(明)’과 ‘태(太)’자를 각각 따서 명태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하니 모두가 이 물고기를 명태라고 부르게 됐다.” 이는 조선 후기의 이유원이 쓴 ‘임하필기’(林下筆記)에 나오는, 명태 이름에 얽힌 이야기다.
눈을 밝게 해 명태?
눈을 밝게(明) 한다고 해 명태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과거 함경도 내륙 삼수갑산 지역의 농민들 중에는 영양 부족으로 눈이 침침해지는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겨울 동안 가까운 어촌을 찾아 명태 간을 먹고 눈이 다시 밝아져 돌아가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옛사람들도 명태 간에 눈에 좋은 비타민A가 풍부하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들은 민간에서 떠돌던 속설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명태의 ‘태’는 민태, 양태(장태, 망태로도 불림), 누렁태(황복) 등의 이름에서 나타나듯 물고기를 뜻할 가능성이 높다.
동족까지 잡아먹는 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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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는 우리나라 동해를 비롯해 일본 북부, 오호츠크해, 베링해, 알래스카에 걸친 북태평양해역에 주로 서식한다. 찬물을 좋아하는 냉수성 어류로서 수온 1~10℃ 정도의 차가운 바다에서 살아가는데, 보통 수심 50~450m에서 생활한다. 수컷은 중층에서, 암컷은 저층에서 떼를 지어 다니는 경우가 많다.
명태는 계절에 따라 적당한 수온을 찾아 깊은 곳에서 얕은 곳을 오가는 습성이 있다. 동해의 경우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얕은 연안 쪽으로 이동하고 봄부터 여름까지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식의 회유를 반복한다. 성숙한 명태는 12월~이듬해 4월에 걸쳐 내만(바다가 육지 쪽으로 깊숙이 들어온 곳)에서 수심이 얕은 곳으로 몰려와 모래와 진흙 바닥에 알을 낳는다. 암컷 한 마리가 25만~100만 개의 알을 낳으며, 알은 바닷물에 떠다니다 9~28일이 지난 뒤에 부화한다. 부화한 새끼는 7cm 크기로 자랄 때까지 산란장 부근에 머물다가 여름이 되면 깊은 곳으로 이동한다. 태어난 지 3~4년이 지나 몸길이가 30cm에 이르면 어미가 되고, 8~9년 뒤에는 몸길이가 50cm까지 자란다.
명태의 산란장은 한마디로 전쟁터다. 명태는 식성이 게걸스럽다. 멸치, 정어리, 도루묵, 오징어 등을 닥치는 대로 사냥하고, 심지어 자신의 동족까지 잡아먹는다. 명태 떼가 몰려오면 명태의 천적들도 뒤를 따른다. 곱상어와 대구가 몰려와서 명태를 사냥하고, 임연수어는 알에서 부화한 명태 새끼들을 먹어 치워 산란장 일대는 한바탕 난장판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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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가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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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를 국민생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본초강목’을 포함한 중국 문헌에는 명태가 기록돼 있지 않다. 일본에서는 명태를 대구의 한 종류로 보고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서양에서도 명태를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았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명태를 최고의 생선으로 대접하며 엄청난 양을 소비해왔다. 맛있기로는 청어, 많기로는 명태라는 옛말이 있다. 개가 물고 다닐 정도로 흔한 생선이었다는 말도 전해 온다. 서해 조기, 동해 명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명태의 어획량은 대단했다. 개체 수도 많은데다 떼를 지어 모여 다니는 습성 탓에 한꺼번에 대량으로 어획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강원 고성군 거진항. 쿠릴해류와 북한 해류가 만나는 천혜의 어장이었던 이곳에서도 명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1970, 1980년대를 고비로 명태의 생산량은 급감해 이젠 출어하는 어선을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가 먹는 명태는 거의 수입산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러시아산과 일본산이 시장을 점령한 지 오래고, 이마저도 생산량이 줄면서 명태는 ‘금태’가 돼 버렸다. 명태 새끼까지 무차별적으로 잡아 수가 줄었을 뿐 아니라 지구온난화로 바다의 수온이 올라가자 찬물을 좋아하는 명태가 동해를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1871년에 쓴 ‘임하필기’에는 함경도 관찰사가 “명태는 300년 동안 우리나라의 보물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대목이 실려 있다. 그런데 300년이 아니라 200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보물은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아니 명태가 금태가 됐으니 그 예언이 실현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물이 터질듯 명태가 올라오고, 선창가 생태집들이 전국 각지에서 온 손님들로 북적일 날이 과연 다시 돌아올까.
등지느러미는 3개가 있고 뒷지느러미는 2개가 있으며, 꼬리지느러미는 가장자리가 수직으로 뻗어 있다.
편집자주
우리 밥상에 오르는 생선. 먹기만 할 뿐 그 생태는 잘 모른다. 이번 호부터 밥상에서 만날 수 있는 물고기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황태, 북어, 노가리는 명태의 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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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잡은 명태는 생태라 불리며, 왜태, 애태, 노가리는 명태 새끼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생태는 잡히는 시기에 따라서 동태, 춘태, 동지바지, 섣달바지, 은어바지, 막물태 등으로 나뉜다. 은어바지는 은어(함경도에서는 도루묵을 은어라 부른다) 떼가 몰려올 때 이를 잡아먹기 위해 명태 떼가 뒤를 따른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명태는 잡는 방식에 따라 망태(그물로 잡은 것)와 조태(낚시로 잡은 것)로, 잡히는 장소에 따라 강태(강원도에서 잡은 것), 간태(강원 고성군 간성에서 잡은 것), 원양태(원양에서 잡은 것), 지방태(근해에서 잡은 것)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가공방식에 따라 붙여진 이름도 다양하다. 생태를 말린 것을 북어, 딱딱하게 마른 것을 깡태, 말릴 때 땅에 떨어진 것을 낙태, 얼리고 녹이는 과정(동결건조)을 반복해 말린 것을 황태라 한다.
겨울철 대량으로 잡아 올린 명태를 해안에 설치된 덕장(건조장)에 걸쳐 놓으면 밤 동안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꽁꽁 얼었다가 낮엔 따스한 햇볕을 받아 녹는 과정을 반복하며 보기 좋은 황금빛으로 말라간다. 수분이 증발하거나 얼면서 효소가 작용하지 못하니 상하지도 않으며 황태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때 근육 사이에 들어 있던 수분이 쐐기 역할을 해 살이 솜털처럼 부슬부슬하게 일어나 먹기 좋은 상태가 된다. 그래서 황태는 북어처럼 애써 두들겨 팰 필요가 없다. 황태는 생김새가 더덕과 비슷하다고 해서 더덕북어라고도 불린다. 또 반쯤 말려 서너 마리씩 끈으로 코를 꿰어 놓은 것은 코다리, 머리를 떼어 말린 것을 무두태라고 부른다.
이태원 교사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세포생물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우리나라 전통 문헌에 나타난 과학 관련 내용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조선 후기 학자 정약전의 어류학서 ‘자산어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기행문식으로 정리한 ‘현산어보를 찾아서1~5’(청어람미디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