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속담에 ‘새 둥지를 만드는 일 빼고 인간이 못할 일은 없다’는 말이 있다. 새 둥지가 그만큼 정교하다는 뜻이다. 프랑스 새는 얼마나 똑똑하길래 이런 속담이 생긴 걸까. 우리나라에서는 머리 나쁜 사람을 흔히 새에 비유하지 않는가.
이런 질문을 출발점으로 새 둥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새에 대한 편견이 여지없이 깨졌다.
새 둥지는 새가 알을 낳아서 부화시키고 새끼를 기르는 공간이다. 새들은 천적에게 들키지 않을 만한 은밀한 곳에 그들만의 방법으로 둥지를 짓는다. 교묘한 위장술은 필수다.
사람이 자신의 사생활이 알려지는 것을 싫어하듯 새도 사생활이 노출되는 일을 극도로 꺼린다. 아직까지 새의 둥지만을 다룬 자연다큐멘터리가 제작된 적이 없다는 사실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야생에서 사는 새들의 둥지를 발견하거나 새가 둥지를 짓는 과정을 지켜보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야생 새들은 둥지를 짓는 과정이 천적에게 노출되면 그 둥지를 포기하고 다른 장소에 둥지를 다시 짓는다.
새 둥지는 새의 종류만큼 다양하다. 까치, 백로는 나무 위에 둥지를 짓고, 개개비사촌과 붉은머리오목눈이는 갈대 같은 식물 줄기나 가는 나뭇가지 사이에 짓는다. 딱따구리나 물총새는 나무나 흙에 구멍을 파서 짓고, 제비는 벽에 짓는다. 물떼새나 쇠제비갈매기는 땅 위에, 그리고 물닭이나 뿔논병아리는 물 위에 둥지를 짓는다.
뛰어난 건축가이자 위장술의 달인 새. 그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엿보자.
최고급 빌라, 까치 둥지?
새 둥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번식하는 동안 알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이다. 대부분 새 둥지는 겉은 나뭇가지, 나무껍질, 나뭇잎, 식물줄기 그리고 이끼류를 이용해서 위장하고 안쪽은 알이나 새끼들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가는 식물뿌리, 부드러운 나뭇잎, 동물의 털이나 깃털, 실 등을 깔아서 보온을 하고 습도를 유지한다.
제비나 귀제비의 둥지를 보면 새들이 훌륭한 건축가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제비는 주로 인가의 처마 밑이나 대문 구석에 둥지를 튼다. 건축 재료로 지푸라기나 식물 줄기를 이용하는데 진흙을 섞어 사용한다.
진흙만 사용할 경우 흙이 마르면 둥지가 갈라지고 틈이 생기지만 볏짚을 넣으면 흙과 흙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견고하다. 우리나라 전통 황토집을 지을 때 황토에 볏짚을 섞어서 재료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쩌면 우리 조상들이 제비의 건축기술을 모방해서 황토집을 지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제비보다 조금 크고 턱 아래에 호랑무늬가 있는 귀제비의 둥지는 더 특이하다. 제비보다 지푸라기를 덜 사용하는 대신 둥지 입구에 길이가 15cm쯤 되는 긴 터널을 만든다. 물론 천적으로부터 알과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터널 입구는 어미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아서 다른 종류의 새나 천적이 감히 들어갈 엄두를 못 낸다. 둥지 안쪽은 짚이나 부드러운 식물의 줄기를 깔거나 다른 동물의 깃털을 깔아서 폭신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제비와 귀제비의 집도 훌륭하지만, 새 전문가들이 최고로 꼽는 집은 까치집이다. 겉에서 보면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대충 엮어 놓은 것 같은 까치 둥지를 사람이 직접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까치가 둥지를 하나 만드는데 사용하는 나뭇가지는 2000여 개. 둥지 하나를 완성하는데 짧게는 1개월, 길게는 3개월 정도 걸린다.
대부분 사람들은 까치 둥지도 보통 새 둥지처럼 접시나 그릇처럼 생겼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높은 나무 위에 지은 까치 둥지를 위에서 보면 구형에 가깝다. 까지 둥지는 이중구조로 돼 있는데 안쪽에 알을 낳는 내부둥지가 있고 바깥쪽에 나뭇가지를 엮어 바람이나 비를 막는다.
특이한 점은 바람이 센 곳일수록 둥지의 모양이 유선형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바람이 세게 불면 둥지가 많이 흔들리기 때문에 최대한 바람의 영향을 적게 받기 위해서다. 어느 조류학자의 말을 빌자면 까치 둥지는 ‘새 둥지계의 최고급 빌라’다.
허술한 집, 어미 새의 연기력으로 보완
물닭과 쇠물닭, 뿔논병아리는 물 위에 둥지를 짓는다. 우포늪 같은 습지에 주로 서식하는 물닭은 물에 잘 뜨는 부들 같은 수생식물의 줄기를 둥지의 재료로 사용한다. 부들의 줄기에는 수많은 공기 주머니가 있어서 비가 와서 물의 수위가 올라가도 둥지도 같이 떠올라 안전하다. 물닭의 둥지를 자세히 보면 둥근 접시모양 집 한쪽에 부들의 줄기를 모아서 만든 현관이 있다. 사람도 집에 들어가기 전에 현관에서 신발에 묻은 흙을 털거나 비에 젖은 옷을 털듯이 물닭도 자기 집에 들어가기 전에 이곳에서 몸에 젖은 물기를 완전히 털어 둥지를 항상 쾌적하게 유지한다.
꼬마물떼새, 흰목물떼새, 쇠제비갈매기 같은 종류의 새는 자갈이나 모래 위에 둥지를 짓는다. 아니, 짓는다기보다는 모래나 자갈을 움푹하게 파서 작은 구덩이를 만든다고 하는 편이 나을 정도로 이 새들의 집은 엉성하다. 하지만 둥지를 찾는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알이 보호색을 띄고 있어서 모래나 자갈과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흰물떼새는 천적으로부터 알을 보호하기 위해 ‘의태행동’을 한다. 어미는 둥지를 들락날락 거리며 수시로 알을 품는다. 그런데 물떼새를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알을 품는 척하면서 이곳저곳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을 반복한다. 알을 품는다고 생각하고 가보면 그냥 모래바닥이다. 속은 것이다. 하지만 돌부처처럼 한자리에 오랫동안 앉아 계속 지켜보고 있으면 결국 진짜 알을 품기 위해 둥지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만약 둥지를 천적에게 들키면 어미는 둥지 근처에 나타난 천적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기 위해 다리를 절뚝거리거나 날개가 부러진 듯 퍼덕거린다. 천적이 어미를 따라가다가 둥지에서 멀어지면 물떼새는 언제 아팠느냐는 듯 휙 날아간다.
털북숭이 새끼와 벌거숭이 새끼
조류 생태학자들에게 새 둥지는 새의 다양한 생태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최근에는 새 둥지가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새끼 새의 본능이나 신체 발달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관심을 끌고 있다.
새끼 새는 어미가 먹이를 물고 오면 본능적으로 입을 벌려 먹이를 재촉한다. 눈도 채 뜨지 못할 정도로 어린 새끼 새가 어미가 먹이를 물고 왔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차릴까.
둥지의 형태에 따라 새끼 새의 민감한 감각도 달라진다. 나무 몸통 속에 구멍을 파고 둥지를 트는 새의 새끼는 어미가 입구에 내려앉을 때 순간적으로 입구가 어두워지는 것을 알아챈다. 또 나뭇가지 위에 둥지를 트는 새의 새끼는 어미가 가지에 앉을 때 일으키는 나뭇가지의 진동으로 어미가 왔다는 사실을 안다.
새 둥지의 형태가 새끼 새의 발육과 관계가 있다는 설명도 있다. 알에서 갓 태어난 새끼 새는 새의 종류에 따라 털이 난 채로 태어나는 새도 있고 벌거숭이로 태어나는 새도 있다. 이런 차이를 ‘조숙성’(早熟性)이라고 한다. 나무 위 높은 곳이나 풀 숲 둥지를 짓는 새들은 알에서 깨어나면 벌거숭이인 경우가 많다. 이런 새끼들에게 어미는 부지런히 먹이를 잡아다 먹인다. 이를 ‘육추’(育雛)라고 하는데 보통 10일에서 길면 2달까지 먹이를 준다. 부화한 지 이틀 정도 지나면 솜털처럼 부드러운 털이 듬성듬성 나기 시작한다.
반면 모래나 자갈 위에 알을 낳는 물떼새나 물 위에 둥지를 짓는 물닭은 알에서 깨어났을 때 이미 온 몸에 털이 나 있다. 처음에는 털이 축축하게 젖어있지만, 털이 마르면 보통 하루 안에 어미와 함께 둥지를 떠난다. 조류학자들은 새집의 위치와 조숙성의 관계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나무 꼭대기나 절벽에 있는 새집은 천적이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새끼는 보금자리에서 어미의 보호를 충분히 받으며 살아도 된다. 굳이 털이 빨리 나서 둥지를 떠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반면 모래나 자갈, 물 위에 둥지를 짓는 새는 새집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되도록 빨리 둥지를 떠나야 한다. 따라서 새끼는 알 속에서 깃털을 미리 갖춘다.
새들의 둥지와 조숙성 가운데 무엇이 먼저인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둥지가 안전하기 때문에 벌거숭이로 오랫동안 보호받으며 살게 됐는지, 반대로 벌거숭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둥지를 안전한 곳에 짓게 됐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새에게 둥지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에서 새 둥지 전문가는 찾기 어렵다. 외국에도 새 둥지 전문가가 많지 않은 건 마찬가지지만, 지어진 장소나 재료, 형태에 따라 새 둥지를 분류하는 기초적인 작업은 잘 돼 있는 편이다.
이웃 나라 일본의 야마시나 조류연구소에는 새 둥지만 체계적으로 모아 분류한 전시물이 따로 있고, ‘세계의 새 둥지’라는 책을 쓴 스즈끼 마모루 같은 학자는 ‘새 둥지 전문가’라는 명함을 갖고 활동할 정도다.
새 둥지는 찾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잘 볼 수 없기 때문에 연구하는 사람이 적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새 둥지는 새의 사생활을 모두 보여주는 귀중한 연구 대상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조류에 대한 연구가 새의 종을 분류하고 확인하는 분야에 한정돼 있었지만, 앞으로 새의 생태를 섬세하게 보여주는 새로운 연구 방식이 나오길 기대한다.
진정한 기다림의 미학
“자연다큐멘터리 PD로 산다는 것은?”
언젠가 KBS환경스페셜에서 자연다큐멘터리만 10년 넘게 만들어온 선배에게 자연다큐멘터리 PD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온 답. “동물의 눈높이로 사는 것이다.” 선배의 답은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졌다. 동물의 눈높이는 무엇이란 말인가.
동물은 본능대로 산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때가 되면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키운다. 배가 부르면 먹이가 있어도 욕심내지 않고 자신의 새끼가 위험하면 목숨을 걸고 방어한다. 동물의 이런 생태적 특성과 행동양식을 정확히 알고 이를 가감 없이 포착할 수 있는 시각이 바로 동물의 눈높이다. 그 다음은? 바로 ‘기다림’이다.
지난 여름 우포늪에서 물닭 둥지의 알을 새벽 6시부터 지켜본 적이 있다. 두 사람이 겨우 탈 만한 작은 쪽배를 늪 한가운데 세워놓고 35℃에 이르는 후텁지근한 폭염 속에서 물닭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기를 마냥 기다려야 했다.
11시간이 지난 오후 5시쯤, 알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순간만큼은 줄줄 흘러내리는 땀도, 까맣게 타다 못해 익어버린 팔뚝도,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모기에게 물린 자국의 가려움도 잊는다.
알에서 새끼가 곧 나올 것 같은데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고,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고 카메라도 준비 안했는데 눈앞에서 깨어나는 경우도 있다. 자연의 시계는 빠른 듯 하면서도 느리고, 느린 듯 하면서도 빠르다. 하지만 거기에는 나름의 법칙이 있다. 자연의 시계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새는 적당한 온도와 습도, 빛의 양 같은 자연조건이 갖춰지면 언제든지 깨어난다. 새는 본능으로 그걸 알지만, 그런 능력이 없는 사람이 이런 장면을 지켜보려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야생에 내일은 없다. 다만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자연다큐멘터리 PD들은 자연 속에서 ‘기다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질문을 출발점으로 새 둥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새에 대한 편견이 여지없이 깨졌다.
새 둥지는 새가 알을 낳아서 부화시키고 새끼를 기르는 공간이다. 새들은 천적에게 들키지 않을 만한 은밀한 곳에 그들만의 방법으로 둥지를 짓는다. 교묘한 위장술은 필수다.
사람이 자신의 사생활이 알려지는 것을 싫어하듯 새도 사생활이 노출되는 일을 극도로 꺼린다. 아직까지 새의 둥지만을 다룬 자연다큐멘터리가 제작된 적이 없다는 사실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야생에서 사는 새들의 둥지를 발견하거나 새가 둥지를 짓는 과정을 지켜보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야생 새들은 둥지를 짓는 과정이 천적에게 노출되면 그 둥지를 포기하고 다른 장소에 둥지를 다시 짓는다.
새 둥지는 새의 종류만큼 다양하다. 까치, 백로는 나무 위에 둥지를 짓고, 개개비사촌과 붉은머리오목눈이는 갈대 같은 식물 줄기나 가는 나뭇가지 사이에 짓는다. 딱따구리나 물총새는 나무나 흙에 구멍을 파서 짓고, 제비는 벽에 짓는다. 물떼새나 쇠제비갈매기는 땅 위에, 그리고 물닭이나 뿔논병아리는 물 위에 둥지를 짓는다.
뛰어난 건축가이자 위장술의 달인 새. 그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엿보자.
최고급 빌라, 까치 둥지?
새 둥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번식하는 동안 알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이다. 대부분 새 둥지는 겉은 나뭇가지, 나무껍질, 나뭇잎, 식물줄기 그리고 이끼류를 이용해서 위장하고 안쪽은 알이나 새끼들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가는 식물뿌리, 부드러운 나뭇잎, 동물의 털이나 깃털, 실 등을 깔아서 보온을 하고 습도를 유지한다.
제비나 귀제비의 둥지를 보면 새들이 훌륭한 건축가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제비는 주로 인가의 처마 밑이나 대문 구석에 둥지를 튼다. 건축 재료로 지푸라기나 식물 줄기를 이용하는데 진흙을 섞어 사용한다.
진흙만 사용할 경우 흙이 마르면 둥지가 갈라지고 틈이 생기지만 볏짚을 넣으면 흙과 흙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견고하다. 우리나라 전통 황토집을 지을 때 황토에 볏짚을 섞어서 재료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쩌면 우리 조상들이 제비의 건축기술을 모방해서 황토집을 지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제비보다 조금 크고 턱 아래에 호랑무늬가 있는 귀제비의 둥지는 더 특이하다. 제비보다 지푸라기를 덜 사용하는 대신 둥지 입구에 길이가 15cm쯤 되는 긴 터널을 만든다. 물론 천적으로부터 알과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터널 입구는 어미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아서 다른 종류의 새나 천적이 감히 들어갈 엄두를 못 낸다. 둥지 안쪽은 짚이나 부드러운 식물의 줄기를 깔거나 다른 동물의 깃털을 깔아서 폭신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제비와 귀제비의 집도 훌륭하지만, 새 전문가들이 최고로 꼽는 집은 까치집이다. 겉에서 보면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대충 엮어 놓은 것 같은 까치 둥지를 사람이 직접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까치가 둥지를 하나 만드는데 사용하는 나뭇가지는 2000여 개. 둥지 하나를 완성하는데 짧게는 1개월, 길게는 3개월 정도 걸린다.
대부분 사람들은 까치 둥지도 보통 새 둥지처럼 접시나 그릇처럼 생겼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높은 나무 위에 지은 까치 둥지를 위에서 보면 구형에 가깝다. 까지 둥지는 이중구조로 돼 있는데 안쪽에 알을 낳는 내부둥지가 있고 바깥쪽에 나뭇가지를 엮어 바람이나 비를 막는다.
특이한 점은 바람이 센 곳일수록 둥지의 모양이 유선형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바람이 세게 불면 둥지가 많이 흔들리기 때문에 최대한 바람의 영향을 적게 받기 위해서다. 어느 조류학자의 말을 빌자면 까치 둥지는 ‘새 둥지계의 최고급 빌라’다.
허술한 집, 어미 새의 연기력으로 보완
물닭과 쇠물닭, 뿔논병아리는 물 위에 둥지를 짓는다. 우포늪 같은 습지에 주로 서식하는 물닭은 물에 잘 뜨는 부들 같은 수생식물의 줄기를 둥지의 재료로 사용한다. 부들의 줄기에는 수많은 공기 주머니가 있어서 비가 와서 물의 수위가 올라가도 둥지도 같이 떠올라 안전하다. 물닭의 둥지를 자세히 보면 둥근 접시모양 집 한쪽에 부들의 줄기를 모아서 만든 현관이 있다. 사람도 집에 들어가기 전에 현관에서 신발에 묻은 흙을 털거나 비에 젖은 옷을 털듯이 물닭도 자기 집에 들어가기 전에 이곳에서 몸에 젖은 물기를 완전히 털어 둥지를 항상 쾌적하게 유지한다.
꼬마물떼새, 흰목물떼새, 쇠제비갈매기 같은 종류의 새는 자갈이나 모래 위에 둥지를 짓는다. 아니, 짓는다기보다는 모래나 자갈을 움푹하게 파서 작은 구덩이를 만든다고 하는 편이 나을 정도로 이 새들의 집은 엉성하다. 하지만 둥지를 찾는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알이 보호색을 띄고 있어서 모래나 자갈과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흰물떼새는 천적으로부터 알을 보호하기 위해 ‘의태행동’을 한다. 어미는 둥지를 들락날락 거리며 수시로 알을 품는다. 그런데 물떼새를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알을 품는 척하면서 이곳저곳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을 반복한다. 알을 품는다고 생각하고 가보면 그냥 모래바닥이다. 속은 것이다. 하지만 돌부처처럼 한자리에 오랫동안 앉아 계속 지켜보고 있으면 결국 진짜 알을 품기 위해 둥지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만약 둥지를 천적에게 들키면 어미는 둥지 근처에 나타난 천적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기 위해 다리를 절뚝거리거나 날개가 부러진 듯 퍼덕거린다. 천적이 어미를 따라가다가 둥지에서 멀어지면 물떼새는 언제 아팠느냐는 듯 휙 날아간다.
털북숭이 새끼와 벌거숭이 새끼
조류 생태학자들에게 새 둥지는 새의 다양한 생태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최근에는 새 둥지가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새끼 새의 본능이나 신체 발달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관심을 끌고 있다.
새끼 새는 어미가 먹이를 물고 오면 본능적으로 입을 벌려 먹이를 재촉한다. 눈도 채 뜨지 못할 정도로 어린 새끼 새가 어미가 먹이를 물고 왔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차릴까.
둥지의 형태에 따라 새끼 새의 민감한 감각도 달라진다. 나무 몸통 속에 구멍을 파고 둥지를 트는 새의 새끼는 어미가 입구에 내려앉을 때 순간적으로 입구가 어두워지는 것을 알아챈다. 또 나뭇가지 위에 둥지를 트는 새의 새끼는 어미가 가지에 앉을 때 일으키는 나뭇가지의 진동으로 어미가 왔다는 사실을 안다.
새 둥지의 형태가 새끼 새의 발육과 관계가 있다는 설명도 있다. 알에서 갓 태어난 새끼 새는 새의 종류에 따라 털이 난 채로 태어나는 새도 있고 벌거숭이로 태어나는 새도 있다. 이런 차이를 ‘조숙성’(早熟性)이라고 한다. 나무 위 높은 곳이나 풀 숲 둥지를 짓는 새들은 알에서 깨어나면 벌거숭이인 경우가 많다. 이런 새끼들에게 어미는 부지런히 먹이를 잡아다 먹인다. 이를 ‘육추’(育雛)라고 하는데 보통 10일에서 길면 2달까지 먹이를 준다. 부화한 지 이틀 정도 지나면 솜털처럼 부드러운 털이 듬성듬성 나기 시작한다.
반면 모래나 자갈 위에 알을 낳는 물떼새나 물 위에 둥지를 짓는 물닭은 알에서 깨어났을 때 이미 온 몸에 털이 나 있다. 처음에는 털이 축축하게 젖어있지만, 털이 마르면 보통 하루 안에 어미와 함께 둥지를 떠난다. 조류학자들은 새집의 위치와 조숙성의 관계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나무 꼭대기나 절벽에 있는 새집은 천적이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새끼는 보금자리에서 어미의 보호를 충분히 받으며 살아도 된다. 굳이 털이 빨리 나서 둥지를 떠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반면 모래나 자갈, 물 위에 둥지를 짓는 새는 새집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되도록 빨리 둥지를 떠나야 한다. 따라서 새끼는 알 속에서 깃털을 미리 갖춘다.
새들의 둥지와 조숙성 가운데 무엇이 먼저인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둥지가 안전하기 때문에 벌거숭이로 오랫동안 보호받으며 살게 됐는지, 반대로 벌거숭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둥지를 안전한 곳에 짓게 됐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새에게 둥지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에서 새 둥지 전문가는 찾기 어렵다. 외국에도 새 둥지 전문가가 많지 않은 건 마찬가지지만, 지어진 장소나 재료, 형태에 따라 새 둥지를 분류하는 기초적인 작업은 잘 돼 있는 편이다.
이웃 나라 일본의 야마시나 조류연구소에는 새 둥지만 체계적으로 모아 분류한 전시물이 따로 있고, ‘세계의 새 둥지’라는 책을 쓴 스즈끼 마모루 같은 학자는 ‘새 둥지 전문가’라는 명함을 갖고 활동할 정도다.
새 둥지는 찾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잘 볼 수 없기 때문에 연구하는 사람이 적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새 둥지는 새의 사생활을 모두 보여주는 귀중한 연구 대상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조류에 대한 연구가 새의 종을 분류하고 확인하는 분야에 한정돼 있었지만, 앞으로 새의 생태를 섬세하게 보여주는 새로운 연구 방식이 나오길 기대한다.
진정한 기다림의 미학
“자연다큐멘터리 PD로 산다는 것은?”
언젠가 KBS환경스페셜에서 자연다큐멘터리만 10년 넘게 만들어온 선배에게 자연다큐멘터리 PD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온 답. “동물의 눈높이로 사는 것이다.” 선배의 답은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졌다. 동물의 눈높이는 무엇이란 말인가.
동물은 본능대로 산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때가 되면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키운다. 배가 부르면 먹이가 있어도 욕심내지 않고 자신의 새끼가 위험하면 목숨을 걸고 방어한다. 동물의 이런 생태적 특성과 행동양식을 정확히 알고 이를 가감 없이 포착할 수 있는 시각이 바로 동물의 눈높이다. 그 다음은? 바로 ‘기다림’이다.
지난 여름 우포늪에서 물닭 둥지의 알을 새벽 6시부터 지켜본 적이 있다. 두 사람이 겨우 탈 만한 작은 쪽배를 늪 한가운데 세워놓고 35℃에 이르는 후텁지근한 폭염 속에서 물닭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기를 마냥 기다려야 했다.
11시간이 지난 오후 5시쯤, 알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순간만큼은 줄줄 흘러내리는 땀도, 까맣게 타다 못해 익어버린 팔뚝도,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모기에게 물린 자국의 가려움도 잊는다.
알에서 새끼가 곧 나올 것 같은데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고,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고 카메라도 준비 안했는데 눈앞에서 깨어나는 경우도 있다. 자연의 시계는 빠른 듯 하면서도 느리고, 느린 듯 하면서도 빠르다. 하지만 거기에는 나름의 법칙이 있다. 자연의 시계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새는 적당한 온도와 습도, 빛의 양 같은 자연조건이 갖춰지면 언제든지 깨어난다. 새는 본능으로 그걸 알지만, 그런 능력이 없는 사람이 이런 장면을 지켜보려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야생에 내일은 없다. 다만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자연다큐멘터리 PD들은 자연 속에서 ‘기다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