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1989년 단 한권의 시집을 남기고 서른 살의 나이로 요절한 시인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의 마지막 부분이다.
1980년대 암울했던 시대상황에서 방관자일 수밖에 없는 작가 자신의 두려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언뜻 보면 사람의 머리를 찍은 평범한 X선 사진 같지만, 사람의 입 속에는 검은 잎이 들어있다. 시대상에 대한 시인의 처절한 고민을 흑백의 X선 사진에 고스란히 녹인 이 작품의 작가는 영동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정태섭 교수다.
“2006년 가을 쯤 ‘입속의 검은 잎’을 소개하는 텔레비전 방송을 보다가 마음이 요동치는 걸 느꼈어요. 순간 이걸 X선 영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마침 부인이 금속으로 만든 나뭇잎 모양의 브로치를 갖고 있길래 그걸 가져다 입에 물고 X선 영상을 찍으니 실제로 입속에 검은 색 잎 모양이 나타났다. 죽음을 상징하는 사람의 해골과 그 입 안을 장악하고 있는 검은 잎…. 이렇게 기형도 시인의 시는 20년 만에 사진으로 다시 태어났다.
정 교수는 미술 교육을 정식으로 받은 적은 없지만, X선 영상 예술로 이미 어엿한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2007년 3월과 5월, 두 번의 단체전에 초청을 받아 작품을 전시했고, 올해 초 ‘X-선 영상으로 본 또 다른 내면의 예술 세계’라는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정 교수에게 X선 영상 장비는 질환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의료기기일 뿐만 아니라 예술에 대한 열정을 불태울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붓’인 셈이다.
창의성 원천은 아버지의 ‘다빈치교육’
서울 강남에 있는 영동세브란스 병원 2층. 정 교수의 연구실은 의사의 방인지 창고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었다. 천체망원경과 별자리 지도, 족히 100년은 돼 보이는 여러 대의 구식 현미경, 배터리, 전선, 진공관까지…. 고물상이 따로 없다.
“이건 미국 남북전쟁에서 쓰던 망원경이에요. 그리고 이건 1865년에 사용했던 현미경이고…. 아, 그리고 제 전공이 X선 진단이잖아요. 이건 1898년 X선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에 사용되던 X선 진공관이에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정 교수의 수집품 역사를 듣다보니 그의 취미는 고화폐수집에서 천체관측, 알공예 등 20가지가 넘었다. X선 영상 예술은 정 교수의 수많은 관심 분야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다.
“잡동사니로 보이지만 이 물건들이 바로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X선 영상 예술을 시작하게 한 창의성과 감성의 원천이에요.”
정 교수가 끊임없이 모으고, 만드는 취미를 갖게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공예전문대를 졸업한 아버지는 해방 후 부산 공업고등학교 교장을 지냈다. 예술적 감수성과 손재주가 뛰어났던 아버지는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좋아했다.
“아버지는 항상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라고 가르치셨어요.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다빈치에 대한 여러 종류의 책을 사주셨지요. 책에 나온 발명품 가운데 신기한 게 어찌나 많던지….”
정 교수는 5학년 때 아버지가 서울 성동공업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겨 전학을 갔다. 서울에 올라온 정 교수가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낸 곳은 청계천이었다. 전자부품부터 골동품까지 없는 게 없었던 그곳은 정 교수에게 다빈치의 꿈을 키우는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특히 그의 마음을 뺏은 것은 연희전문대 류자후 교수가 쓴 ‘조선화폐고’ 라는 책이었다. 옛날 화폐에 그려진 고풍스런 그림과 인물,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역사를 찾는 매력에 푹 빠진 그는 그때부터 ‘한국화폐를 집대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닥치는 대로 화폐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학생에게 화폐수집은 돈이 많이 드는 취미였다. 그는 뛰어난 손재주를 이용해 돈을 벌기로 결심했고, 그래서 시작한 게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부품을 사다가 전축과 라디오를 만들어 파는 일이었다. 이때 20대가 넘는 라디오를 만들어 팔아 모은 돈으로 취미를 가꾸던 추억은 지금도 소중하단다.
엔지니어 피가 흐르는 의대생
대학에 진학할 때가 되자 정 교수는 공대에 진학하고 싶었다. 하지만 “집안에 의사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아버지의 권유로 의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의대 공부는 재미가 없었다. 외울 게 너무 많았고 실수가 인정 안 된다는 점이 갑갑했다.
그는 의대 공부를 하면서도 혼자 전자제품 만지는 일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그의 손재주를 눈여겨 본 선배 한명이 그를 연극반에 데리고 갔다. 기술 담당을 맡기려는 심산이었다.
“6년 동안 연기는 한 번도 안하고 조명장치만 담당하며 ‘정가이버’란 별명을 얻었어요. 무의촌 봉사에 가서도 환자는 안 보고 고장난 발전기나 라디오만 고쳤지요.”
엔지니어의 피가 흐르는 의대생이었던 그는 본과 3학년 때 드디어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휘할 만한 대상을 찾았다. 병원 실습을 돌다가 방사선과를 들렀는데, X선 촬영장비가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 그는 망설임 없이 전공을 방사선과로 결정했다. X선 촬영장비나 CT, MRI 같은 첨단 기기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어 신이 났다.
그때부터 정 교수는 방사선과 의사로 충실한(?) 삶을 살았다. 특히 그의 손재주는 동맥의 일부가 꽈리처럼 부풀어 올라 터지는 동맥류 연구에 큰 역할을 했다. 동맥류가 어떻게 생기는지 알지 못하면 혈관의 방사선 영상을 아무리 들여다본들 병을 진단할 수 없다. 혈관이 터지기 직전 모습을 알면 조기 진단이 가능할 텐데 말이다.
고민 끝에 그는 혈관과 비슷한 재질의 고무 튜브를 이용해 혈관 모형을 직접 만들었다. 그리고 모형에 혈압과 똑같은 압력으로 공기를 불어넣어 혈관이 약해지는 과정을 그대로 재현했다. 덕분에 혈관이 터지기 전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알게 됐다.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혈관 모형 연구’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 뒤 연구에 재미를 붙인 그는 혈관 MRI영상을 이용해 혈관관련 질환을 조기 진단하는 연구에 매달렸다. 성과도 좋아 국제학술지에 관련 논문을 1년에 2~3편씩 실을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정 교수는 1992년 미국에서 교환 교수로 1년을 근무한 뒤 귀국해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 자리를 잡았다. 나름 환자 잘 고치고 논문 잘 쓰는 의사로 이름을 날렸지만, 일에 몰두하다보니 뭔가 중요한 걸 잊고 살았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가족이었다.
‘해골가족사진’에서 찾은 가족 간의 정
1995년 어느 날 정 교수는 아내와 두 아이를 병원에 초대해 이곳저곳 구경시켜주며 자신이 하는 일을 소개했다. 그리고 나란히 X선 ‘해골가족사진’을 찍었다. 으스스해 보일 법한 사진이었지만 그 동안 소홀했던 가족에 대한 남편과 아버지의 정이 묻어나는 특별한 사진이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뉴하트’에서 극중 김영희(박광정 분) 교수가 가족들을 미국으로 떠나보내며 찍었던 X선 가족사진은 바로 정 교수의 해골가족사진을 모델로 했다.
예술을 뜻하는 ‘art’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에서는 의술을 뜻했다. 그래서일까. 정 교수는 이때부터 차가운 X선 사진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기 시작했다.
콜레스테롤성 육아종이 발병한 뇌를 찍은 X선 사진에서 하트를 보았고, 수핵탈출증이 발생한 척추의 단면을 찍은 CT 영상에서는 미키마우스의 모습을 찾았다. 그리고 이를 짧은 에세이와 함께 학회지와 신문에 실었다.
“환자에게 고통을 주는 몸속 병변을 찍은 영상이지만, 그 안에는 항상 사랑과 희망이 숨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환자들이 영상을 보며 한 번 웃을 때 마다 용기를 얻는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정 교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물의 내면을 보여주는 X선 영상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고 이를 예술로 발전시키기로 했다. 뼈의 모습이 주는 혐오감을 줄이기 위해 X선 사진에 살갗을 덧입혀 생명력을 불어넣었고, 나뭇잎, 꽃, 과일의 내부 구조를 찍어 자연의 감춰진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의사에게 뛰어난 의술만큼 중요한 것이 따뜻한 감성입니다. 의사는 ‘병’을 다루기 전에 ‘사람’을 마주하기 때문이죠. X선 영상 예술은 차가운 의료영상에서 따뜻한 체온을 찾는 시도입니다.”
정 교수는 앞으로 의사와 엔터테이너의 역할을 맡는 ‘메디테이너’가 될 작정이다. 의사의 진정성이 담긴 그의 ‘별난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재치만발 돌발문답 3
진짜 다빈치가 되고 싶은 의사
1. 수집품의 가격은 비싸지 않은가?
보통 아내에게 수집품의 가격을 말할 때는 ‘0’을 하나 빼고 말한다. 그래도 비싸다고 구박할 때가 많다. 연구실이 수집품으로 가득 찬 이유로 집에 가져가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가격을 알고 싶으면 한번 떨어뜨려서 깨뜨려봐라. 그때 알려주겠다.
2. 작품의 모델은 누구인가?
X선 사진을 한번 찍을 때 노출되는 방사선 양은 년간 노출되는 자연방사선량의 수십분의 1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모델이 되길 꺼려하기 때문에 스스로 모델이 되거나 가족과 병원 동료의 도움을 받는다.
3.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나?
특정 직업을 얘기하기는 쉽지 않다. 워낙 하고 싶은 일이 많으니까 그렇다(웃음). 무엇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정말 다빈치처럼 특이하고 재미있고 창의성이 톡톡 튀는 일을 하고 싶다. 그런 삶을 살려면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태어나야 하나?
생생현장 따라잡기
‘X-선 영상으로 본 또 다른 내면의 예술 세계’
와인 애호가인 나는 입 안 가득 퍼지는 와인 향을 X선 영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궁리 끝에 와인 마시는 장면을 X선 영상으로 포착한 뒤 와인의 붉은 색을 덧입혀 와인의 향기와 취기가 머릿속, 아니 영혼까지 젖어드는 느낌을 살렸다.
‘와인과 영혼’. 이 작품은 지난 2007년 5월 경기도 양평군 ‘닥터박 갤러리’에서 열린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 개성&열정’ 단체전에 초청 전시됐다.
X선 영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물체 내부의 질감을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쉽게 찍을 수 있는 건 아니다. X선을 얼마나 조사하느냐에 따라 투과되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원하는 장면을 포착하기까지 시행착오는 기본이다.
최근에는 X선 영상이 주는 흑백의 무미건조함을 없애기 위해 사진을 합성하거나 색을 입히기도 한다. 이렇게 X선 사진을 찍은 뒤 포토샵 작업까지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보통 100시간 이상이 걸린다.
단체전에 두 번 초청을 받고 나니 슬슬 개인전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미술계에서 어떤 평가를 할 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전이 쉽지만은 않았다. 병원에서는 노련한 의사였지만, 미술계에서는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신참내기였을 뿐이었다.
전시회를 열기 위해 괜찮은 화랑을 돌아다니다가 퇴짜도 많이 맞았지만 끊임없이 문을 두드렸다. 결국 지난 1월 19일 ‘X-선 영상으로 본 또 다른 내면의 예술 세계’라는 주제로 작품 8점을 모아 개인전을 열었다.
미술계의 반응은 꽤 괜찮았다. 세계적으로 X선을 이용한 사진 작품이 여럿 있긴 하지만 내 작품처럼 적극적으로 작가의 감성을 표현한 경우는 없다는 평이었다.
앞으로도 작품 활동을 계속 할 계획이다. 내 작품이 무엇보다 의료용 영상에 대한 일반인의 거부감을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