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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경지에 오른 논문조작

황우석 이어 KAIST 김태국 교수도 '과학자 양심' 팔아

2월 29일자를 끝으로 자리를 물러난 미국의 저명한 주간과학저널 ‘사이언스’의 전(前) 편집장 도널드 케네디 박사는 그 다음호인 3월 7일자에 명예 편집장으로 신임 편집장 브루스 알버츠 박사와 공동명의의 짤막한 서신을 실었다. 서신의 제목은 ‘편집진의 유감 표명’.

2005년 7월 1일자에 실린 한 논문이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해당 연구자가 소속된 대학에서 통보받아 대학측과 공동으로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다. 문제의 연구자는 KAIST 생명과학과 김태국 교수. 케네디 박사는 이미 한국과학자들 때문에 큰 곤욕을 치룬바 있다. 과학계 최대 논문조작 사건인 황우석 교수팀 논문 2편이 ‘사이언스’에 실린 게 모두 그가 편집장으로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특히 사진조작 등 노골적인 부정이 저질러진 두 번째 논문이 실린 게 2005년 6월 17일자이므로 2005년 여름은 그에게 잊히지 않는 악몽으로 남지 않을까.
 

지난 3월 13일 KAIST는 김태국 교수 논문조작 관련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김 교수는 논문 조작을 시인했다.


‘MAGIC’은 조작의 마술?

‘사이언스’ 3월 14일자 뉴스란에는 2페이지에 걸쳐 김태국 교수팀의 논문조작에 대해 상세히 보고하고 있다. 그 전날인 3월 13일에는 KAIST에서 ‘김태국 교수 논문조작 관련 중간발표’가 있었다. 두 곳의 보고를 종합해보면 김 교수팀은 과학자의 양심으로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논문에 손을 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말 열심히 일했고 아주 능률적이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김 교수가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었던 실험실의 지도교수인 미국 하버드대 톰 매니아티스 교수는 이번 사건에 대해 “꿈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경악했다. 김 교수는 매니아티스 교수 실험실에 있을 때 STAT1이라는 신호전달단백질이 조절되는 메커니즘을 밝혀 1996년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성과가 인정돼 2002년 KAIST에 부임한 김 교수는 그 뒤 약물의 표적을 발굴하는 연구를 시작했고 2004년 바이오벤처 CGK를 세웠다. 예를 들어 어떤 약물이 정상 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암세포만 표적으로 삼는다면 부작용이 없는 항암제의 유력한 후보가 될 수 있다.

2005년 김 교수팀은 마침내 기발한 아이디어로 신약후보 물질을 걸러내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뒤이어 2006년에는 노화를 방지하는 물질인 CGK733을 만들어 이 기술을 이용해 CGK733이 작용하는 표적 단백질을 찾았다고 ‘네이처 케미컬 바이올로지’에 발표해 화제가 됐다.

김 교수팀이 개발한 마술 같은 방법의 이름은 바로 ‘MAGIC’, 즉 마술이다. 사실 MAGIC은 ‘MAGnetism-based Interaction Capture’(자성 기반 상호작용 포획)의 약자다. 이 기술은 자성나노입자를 이용해 살아있는 세포 안에서 신약의 표적 단백질을 찾는 방법이다. 원리도 기발한데다 과학자치고는 작명까지 멋지게 했다고 부러워했지만 결과적으로 김 교수팀의 ‘매직’은 딴 데 있었던 셈이다.

당시 실험과 논문 조작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사람은 교신저자인 김 교수와 제1저자인 원재준 박사(당시 박사과정), 제3저자인 이용원 씨(당시 박사과정)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원 박사는 현재 미국 LA 캘리포니아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고 이 씨는 김 교수가 세운 바이오벤처 CGK 기술이사로 아직 KAIST 생명과학과 박사과정 중에 있다. 원 박사는 KAIST 연구진실성위원회 산하 조사위원회에 출석해 ‘사이언스’ 논문에 기술한 특정 화합물의 표적 단백질은 날조해 만든 결과라고 시인했다. 2006년 ‘네이처 케미컬 바이올로지’에 낸 논문에서 언급한 신규 노화억제물질 CGK733도 허구라고 밝혔다. 김 교수 역시 이를 인정한 상태다. 다만 이용원 이사는 자신은 이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그 뒤 조사위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사이언스’처럼 일급 과학자가 논문을 심사하는 권위있는 저널에 어떻게 이처럼 터무니없는 조작결과가 실릴 수 있었을까. 하버드대에 있을 때 김 교수를 알게 됐다는 컬럼비아대 브랜트 스톡웰 박사는 “당시 논문을 읽으며 사실이라기에는 너무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여러 분야의 최신 기술이 융합돼 있기 때문에 이 모두를 꿰뚫고 있는 전문가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팀의 논문에는 생명과학과 나노과학, 화학과 약학의 최신 이론과 기술이 동원돼 있기 때문에 한 분야의 전문가가 조작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KAIST 조사위원회에서 실사를 했던 생명과학과 서연수 교수는 “황 교수팀 사건도 그랬지만 남들이 하기 어려운 연구 분야일 경우 조작유혹에 빠지는 것 같다”며 “실험을 재현할 실험실도 많지 않기 때문에 논문의 진위를 검증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말했다.
 

2001년‘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을 최근 철회해 논문조작 스캔들에 휩싸인 2004년 노벨상 수상자 린다 벅 박사.


노벨상 수상자도 논문 철회해

지난 2004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미국 허치슨 암연구센터 린다 벅 박사도 논문조작 스캔들에 휩싸였다. 영국의 권위있는 주간과학저널 ‘네이처’ 3월 6일자에는 벅 박사가 하버드대 의대에 있던 2001년 ‘네이처’에 실은 논문을 철회한다는 내용이 뉴스와 함께 실렸다.

린다 벅 박사는 컬럼비아대 박사후 연구원이던 1991년 쥐의 게놈에서 냄새수용체 유전자 그룹을 발견했다. 냄새 유전자가 1000여개로 전체 유전자의 3%에 이른다는 이 발견은 그때까지 경시됐던 감각인 후각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린다 벅과 지도교수 리처드 액설 박사를 생명과학계의 스타로 만들었고 두 사람은 2004년 노벨상 시상대에 나란히 올랐다.

이번에 7년 만에 철회된 논문은 냄새분자의 신호가 어떻게 대뇌피질에 전달돼 해석되는지를 규명한 내용이다. 지금까지 138회나 인용됐을 만큼 화제가 됐다. 벅 박사는 철회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 연구를 반복하고 확장하는 실험에서 결과가 재현되지 않았다”며 “이 과정에서 원래 데이터와 논문에 실린 데이터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쓰고 있다.

논문의 제1저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대 의대 지후아 조우 교수로 당시 박사후 연구원이었다. 벅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사진과 데이터는 그가 만들었고 논문은 조우와 자신이 같이 썼다는 것. 이에 대해 조우 교수는 자신의 실험에는 문제가 없다고 항변하면서 자신이 실험을 재현해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벅 교수는 조우 교수가 제1저자로 참여한 또 다른 논문 2편에 대해서도 진위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학 분야에서도 황당한 논문조작사건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주인공은 인도 스리벤카테스와라대 화학과 패티움 키란지비 교수. 그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불과 4년 동안 무려 66편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대부분이 조작으로 추정되고 있다. 분석화학 저널인 ‘탈란타’가 철회한 논문만 5편에 이른다. 키란지비 교수팀을 조사한 인도의 대학연구비위원회는 키란지비 교수가 대학에 있지도 않은 연구장비를 이용한 데이터를 만드는 등 조작 수준이 상식을 뛰어넘는다고 발표했다. ‘탈란타’의 편집장인 미국 워싱턴대 개리 크리스티안 명예교수는 “이 친구가 한 짓을 보면 그저 놀라울 뿐”이라며 “이런 사건은 지금껏 유래가 없던 일”이라고 개탄했다.

의도적인 조작 때문은 아니지만 결과가 재현되지 않는다며 연구자가 스스로 논문을 철회하는 사례도 종종 일어난다. ‘사이언스’만 해도 2월 1일자에 미국 듀크대 의대 호메 헬링가 교수팀이 “컴퓨터로 디자인한 효소의 활성 측정이 오류였다”며 2004년 논문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2007년 10월 26일자에도 일본 오사카대 의대 이치로 시모무라 교수팀이 인슐린 효과를 모방하는 단백질인 비스파틴을 규명한 2005년 논문을 철회하는 서신을 실었다.

이화여대 생명·약학부 이서구 교수는 “인기 저널에 논문을 실어야만 평가해주는 분위기도 문제”라며 “요즘은 대학원에 갓 들어온 학생들도 ‘좋은 데 논문 내 졸업하기 쉬운 실험실’을 찾아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일자리를 잡을 때에도 박사 과정 또는 박사후 과정 때 어디에 논문을 냈느냐가 결정적인 요인인 게 현실이다. 또 교수나 연구책임자가 된 뒤에도 연구비를 따내기 위한 연구계획서를 제출할 때 유명저널에 낸 논문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된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과학자의 ‘양심’을 파는 유혹이 그만큼 강렬한 이유다.


논문조작, 어떻게 드러났을까?

황 교수팀의 논문조작이 당시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의 난자매매 제보가 계기가 돼 밝혀졌듯이 이번에도 제3저자인 CGK의 이용원 이사의 e메일이 시작이다. 이 이사는 지난해 12월 29일 ‘사이언스’와 ‘네이처 케미컬 바이올로지’에 e메일을 보내 실험이 재현되지 않는다며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두 저널은 곤란하다며 교신저자인 김 교수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김 교수는 펄쩍 뛰며 실험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답을 보냈다.

이런 와중에 지난 2월 12일 CGK의 김진환 사장은 KAIST의 고위인사를 찾아가 두 논문이 조작됐다고 제보했다. 다음날 KAIST는 조사를 시작했고 한 달여만에 중간발표를 통해 논문조작의 윤곽을 밝혔다. 그런데 CGK과 KAIST는 현재 서로 불편한 상태다. 김 교수가 MAGIC 기술 특허를 CGK로 빼돌린 사실을 뒤늦게 안 KAIST가 지난해 초 CGK에 특허반환소송을 냈고 아직도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6개월간 정직처분을 받기도 했다.

따라서 CGK 측이 자신의 존재 이유가 되는 MAGIC 기술을 부정하는 내용을 소송상대자인 KAIST에 제보한 배경에 대해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현재(3월 20일) CGK의 김진환 사장이나 이용원 이사는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2005년 7월 1일자 ‘사이언스’에 실린 김 교수팀 논문의 데이터. 현재 조작 범위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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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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