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 진화가 준 최고의 선물|조너선 밸컴 지음|노태복 옮김|도솔|356쪽|1만4000원
PROLOGUE
나는 왜 굳이 동물의 즐거움에 관한 책을 쓰려는 것일까? 개가 공을 물어오는 것을 좋아하고 고양이가 햇볕 쬐기를 즐긴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 아닌가? … 하지만 우리에게 좀 덜 친숙한 동물들은 어떨까? 이 동물들도 즐거움을 경험할까? 내가 내놓은 대답은 두말 할 것도 없이 그렇다는 것이며 이 책의 주된 목적은 동물세계가 즐거움으로 가득하다는 증거를 과학적 연구 및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 제시하는 것이다.
즐거움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엔도르핀의 분비를 늘려 건강한 삶을 가꿔준다. 인간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영화를 보며 테니스를 치고 음악을 듣는다. 심지어 지긋지긋한 공부나 일조차도 즐거운 마음가짐으로 덤벼들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즐거움은 진화와 생존을 위한 최고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하는 조너선 밸컴은 그 대상을 인간이 아닌 동물로 한정했다. 게다가 친숙한 반려동물이 아닌 혹멧돼지, 찌르레기, 이구아나, 복어 같은 야생동물들이 느끼는 즐거움을 연구한 결과들을 이 책에 실었다. 뇌과학과 신경과학의 발달로 동물의 의식과 감정을 밝힐 수 있는 길이 열린 덕분이다.
동물원의 이구아나는 먹이가 놓여있지만 차가운 우리 모퉁이와 따뜻한 태양램프가 내리쬐지만 높은 바위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할까. 미국 테네시대의 비교행동학자인 고든 부르크하르트 교수는 후자의 경우가 이구아나의 입장에서 더 즐거울 뿐만 아니라 적응에도 이로운 행동이라고 해석했다. 이구아나 같은 변온동물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햇볕을 쪼여야 하며 따뜻한 온기를 느끼면 기분이 좋아진다. 즐거움이란 감정은 이구아나가 살아남는 데도 유리하게 작용한 셈이다. 놀랍게도 이구아나가 햇볕을 쬐면 인간이 쾌감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과 비슷한 영역이 활성화된다.
호수나 연못에서 무리지어 헤엄치는 물고기들은 가끔 수면 위로 튀어오르는 묘기를 선보인다. 그 까닭을 적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나 몸의 기생충을 털어내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즐거움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1950년대의 저명한 동물행동학자인 마이어 홀츠압펠 박사는 코끼리물고기를 어항에 서 기르며 공을 넣어줬다. 혼자 어항에 갇혀 지내는 지루함을 덜기 위해서였을까. 코끼리물고기는 공을 툭툭 건드리며 놀았고 공위에 올라타 균형을 잡기도 했다. 이러한 행동은 포유류나 조류에 비해 열등하게 취급된 어류도 감정을 느끼고 놀이를 즐긴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다.
인간만이 즐거움을 향유하고 감정을 지닌다는 주장은 서서히 설득력을 잃고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단계적으로 돼지나 닭, 소를 사육하는 축사의 시설을 개선해나가기로 합의했다. 어둡고 악취 풍기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평생 새끼만 낳는 동물이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동물들의 행동을 세심히 들여다본 저자의 관찰력과 동물에 대한 애정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적자생존이니 진화니 하는 통념 자체를 깨버리고 순전히 즐겁게 놀고 있는 동물들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다. 적자생존이 아닌 낙(樂)자생존의 관점으로.
조너선 밸컴
‘책임 있는 의료를 위한 의사 위원회’의 동물행동연구 과학자. 주로 박쥐의 의사소통과 거북의 둥지틀기, 조류의새끼기르기에대한글을썼다.
2000년‘고등교육과정에서 동물이용: 문제, 대안및권고’를 저술했으며 평생 동물권옹호와 조류 관찰에 열정을 바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