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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의 친구 쥐

인류 위해 '천상의 문'으로 달려가는 비만 쥐, 누드 쥐

2008년은 무자년(戊子年), 쥐의 해다. 한국인은 연수를 셀 때 12간지를 기준으로 한다. 2007년은 돼지의 해고, 다음은 쥐, 소의 순서다. 특히 쥐(자, 子)는 12간지 가운데 첫 번째에 있는 동물인데, 쥐가 첫 번째에 오게 된 데는 재미있는 설화가 숨어 있다.

하늘의 왕은 정월 초하루에 천상의 문에 제일 먼저 도달한 짐승부터 지위를 주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들은 12마리의 동물(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은 기뻐하며 1등을 차지하기 위해 달리기 연습에 열중했다. 그 중에서 가장 열심인 동물은 소였다. 그런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법. 소를 지켜보던 쥐는 몸집이 작고 힘이 약한 자기는 1등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묘책을 냈다. 이윽고 결전의 날. 정월 초하루에 동물들은 앞 다투어 달렸고 소가 제일 먼저 도착하려던 찰나였다. 그 순간에 소 머리 위에 달라붙어 있던 쥐가 폴짝 뛰어 문을 1등으로 통과했다. 소는 분했지만 두 번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쥐가 십이지(十二支)의 첫머리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능력이 미약함을 깨닫고 꾀를 썼기 때문이다. 쥐의 해에 태어난 사람은 머리가 좋다는 속설이 있다. ‘꾀돌이’ 쥐의 속성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전염병 옮기는 불청객

누구나 한번쯤은 천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쥐의 소리를 들어봤을 것이다. 잠을 자려던 아이는 ‘찍찍’대는 쥐 소리에 이불을 코끝까지 올려 덮는다. 이내 눈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무서워 눈을 꾹 감아버린다. 그리고 수업을 받던 교실에서 누군가 ‘쥐다~!’라고 외치면 너도나도 책상 위로 올라간다. 쥐가 발등에 오르기라도 하면 기절해버릴 기세다. 두 눈으로 쥐를 확인하지 않아도 쥐가 출현했다는 말만으로 등골은 오싹하고 식은땀이 흐른다. 모두들 반기지는 않지만 쥐는 오랜 세월 인간과 공간을 공유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쥐는 시궁창이나 다락,창고 같은 인간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생활했다.

천연기념물연구소 임종덕 박사는 “인간과 쥐는 약 2600만 년 전인 신생대 올리고세 때에 갈라졌다”고 말했다. 쥐와 인간은 공통 조상을 가졌는데 이는 유전자에 지문으로 남아 있다. 실제로 쥐는 인간의 유전자와 80% 이상 유사하다. 5000만 년 전 지구상에 등장한 쥐는 긴 역사에 걸맞게 1800 종류가 넘는다.

쥐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집쥐라 불리는 랫(rat, 몸길이 약 20cm)과 생쥐로 불리는 마우스(mouse, 몸길이 약 8cm)가 있다. 랫이 마우스보다 크기가 크다. 랫은 보통 회갈색을 띠고 마우스는 흰색부터 검은색까지 색이 다양하다.

역사 속에서 쥐는 질병을 옮기는 매개체였다. 예를 들어 14세기 유럽인구의 80%를 죽음으로 내몬 흑사병은 쥐가 전염의 매개였다. 이렇듯 쥐는 전염병을 옮기는 해로운 동물로 피해야 하거나 위생을 위해 죽여야 하는 동물로 인식돼왔다. 사실 쥐는 유행성 출혈열이나 쓰쓰가무시병 같은 인수공통전염병을 옮길 수 있다. 왠지 쥐가 있다면 위생이 청결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미국 록펠러대 제프리 프리드먼 교수팀은 지난 1995년 비만을 억제하는 호르몬인 렙틴을 발견했다. 그리고 렙틴 분비량이 적은 쥐(왼쪽, 비만)와 렙틴 분비량이 정상인 쥐(오른쪽, 정상)를 만들었다.


쥐 게놈은 인간 연구 위한 로제타석

보통 사람들이 쥐를 피해 다닐지 몰라도 과학자들은 다르다. 이화여대 생명과학부 오구택 교수는 “손바닥에 놓인 흰 쥐가 너무 귀엽다”고 말할 정도다. 과학자들은 왜 생쥐를 좋아할까.

쥐는 유전자를 변형시키거나 유전자의 기능을 밝히기 쉽다. 생명과학분야 벤처기업인 마크로젠의 김형태 박사는 “쥐와 인간의 게놈은 80% 이상 똑같고 90% 이상은 비슷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침팬지 같은 유인원의 게놈은 인간의 게놈과 98%나 같지만 유인원 유전자를 조작하는데 한계가 있다. 교배도 힘들어 수십년을 기다려야 실험 결과가 나온다. 박테리아는 게놈이 비교적 단순하지만 몸 크기가 너무 작아 현미경 없이는 관찰할 수 없다. 동물에게 처치를 한 뒤 가능한 한 빨리 결과를 눈으로 확인해야하는 과학자에게 박테리아와 유인원은 그림의 떡이다.

인간과 게놈이 가장 비슷하면서 다루기 쉬운 동물이 바로 쥐다. 과학자들은 이런 특성을 이용해 쥐의 유전자를 알아내면 반대로 그것이 인간의 게놈에서도 비슷한 기능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쥐의 게놈은 고대 이집트에서 발견돼 이집트 상형문자 해석의 기초가 됐던 ‘로제타석’인 셈이다.

국내에서 과학자가 한해 실험대 위에 올리는 실험동물은 한국실험동물학회 추산치로 연간 약 500만 마리다. 그 가운데 80%가 실험쥐다. 쥐를 통해 약품이 인체에 안전한지 검사하는 것은 물론 화장품의 독성이나 노화 정도, 각종 질환을 테스트할 수 있다. 쥐는 만능 실험꾼인 셈.

2003년 2월 ‘네이처 드러그 디스커버리’는 “2003년 세계적으로 팔리는 100대 약은 전부 실험쥐에 전임상 과정을 거친 뒤 시판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실험용 쥐는 일반 시궁창 쥐와는 서식지부터가 다르다. 실험용 쥐는 일명 ‘쥐 아파트’라고 불리는 곳에서 자란다.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쥐가 2~3마리씩 들어 있다. 제한된 공간에 쥐의 밀도가 높아지면, 쥐는 상대를 물어 죽일 수 있기 때문에 2~3마리로 제한한다.

이 아파트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완전히 제거된 공간이다. 쥐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실험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관리자는 이틀에 한 번씩 쥐 아파트의 물과 톱밥을 갈아줘야 한다. 오 교수는 “수많은 쥐 가운데 정예멤버만을 골라 사용하므로 극진한 대접은 필수”라고 말했다.
 

쥐는 SPF라고 불리는 무균시설에서 사육된다.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쥐를 2~3마리씩 키우는데 환경을 청결하게 만들기 위해 톱밥과 물을 자주 갈아줘야 한다.


쥐의 변신은 무죄

‘맞춤형 쥐’에 대한 수요가 많은 만큼 다양한 쥐를 만들려는 노력도 많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실험동물실 이철호 박사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실험쥐의 계통이 10만 개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실험동물센터는 전국에서 밀려드는 과학자들의 맞춤형 주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임상단계에 들어가기 전 쥐에 먼저 실험을 해봐야 안전성이 검증된다는 사명감으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질환모델 쥐를 개발한 미국 유타대 유전생물학과 마리오 카페키 교수, 영국 카디프대 포유류유전학과 마틴 에번스 교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병리학과 올리버 스미시스 교수는 2007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들은 특정 유전자를 없애는 방법을 발견했는데, 특정 유전자가 관여하는 질병을 앓는 쥐가 태어나 질병 치료제를 실험할 수 있어 의학발전에 공헌했다.

이밖에도 비만 쥐, 난쟁이 쥐, 털이 전혀 없는 누드 쥐, 목이 마비돼 평생 별을 보고 살아야 하는 스타게이저(stargazer) 쥐, 항상 몸을 떠는 쥐가 모두 인간이 필요에 의해 유전자를 변형시켜 만든 쥐다. 최근 쥐는 과학자들의 절친한 친구로 탈바꿈했다. 독성 성분을 시험할 때나 신약 성분을 시험하는 ‘전(前)임상 단계’에서 쥐는 꼭 필요한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전임상 단계에서 게놈과 생리현상이 인간과 비슷한 쥐에 시험해 이상이 있다면 해당 성분이 인간에게도 해를 끼칠수 있어 임상단계로 넘어가지 않는다. 쥐는 ‘자신의 몸을 불태워 세상을 밝히는 촛불’처럼 인간을 대신해 실험대에 올라 몸을 바쳐 과학발전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만약 과학사에 쥐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과학자들은 쥐가 과학발전의 가속페달 역할을 한다고 입을 모은다. 수천 년 전 중앙아시아에 출현한 시궁쥐(rat) 라투스 노르베기쿠스(Rattus norvegicus)가 그동안 과학에 공헌한 바는 지대하다. 과학발전의 밑거름이 되며 지금 이순간도 과학자들의 요구에 맞춰 맞춤형으로 다시 태어난 쥐들은 천상의 문으로 들어가고 있다.
 

미국 유타대 센 우 교수팀은 뼈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알아낸 뒤 넉아웃 쥐를 만들었다. 그 결과 쥐의 척추, 팔, 꼬리 등의 뼈가 짧아졌다(왼쪽). 오른쪽은 정상 쥐다. 사진은 쥐를 X선으로 촬영한 모습.


E-mail Interview
미국 잭슨연구소 김도연 박사

실험쥐, 족보 만들고 철저히 관리


세계 쥐 게놈 연구의 메카인 미국 잭슨연구소에서 연구하는 김도연 박사와 관련 분야의 현황과 최근 연구결과에 대해 e메일 인터뷰를 했다.

Q1 잭슨연구소가 쥐 게놈 연구의 메카가 된 비결은 무엇입니까?

잭슨연구소는 100년 전인 1908년부터 쥐 게놈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쥐 게놈을 연구한 첫 번째 연구소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잭슨연구소는 세계 각지의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쥐의 80% 이상을 공급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습니다. 축적된 연구결과와 실험쥐에 대한 신뢰성이 ‘실험 쥐=잭슨’의 명성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잭슨연구소에서 만든 인브리드(inbreed) 쥐(같은 품종의 쥐와 교배한 쥐)의 종류는 30가지 이상인데, 이곳에서 인브리드 쥐의 ‘족보’를 철저히 관리합니다. 혼혈 쥐가 생기지 않도록 순수 ‘잭슨표’(jax) 순종 쥐만을 키운다는 뜻입니다.

Q2 그 결과 잭슨연구소에서만도 노벨상을 2번이나 수상했다고 들었습니다.

1975년에는 데이비드 발티보어 박사가 암 바이러스와 유전자의 관련성을, 1980년에는 조지 스넬 박사가 조직에 적합한 항원을 발견하는 방법을 밝혀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블루오션을 개척해나가는 쥐 연구기관인 만큼 획기적인 연구 성과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Q3 잭슨연구소는 최근 어떤 연구에 주목하고 있습니까?

최근 잭슨연구소는 암 관련 유전자를 활발히 연구합니다.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암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높다고 알고 있습니다. 쥐에서 암유전자를 연구해 사람의 암유전자 기능을 추측하는 방식입니다. 더욱이 잭슨연구소에서는 단일 유전자를 밝히는 것에서 더 나아가 유전자가 어떻게 상호작용 해 암을 일으키는지 밝힐 예정입니다.

Q4 실험쥐 연구의 미래 비전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최근 쥐모델의 자원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렉시콘이나 델타젠 같은 기업과 세계적인 협력기구에서 대규모로 실험쥐를 양산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머지않아 연구소에서 세포를 다루듯 쥐모델을 다루게 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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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목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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