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타워즈’에는 적들과 대치하고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로봇 알투디투가 리아 공주의 메시지를 공중에 홀로그램으로 띄워 모면책을 알려준 뒤 순식간에 사라지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주인공 존 앤더튼(톰 크루즈 분)이 가족과 찍은 동영상을 공중에 홀로그램으로 펼쳐 놓고 추억에 잠긴다.
이들 영화에서 3차원 영상으로 등장하는 해결사나 가족은 물리적인 실체는 아니다. 하지만 말과 행동, 겉모습 등 모든 요소가 실제 사람 같다. 영화에서는 최첨단 특수효과를 이용해 3차원 영상을 구현했지만 최근 3차원 디스플레이가 개발되면서 일상생활에서도 입체영상을 접할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
입체감의 이유, 양안시차
사람은 두 눈으로 사물을 보면서 3차원으로 인식한다. 사물을 3차원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두 눈이 같은 평면 위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물의 윤곽과 원근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한 가지 실험을 해보자. 한쪽 눈을 가리고 어떤 물건을 본 뒤 다른 눈을 가리고 동일한 물건을 보자. 그러면 그 물건이 조금 이동한 것처럼 보인다. 이를 ‘양안시차’(兩眼視差)라고 한다. 우리가 사물을 입체로 느끼는 이유는 이런 양안시차 때문이다. 만약 인간의 두 눈이 금붕어처럼 머리 양쪽에 있다면 왼쪽과 오른쪽을 따로 보기 때문에 사물을 입체로 인식할 수 없다.
닭, 개, 돼지, 소 같은 동물도 두 눈이 코를 기준으로 귀 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다. 두 눈이 같은 평면에 있는 동물은 사람을 비롯해 원숭이, 침팬지, 고릴라 같은 영장류밖에 없다. 디스플레이로 3차원 영상을 구현하는 원리도 양안시차를 이용한다. 좌, 우 2대의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하나로 합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을 그대로 합치면 영상이 중복돼 깨끗하게 보이지 않는다. 대개 입체영화관에서 특수 안경을 쓰고 화면을 보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특수 안경은 좌, 우 영상을 구분해 양안시차를 인위적으로 만든다.
지난 50여년간 30여 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3차원 디스플레이 방법이 개발됐는데, 이들 대부분이 양안시차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특수 안경의 경우 빛의 파장이나 편광, 셔터를 이용해 입체영상을 구현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목표는 동화상 홀로그래피 방식
사실 특수 안경을 쓰고 입체영상을 보는 방식은 맨눈으로 보는 방식에 비하면 아무래도 번거롭고 부자연스럽다. 평소 안경을 쓰는 사람이라면 입체영상을 보기 위해 특수 안경까지 이중으로 착용해야 한다. 최근 이런 불편을 없애기 위해 특수 안경을 쓰지 않고도 입체영상을 즐길 수 있는 3차원 디스플레이 연구가 활발하다.
3차원 디스플레이는 쉽게 말해 사람이 쓰던 특수 안경을 디스플레이 패널에 씌우는 것이다. 즉 좌, 우 영상을 구분하는 기능을 가진 특수 광학판을 디스플레이 패널의 앞과 뒤에 설치한다. 현재 가장 많이 개발된 방식은 디스플레이 패널 앞에 시차 장벽(parallax barrier)이나 렌티큘러 렌즈(lenticular lens)를 설치하는 것이다. 이들은 보는 사람의 좌, 우 영상을 분리시켜 입체감을 느끼도록 한다.
한 가지 단점은 렌티큘러 렌즈의 경우 좌우 수평 방향으로만 입체감을 얻을 수 있고, 수직 방향으로는 입체감을 얻을 수 없다. 누워서 본다면 입체감을 느낄 수 없다는 말이다.
집적영상을 이용하는 기술도 한창 연구되고 있다. 예를 들어 피사체 앞에 파리의 눈처럼 무수히 많은 렌즈가 달린 렌즈판을 놓으면 각 렌즈에 의해 무수히 많은 도립상이 생기는데, 이 상을 그대로 복원하면 원래의 피사체 위치에 3차원 영상이 생긴다.
이런 원리를 이용한 방법 중 현재 회전 스크린 방식이 가장 대표적인 형태다. 회전 스크린 방식은 표현하려는 사물에 레이저를 쏜 뒤 이를 고속으로 회전하는 나선형 스크린에 스캔한다. 이 경우 360° 어느 방향에서나 사물을 관찰할 수 있어 지금까지 알려진 입체영상의 모든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회전하는 스크린 날개의 지름에 따라 입체영상의 크기가 결정되고, 근본적으로 은면(hidden surface)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궁극적인 3차원 디스플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론적으로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등장한 동(動)화상 홀로그래피 방식이 3차원 디스플레이로는 가장 이상적이다. 주로 LCD 패널을 사용하는 디지털 홀로그래피 방식이 많이 연구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액정으로 표현할 수 있는 화상의 크기가 매우 작다. 예를 들어 10인치 정도의 작은 홀로그램을 표현하기 위해서 1200억 화소의 디스플레이 패널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홀로그래피 방식이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HDTV 이을 차세대 주자
지난 2002년 세계인의 뜨거운 관심 속에 열린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월드컵 축구경기를 3차원 입체영상으로 방송했다.
두 대의 카메라를 이용해 각각 다른 각도에서 경기 장면을 촬영한 뒤 메모리에 저장하고 이들 영상을 디스플레이에 동시에 띄워 맨눈으로 봐도 축구 선수들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입체감을 줬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HDTV의 다음 주자로 3DTV를 꼽고 있다. 미국에서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AT&T, MIT 등을 중심으로 항공 우주, 방송 통신, 국방, 의료 같은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3차원 디스플레이를 개발 중이다.
유럽에서는 1996년부터 DISTIMA 프로젝트를 통해 영상 회의용 3차원 영상 전송과 디스플레이 시스템을 개발했고, PANORAMA 프로젝트를 통해 2001년 3DTV 시험방송을 하기도 했다.2004년부터는 유럽공동체(EC)의 지원 아래 3D 기술로 유명한 헝가리의 ‘홀로그래피카’를 중심으로 4개국 6개 기관이 COHERENT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일본 역시 국책 과제를 통해 3DTV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했고, 최근 이를 상용화시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월 히타치는 휴대전화와 같은 모바일 단말기에 탑재할 수 있는 무게 1kg의 초소형 3D 디스플레이를 개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2005년 3DTV를 개발하기 위해 ‘3D 비전 2010전략’을 마련해 관련 연구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 계획대로라면 2010년 이후에는 스포츠, 오락, 게임 프로그램은 물론 모든 상용 프로그램을 3차원으로 즐길 수 있다. 특수 안경을 쓰지 않고 맨눈으로 입체영상을 즐기는 것이다.
LG전자는 지난해 2차원과 3차원 변환이 가능한 42인치 풀HD급 디스플레이 시스템을 선보였다. 삼성 SDI는 해상도를 2배 높인 3차원 디스플레이와 모바일용 3차원 디스플레이를 개발했다. 삼성전자 역시 휴대용 3차원 디스플레이와 2차원, 3차원 영상을 섞어서 표현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시스템을 개발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3D 디스플레이 기술은 태동기에 있다. 아직 세계적인 기술 표준도 마련되지 않았다. 즉 먼저 기술을 선점하는 나라가 3D 디스플레이에서는 일인자가 된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역시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다. 특수 안경 없이 보는 3차원 영상의 세계가 눈앞에 있다.
3D 디스플레이란?
기존의 2차원 평면영상과 달리 사람이 보고 느끼는 실제 상황과 유사한 입체영상을 구현하는 디스플레이. HDTV의 차세대 주자로 꼽힌다. 특수 안경을 쓰지 않고 맨눈으로 입체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 핵심이다. 360°모든 방향에서 영상을 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도 있다.
회전 스크린 방식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