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e d’Orsay
필자는 화학자다. ‘화학자가 웬 미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미술은 화학에 의해 그 생명력이 유지되는 예술이다. 다른 예술 분야와 달리 시각예술인 미술은 반드시 표현 매체가 있어야 한다. 전통 미술에선 이 매체가 물감이다.
음악이 인간의 목(성악)이나 악기(기악)를 매체로 사용하듯이 미술은 물감을 매체로 사용한다. 물감은 화학물질이다.
또 물감을 칠하고 나서 마르고 발색하고 퇴색하는 모든 과정도 화학반응이다. 즉 미술의 매체가 되는 물감이 제조되는 과정도, 쓰이는 과정도, 보존되는 과정 모두가 화학인 셈이다.
밀레의 ‘만종’이 칙칙한 이유
이번 전시회에서는 단연 밀레의 ‘만종’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만종’은 바르비종 부근의 샤이평야에서 황혼 무렵 부부가 멀리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일손을 멈추고 기도를 하는 장면을 그렸다. 이들의 발 근처에는 농기구인 쇠스랑과 손수레가 있고 바구니엔 캐다 만 감자가 들어 있다.
‘만종’에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계속되는 논란거리가 하나 있다. 바로 이들이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죽은 아기의 명복을 빌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논쟁은 20세기 초현실주의 대가인 살바도르 달리가 시작했다. 그는 만종이 아기의 관을 묻고 기도드리는 부부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1932년 정신병을 앓던 한 관람객이 ‘만종’에 칼자국을 내는 바람에 이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달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발견됐다. X선 촬영 결과 감자 바구니 자리에 조그만 나무관이 밑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감자 바구니가 아기의 관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아기를 묻는 장소가 밭일 리 없고, 옆에 있는 기구들도 관을 묻을 때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다.
또 밀레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레빌에서 저녁마다 잠시 허리를 펴고 기도드리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떠올리며 이 그림을 그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달리의 부모는 첫 아이를 아주 어려서 병으로 잃고 달리를 낳았는데, 그에게 죽은 형의 이름을 그대로 붙여줘서 달리는 평생 죽은 형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고 살았다고 한다. 따라서 달리가 이런 편견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다.
오히려 ‘만종’은 색채가 유독 칙칙하고 컴컴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만종’은 1857~1859년에 그려졌다. 당시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은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도시 근교는 물론 시골 여기저기에도 공장이 들어서 굴뚝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뒤 자동차가 증가하면서 유럽은 매연에 시달렸는데, 최근 이런 공해가 그림이 검게 변하는 흑변 현상의 큰 원인이 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실제로 물감 중에는 공해의 주범인 아황산가스와 반응해 검게 변하는 성분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또 물감 자체가 잘 변색하거나 퇴색하는 종류도 있고, 따로 쓸 때는 괜찮다가 둘을 섞으면 검게 변하는 성분이 든 경우도 있다.
가장 많이 쓰이는 파랑(울트라마린)이나 유황을 포함한 카드뮴계 노랑, 적색은 색이 밝고 아주 아름답다. 하지만 이들을 납이 든 흰색이나 노란색과 섞어 사용하면 검게 변한다. 납과 황이 반응하면 황화납(PbS)이 되는데, 이것이 검은색이다. 유화에서 사용하는 기름은 이런 반응을 촉진하는 일종의 유기용매 역할을 한다. 그래서 수채화보다 유화에서 흑변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오래된 명화는 대개 어두운 경우가 많은데, 원래부터 그렇게 검게 그린 그림이 많을 리가 없다. ‘만종’은 황혼을 표현한 그림이라 좀 어둡기는 하겠지만 밀레가 그렸을 당시 그림은 지금 보는 것처럼 칙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둡고 칙칙한 느낌을 오래된 그림이라 중후한 매력을 풍긴다며 그냥 넘겨야 할지는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유화를 탄생시킨 불포화지방산
시간의 역사를 따라 명화를 훑어오다가 1434년 네덜란드의 화가 얀 반 에이크가 그린 ‘아르놀피니의 결혼’을 보면 누구나 깜짝 놀란다. 갑자기 나타난 생생한 색감과 놀라운 기교 때문이다. 이전의 그림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색채는 놀랍기만 하다. 당시 유럽인들에게는 그 충격이 더 컸으리라. 그런데 사실 이렇게 화려한 색채는 불포화지방산 덕분이다.
얀 반 에이크는 유화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식물성 불포화지방산인 아마인유(linseed oil)를 사용해 이전에는 거의 불가능했던 정교한 붓질이 돋보이는 유화 기법을 완성했다. 지금도 대부분의 유화 물감에는 아마인유가 들어 있다.
불포화지방산은 지방산 사슬 중에 불포화기를 포함하고 있어 녹는점이 낮아 상온에서는 액체 상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불포화기가 교차결합을 하며 굳어 단단한 도막(塗膜, film of paint)을 형성한다. 이 점을 이용해 불포화지방산을 물감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전에 불포화지방산의 역할을 한 물질은 달걀 노른자였다. 이를 템페라(tempera)라고 한다. 더 이전에는 석고 위에 수성 물감을 스미게 하는 프레스코(fresco) 기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프레스코나 템페라는 유화가 보여주는 정교함을 표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당시 회화의 주된 장르였던 초상화에서 이런 유화의 특징이 큰 힘을 발휘했다. 유화는 광택이 뛰어나서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이후 거의 모든 서양화는 유화 기법을 사용했다.
인상파 화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눈부시도록 붉은 바지를 입은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이나 그리스도와 항아리에 자신의 얼굴을 숨겨 놓아 모두 세 명의 고갱을 그린 고갱의 ‘자화상’,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이 비정상적으로 길다는 평가를 받은 탓에 더 유명세를 탄 루소의 ‘M부인의 초상’은 모두 유화로 인물의 초상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빨강과 파랑 섞지 않고 보라 만들기
인상주의는 빛을 그리는 미술이다. 물체 고유의 색을 부정하고 그 물체의 표면이 반사하는 빛이 만드는 순간을 포착해 그 인상을 표현한다. 빛을 그려야하는 화가들의 도구는 물감이었다. 하지만 자연에서 보는 빛은 생각보다 훨씬 밝았고 이는 물감으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미묘하고 다양한 색을 만들기 위해 물감을 섞을수록 명도와 채도가 떨어져 색은 어두워졌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당시 독일의 헬름홀츠, 영국의 맥스웰, 프랑스의 쉐브릴과 블랑 등이 연구했던 프리즘에 의한 스펙트럼 분광분석법이었다. 즉 화폭에 나타날 최종색을 분광분석한 뒤 각각의 원색을 팔레트에 섞는 대신 화폭에 나란히 칠한다. 그러면 우리 눈의 망막은 이들이 혼합된 중간색이 나타나 원하는 최종색을 칠한 것처럼 느낀다. 눈의 잔상효과 때문이다. 이를 병치혼합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빨강과 파랑의 작은 점들을 모자이크처럼 교대해서 찍어 놓고 이를 멀리서 보면 보라색으로 보인다.
마네, 모네, 세잔, 고흐, 시냐크 등 인상파 화가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병치혼합을 이용했다. 붓으로 찍는 점의 크기와 모양은 모두 달랐지만 말이다. 특히 쇠라나 시냐크는 색점의 크기를 아주 작게 해서 병치효과를 극대화했다.
모든 화가가 이런 화학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림을 그렸을 리는 없다. 하지만 화학적으로 제조된 물감을 매체로 사용해 시각적인 예술을 창조하는 한 미술은 분명히 화학을 필요로 한다. 화학을 무시한 그림은 퇴색되고 변색돼 화가가 창조한 원래의 가치 역시 변질될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미술과 화학은 공통점이 있다. 물질의 본질과 변환을 다루는 화학은 원래 상상력 없이는 새로운 학설을 만들지 못하는 학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룰 뿐만 아니라 물성이 유지되는 범위를 뛰어 넘는 화학적 변환을 다루기 때문이다. 화학이든 미술이든 결국 아름답고 창조적이며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