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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식 피타고라스 정리

구고의 원리


동양식 피타고라스 정리


밑변이 3cm, 높이가 4cm인 직각삼각형의 빗변은 얼마인가? 잘 알다시피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은 다른 두 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는 ‘피타고라스 정리’를 적용하면 32+42=25인데, 25=52이므로 답은 5cm가 된다.

직각삼각형 세 변의 관계에 대한 지식은 이미 기원전 2000여년 전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에 나올 정도로 오래된 것이다. 하지만 피타고라스가 처음으로 논리적인 증명을 완성해 피타고라스 정리라고 한다. 또한 직각삼각형의 세 변이 될 정수의 쌍을 ‘피타고라스 3쌍’이라고 하는데, 서양 수학에서는 이 쌍을 발견하고 증명법을 개발하는데 오래도록 매달렸다.

중국에서도 피타고라스 정리는 오래 전에 발견돼 천문학과 수학에 응용됐다. 지금까지 이 정리를 증명하는 방법은 수백개가 넘게 알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고대 중국에서 만든 증명법이 ‘가장 아름답고 좋은 방법’으로 인정받는다. 즉 3세기경에 활동했던 중국 수학사의 천재 유휘(劉徽)가 8개의 직각삼각형을 오려붙여 빗변을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면적이 다른 두 변을 각각 한 변으로 하는 두 정사각형의 면적의 합과 같다는 점을 증명했다.

서양에서 피타고라스 정리는 수학에서 다뤄져 천문학과 별 관계가 없지만, 동양에서는 이 원리가 천문학과 수학 모두에서 우주의 비밀을 간직한 열쇠로 중요하게 취급됐으며 동양과학의 대표적 원리로 인정됐다.

우주의 비밀을 여는 열쇠


손에 기역자 모양인 곱자를 들고 있는 복희(오른쪽)와 원을 그릴 수 있는 컴퍼스를 들고 있는 여와.


기원전 1세기경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비산경’은 해그림자 측정법과 우주의 크기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는 전통천문학의 경전으로 인정받아온 책이다. 전통천문학의 가장 대표적인 관측법은 평면에 수직으로 막대를 세우고 막대가 만드는 해그림자의 길이를 측정해 1년의 길이나 절기를 알아내는 방법이었다. ‘주비산경’에서는 해그림자를 측정해 하늘까지의 거리와 우주의 크기를 계산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피타고라스 정리라 부르는 원리가 적용됐다.

해그림자를 측정하는 막대를 ‘고’(股)라고 하고 막대가 만드는 그림자를 ‘구’(句)라고 불렀는데, 고와 구가 만드는 삼각형이 직각삼각형이다. ‘주비산경’에서는 길이가 8척(1척=10촌, 1촌은 약 3cm)인 막대를 세웠다. 태양이 수직으로 내리비치는 지점에서는 막대에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주비산경’에서는 이 지점으로부터 1000리(1리=1296척) 멀어질 때마다 그림자 길이는 1촌(寸)씩 늘어난다고 믿었다. 이 원칙대로라면 태양이 수직으로 내리비치는 지점으로부터 6만리 떨어진 곳에서 해그림자를 측정하면 그림자 길이는 6척이 된다. 이때 막대 길이는 8척이고 그림자 길이가 6척이므로 직각삼각형의 빗변은 10척이 된다. 그림자 길이 6척으로 관측지에서 태양이 수직으로 내리비치는 지점까지의 거리가 6만리라는 점을 알 수 있으므로 삼각형의 닮음을 이용해 지면에서 태양까지의 높이는 8만리, 관측지점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10만리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관측과 계산은 그림자인 구와 막대인 고가 만드는 직각삼각형에서 이뤄져 여기에서 도출된 원리를 ‘구고(句股)의 원리’라 불렀다. 물론 1000리당 그림자가 1촌씩 늘어난다는 점은 과학적으로 잘못된 사실이기 때문에 앞에서 계산한 태양까지의 높이나 거리는 틀린 값이다. 하지만 고대인들은 구와 고가 만드는 직각삼각형을 갖고 우주의 크기도 알아낼 수 있다고 믿을 정도로 구고의 원리를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라고 생각했다.

자와 컴퍼스를 든 신


두 개의 막대를 세운 뒤 구고의 원리를 적용해 섬에 있는 바위산의 높이를 구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그림.
 


중국 한나라 때 돌에 새긴 여러 그림 속에는 복희(伏羲)와 여와(女)로 알려진 두 신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복희는 손에 기역자 모양의 곱자인 구(矩)를 들고 있고, 여와는 원을 그릴 수 있는 컴퍼스인 규(規)를 들고 있다. 원래 복희는 오빠이고 여와는 누이동생이었는데, 오누이간에 부부가 됐다. 이들은 사람 몸에 뱀 꼬리를 한 모습이며, 꼬리를 서로 꼬고 있다. 남녀의 결합을 나타낸 이런 모습은 우주의 생성과 질서를 의미한다고 한다.

도상(종교나 신화적 주제를 표현한 미술작품에 나타난 형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복희가 들고 있는 곱자는 남성 원리인 양(陽)의 기운을, 여와가 들고 있는 컴퍼스는 여성 원리인 음(陰)의 기운을 나타내므로 둘이 함께 우주 원리를 상징한다고 본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사람 몸통에 뱀 꼬리를 한 복희와 여와가 태양과 달을 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태양과 달을 각각 양과 음에 대응시키면 복희와 여와의 모습이 우주 원리를 상징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여와의 컴퍼스가 원을 그리는 도구이고 복희의 곱자는 네모를 그릴 수 있으므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관념을 상징한다고 할 수도 있다.

곱자와 컴퍼스가 지닌 수학적 의미에 집중해보면 두 물체는 중국의 고대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개념을 상징하고 있다.복희의 곱자는 구고의 원리, 즉 직각삼각형의 원리를 나타내고 여와의 컴퍼스는 원의 원리를 나타내는 것이다.

원둘레와 지름의 비율을 ‘원주율’이라고 하는데, 이 비율을 알아내고 응용하는 일은 중요한 수학적 주제였다. 전통수학에서는 ‘원삼경일’(圓三徑一)이라는 말로 원주율을 표현했다.‘지름이 1이면 원둘레는 3’이라는 뜻이다. 물론 고대의 원주율 3은 정확한 값이 아니었지만, 수학적인 이해가 깊어지면서 원주율은 정확한 값에 가까워졌다. 유휘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내접다각형의 넓이가 원의 넓이에 근접해가는 원리를 적용해 96각형의 넓이를 계산하고 원주율(π)이 3.141024와 3.142704 사이의 값이란 점을 알아냈다.

또 복희가 들고 있는 곱자는 중국의 피타고라스 정리인 ‘구고의 원리’를 상징한다. 구고의 원리는 특히 측량에 응용해건물의 높이나 낭떠러지의 깊이를 잴 수 있었기 때문에 대단한 우주적 비밀을 간직한 것으로 인식됐다. 멀리 있는 나무를 보고 곱자를 세운 다음, 곱자 밑변의 끝에서 나무 끝을 일직선으로 바라보면 나무의 밑과 끝, 관측지점(곱자의 끝점)이 이루는 직각삼각형을 얻는다. 또한 곱자 안에서도 작은 직각삼각형이 나온다. 이제 관측지점에서 나무까지의 거리를 알면 삼각형의 비례를 이용해 나무의 높이를 구할 수 있다. 곱자를 아래로 향해 측량하면 마찬가지 원리로 낭떠러지의 깊이를 잴 수 있다. 나무 꼭대기나 낭떠러지에 직접 가보지 않고도 구고의 원리를 이용해 높이나 거리를 알 수 있으므로 구고의 원리는 중국에서 수학 전체를 대표할 만큼 중요한 것으로 인식됐다. 이 때문에 복희의 손에는 구고의 원리를 상징하는 곱자가 들려있었던 것이다.


‘구장산술’에서 유휘가 증명한 구고의 원리. 직각삼각형의 각 변을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면적을 비교하는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기하학원론 vs. 구장산술

점, 선, 면으로 이뤄지는 도형을 다루는 수학분야를 기하학이라고 하고, 숫자의 셈을 다루는 분야를 대수학이라고 부른다. 서양에서는 기하학 중심의 수학이 발달한 반면, 동양에서는 대수학 중심의 수학이 발달했다. 서양수학의 가장 대표적인 고전이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인 점과 동양수학의 대표적 고전이 ‘구장산술’이란 점을 비교해 보면 동서양 수학의 이런 특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구장산술’은 다음과 같은 9개 장으로 이뤄져 있다. ①방전(논밭의 면적 계산) ②속미(곡식의 교환비율 계산) ③쇠분(물건의 분배 계산) ④소광(넓이와 부피 계산) ⑤상공(토목공사의 공정과 부피 계산) ⑥균수(운반거리와 비용 계산) ⑦영부족(잉여분과 부족분을 알 때 물건의 가격이나 개수 계산) ⑧방정(연립방정식의 조건에서 물건의 가격과 개수 계산) ⑨구고(직각삼각형에서 변들의 비를 이용한 계산). 9개 장 모두가 ‘산술’, 즉 수치를 계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산술 중심의 전통수학에서도 서양의 기하학과 가장 가까운 분야가 있었다. 바로 직각삼각형의 원리를 적용해 문제를 푸는 ‘구고’라는 분야였다. ‘구장산술’에서 취급한 구고 문제는 두 변을 알고 있을 때 구고의 원리를 적용해 한 변을 구하는 단순한 문제였다. 후대로 가면서는 한 변과 다른 두 변의 합, 한 변과 다른 두 변의 차, 한 변과 다른 두 변의 곱, 한 변과 다른 두 변의 몫 등을 제시하며 좀더 복잡한 문제 상황을 연출했다. 더 복잡한 경우는 세 변 사이의 합이나 차와 두 변의 곱을 알 때 각 변을 구하는 문제까지 있었다.

서양수학은 17세기부터 중국에 들어온 예수회 선교사들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서양수학의 고전인 유클리드의 기하학이 ‘기하원본’이라는 책으로 번역됐다. 중국과 조선의 학자들은 ‘기하원본’에 나온 기하학과 가장 닮은 내용을 전통수학 분야에서 찾았다. 그들은 직각삼각형의 피타고라스 정리가 고대부터 전통수학에서 잘 알려져 있던 구고의 원리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때문에 직각삼각형을 ‘구고형’이라고 불렀다.

삼각형에서 구와 고를 바꾸기까지

동양수학은 애초부터 가정을 세우고 증명해 정리를 만드는 논리적 방식이 아니었다. 실생활의 문제 상황에 해당하는 숫자를 주고 원리에 따라 계산해 원하는 수치를 구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또한 언제나 전통을 중시했기 때문에 문제의 상황이나 푸는 과정도 전통적으로 확립된 원칙에 충실하려고 애썼다. 구고의 원리를 그냥 피타고라스 정리라고 바꿔 부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수학적 관점에서 볼 때 피타고라스 정리와 구고의 원리는 같다고 할 수 있지만, 구고의 원리가 적용되는 전통적인 문제 상황을 잘 보면 독특한 동양식 사고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 정리에서는 밑변이 3이고 높이가 4인 경우나 밑변이 4이고 높이가 3인 경우를 모두 동일한 문제로 취급한다.직각을 사이에 둔 두 변은 서로 바뀌어도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고의 원리에서는 구와 고를 엄격하게 구분했다. 문제가 항상 ‘구는 얼마이고 고는 얼마이다. 그러면 현은 얼마인가’라는 식으로 주어졌다. 따라서 해그림자 측정이나 측량문제에서는 항상 고는 평면에 수직으로 선 막대를, 구는 평면에 누운 선분을 가리켰다.

또 일반적인 삼각형을 다룰 때도 구는 짧은 선분으로, 고는 긴 선분으로 규정했다. ‘주비산경’에서 확립된 원칙대로 구고의 원리는 해그림자를 측정할 때 수직으로 선 막대가 8척이고 평면에 누운 그림자의 길이가 6척이었다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므로 구는 ‘누워있는 짧은 선분’이고, 고는 ‘서있는 긴 선분’이라는 원칙을 꼭 지키고자 했다. 그래서 문제에서 구가 고보다 길 때는 서로 바꿔 불렀다.

서양기하학이 들어와 피타고라스 정리에서 구와 고를 호환한다는 내용을 접한 다음에도 학자들은 한참 동안이나 구와 고를 바꿔 부르지 않으려고 했다. 전통수학의 원칙을 그대로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서양기하학을 더 널리 이해하며 다루던 18세기 초에는 일부 조선학자가 선분의 길이에 관계없이 구는 누워있는 선분, 고는 서 있는 선분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전통적인 원칙에서 벗어나면서 좀더 서양식 기하학적 개념에 가까워진 셈이다.

19세기 중반 서양기하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서양수학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서 구고의 원리에서도 구와 고를 호환해도 된다는 식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조선 최고의 수학자로 알려진 남병길(1820~1869)도 “구와 고는 서로 이름을 바꿔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19세기 중반에야 구고의 원리를 피타고라스 정리와 동일한 기하학적 원리로 여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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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전용훈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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