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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이름 새기려는 욕망

라카유와 고물자리

5월, 봄철 별자리가 머리 위에서 빛나는 계절이다. 남서쪽 지평선너머로 사라지는 은하수 끝에는 시리우스가 마지막 빛을 뿜는다. 그 아래 고물자리를 보고 싶지만 지평선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반 밖에 볼 수 없다.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남반구로 가야만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고물자리에 있는 다양한 볼거리에 망원경을 겨누다보면 항상 목마름을 느낀다. 남쪽 하늘에는 어떤 별자리가 있을까.

봄철 남서쪽 하늘 지평선 가까이 빛나는 고물자리와 나침반자리. 고물자리는 우리나라에서 절반만 볼 수 있다(나머지 부분은 점선).


컴퍼스, 현미경, 나침반으로 가득 찬 남천

북반구에서 볼 수 있는 황도 12궁을 비롯한 대부분 별자리는 이미 기원전 2세기경 그리스 천문학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의‘메갈레 신탁시스’라는 책에 기록돼 전해졌다. 이 책에 있는 별자리는 지금은 없어진 안티노우스자리를 포함해 모두 49개로 약 2000년 동안 별자리의 기준이 됐다.

하지만 이집트 남쪽 세상 자체가 알려져 있지 않던 근대 이전까지 사람들은 남반구에서 볼 수 있는 별의 모습을전혀 알 수 없었다. 17세기‘항해시대’가 열리면서 남반구를 여행한 사람들이 비로소 남천의 새로운 별들을 알리기 시작했다.

독일의 천문학자인 요한 바이어는 남쪽 지평선에 있는 몇몇 별들을 연결해 새로운 별자리 12개를 추가했다. 신기하게도 바이어는 남쪽을 여행한 적이 없다. 아마 네덜란드 항해가인 페트루 테오도루스의 기록을 갖고 별자리를 만들어 이름을 붙였던 것 같다.

바이어가 시작한 남쪽 별자리 만들기는 니콜라스 라카유에 이르러 절정을 맞는다. 프랑스 동부 뤼미니에서 태어난 라카유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그는 수학과 천문학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결국 대학을 졸업한 뒤 성직을 떠나 수학 연구에 몰두했고 곧 마자랭대의 교수가 됐다. 당시 파리천문대 대장이었던 카시니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천문 관측의 세계에 그를 끌어들였다.

1750년 프랑스 과학원은 자오선을 측정하기 위해 남아프리카 키에프타운에 관측대를 보낼 계획을 세웠다. 마침 남쪽하늘의 별에 관심이 많았던 라카유가 이 관측대에 지원했고 4년 동안 관측대의 대장으로서 과학 임무를 수행했다.

관측대의 관측 장비라고는 대물렌즈의 지름이 10mm 남짓한 소형 굴절망원경뿐이었지만, 그는 쉼 없이 관측을 해 결국 1만개에 이르는 남천의 별과 수십 개의 성운, 성단을 정리해 ‘라카유 목록’을 남겼다.

근대적인 천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남천을 관측한 최초의 과학자로서 자부심이 남달랐던 그는 남천의 별들을 별자리로 묶을 계획을 세웠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북천별자리에 고대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이 많다는 사실을 탐탁찮게 여겨 공기펌프, 컴퍼스, 망원경, 현미경, 화학실험에 쓰던 화로, 팔분의, 시계, 나침반 같은 당시 과학혁명을 불러온 실험기구를 별자리로 만들었다.

또 그리스 신화의 영웅 50명이 탔다는 거대한 배를 기념해 만든 아르고(Argo)자리를 배의 뼈대에 해당하는 용골자리, 꼬리부분인 고물자리, 나침판자리, 돛자리 4부분으로 나눴다. 라카유가 제정한 별자리는 모두 17개로 이 별자리들은 남반구 별자리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생각해 보면 다소 조잡하고 별 것 아니게 보일지 모르지만 라카유로서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과거의 별자리가 밝은 별 위주로 하늘의 일부분만 차지하고 있어서인지 현대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별자리를 추가하려는 욕구가 생겼다. 이런 움직임은 17세기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의 왕과 제후들은 앞 다퉈 천문학자를 후원했다. 여기에는 천문학자가 발견한 별과 별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후세에 남기려는 권력자의 욕망이 숨어있었다.천문학자도 자기를 후원해주는 권력자에게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별자리를 만들었다.

01 남십자자리와 센타우르스자리 알파별과 베타별.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다. 남십자자 리는 88개 별자리 가운데 가장 작은 별자리 다. 센타우르스자리 알파별은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다. 021756년 라카유가 남긴 남쪽하늘 별자리 목 록의 일부. 센타우르스자리 알파별과 베타별 (왼쪽 점선 안), 남십자자리(오른쪽 점선 안)를 볼 수 있다.



별자리를 폐하의 품안에

대표적인 별자리가 영국의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가 남천 용골자리 근처에 만든 찰스의 떡갈나무자리다. 영국왕 찰스 2세가 어린 시절 왕실과 의회 사이의 무력 충돌이 일어나 크롬웰의 군대에 쫓기자 떡갈나무 뒤에 숨어 목숨을 구했다는 일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프랑스 천문학자 오거스틴 로여가 도마뱀자리 근처에 만든 왕홀자리도 비슷한 종류다. 프랑스 왕 루이 14세를 기려 왕권을 상징하는 상아판을 별자리로 만들었다. 로여는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문장인 백합꽃을 별자리로 만들기도 했다.

독일 프로이센의 천문학자 고트프리트 키르히가 프로이센 초대국왕 프리드리히 1세를 위해 만든 브란덴부르크의 왕홀자리나, 폴란드의 신부이자 천문학자였던 포스초푸트가 폴란드 왕 스타니수아프 포니아토프스키를 기념해 만든 포니아토프스키의 황소자리도 권력이 만든 별자리다.

여기에 천문학자가 개인의 취향이나 사연으로 만든 별자리도 많이 등장했다. 말벌자리, 꿀벌자리, 순록자리, 개똥지빠귀자리, 고양이자리, 올빼미자리 처럼 동물의 이름을 따서 별자리를 만드는가 하면 자신이 살고 있는 지방의 유명한 강이나 산을 별자리로 만들기도 했다. 또 유명한 천문학자를 기리는 별자리도 생겼다.

우후죽순으로 생긴 별자리들 때문에 밤하늘에는 약 200년 동안 혼란이 계속됐다. 그러나 시민세력이 성장하고 의회정치가 활발해지면서 천문학자를 후원하던 세력이 점차 힘을 잃어가자, 동시에 그들의 권력이 만든 별자리도 함께 사라져갔다.

마침내 1930년 국제천문연합에서 별자리 88개를 확정하면서‘하늘지도’에 대한 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개인이 정한 많은 별자리가 목록에서 빠졌지만 라카유가 만든 고물자리를 비롯한 상당수의 별자리는 목록에 남았다. 권력자를 기린 별자리 중에서는 17세기 이슬람 국가인 터키에 맞서서 싸운 폴란드의 기독교 영웅 소비에스키를 기린 방패자리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사실 역사의 중간에 사라져버린 별자리가 현재 밤하늘에서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이런 별자리가 보여주는 혼돈의 역사는 권력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고군분투한 인간 심성의 역사이기도 하다.

혜성의 이동경로 5월 맥홀쯔 혜성은 페가수스자리를 떠나 돌고래자리로 이동한다. 여름이 되면 고도가 더 높아지지만 밝기는 더 어두워진다.



이달의 천문현상 - 올해 볼 수 있는 가장 밝은 혜성은?

지난 1월 초순‘맥노트’라는 이름의 밝은 혜성이 초저녁 하늘에 보인다는 뉴스가 화제였다. 겉보기 밝기가 -2등급에 이르는 30년 만에 가장 밝은 혜성이라는 보도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혜성을 봐야겠다는 결심을 한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사실 관측 조건을 따지고 보면 이 뉴스는 좀 과장됐다. 혜성은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급격하게 밝아진다. 하지만 태양에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태양의 밝은 빛때문에 관측하기는 오히려 더 어렵다. 맥노트 혜성도 태양에 가장 가까이 갔을 때 -2등급까지 밝아졌지만 실제 하늘에서는 그 정도로 밝지 않았다. 해가 진 직후 산꼭대기에서 눈에 간신히 보일 정도로 -2등급의 위용은 느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올해 예정된 혜성 중 가장 밝은 혜성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올해에는 밝은 혜성이 없다. 그래도 굳이 찾자면 바로 5월에 볼 수 있는 ‘맥홀쯔’ 혜성이다.

맥홀쯔 혜성은 5년마다 지구를 찾아오는 단주기 혜성이다. 그러나 최근 1996년과 2001년 두 번 모두 관측 여건이 좋지 않았다. 올해 16년 만에 맥홀쯔 혜성을 제대로 관측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이 혜성은 4월 4일 태양에서 약 1500만km 떨어진 근일점(태양에 가장 가까운 지점)을통과했을 때 가장 밝았다. 하지만 태양과 너무 가까워 보기 어려웠다. 근일점을 지난 뒤부터 급격히 관측 조건이 좋아졌다.

5월 초순, 동이 트는 새벽 동쪽하늘 지평선 부근에서 맥홀쯔 혜성이 페가수스자리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때 혜성의 밝기는 8등급 정도로 맨눈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소형 천체망원경이나 쌍안경으로는 쉽게 관측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혜성의 고도는 훨씬 높아진다. 비록 혜성의 밝기는 10등급으로 더 어두워지지만 해뜨기 전 어두운 하늘에서 더 오래 관측할 수 있다.

2007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조상호 천체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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