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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 24시간 동안 보이지는 않지만 수많은 전쟁을 치른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평범한 과정도 마이크로의 세계에서 바라보면 수많은 세균들이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극적인 무용담이 된다.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의 크기는 20μm(마이크로미터, 1μm=100만분의 1m) 정도. 캄캄한 암실 속을 지나는 빛줄기 사이로 떠다니는 먼지의 1/10 크기다. 이들은 어쩌다 자리잡은 부엌 한구석에서 조용히 며칠이고 살아간다. 주변의 얕은 물에 몸을 담그고 떠다니는 영양분 알갱이를 섭취한다.

그러나 우리가 손가락으로 무심코 건드리기만 해도 이들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진다. 손가락 끝에 눌려죽은 일부를 제외하면, 인간의 피부는 충분한 습기와 함께 칼슘, 나트륨, 포도당, 각종 아미노산이 포함된 땀이 묻어있어 살모넬라균에겐 그야말로 천국이다.

영국 작가 데이비드 보더니스가 쓴‘시크릿 하우스’는 아침 7시에 일어나 밤 11시 45분에 잠들 때까지 하루의 일상을 따라가며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는 온갖 현상과 사건을 과학자의 독창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아침 7시엔 자명종이 울리는 소리의 파동이 마하 1의 속도로 달려 사방으로 퍼지고, 벽과 커튼에 부딪혀 실내온도를 올린다. 대부분의 파동은 집주인의 귀에 들어가 마침내 잠을 깨운다.

출근하기 전 화장을 마무리하는 아침 7시 43분엔 립스틱을 바른다. 립스틱에는 광택을 내주는 생선비늘이 들어있다. 쇼트닝, 비누, 피마자유, 석유 왁스, 향수, 방부제와 생선 비늘의 혼합물이 매일 아침 여성들이 입술에 바르는 물질의 정체다.

주인이 떠난 빈집 안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서랍장 속 스웨터들은 아주 느린 속도로 서로를 물들이고, 화장대 위 은팔찌에 묻은 물 분자막에서는 서서히 녹이 생기고 있으며, 침실 벽을 이루는 흙에 섞인 라돈 불순물 때문에 방에는 방사성 라돈 기체가 감돈다. 라돈이 자연 붕괴를 시작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섬광이 번쩍인다.

저녁에 귀가해 욕실을 쓸 때도 작지만 중요한 변화가 어김없이 일어난다. 변기의 물이 내려갈 때는 세균과 바이러스가 섞인 미세한 물방울이 50억~100억개 정도 하늘로 솟아오른다. 변기 뚜껑을 닫지 않으면 이들 중 일부는 우리의 입과 코로 들어간다.

저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재를 독특하고 날카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풍부한 역사적 배경지식까지 동원해 우리의 평온한 일상을 박진감 넘치는 세계로 묘사하고 있다.

‘매니큐어는 당구공의 실패작’‘청바지는 사실 절반만 파랗다’‘스페인의 마야 정복은 재채기 때문이다’등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어 한번 잡으면 손에서 놓기 힘들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다.

 

시크릿 하우수^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명남 옮김(생각의 나무, 300쪽,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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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상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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